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9 화
<< 로원디자인 >>
그동안 일이 있을 때 마다 미희씨와 통화를 자주 했는데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오랜만인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미희 씨가 나를 반겨 주었다.
“어머,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커피 드릴까요?”
“네, 한잔 주십시오.”
예전에 처음 왔을 때도 그녀가 커피를 타주었는데 둘러보니 그때와 다르게 크게 변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잠시후 그녀가 커피를 가져다 주었고 나는 한 모금 마신 뒤 이야기를 꺼냈다.
“요새 일은 잘 되고 계세요?”
“로이스 때문에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살고 있어요. 요즘에는 디자인으로 버는 돈 보다 블로그로 수익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해요.”
생각해보니 그녀는 블로그 운영자이기도 했다. 그녀 덕분에 초창기에 가게를 알리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나는 그럴 것 같기도 했다. 보통 디자인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때 일이 많이 창출된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기존에 있는 사업들도 맥을 못 추고 있고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다. 구조적으로 그녀의 일감도 많이 줄었을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는 오히려 같이 일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간 것 같아서 편하게 이야기 했다.
“제가 본사 인원을 구성하고 있는 거 아시죠?”
“네, 알고 있어요.”
“지금 디자인과 마케팅을 연결해서 팀을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거기 팀장으로 일해주실 생각은 없으세요?”
“제가요?”
나의 말에 정미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금 갑작스러운 제안이기도 했는데 내 생각에는 그녀가 적격이었다.
“네, 디자인은 기존까지 알로하 디자인 쭉 해오셨으니 그대로 하시면 되고 마케팅도 블로그 운영 경험 있으니 어느 정도는 가능하실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제가 부전공이 마케팅이기는 한데…”
예전에 로이스에 있을 때 마케팅 팀에서 디자인을 겸업했었다.
제품을 홍보, 기획하는 곳에서 디자인 시안을 작성하는 것이 효율이 좋았는데 그것을 보고 나도 같은 방법을 떠올렸다.
혹시 그녀가 마케팅 업무가 힘들다고 하면 보충할 인력을 충원해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부전공이 마케팅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좋았다.
“오, 그럼 잘하실 수 있겠네요. 저희 알로하에서 같이 일해보시죠.”
나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말했는데 그녀는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사무실을 차리고 운영하는 것이 크게 이득이 없는 것 같아서 이번에 계약 끝나면 그냥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하긴 디자이너의 경우 컴퓨터로 하는 작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집에서 일을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코로나로 인해서 자택 근무가 가능한 직군에서는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는데 내 생각에 그녀도 굳이 이렇게 사무실이 없어도 될 것 같기는 했다.
“그러셨군요.”
“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첫 직장을 좀 안 좋게 나와서 직장 생활에 좀 거부감이 있거든요.”
“어떤 일이 있으셨나요?”
“좀 규모가 있는 디자인회사였는데 회사 내에서 친목이 좀 심했어요. 그것 때문에 사내 정치도 심한 편이었고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목이라는 것이 그냥 건전하게 관계를 다지는 경우라면 수직적인 회사의 특성상 조직이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나도 아이들을 편하게 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른 팀이나 자신의 모임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을 비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 없어져야 할 악이 되는 것이다.
그녀의 경우에는 후자였던 모양이다.
“제 입으로 이런 말씀 드리기 좀 민망스러운데 회사에서 제가 좀 예쁜편이어서 질투와 시기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하긴 내가 보기에도 그녀는 예쁜 편에 속했다. 그녀 정도면 다른 직원들의 시기와 받았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셨군요.”
“그래서 퇴사하고 혼자 사무실 차린 거였어요. 사람들한테 좀 질렸었거든요.”
나는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이것은 크게 걱정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회사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회사 내에서 친목질이나 사내정치가 조직의 발전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나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긴 정훈 씨 성격이라면 그런 걱정 할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제 성격이요?”
“네, 정훈 씨는 일하는 사람 편하게 해주잖아요.”
“제가 그랬나요?”
편하게 해준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과 오랫동안 일해왔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네, 원래 디자인 일 맡기는 분들 보면 중간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계속해서 보내 달라고 하거든요. 완성되고 나서 피드백도 많이 요청하는 편이고요. 그런데 정훈 씨는 그런 게 별로 없었어요.”
하긴 그녀가 작업물을 만들면 나는 대체로 좋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그녀의 작업물이 나의 마음에 들어서 그랬던 것이지 내가 그녀를 편하게 해주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제가 그래서 미희 씨를 저희 회사로 스카우트 하려는 겁니다. 미희 씨가 만든 디자인들은 피드백이 별로 필요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거든요. 저랑 보는 눈이 비슷한 것 같아서 꼭 같이 일해보고 싶습니다.”
나는 나의 진심을 담아서 그녀에게 말했는데 그녀도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녀를 편하게 해준다고 하지만 직장생활은 나와 단둘이 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시 회사를 다닌다는 것이 고민이 좀 되는 모양이었는데 나는 그녀가 결정을 할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의 입이 열렸다.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좀 많았죠.”
“아닙니다. 지금 결정하기 어려우시면 좀 더 생각해보고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생각해봤는데 알로하에 입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짜요?”
그녀의 입사 결정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다.
“네, 저도 알로하 초창기 때부터 제가 디자인을 만들어서 그런지 애착이 있거든요. 알로하라면 다니면서 일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나도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다.
