제 173 화
처음에 뉴월드대전점을 오픈하면서 대전에 지점을 3개까지 늘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기건일에게 가맹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알아봐 달라고도 이야기 했으니깐 말이다.
그런데 김장춘이 이번에는 가맹점에 관심이 생긴 모양이다.
“알로하 가맹점을 차리시려고 그러십니까?”
“사실 가맹점에는 별로 욕심이 없었는데 알로하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생겨 가지고 내 줄 수 있다고 하면 하고싶어요.”
“지인입니까?”
“우리 딸인데…최근에 여기 다녀가서 밥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다고 칭찬을 하더라고…그리고 자기가 직접 해보고 싶다고 해서 가맹점을 내어 줄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
“따님이요?”
그가 직접 운영을 한다고 하면 바로 지점을 내어 줄 생각이 있었다. 어찌 되었던 뚝배기 불고기라는 브랜드를 전국구로 키워냈으니 그 노하우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이 운영한다고 하니 별로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원래 딸도 자기 가게하고 싶어 했거든요. 그래서 뚝배기 불고기 추천을 해줬더니 자기 감성이랑은 뚝배기는 안 맞는다고 거절했어요.”
그의 이야기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하긴 장사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잘 된다.
내가 돈카츠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뚝배기 불고기는 젊은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브랜드는 아니니 아무리 아버지가 사장이라고 해도 별로 땡기지 않을 수 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저희가 가맹점주를 조금 깐깐하게 보는 편입니다.”
“그런가요?”
“네, 사장님도 지점을 많이 가지고 계셔서 알고 계시겠지만 전국에 있는 지점을 관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고 하였다.
지점이 많아질수록 관리 해야할 사람도 점점 늘어난다. 그러다 보면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래도 문제가 발생될 소지를 최대한 거르고 싶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면 마구잡이식으로 점포를 늘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직접 만들고 키워온 알로하다.
가게에 걸고 있는 기대가 다르다.
“나도 어떤 마음인지 잘 압니다. 그런데 내 딸이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똑 부러진 아이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게에 나와 아르바이트도 하고 또 요리를 꿈꾸면서 한식, 중식, 양식은 물론 제빵과 바리스타까지 가지고 있지요.”
“그렇군요.”
주방 직원을 뽑다보면 요리와 관련된 자격증이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나는 자격증을 맹신하지는 않는다.
이 자격증이 실제 능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나를 예로 들어보면 나는 요리와 관련된 자격증이 하나도 없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영업팀으로 취업을 했는데 로이스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칼을 잡았다.
그때 나와 같이 입사한 동기들 중에서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친구들을 보다 먼저 진급했고 점장도 달았다.
자격증을 따는 시험장과 현장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정해진 시간, 과제로 선정된 요리를 만들면 되는 시험장과는 다르게 현장에서는 주문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거기에 재료 손질과 뒤처리, 동료들과의 관계도 신경을 써야 한다.
단순히 요리만 잘한다고 해서 가게를 잘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직원을 뽑을 때 자격증보다는 경력을 더 많이 본다. 점주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기능장과 같은 상위급 자격증은 현장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그런 자격증은 아니어도 그래도 5개 정도의 자격증을 딸 정도면 요리에는 어느 정도 진심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바로 지점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고민이 되었는데 그때 그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떻겠나?”
“만나서요?”
“그래, 그렇게 고민하는 것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요?”
하긴 어차피 점주들은 얼굴을 한 번씩 보고 결정을 하기로 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알겠습니다. 사실 안 그래도 대전에 지점을 늘리기 위해 가맹점주들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지점을 모집하고 있었다는 말에 그가 기뻐했다.
“사장님이야 자금력은 충분하실 것 같으니까 제가 다른 점주들 모이면 자리를 한 번 만들겠습니다.”
일단은 그의 딸도 후보에 넣어준다. 나중에 여러 후보들과 비교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거절을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래, 연락을 기다리고 있지. 그런데 혹시 결혼을 했나요?”
“결혼이요?”
“이런 말하기 좀 그런데 우리 딸이 관심이 있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상황을 이해하고 민망하여 웃었는데 그가 나에게 말했다.
“사실 우리 딸이 알로하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하면서 자네에 대해서도 찾아본 모양이야. 마음에 든다고 나한테 겸사겸사 자네를 만나고 싶다고 부탁을 해서 그러는데 따로 만나 볼 생각은 없나?”
아무리 딸이 부탁이었다고 해도 그는 아버지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도 나와 자신의 딸이 연결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는데 자꾸 그에게 거절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죄송합니다. 저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그래? 내가 실수를 했네요.”
“괜찮습니다.”
“그럼 딸 이야기는 신경 쓰지 말고 지점에 관한 것만 신경을 좀 써주세요. 딸 부탁이기는 하지만 나도 알로하 지점을 내면 장사가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네, 나중에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숙소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누워서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뚝불은 그래도 전국구 체인점으로 잘 나가는 브랜드였다. 그런데 그곳의 사장이 나를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있다니 나도 많이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비가 들으면 질투하겠는데?’
이곳에 지원을 와서 벌써 2주가 넘게 단비를 보지 못했다.
왠지 오늘 저녁에는 그녀가 더 보고 싶었는데 마침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오빠, 뭐하고 있어? ]
“나, 퇴근하고 숙소에 누워 있지.”
[ 그래? 오빠 혹시 내일 모레 쉴 수 있어? ]
“왜? 무슨 일 있어?”
