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0 화
길었던 면접이 끝나고 지원자들을 모두 돌려보낸 후 남은 조형우와 나는 합격자들을 추려내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괜찮은 것 같은데?”
조형우가 나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뽑아 줬는데 우리 둘이 보는 눈이 좀 비슷해서 그런지 크게 차이는 없었다.
“저랑 비슷하시네요.”
“그럼 며칠 더 고민해보시다가 사장님이 최종 선택하시는 것으로 하면 될 것 같은데.”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면접 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니야, 나도 새로운 경험이었어. 생각보다 재미있는데?”
“그럼 다행이네요. 같이 점심 드시러 가시죠.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리겠습니다.”
***
나는 조형우와 소미를 데리고 근처에 가까운 한정식 집으로 왔다.
자리에 앉자 조형우가 나에게 말했다.
“이거 낮부터 너무 비싼 거 먹는 거 같은데 위가 놀라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하하, 제가 생선구이가 먹고 싶어서 여기로 골랐는데 별로 안 좋아하세요?”
“생선구이 좋아하지. 마누라가 생선구이를 싫어해서 먹은 지 꽤 오래됐어.”
“생선 구이를 싫어하세요?”
“정확히는 생선 냄새가 집에 풍기는 걸 싫어해.”
“그렇군요. 하긴 저도 집에서 삼겹살이나 생선구이 같은 거 먹기에는 좀 부담되더라고요. 그래서 먹고 싶을 때는 이렇게 밖에서 사 먹습니다. 소미는 좋아해?”
나는 조형우의 옆자리에서 약간 뻘쭘하게 앉아 있는 그녀에게도 말을 걸었다.
“네, 저는 다 잘 먹어요.”
“소미도 오늘 안내해 주느라 고생했어.”
“아닙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그런데 오늘 오신 분 중에서 신입사원 뽑는 거에요?”
“그래야지.”
“그럼 상무점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겠네요?”
“어, 아직 몇 명을 뽑을지는 생각 안 했는데 광주점이랑 나누어서 일 시킬 생각이야. 한 곳에서 다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
“그럼 저도 후배가 생기는 거네요?”
“그렇지, 다 소미 후배들이지.”
“아까 보니까 다들 저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무시 당하면 어떻게 하죠?”
하긴 알바를 하다가 직원으로 전환한 소미는 나이가 어렸다. 아까 면접자들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었다.
예전에 로이스에서 일할 때 나도 이것을 신경을 많이 썼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같이 일한다는 것이 불편함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형우, 신상원 등과 같이 일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나이는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말이다.
“너무 그런 걱정하지 마. 무시 안 당하게 선배의 모습을 잘 보여주면 되지. 원래 능력도 없으면서 잔소리만 하는 상사들이 무시 받는 법이거든 소미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러니까요. 선영 언니한테 더 배워야겠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조형우에게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그에게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장님, 직원 뽑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본사를 차릴까 생각 중입니다.”
“본사?”
“네, 가맹점 늘어났고 문의도 많이 들어오고 있으니 지금 체계를 잡아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생각이 그렇다면 그게 좋겠지.”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나중에 본사 생기면 QC팀을 좀 맡아주십시오.”
QC는 Quality Control의 약자로 본래 품질관리를 말한다.
로이스에 있을 때는 C를 Clean을 사용하여 품질과 위생을 모두 관리하는 부서가 있었는데 신규점포에 대한 교육이나 신메뉴에 대한 교육도 모두 여기에서 관리했다.
본사에서 오는 위생점검도 모두 이 부서에서 관리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부서이기는 했는데 처음에 이것을 떠올리고 조형우가 맡으면 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QC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거지?”
“품질관리팀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신메뉴 개발이나 레시피 수정, 신규 점포 교육, 관리 등의 업무를 하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려운 것 같지만 지금 그가 상무점 주방에서 하는 일의 연장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다.
다만 가맹점이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면 출장을 갈 일이 좀 많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먼저 의사를 물어보았다.
“음…내가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어렵지는 않으실 겁니다. 지금 하시는 것처럼 하시면 됩니다. 저번에 저랑 같이 부산 가신 것처럼 신규점포 개점할 때 출장 다니는 것 빼면 힘들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인데?”
그는 오히려 출장을 반기는 것 같았는데 생각해보니 저번에 부산에 같이 갔을 때도 엄청나게 좋아했었다.
“맡아 주실 거죠?”
“맡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럼 상무점 주방은 어떻게 하지?”
“동준이랑 시환이를 최대한 빨리 교육 해야죠.”
“그럼 더 빡빡하게 교육 해야겠는데?”
동준이는 안 그래도 조형우 밑에서 힘든 교육을 받고 있었다. 광주점에 며칠 지원을 나왔을 때 엄청 좋아했었는데 조형우의 말을 들었으면 울상을 지었을 것이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아마 본사를 만드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에요.”
“그럼 우리도 막 본사 건물 있는 거에요?”
밥을 먹으면서 가만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미가 나에게 물었다.
“건물까지는 아니어도 사무실은 하나 구하려고 생각 중이야.”
“우와, 그럼 이제 완전히 회사가 되는 거네요?”
“그렇지.”
“그럼 저도 나중에 본사에서 일할 수 있어요?”
“왜? 본사에서 일하고 싶어?”
“아, 지금도 괜찮기는 한데 상무점에는 직장인들이 많이 오잖아요. 제가 원래 목에 사원증 걸고 일하는 거 꼭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오피스 상권인 상무점에는 직장인들이 엄청 많이 온다. 평일 점심에 오는 손님들은 다 주변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보고 부러웠던 모양이다.