초창기 간판 디자인부터 그녀가 도움을 주었다. 알로하는 그녀의 아이디어가 넘치는 곳이었는데 그녀가 계속해서 일을 맡아준다고 하니 듬직한 마음이 들었다.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한테도 좋은 기회인 것 같은데요. 그런데 여기 사무실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정식 출근은 좀 나중에 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네, 어차피 지금은 본사 리모델링하고 있으니까 다음날 초 정도에 출근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럼 다행이네요. 저도 그때까지는 최대한 빨리 사무실 정리 하도록 할게요.”
“아, 그럼 혹시 정리하시는 동안 저희 홈페이지에 들어갈 디자인 시안 제작해 주실 수 있을까요?”
“홈페이지에 들어갈 디자인이요?”
“네, 원래 이것 때문에 디자인팀을 제일 먼저 뽑으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좀 힘들다고 하면 일정을 좀 늦추겠습니다.”
“아니에요. 지금 딱히 하고 있는 일은 없어서 가능할 것 같아요.”
“잘됐네요. 그럼 제가 홈페이지 제작자 연락처 알려 드릴게요. 그쪽과 연락하셔서 같이 홈페이지 제작 들어가면 되겠네요.”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말과 함께 손을 내밀었는데 오히려 어려운 결정을 해줘서 내가 더 고마웠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대전에는 처음 오는 것 같은데?”
“나도.”
나는 상현이와 같이 차를 타고 대전으로 왔는데 만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전에도 지점 늘릴 생각인 거지?”
“어. 오늘 만나보고 괜찮으면 대전점 직원으로 채용하려고…”
본사를 구성하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인테리어 같은 경우는 안 서방이 맡아주어서 이제 마무리 단계로 향하고 있었고 홈페이지 제작 같은 경우에도 정미희가 도와준 이후로 탄력을 받아서 완성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팀장급 직원들의 경우도 면접을 많이 봤는데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사람을 결정해 두었다. 사실 다른 분야에서 일한 사람들의 경우 믿을 것은 경력 밖에 없었다.
직접 일을 시켜봐야 느끼는 점들이 있을 것 같아서 일단은 경력 위주로 직원들을 컨택하였는데 상현이도 괜찮게 보는 사람들이어서 나쁘지 않게 뽑은 것 같았다.
본사와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이 어느 정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 때 양혜원 점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양혜원 점장이 있는 광안점 같은 경우에는 빠르게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오픈 초기에 드라마 때문에 관심을 받기 시작해서 SNS나 블로그에 특히 신경을 썼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통해서 생각보다 빠르게 매출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곳의 매출은 온전히 나의 수입이었기 때문에 나도 기분이 좋았는데 그런 그녀에게 뜻밖의 소식이 왔다.
그녀와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누군지 궁금해서 물었는데 예전에 로이스 대전 시청점에서 일했던 서종석이었다.
이름을 듣고 기억을 떠올려봤는데 로이스 초창기부터 있었던 사람이었다.
본래 부산 출신으로 양혜원에게 일을 가르쳤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오래된 사람이었는데 양혜원이 자신이 일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거기에 관심이 생겨서 나를 만나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이것만이었으면 좀 나중에 시간을 냈을 것이지만 이것 말고도 대전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
뉴월드 백화점 대전점에서 입점 제안이 왔기 때문이다.
지금 알로하 뉴월드광주점의 경우에 매출이 미친 듯이 성장하고 있었다. 홀이 없는 매장이지만 총 6명의 직원이 있었고 잠깐씩 일하는 알바까지 합치면 15명이 넘었다.
그 직원들이 모두 정신없이 일할 정도로 매출이 잘 나오고 있었는데 지하에 있는 푸드코트 중에서 우리 매장의 매출이 제일 높았다.
드라마 출연 이후에 브랜드 인지도도 많이 올랐는데 대전에 있는 뉴월드 백화점 식당가에서 비어있는 자리가 생겼다고 해서 혹시 입점할 의향이 있는지 연락을 받았다.
예전에는 경쟁을 통해서 입점 제안을 받았는데 이제는 먼저 들어오지 않겠냐고 연락을 받았다.
기분이 조금은 이상했는데 어차피 전국으로 지점을 넓힐 생각이었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기회인 것 같았다.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면 대전은 광주에서 그래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물류 같은 경우에는 뉴월드푸드를 통해서 공급하면 되니까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았는데 중요한 것은 믿고 일을 맡길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데 마침 양혜원 점장이 나에게 서종석을 추천했다. 나는 대전을 방문해서 서종석도 만나고 대전 백화점 담당자와 입점에 관한 이야기도 나눌 겸 출장을 왔다.
상현이와 약속을 잡은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알로하 김정훈 사장님 맞으시죠?”
나이가 40은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얼굴을 보니 나도 예전에 점장 회의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네, 맞습니다.”
나는 그와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내가 예전에 배달에 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들은 것이 그가 한 이야기였다.
술자리에서 잠시 스쳐 지나갔고 이름을 듣고 조금은 긴가 민가 했었는데 얼굴을 보니 떠올랐다.
“예전에 로이스에서 점장 회의 끝나고 술자리 한 번 같이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맞으시죠?”
“네, 예전에 강남에서 한 번 술 마신 적 있습니다.”
“이렇게 만나니까 반갑네요. 양혜원 점장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희 알로하에 입사하고 싶다고 하셨다던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꼭 알로하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혹시 이유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