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6 화
“이 친구는 탈락입니까?”
기건일이 지원서를 들면서 말했는데 마지막으로 고민을 했다. 잠시 생각을 했는데 역시 이 친구는 아닌 것 같았다.
“네, 장사를 하기에는 아직 어린 것 같아요.”
“확실히 나이를 생각하면 무리가 있을 것 같네요.”
방금전 미팅을 가졌던 사람들 중 유일하게 나이가 어렸던 하주환에게는 가맹점을 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꼭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보기에 그는 너무 계획이 없어 보였다.
예전에 일하면서 고등학생들을 알바로 쓰려고 면접을 보면 인생에 아무런 계획이 없이 답답하게 사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나도 나이가 먹었기 때문에 꼰대 같을 수도 있겠지만 나도 이렇게 답답한데 저 아이들의 부모님은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그런 마음도 자주 들었다.
그런데 하주환을 보면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어린 나이에 학교를 자퇴하고 결혼.
거기에 아이까지 있다.
피임을 하지 않으면 아이가 생긴다는 상식도 모르는 것 같았다.
뭐, TV를 보면 아이를 버리고 도망가는 남자들에 비하면 책임감은 좀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내 기준에는 많이 불안해 보였다.
결혼은 현실이다. 백 억이 넘게 있는 나도 결혼은 신중하게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미 20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일찌감치 자수성가해서 돈을 좀 모았다면 어느 정도 고려는 해 보았겠지만 부모님에게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는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어떻게 되었던 결국에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린 것이다.
아직 인생에 대한 경험도 부족한데 결혼과 육아 거기에 장사까지 현실적으로 제약이 너무 많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내 기준에서 하주환은 너무 막 사는 것 같이 보였고 철이 없어 보였다.
장사라는 것은 많은 생각을 요구한다.
‘이번 주에는 손님이 얼마나 들어올까?’
‘그럼 재료는 얼마나 준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을까’
고민의 연속
내가 부족한 것을 고민하고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하는 상당히 힘든 일이다. 이런 어려운 일을 하기에 하주환은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거절을 하기로 했다. 아까 나의 말을 열심히 드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
점주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며칠이 지났다. 일단은 점주들이 원하는 곳으로 골라서 상권분석을 시작했는데 자리가 선정되면 곧바로 공사에 들어갈 것이다.
‘그럼 이제 광주에 점포가 5개인 건가?’
광주에서 1개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5개까지 늘어난다. 이렇게 점점 늘어나서 100호점을 돌파하는 상상을 해보았는데 가슴이 웅장해졌다.
‘100개는 아직 무리고 일단은 20개부터 돌파하자.’
팀장들에게 20개를 기준으로 말했는데 매월 두 개 이상의 가게를 오픈한다고 하면 연말에는 충분히 20개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1년에 20개 로이스의 점포가 60개 정도였으니 특별한 일이 없이 3년이 지나면 넘어설 수 lT을 것이다.
‘대전에도 조금 더 늘려야 겠다.’
대전에도 지점을 2개 정도 더 늘릴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 백화점의 공사가 한창이었다. 안 서방은 은정이가 조리원에 입소한 후 바로 대전으로 향했다.
본래 아내와 아이가 조리원에 입소한 2주 동안의 시간이 남편들이 유일하게 가지는 자유시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안 서방은 그런 것을 즐길 시간이 없이 바로 현장으로 가야 했다.
두 개를 더 늘린다고 하면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는데 그래도 가족 중에 이런 일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참 든든했다.
본사 사무실에 마련된 사장실에 앉아서 일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님, 누가 찾아왔는데요?”
“누구?”
“이름이 하주환이라고 며칠 전에 점주 미팅했다고 하는데…”
하주환. 며칠 전에 우리와 같이 일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는데 그것 때문에 다시 찾아온 모양이다.
“들어 오시라고 해.”
나의 말에 조금 있으니 하주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커다란 가방을 멘 모습이 영락없는 대학생이었다. 나는 그를 보고 인사를 하고 소파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자리에 앉은 그는 조금은 긴장한 듯한 모습인데 나는 조용히 말했다.
“가맹점 일은 죄송합니다. 저희가 내부적으로 고민을 좀 했는데 아직 가맹점을 내어드리기에는 경험이 좀 부족한 것 같아서 불가하다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네, 제가 오늘 찾아 온 이유는 사장님을 설득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를요?”
“네, 아무래도 제가 나이도 어리고 자본금도 적어서 사장님이 가맹점을 안 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래서 연락을 받고 며칠 동안 준비를 했는데 이것을 봐주시겠어요.”
하주환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계획서였다.
5천만 원의 자금 활용 계획은 물론 알로하에 판매하고 있는 메뉴 분석과 판매 전략 블로그와 SNS의 고객 반응까지 알로하를 오픈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부한 것 같았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레시피 빼고는 알로하에 일하는 직원들보다 더 알로하를 잘 안다고 자신할 만큼 공부를 했습니다.”
