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2 화
집에 도착한 나는 은정이를 차에 태우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아직도 배가 아파?”
“어…통증이 계속해서 와.”
바로 옆자리에 앉은 은정이는 배를 움켜잡고 있었는데 이마에 식은땀도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이 매우 아파 보였다.
“조금만 참아. 병원에 금방 갈게.”
나는 말로 은정이를 안심시켰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양수가 터지고 하혈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빠르게 병원에 가는 것 뿐이었다.
부산이나 대전에 갈 때보다 더 빠르게 속도를 높였다. 중간에 과속 단속에 걸린 것도 같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간호사들에게 양수가 터졌다고 말하자 바로 분만실을 준비해주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조금 괜찮아 보이던 은정이는 통증이 오는지 배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은정아, 괜찮아?”
“아니. 안 서방은 연락 왔어?”
“아직, 오빠가 연락할 테니까 너는 걱정하지 마.”
담당자와의 미팅이 아직 안 끝났는지 안 서방과 연락이 안 되고 있었다. 깨톡을 남겨 놨으니 확인하면 바로 연락이 올 것이다.
분만실이 준비되고 은정이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는데 간호사가 은정이의 상태를 보더니 말했다.
“지금 자궁 6cm 정도 열렸습니다. 무통주사 놓아 드렸으니까. 조금 괜찮아 질 거에요.”
“네, 감사합니다.”
예전에 너튜브에서 자궁이 10cm는 열려야 아기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벌써 6cm라니 나에게는 곧 있으면 아기가 나온다는 소리로 들렀다.
“오빠, 차에 가서 캐리어 좀 가져다 주라.”
“캐리어?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
“어, 거기에 필요한 게 있어서 가지고 와야 해.”
“알았어. 금방 갔다 올 게.”
나는 차로 가서 캐리어를 챙겼다. 예전에 가족끼리 밥을 먹을 때 출산가방이라고 아기를 낳고 입원실과 조리원에서 쓸 물건들을 챙겼다고 했는데 이것이 그것인 모양이다.
가방을 챙기고 막 올라가려는데 나는 엄마, 아빠가 생각이 났다. 소식을 전달해야 할 것 같아서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 어, 아들 무슨 일이야? ]
“엄마! 지금 은정이랑 산부인과 왔는데 지금 아기 나올 것 같아요.”
[ 진짜? 예정일 아직 아니지 않아? ]
엄마는 깜짝 놀란 목소리였는데 예정일이 많이 남아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기가 성격이 매우 급한가 봐요. 간호사가 벌써 자궁이 6cm 열렸다고 하던데요?”
[ 그래? 그래도 아직 아기 나오려면 시간 더 걸릴 거야. 은정이 초산이잖아. ]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안 서방이 대전으로 출장을 가서 아직 연락이 안 되거든요.”
[ 그거 큰일이네. 아기 나오는 건 봐야 할 텐데. 엄마, 아빠도 지금 바로 올라가야겠다. ]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생긴 아기였다. 엄마와 아빠도 기대를 많이 하셨는데 바로 보러 올 기세였다.
“엄마, 오지 마시고 그냥 강진에 있으세요.”
[ 왜? ]
“와도 병원에 못 들어올 거에요. 보호자 1명만 입실할 수 있데요.”
[ 진짜? 왜 그런데? ]
“코로나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와도 병원에는 못 들어오고 은정이 얼굴도 못 보니까 그냥 다음에 퇴원하면 올라오세요.”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도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았다.
아기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 더 철저히 확인하는 것 같았는데 외부인은 아예 들어올 수가 없었고 은정이와 나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 신속항원검사로 코로나 음성인 것까지 확인했다.
[ 네가 은정이 좀 잘 보살 펴줘. ]
엄마는 많이 걱정스러운 말투였는데 오지 못해서 더욱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 있다가 아이 나오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 그래, 얼른 들어가 봐라. ]
****
“오빠, 나 물 좀 주라.”
