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2 화
“여기 냉소바 두 개 주세요.”
냉소바는 명가 메밀 때문에 만든 메뉴였지만 생각보다 고객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 좋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일단은 가격이 워낙 저렴했다.
코로나 이후로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 튀김유는 물론 밀가루 거기에 사료값이 오르면서 돼지고기 가격도 많이 올랐다.
인건비도 많이 올랐는데 몇 십 년 동안 저렴하게 장사를 했던 가게들도 버티질 못하고 가격을 올리고 있었다.
만 원짜리 하나 들고 밖에 나가면 먹을만한 게 없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는데 백화점은 특히나 그랬다.
백화점은 관리비와 임대료를 많이 내기 때문에 특히 다른 곳보다 음식값이 비쌌는데 중식당에서 판매하는 짜장면이나 짬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음식이 만 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을 5천 원으로 때울 수 있다?
명가 메밀의 돈까스는 어린이 한정이라는 제약도 있었지만, 우리 가게에는 그런 제약도 없었다.
그 덕분에 냉소바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솔직히 나도 손해가 있기는 했다.
냉소바를 팔고 5천 원을 받으면 남는 돈이 없다.
그런데 그 고객이 들어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다른 음식도 판매할 수 없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이다.
하지만 우리 가게를 보면서 울상을 짓고 있는 명가 메밀 사장 지강혁을 보고 있으니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돈은 나중에 벌지 뭐.’
이 매장이 아니어도 나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매장은 많이 있다. 아직 통장에 돈도 많이 있고 말이다.
전혀 급할 것이 없었다.
아니 자세히 들여다보면 손해는 아닌 것 같았다. 대전에서 가게 이름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팥빙소바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게에서 판매하는 냉소바가 블로그와 SNS에 퍼지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돈가스 최강자전에 출전도 하고 맘 카페나 블로그로 꾸준히 이름을 알린 덕분인지 알로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조금 있었지만, 대전에는 아직 알로하라는 이름은 생소했다.
그런데 새로 만든 메뉴가 가게를 알리는 데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로이스에게서도 이런 이유 때문에 신메뉴를 많이 만들었지.’
예전에 로이스에 있을 때 거의 계절마다 신메뉴가 나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어울리는 신메뉴를 매번 만들었는데 이것 때문에 불만을 느낀 직원들도 많이 있었다.
신메뉴를 시작한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료 준비도 해야 하고 새로운 조리법도 숙지해야 한다.
거기에 신메뉴가 들어오면 메뉴를 알릴 배너를 설치하고 메뉴판도 바꿔야 하는데 이것을 3개월마다 한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신메뉴는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는다.
사실 새롭게 만든 메뉴를 고객들이 바로 호응하고 좋아한다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 한철 장사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때문에 메뉴 개발팀은 항상 욕을 먹었다.
그냥 하던 거나 잘하지. 왜 이런 걸 만들어서 귀찮게 하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간혹 가다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관심을 받는 신메뉴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런 신메뉴는 한 계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식 메뉴에도 포함되기도 한다.
또 이렇게 알려진 신메뉴는 상표를 알리는 홍보 수단으로도 많이 활용될 수 있다.
나도 고객들이 지어준 팥빙소바이라는 이름을 적극 활용해 알렸는데 덕분에 대전에서 알로하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졌었다.
- 너희 팥빙소바 먹어봄?
- 그게 뭐임?
- 뉴월드 대전점 식당가에 있는 거 아님? 저번 주말에 가서 먹었는데 맛있던데
- 비주얼도 예쁘고 가격도 완전 혜자던데
- 그래? 나도 이번 주말에 가서 먹어 봐야겠다.
트렌드에 민감한 SNS에서는 팥빙소바 인증사진도 많이 올라왔는데 처음에는 팥빙수인 줄 알고 좋아요를 눌렀던 사람들도 메밀이라는 사실을 알고 신기해했다.
- 광주에서 엄청나게 맛집이라고 하던데?
- 그래? 근데 원래 돈가스 가게 아님?
- 어, 광주에서 돈가스 파는 가게들 모아서 대결했는데 거기서 1등도 했대
- 진짜? 그럼 돈가스도 맛있겠네
소문 중에 가장 빠른 것이 입소문이라고 했던가.
SNS를 통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이 점점 몰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특이한 현상까지 발생했다.
오픈런.
원래 백화점에서 명품이나 잡화 시계 등 매장에서 공개하자마자 고객들이 몰려와 구매하는 것을 말하는데 식당에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오픈런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먹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돌아서 그런지 백화점이 오픈 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직원들은 쉬지도 못하고 있었다.
원래 점심시간과 저녁 시간을 제외하고 어느 정도는 숨 돌릴 틈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틈도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매장의 크기가 별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포장으로 주문해서 가져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는데 덕분에 계산대 앞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인원을 더 뽑아야겠어.’
원래 지원은 2주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매장이 너무 바빠서 1주 더 연장했다. 거기에 직원은 물론 아르바이트도 더 뽑아야 할 것 같았다.
나와 조형우도 자연스럽게 이곳에 묶여 있었는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장사가 잘되면 좋은 일이지.’
***
알로하에서는 영업시간 종료 30분 전에 오더를 마감한다. 주문을 더는 받지 않는다.
대전점의 경우에는 8시가 영업종료이니 7시 30분부터는 주문을 받지 않는 것이다.
백화점에 입점한 식당들은 대부분 그렇게 영업을 하였는데 오더를 마감하고 나면 그때부터 주방은 정리에 들어간다.
당일 사용한 음식재료들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시간이다.
