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1 화
“우와, 엄마 이리와 봐. 여기 안방도 엄청 넓어.”
원래는 부모님을 모시고 바로 밥을 먹으러 가려고 했다. 그런데 집이 너무 궁금하다는 은정이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집을 먼저 보러 왔다.
은정이는 주차장에 올라 오면서부터 감탄사를 멈추지 않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면서 집을 둘러보았다.
거실과 화장실 안방을 정신 없이 돌아 봤는데 진짜 궁금했던 모양이다.
엄마는 은정이와 다르게 집을 꼼꼼히 살펴보았는데 기분 좋게 미소가 지으시는 것을 보니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다.
“그러게. 요즘에는 안방에 옷방이 이렇게 따로 있구나.”
“맞아. 이렇게 드레스룸 따로 있으면 옷 정리할 때도 얼마나 편한데. 진짜 집 좋다. 오빠 여기 몇 층이라고 했지?”
“33층.”
은정이는 엄마랑 같이 창가 쪽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엄마는 아찔한 높이에 무서움을 느끼셨는지 창가 쪽에서 떨어지면서 말씀하셨다.
“아이고,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어지럽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살다 보니까 적응 되던데요?”
나는 가족들이 보기 편하게 창가 쪽에 있는 커튼을 확 젖혔다. 그러자 햇빛이 들어오면서 강이 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강물이 햇빛이 반사되어 엄청 빛나고 있었는데 은정이는 그것을 보고 나에게 말했다.
“SNS에 보면 여기 강변뷰 올라온 사진 보고 부러워했었거든…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여기 살까? 생각했는데 그게 우리 오빠일 줄은 몰랐네.”
“그치, 나도 맨 처음에 저쪽에 시티뷰랑 고민했었는데 조금 무리해서라도 여기 사길 잘한 것 같아.”
“근데 나 저번에 안 서방 친구 집들이로 저기 옆에 있는 동 왔었는데 거기보다 여기가 훨씬 넓은 것 같은데?”
“여기가 지금 40평이 좀 넘을 거야.”
“어쩐지, 이야기 들어보니까 부대 시설도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부대 시설? 아, 헬스장 이런 거 말하는 거야?”
“응, 스크린 골프장도 있다고 들었는데 맞아?”
“예전에 운동하러 가다가 한번 본 것 같아. 아마 있을 걸?”
나는 엄마와 은정이에게 집을 보여 주면서 구경 시켜 주고 있었는데 뒤 쪽에서 아무런 말 없이 집을 구경하고 있는 아빠가 신경이 쓰였다.
솔직히 평상시에는 무뚝뚝한 아빠여도 어떤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아빠는 그냥 묵묵히 구경만 하셨다.
“그런데…여기 딱 봐도 엄청 좋아 보이는데 비싼 거 아니야?”
“당연히 비싸지. 여기 지금 10억 정도 하지 않아?”
엄마의 말에 은정이가 답하였다. 나도 최근에는 확인해보지 않았는데 아직 10 억까지는 아니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는 아니고 마지막에 봤을 때 9억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잠깐만, 내가 지금 확인해 볼게.”
은정이는 궁금했는지 핸드폰을 열어서 아파트 가격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나도 혹시나 전보다 올랐는지 궁금해서 같이 보았는데 좀 올라 있었다.
“이거 보니까 마지막 실거래는 9억 2천인데 사람들이 부동산에 올려놓은 건 10억 정도 되네. 잘하면 10억 찍겠는데?”
은정이 말처럼 아파트를 팔기 위해 내놓은 사람들이 10억을 부르고 있었다.
내가 샀을 때가 7억 5 천만 원이었으니까 지금 10 억에 판다고 하면 2억 5천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불과 1년도 안 돼서 2억 5천만원.
예전에 직장에 다닐 때 왜 사람들이 부동산으로 투기를 할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집으로 이렇게 돈을 버니 부동산에 대한 욕심이 좀 생기는 것도 같았다.