“여기.”
분만실로 들어온 나는 은정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있었다. 무통주사를 맞고 조금 괜찮아 보이던 은정이는 신음을 흘리면서 아파했는데 나는 은정이에게 말했다.
“은정아, 많이 아파? 심호흡 해 봐.”
숨을 잘 쉬지 않는 은정이가 걱정되어서 나는 옆에서 같이 호흡하면서 손을 잡아 주었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은정이의 손에는 힘이 팍 들어갔는데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오빠, 나 아기 못 낳을 것 같은데 그냥 제왕절개 한다고 할까?”
얼마 전에 가족들끼리 밥을 먹을 때만 해도 직접 아기를 낳고 싶다고 했던 은정이였다.
엄마가 맨날 우리 낳을 때 엄청나게 힘들었다고 했는데 어떤 느낌인지 직접 겪어보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랬던 은정이였는데 지금은 후회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간호사한테 물어볼까?”
“아니야, 지금까지 참았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아깝지. 후!”
은정이는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잡는 것 같았는데 곧이어 간호사가 분만실로 들어왔다.
“보호자님, 잠시만 밖으로 나가주세요.”
자궁이 얼마나 열렸나 확인하려는 것 같았는데 나는 분만실 밖으로 나가서 초조하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있는 곳 바로 옆 분만실에서도 한 남자가 나왔다.
나와 같이 초조해하는 것을 보아서 그쪽도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 같았는데 갑자기 간호사가 나오면서 커다랗게 말했다.
“2호실, 출산 들어갈게요.”
간호사의 외침과 함께 5명 정도 되는 간호사가 2호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간호사가 아빠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탯줄 직접 자르시겠어요?”
“네, 자를 겁니다.”
“그러면 잠시만 기다리세요. 수술복 가져다 드릴게요.”
‘저렇게 물어보는구나.’
드라마에서만 봤던 출산의 과정을 생생한 라이브로 지켜보고 있으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내 아이도 아닌데 이렇게 초조하더니 만약에 진짜 내 아이가 태어나는 기분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저기서 바로 아기를 낳는 거야?’
나는 간호사들이 침상을 끌고 수술실로 갈 줄 알았는데 2호실 안쪽에서 커다란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의사가 와서 아빠로 보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될 겁니다.”
‘의사는 마지막에 오는구나.’
인생을 살면서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볼까? 모든 것을 신기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 안 서방 >
안 서방의 전화였다. 이제 연락을 확인한 모양이다.
“여보세요.”
[ 형님, 깨톡 이제 봤습니다. 아기나 나온다고요? ]
“어, 내가 은정이랑 같이 산부인과 왔거든? 빨리 내려와.”
[ 네, 알겠습니다. 금방 갈게요. ]
안 서방은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는데 나는 그가 시간을 맞춰서 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대전에서 여기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 아무리 속도를 높인다고 해도 2시간 이상은 걸릴 것 같았는데 그 안에 아이가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조카야, 조금만 천천히 나오렴. 아빠 얼굴 봐야지.’
***
“후후후”
은정이는 고통의 간격이 더욱 줄어들었는지 호흡이 더욱 가빠졌다. 지켜보고 있는 나는 너무나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응원하는 것밖에 없었다.
“은정아, 좀만 더 힘내.”
“안 서방은?”
“아까 연락했어. 이제 거의 도착했을 거야.”
“오빠, 나 아기 한 명만 낳을 거야.”
예전에는 항상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싶다고 했는데 막상 출산의 고통을 겪더니 마음이 바뀐 모양이다.
간호사가 또 들어왔는데 은정이의 출산이 임박해진 것인지 아까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보호자님은 잠시 나가 주시고요. 산모님, 이제부터 힘주기 들어갈게요. 제가 알려 드리는 것처럼 해보세요.”
나는 간호사에게 떠밀리듯이 밖으로 나갔는데 이제 출산이 진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안 서방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걱정되었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안서방에게 전화가 왔다.