[ 아니, 나 그때 휴무일인데 오빠 쉴 수 있다고 하면 대전에 가려고 우리 너무 오랫동안 못봤잖아. ]
이곳에 찾아온다고 하는 것을 보니 내가 그녀를 보고 싶었던 만큼 그녀도 내가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긴 이제 명가메밀과 다툼도 끝났고 직원들도 많이 적응이 되었으니 하루 정도 쉬어도 될 것 같은데…’
직원들은 일주일이 2번 씩 의무적으로 휴식을 가진다.
하지만 나는 2주 동안 그런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명가메밀 사건도 터지고 부족한 직원들의 일손을 내가 대신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사장인 내가 제일 바쁘게 움직였는데 이제는 직원들도 일에 많이 적응을 했으니 쉬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랜만에 같이 데이트 하자.”
[ 진짜? 알았어. 그럼 내가 아침 일찍 갈게. ]
나의 말에 그녀는 너무 좋아했는데 생각해보면 너무 오랫동안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두었다.
‘미안하네. 이번에 오면 잘해줘야지.’
***
“단비야, 여기야!”
이틀 뒤 나는 그녀를 데리러 차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한껏 멋을 부린 단비를 만날 수 있었는데 차에 탄 그녀는 잔뜩 들뜬 표정이었다.
“휴, 겨우 도착했다.”
“오느라 힘들었지?”
“아니, 생각보다 그렇게 안 멀던데? 이럴 줄 알았으면 자주 올 걸 그랬어.”
“그래? 배는 안 고파?”
“어, 아까 아침에 샌드위치 먹었더니 지금은 배가 안 고프네. 오빠는 배 안 고파?”
“나도 괜찮아.”
“그래? 그럼 우리 바로 동물원 갈까?”
“바로?”
“나 그 원숭이 보고 싶어.”
그녀와 오늘 무엇을 하고 놀지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대전에 처음 왔을 때 상현이가 말한 동물원이 생각났다.
먹이를 받으러 오는 신기한 원숭이 이야기.
그것을 단비에게 이야기 해줬는데 단비가 자기도 너무 보고 싶다면서 궁금해 했다.
생각해보니 그녀와 사귄지 좀 시간이 되었지만 놀이동산에 놀러간 적이 없었다.
바쁘다는 것은 핑계였고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다보니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아니 엄청 싫어했다.
왜 비싼 돈을 주고 공포를 경험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대전에 놀이동산에 있는 동물원은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녀를 태우고 동물원에 도착한 나는 먼저 동물들을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는 사파리로 갔다.
차를 타고 사자와 호랑이는 물론 곰을 보는 것이었는데 나는 물론 단비도 사파리 관람차를 타는 것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신기해 했다.
“지금 곰순이가 인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파리차 운전자의 안내 멘트에 따라 커다란 곰이 우리를 향해서 인사를 했는데 사람의 말을 알아 듣다니 엄청 신기했다.
이어서 운전자가 곰에게 자그마한 먹이를 몇 개 던져주었는데 덩치가 큰 곰이 날렵하게 그것들을 받아 먹기 시작했다.
“우와, 오빠, 곰 엄청 빨리 움직인다.”
“그래, 저 덩치로 쫒아오면 엄청 무섭겠다.”
단비는 아이처럼 좋아했는데 오랜만에 그녀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사파리를 둘러보고 다음은 원숭이 우리를 찾아다녔는데 얼마가지 않아서 커다란 원숭이 한 마리가 있었다.
“이거 원숭이야?”
“아니, 침팬지라고 적혀 있는데?”
“침팬치가 저렇게 커?”
그렇게 우리 안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옆에 침팬치 먹이라고 적힌 자판기가 보였다.
“혹시 이게 그거 아닐까?”
나는 상현이가 말한 원숭이가 바로 이놈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지갑에서 돈을 꺼내 자판기에 돈을 넣었다.
그러자 나무에 매달려 있던 원숭이, 아니 침팬지가 커다란 팔을 움직여 앞으로 오더니 철창 사이로 팔을 꺼내어 나에게 먹이를 달라는 듯이 흔들기 시작했다.
“우와, 진짜 상현이 말처럼 움직이네.”
“그러게. 엄청 신기하다. 나도 해볼래.”
단비도 나처럼 자판기에서 먹이를 뽑았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침팬지가 손을 내밀었다.
손 위에 먹이를 올려놓자 음식은 게눈 감추듯 원숭이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우와, 진짜 사람 같아.”
짐승이 인간보다 낫다는 말이 있는데 원숭이가 하는 행동이 꼭 사람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면서도 또 얼마나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으면 저럴까 하는 불쌍한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저렇게 우리에 갇힌 것 같은 느낌으로 회사에 다닐 때도 있었다.
하지만 로또에 당첨되고 코인 대박이 터지면서 경제적으로 자유를 얻었다.
자유가 주는 행복을 엄청나게 느끼고 있었는데 침팬지를 보고 있으니 지금 단비와 같이 있는 이 순간이 더 행복하게 느껴졌다.
“이제 그만 갈까? 배고프다.”
아침부터 동물원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어느새 시간은 점심시간을 훌쩍 지났는데 단비도 배가 고픈지 나에게 말했다.
“어, 그러자. 오빠.”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래도 대전에 왔으니까 성원당 빵은 먹어봐야 할 것 같은데…”
성원당. 대전은 물론 전국구 단위로 유명한 빵집이다.
기사로 보니까 작년에 영업이익이 100억을 넘었다고 하는데 같은 요식업 종사자로서 어떤 식으로 장사를 하는지 나도 궁금하기는 했다.
대전에 와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가보고 싶다고 하니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같이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