특히 우리 가게는 기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조금만 청소를 게을리해도 기름기가 벽이나 바닥에 덕지덕지 붙기 시작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스테인리스로 된 기물이나 도구가 많이 있기 때문에 청소를 열심히 잘 해주어야 한다.
슥슥삭삭
김철수가 바닥에 세제를 뿌리고 밀대로 열심히 닦기 시작했는데 나는 하루를 끝내는 이 청소 소리를 좋아한다.
“미끄러우니까 조심해.”
“네, 알겠습니다.”
물기 많아서 원래 미끄럽기도 한데 거기에 세제까지 뿌렸다. 지나가다가 미끄러져 허리를 다치거나 팔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이 있었는데 안전에도 주의해야 한다.
나는 직원들에게 청소를 맡기고 계산대로 나왔다.
“사장님, 오늘도 400 넘겼습니다.”
평일이 주말 같다.
예전에 로이스에 있을 때 400만 원은 장사가 잘되는 주말에나 가능한 매출이었다. 그런데 그런 매출을 매일 올리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잘하면 1억 3천 넘을 것 같은데?’
지금 같은 페이스라면 첫 달 매출을 충분히 광주점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매장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사장님,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일전에 규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식품관 담당자였다. 이름이 윤동빈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그가 매장을 찾아 왔다.
“아, 안녕하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잠깐 시간 되세요?”
“네, 가능합니다.”
나는 그와 함께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자 그가 나에게 말했다.
“요즘 장사 잘되시죠?”
“네,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습니다.”
“저도 그럴 것 같았습니다. 원래 아까 3시쯤 찾아 왔었는데 그때도 만석이더군요. 그래도 마감하고 찾아와야 할 것 같아서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을까요?”
“명가메밀에 관한 일 때문에 왔습니다.”
“명가메밀이요?”
“거기 사장님이 사과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혹시 사과해주시면 받아 주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담당자의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결국, 명가메밀 사장이 백기를 든 모양이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지 직접 사과하러 오지는 못하고 담당자를 통해서 이야기한 모양이다.
“먼저 저희 주메뉴인 돈가스 할인하면서 자극했는데 인제 와서 사과를 한다고 하니 좀 어이가 없네요.”
“네, 사장님. 입장에서 당연히 그러시겠죠. 그래서 명가 메밀 사장님이 돈가스 할인도 멈추고 포스터도 내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네, 그러니까 사장님도 냉소바 할인도 그만하시고 포스터도 내려 주시면 어떨까요?”
나도 5천 원으로 계속해서 냉소바를 판매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언젠가는 가격을 올려야 할 것 같았는데 명가메밀이 먼저 사과해주면 할인을 멈춰도 되니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백화점 입장에서는 저희가 할인하고 손님들 많이 오면 좋지 않나요?”
나는 담당자가 혹시 명가 메밀 쪽에 무슨 부탁을 받고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인지 의심이 되었는데 그가 나에게 말했다.
“저희로서는 당연히 그러면 좋죠. 안 그래도 알로하 매출이 너무 잘 나오고 있어서 영업팀 모두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실 이번에 입점 업체 간 다툼을 주제로 지역 신문에 기사가 나갈 뻔했습니다.”
“기사요?”
“네, 저희가 미리 알고 한 차례 막기는 했는데 두 점포 간의 다툼이 지속할 경우에는 또 기사가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저희가 중재에 나선 겁니다.”
“그 기사 명가메밀 쪽에서 흘린 거 아닌가요? 그러면 사과를 받을 수는 없겠는데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그 정도 기사는 돈만 있으면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희도 혹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알아봤는데 저희 백화점 경쟁업체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
“경쟁업체요?”
“네, 저희가 최근에 개선 막 하면서 대전에서 쇼핑몰 중에 매출 1위로 올라섰거든요. 그것 때문에 견제를 좀 많이 받고 있습니다.”
담당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들도 경쟁이 치열하지만, 백화점은 대기업이었다. 백화점과 백화점 거기에 대형할인점과 쇼핑몰까지 서로 경쟁들이 엄청나게 치열할 것 같았다.
“명가메밀은 젖혀두고도 지금 알로하 장사 아주 잘 되고 있는데 괜히 구설에 올라서 가게 이미지 손상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판단에 이렇게 건의를 드리는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사과 받아 주시는 건가요?”
“네, 대신에 직접 오셔서 진심으로 사과를 해주신다면 받겠습니다.”
“네, 이야기 전달하겠습니다.”
***
“정말로 죄송합니다.”
다음날 아침 지강혁이 나를 찾아와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다.
“아닙니다. 앞으로는 얼굴 붉히지 말고 각자 장사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처음에 두고 보자고 이야기했을 때와 다르게 정중한 모습이었는데 인성은 모르겠지만, 장사꾼으로의 기질은 있는 것 같았다.
간혹 자존심 때문에 사업을 그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마 그는 이대로 계속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 자신이 망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래서 사과를 한 거겠지.’
사과도 받았으니 나는 할인 포스터를 제거하였다. 원래 냉소바의 할인 기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았는데 그래도 바로 가격 할인을 그만두는 것은 좀 그래서 할인은 이번 주말까지 하기로 했다.
“이겼나 보네요?”
나를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돌아봤는데 그곳에는 뚝불 사장 김장춘이 서 있었다. 아마 방금 명가 메밀이 나에게 사과를 하는 것을 본 모양이다.
“네, 이겼습니다.”
“나도 알로하가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가요?”
“원래 이런 거는 맛집이 유리하니까 나는 알로하가 훨씬 맛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한테 브랜드를 팔 생각이 없으면 지점은 어때요?”
“지점이요?”
“대전에도 점포 더 늘려야 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