***
“형님!”
1층 병원 밖 로비까지는 보호자가 아니어도 들어올 수 있었다. 안 서방은 거기서 나를 기다렸는데 나는 그를 만나 보호자 확인용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2층에 있는 3호 분만실이거든? 빨리 올라가 봐. 곧 아기 나올 것 같아.”
“네, 알겠습니다.”
그는 뒤도 보지 않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는데 나는 그가 도착해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내가 출장을 보내서 안 서방이 아기 나오는 것을 못 봤다고 하면 은정이에게 평생 잔소리를 들을 뻔했다.
은정이 옆에서 손을 잡아 준 것 빼고는 별로 한 것이 없었지만 나도 긴장을 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진이 빠졌다.
한숨을 돌리고자 나는 1층에 있는 카페로 가서 커피를 주문하고 아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병원을 나오는 부부들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엄청 많은 아기가 있었다.
우리나라 출산율일 OECD 회원국 중에서 최저라는 기사를 봤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백화점과 같은 쇼핑몰처럼 산부인과도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서 몰려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 조리원 비용이 엄청 비싸다고 들었는데…’
저번에 만났을 때 조리원 비용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일주일에 120만 원 정도 한다고 들었는데 이것도 광주는 싼 편이라고 했다.
***
카페에서 한 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안 서방이 나를 찾아왔다.
“아기는 건강해?”
“네, 손가락 발가락 다 있고 건강하다고 합니다.”
“은정이는?”
“은정이 많이 지쳐서 지금 입원실에 누워서 쉬고 있어요. 한 30분 쉬다가 바로 밥 먹는데 들어가서 챙겨줘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안 서방도 고생했어. 딸 가진 아빠가 된 기분이 어때?”
“아직 잘 모르겠어요. 사진 보여 드릴게요.”
은정이는 성별이 상관없다고 했는데 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안 서방도 딸이 좋은지 나에게 아기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영락없이 아빠를 닮았다.
“아빠를 닮았네?”
“그런가요? 전 잘 모르겠는데.”
“아니야, 내가 보니까 아빠를 닮았어. 어머님, 아버님에게도 전화 드렸어?”
“네, 아까 출산하고 바로 전화 드렸어요. 강진에 계신 아버님께도 전화 드렸는데 엄청 좋아하시던데요?”
“그래?”
“네, 퇴원하면 바로 오신다고 하셨어요.”
“그래. 안 서방도 차 타고 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올라가서 같이 좀 쉬어.”
“네, 형님. 오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안 서방은 내가 은정이를 돌 봐준 것을 고마워했는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아니야, 은정이는 내 동생이기도 하잖아. 그리고 이거 받아.”
나는 안 서방에게 봉투를 건넸다. 은정이 출산 선물로 무언가 해주고 싶었는데 돈이 가장 필요할 것 같아서 현금으로 준비했다.
“이거는?”
“애기 태어나면 돈 들어갈 곳이 많잖아. 보태서 써.”
생각보다 두꺼운 봉투에 안 서방은 안을 잠깐 들여다봤는데 놀라서 나에게 말했다.
“형님, 이거는 너무 많은데요?”
나는 봉투에 총 300만 원을 넣었다. 기다리는 동안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조리원에 보통 2주 정도는 지낸다는 글을 봤고 그 비용을 내가 내주고 싶었다.
“애 낳고 몸조리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평생 잔소리 듣는데 조리원 비용은 내가 내줄 테니까 생색은 안 서방이 내던지 그건 알아서 해.”
나의 마음이 전달되었는 지 안 서방은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나는 안 서방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왔다.
병원을 나와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태어나는 아기를 본다는 것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경험인 것 같았다.
막 태어난 귀여운 아기 사진을 보니 비록 조카이기는 하지만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요식업에 일하면서 아이에게 조금 지친 면이 있었는데 은정이의 말처럼 하나 정도는 낳아서 기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이왕이면 단비를 닮은 딸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