그가 준비한 공책에는 장사에 필요한 것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는데 공부를 했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준비를 잘 하셨네요.”
“제가 나이가 어려서 가맹점을 내어주기에 많이 불안하시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처음에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도 그러셨습니다. 결혼을 반대하셨죠.”
당연히 그랬을 것 같다.
아직 나에게는 자식이 없지만 얼마 전에 생긴 조카가 20살에 결혼을 한다고 하면 나라도 반대를 할 것 같았다.
“이런 말씀 드리기 좀 창피한데 원래 인문계를 꿈꾸다가 공고에 들어간 이후에 학교에 잘 적응도 하지 못하고 은근히 따돌림도 당했습니다.”
“그랬군요.”
“그때 유일하게 저에게 다가와 준 아이가 수영이었습니다. 수영이도 여자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거든요.”
어렸을 때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배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일진이니 뭐니 다른 학생들 괴롭히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세상이 각박해지고 이기적인 아이들이 많아진 요즘에는 더 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는 같이 학교를 그만두고 요리사로 꿈을 바꾸었습니다. 수영이가 요리를 좋아했거든요. 같이 나중에 돈을 모아서 가게를 차리자고 계획했었는데 아이가 생겨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주환은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 이야기했는데 사연을 들으니 조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저도 짧은 인생이지만 가게에서 일하면서 학교를 자퇴하고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지고 결혼한 저의 사회적 인식이 별로 좋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맹점을 내어주지 않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제가 알로하에 대해서 찾아봤는데 알로하는 직원으로 1년 동안 일하면 가맹점을 내어준다고 하던데 최저시급이라도 좋으니 직원으로 일하면서 제가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직원으로요?”
“네, 최저시급으로도 괜찮습니다. 열심히 일할 자신 있으니 저를 써주시면 안 될까요? 1년 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예전에 생각했던 내용을 적기는 했었다. 그런데 하주환이 이렇게 할 정도로 알로하에 열정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다른 프랜차이즈 많이 있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사장님 예전에 하신 인터뷰를 봤는데 5천만 원으로 장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사장님의 노하우를 배워서 장사를 잘하고 싶습니다.”
하주환의 말에 나는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내가 처음에 가게를 오픈했을 때 5천만 원으로 시작을 했다.
로이스를 다니면서 모은 적금.
물론 이것으로 보증금과 권리금을 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추가로 신용대출을 받기는 했었는데 인터뷰에서는 5천만 원만 이야기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대답 없이 그가 작성한 노트를 넘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우리 가게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다른 프랜차이즈 회사도 고민을 했었는지 그 곳들을 분석한 내용도 들어가 있었는데 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꼼꼼한 스타일인 것 같았다.
“좋습니다. 본점 직원으로 채용하도록 하겠습니다.”
***
“하주환, 오늘부터 출근 했습니다.”
본점의 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경민이 나에게 출근을 알렸다. 나는 그에게 다른 직원이랑 똑같이 대해라고 이야기 했는데 아마 그가 적응하기에 좀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본점에는 그를 제외하고 신입으로 뽑은 직원이 4명이나 있다. 솔직히 몇 명은 일이 힘들어서 그만둘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들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같이 들어온 신입들이니 많이 끈끈해지고 친해졌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하주환이 들어왔다.
어떻게 보면 특채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당연히 기존에 직원들과 어느 정도 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건 내가 하주환에게 내어주는 숙제였다. 학교는 자신이 싫으면 그만 둘 수 있다. 하지만 장사라는 것은 그럴 수가 없다.
싫어도 가게 문을 열어야 하고 보기 싫은 진상 손님들도 만나야 한다.
거기에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끌고 가야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사장으로 일을 하려면 융화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나는 그가 가맹점주로 나가기 전에 이런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만약 적응을 못하고 나간다고 해도 나는 크게 아쉬울 것이 없었다.
장사가 잘 되는 본점에는 항상 인원이 부족하다. 한 명 정도는 충원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없다.
***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지점들이 많아져서 그런가?
매일 매일 같이 쏟아지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 지 정신이 없었다. 그때 단비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오빠, 바빠? ]
“아니, 괜찮아. 무슨 일이야?”
[ 저번에 엄마, 아빠랑 식사하기로 했잖아. 이번 주말이 괜찮은 것 같은데? 오빠 시간 어때? ]
우리 가족만 그녀를 봤다. 나도 그녀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한 번 만나자고 말했는데 그녀가 약속을 잡은 모양이다.
예전에 잠깐이기는 하지만 어머님은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인사를 드리기는 했는데 아마 그때는 남자친구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 괜찮아.”
[ 그래, 그럼 토요일 저녁으로 내가 식당이랑 예약을 할게. 괜찮지? ]
“그래, 그러자.”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난다. 쉽게 생각했는데 막상 만난다고 하니 긴장이 되었다.
‘단비도 우리 부모님 만났을 때 떨렸겠구나.’
세삼스럽게 단비가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나도 그렇게 잘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