“오빠, 여기 얼마에 산 거야?”
“나는 작년에 8억 정도에 좀 빨리 계약했어.”
“진짜? 엄청 싸게 샀네?”
“내가 부동산 공부를 좀 했는데 규제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도 물량이 없으니까 집값 더 오를 거라고 하더라고 여유 자금 있어서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일찌감치 계약했지.”
“신의 한 수였네. 집 잘 사서 거의 2억 가까이 번 거잖아.”
“뭐, 그렇지.”
2억을 벌었다는 이야기에 엄마는 많이 놀란 눈치셨다.
“안되겠다. 나 오늘 진짜 비싼 거 먹을 거야. 그래도 돼지?”
원래 오늘은 은정이 생일이기 때문에 맛있는 것을 사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비싼 거 먹어라. 밥 먹고 쇼핑도 가자. 오빠가 생일 선물 사줄게.”
“진짜?”
선물을 사준다는 나의 말에 은정이는 기뻐했다. 그리고 자신의 배를 붙잡고 말했다.
“씩씩아, 외삼촌이 엄마 먹으라고 맛있는 거 사준대. 우리 씩씩이도 같이 먹자.”
씩씩이는 은정이가 지은 아이의 태명이었다.
씩씩하게 자라라고 그렇게 지었다고 들었는데 나는 나중에 커서 은정이처럼 씩씩거릴까 봐.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여보, 왜 그렇게 있어요. 당신은 기분 안 좋아요?”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집을 돌아보고 있는 아빠에게 다가가 말했다.
“응? 어, 아니야. 기분 좋아.”
아빠는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는데 갑자기 엄마 말했다.
“당신, 울었어요?”
아빠가 울었다는 이야기에 나와 은정이는 놀라서 고개를 돌아보았다. 예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를 빼고는 한 번도 아빠가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야, 울기는 누가 울었다고 그래.”
아빠는 민망한 듯 목소리를 높이셨는데 이렇게 보니 눈가가 촉촉해 지신 것도 같았다.
“정훈아, 너희 아빠도 네가 이렇게 좋은 집에 사는 거 보니까 기분 좋으신가 보다.”
“아빠, 좋아서 우는 거지?”
은정이가 아빠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냥, 예전에 고생한 생각이 나서…정훈이 너 태어나기 전에 너희 엄마랑 자그마한 사글세에서 시작했는데 너희들이 이렇게 커서 아이도 가지고 집도 사고 하는 거 보니까 기뻐서 그래. 아빠도 기분이 너무 좋다.”
아빠는 손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시면서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더 빨리 말씀 드릴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고 은정이도 그렇고 다 잘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이제 저희 걱정은 하지 마시고 엄마, 아빠 노후에 어떻게 보내실지만 생각하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나의 말에 아빠는 웃으셨고 바로 옆에 있던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래, 우리 정훈이 다 컸네.”
***
“은정아, 너 기분 좋아 보인다?”
점심을 먹고 백화점에서 쇼핑도 마친 다음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안서방도 오기로 해서 집에서 간단하게 안주에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은정이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어, 완전 좋아.”
은정이에게 생일 선물로 가방을 하나 사주었다.
은정이는 내가 사준 가방 케이스를 요리조리 돌려 보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는데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기분이 좋았다.
“가방이 그렇게 좋니?”
“아니, 가방이 좋아서 그런게 아니라. 사실 배 불러오고 몸이 무거워서 엄청 힘들었거든…약간 우울증도 오는 것 같고 그런데 오늘 오마카세도 먹고 쇼핑도 해서 스트레스 확 풀리는 것 같아.”
“그러니? 엄마는 그 오마케센가 머시기 맛있기는 한데 양이 너무 적은 것 같더라.”
“그런 거는 원래 양보다 질로 먹는 거야. 살면서 언제 그런 고급 음식 먹어보겠어. 아빠는 맛있었지?”
“어, 맛은 있더라.”