하긴 나도 그런 것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로이스에 있을 때 딱 정해진 스케줄이라는 것이 없었다. 어떨 때는 9시 출근, 어떨 때는 10시 출근. 퇴근 역시 마찬가지였다.
휴일 역시 달력에 있는 모양대로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를 기준으로 쉬는 날을 정했는데 금,토,일,월 이렇게 2주 치 휴일을 붙여서 쉬면 휴가가 아니어도 4일 연속 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만약 그 다음 스케줄이 다시 금요일로 잡힌다면 쉬지 않고 10일 넘게 일해야 하는 불상사도 생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는 점이다. 한가하면 2시에 밥을 먹을 때도 있었고 바쁘면 4시가 넘어가도록 점심을 못 먹을 때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12시가 딱 되면 밥을 먹으러 오는 직장인들을 부러워했었다. 그래서 상무점에는 브레이크 타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오픈한 광주점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백화점에서 원칙적으로 브레이크타임을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본사 근무도 가능하지. 나중에 이야기해 보자.”
“네, 알겠습니다.”
***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신입으로 뽑을 인원들을 정리하였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많아서 결정하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이 사람들이 일을 진짜로 마음에 들게 잘할지는 시켜봐야 안다.
‘다 잘 해줬으면 좋겠네.’
서류들을 정리하고 이제는 좀 쉬려고 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 엄마 >
엄마의 전화였다. 얼마 전 설날에 백화점이 쉬는 날 인사를 드리고 왔다. 이번에도 용돈을 두둑이 드리고 왔는데 엄청 좋아하셨다.
특히 드라마에 우리 가게 음식이 나왔다고 해서 기뻐하셨는데 나도 부모님의 그런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여보세요?”
[ 아들, 퇴근했어? ]
“네, 지금 집이에요.”
[ 이번 주말에 시간 낼 수 있지? ]
“주말에요? 무슨 일 있어요?”
[ 저번에 설에 이야기했잖아. 은정이 생일에 맞춰서 한 번 올라간다고. ]
엄마의 말에 나는 달력을 보았다. 우리 집에서는 생일을 음력으로 계산하는데 이번 주 주말이 은정이 생일이었다.
은정이는 4월이 출산 예정이었다. 이제 3월이니 곧 있으면 나는 조카가 생기는 것이다.
“아, 은정이 생일인데 시간 내야죠.”
[ 이번에 반찬이랑 가지고 올라갈 거니까 바쁘더라도 시간 내라. ]
“네, 알겠습니다. 주무시고 내려 가실 거에요?”
[ 아무래도 그래야 될 것 같아. 아버지가 오랜만에 안서방이랑 한잔하고 싶어 하시더라. ]
“그럼 저희 집에서 주무세요?”
[ 너희 집? 다 자기에는 너무 좁지 않을까? ]
미안한 이야기지만 부모님은 아직도 내가 투룸에서 살고 있는지 알고 계신다.
드라마에도 나왔고 이제는 아들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것을 알고 계시니 나는 이번 기회에 부모님을 모시고 집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저 이사했어요.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이번에 오시면 집 보여 드릴게요.”
[ 이사를 했다고? 언제? ]
“최근에 했어요.”
이사한 지 오래되었다고 하면 서운해 하실까 봐 나는 적당히 둘러 냈다.
[ 너는 이사를 했으면 엄마, 아빠한테 말을 해야지. 그렇게 혼자 홱 해버리는 게 어딨니? ]
“1월부터 장사 때문에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냥 이삿짐센터 불러서 쉽게 했어요.”
[ 어디로 이사했는데? ]
“첨단으로 이사 했어요. 은정이 집이랑은 그렇게 안 멀어요. 토요일날 오시면 바로 은정이 집으로 가세요. 제가 모시러 갈게요.”
[ 그럼 은정이 집에서 보는 걸로 하자. ]
“몇 시쯤 오실 거에요?”
[ 아침에 일찍 가려고 생각 중이야. 미역국 끓여줘야 하니까 ]
“그럼 저는 점심시간쯤 갈게요. 아침 먹고 좀 쉬고 계시다가 낮에 가족끼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 ]
“네, 주말에 봐요. 엄마.”
전화를 끊은 나는 집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드디어 집을 보여 드린다. 사실 이번 설에 내려갔을 때도 이것저것 물어보셨는데 속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로또 당첨된 사실은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이제 가게가 많이 늘어났으니 이 정도는 공개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 좋아하시겠지?’
***
토요일 12시 은정이 집에 도착한 나는 벨을 눌렀다.
잠시 후 은정이가 나오면서 문을 열어 주었는데 설에 봤을 때보다 배가 더 많이 나온 것 같았다.
“오빠, 이사했다면서 왜 말 안 했어?”
벌써 엄마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은정이는 보자마자 나를 다그쳤다.
“그냥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그랬지.”
“매매로 산 거야?”
“어, 당연히 매매로 샀지.”
“차도 사고 집도 사고 오빠 진짜 돈 많이 벌었나 보다.”
이번 설에 차를 타고 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포르쉐를 가족들에게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했는데 생각보다 가족들은 쿨하게 받아들였다.
드라마에서 광고할 정도로 가게가 잘 되고 있어서 충분히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것 때문에 집을 공개할 마음도 생겼다.
“이제 예전에 너가 무시하던 오빠가 아니다.”
“집은 어디로 샀는데?”
“첨단.”
“진짜? 거기 집값 많이 올랐잖아.”
“많이 올랐지.”
“아파트 샀지? 첨단 어디 아파트야?”
“스테이트힐.”
“뭐? 스테이트 힐?”
예전에 은정이가 로또에 당첨되면 살고 싶은 아파트로 스테이트힐을 뽑았었다. 그런데 내가 거기를 샀다고 하자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진짜야?”
“어, 진짜야. 부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