가족들은 다들 소파에 앉아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나는 커피를 타서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와, 오빠가 커피도 타주고 오늘 생일이라 호강 제대로 하네.”
“그러게 엄마도 오빠가 타주는 커피는 처음 먹어 보는 것 같다.”
“오빠가 확실히 여자친구가 생기더니 센스가 늘어난 것 같아.”
“그러니까 원래 네 아빠 닮아서 무뚝뚝했는데 말이야.”
은정이와 엄마의 말에 나는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예전에 나하고는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시골에 내려가더라도 가족들과 이야기하기 보다는 잠을 자는 경우가 많았다. 피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몸은 피곤해도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확실히 돈을 많이 벌면 인생에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 이런 것에서 나오는 말인 것 같았다.
“그런데 오빠 여자친구는 언제 소개 시켜 줄 거야?”
“응? 여자친구?”
“엄마, 아빠는 만나기 부담스러워도 나는 괜찮잖아. 다음에 언제 한번 같이 보자.”
사실 이번 설에 내려 갔을 때 나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저번에 화해를 한 이후로 고모들도 찾아왔는데 엄마의 편에 들어서 나에게 강하게 압박을 주었다.
고모들은 이제 나이가 들었다면서 결혼을 하라고 부추기셨는데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덕분에 꽤나 곤혹을 치루었는데 이렇게 보니 엄마와 아빠도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다음에 시간 한번 내자. 알다시피 내가 너무 바쁘잖아.”
아직 단비와 결혼에 관한 이야기도 자세히 하지 않았는데 가족들을 만나는 것은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적당히 말을 돌렸는데 그때 아파트의 인터폰이 울렸다.
“어, 안 서방 왔나 보다.”
안 서방은 일이 있어서 늦게 온다고 해서 이곳 주소를 알려주었는데 나는 그가 왔다고 생각하고 인터폰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인터폰에 비춘 얼굴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비가 서있었기 때문이다.
‘단비가 왜 왔지?’
오늘 은정이 생일이어서 가족들과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말했다. 그녀도 알고 있을 텐데 왜 이곳에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 서방 왔어?”
은정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왔는데 인터폰에 비춘 얼굴을 보고 놀라서 말했다.
“안 서방 아닌데 누구야?”
“어, 여자친구.”
“진짜? 뭐해? 빨리 문 열어줘야지.”
나는 은정이의 말에 인터폰으로 1층에 문을 열어주었다. 단비는 우리집의 비밀번호를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벨을 누르는 것을 보면 우리 집에 가족들이 다 있다는 것을 알고 오는 것이 확실했다.
“누가 온다고?”
“오빠, 여자친구가 왔어요.”
“진짜? 온다고 말 없었잖아.”
“그러니까 오빠가 서프라이즈로 준비한 것 같은데? 맞아?”
“어…그렇지.”
“온다면 온다고 말이라도 하지. 그래야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이 아니니.”
단비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자 엄마와 은정이는 갑자기 가방에서 화장품을 꺼내서 얼굴을 고치기 시작했다.
아빠도 옷매수새를 가다듬으시는 것이 살짝 긴장을 하시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단비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는지 벨이 울렸고 나는 먼저 마중을 나갔다.
나는 일단 문을 열고 그녀에게 들리게 조용히 말했다.
“단비야, 왜 갑자기 왔어.”
“이번 기회에 인사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왔어요. 나 잘했지?”
그녀의 말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등 뒤에서 엄마의 말이 들려왔다.
“안 들어오고 뭐하니?”
“어, 지금 들어가려고”
나는 문을 활짝 열어서 단비가 들어올 수 있게 만들었는데 단비가 궁금했는지 엄마는 물론 은정이와 아빠까지 모두 문까지 나와 있었다.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세요.”
단비는 구두를 벗고 들어와서 바로 엄마와 아빠에게 인사를 했는데 엄마와 아빠도 그런 단비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웃으시면서 말했다.
“어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