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9 화
“휴.”
저녁 늦은 시간까지 면접에 사용할 지원서와 질문들을 정리한 나는 한숨을 돌렸다.
본래 이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지원서를 메일로 보내주었는데 전부 다 면접을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나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들은 서류에서 탈락시켰다.
신입과 경력. 요식업이 아닌 직종에서 근무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정리를 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남은 지원자는 총 15명. 이렇게 지원자들 서류를 정리하자 감회가 새로웠다.
예전에 처음 로이스에 입사지원서를 넣었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교 졸업하고 솔직히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지원서를 넣는 곳 마다 떨어졌었고 자격증이나 다른 공부를 좀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로이스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로이스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기 때문에 고마운 것도 많이 있었다.
‘강훈만 아니었으면…’
그 놈이 아니었으면 로이스에 뼈를 묻을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한 프랜차이즈의 사장이 되어서 직원들을 뽑고 있다. 매장에서 근무할 직원들의 면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제 다른 업무를 맡아서 근무할 직원들도 필요한 것 같아.’
예전에 점장으로 일하면서 매장 관리 영업에는 어느 정도 눈이 떠져 있었지만 프랜차이즈 운영에 관해서는 솔직히 경험이 많이 부족했다.
그때 그때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면서 일을 추진하고는 있었는데 법인을 만들고 지점이 늘어나면서 필요한 업무의 강도가 많이 높아졌다.
아직까지는 어떤 식으로 굴러가고 있었지만 슬슬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나를 대신해서 이러한 일 들을 대신해 줄 직원이 필요했다.
나는 로이스의 근무체계를 떠올리면서 무엇이 필요한 지 생각했다.
일단 재정을 담당해 줄 직원도 필요할 것 같았다. 이번처럼 면접이나 직원들 월급 등을 관리해 줄 인사 담당 직원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거기에 두레푸드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게 미리 재고를 파악할 구매팀이나 회사의 홍보를 담당해 줄 마케팅도 필요했다.
생각을 해보니 필요한 담당부서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을 모두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내가 더 편하게 일하려면 구해야지. 이번에 영업 직원들 뽑으면 바로 구해야겠다.’
직원들을 구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본사에 직원들이 뽑으면 그들이 근무할 사무실이 필요했다.
이번에 면접은 수아가 도움을 주기로 해서 적당한 사무실을 빌렸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는 없었다.
‘사무실도 알아봐야 겠군.’
이렇게 이것 저것 생각하자.
사업의 규모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너무 일을 벌이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는데 아직은 괜찮았다.
그동안 꾸준히 영업을 통해서 번 돈으로 감당할 수 있었고 주식으로 번 돈도 있었다. 로또 당첨금 역시 나를 든든히 버텨주고 있었다.
***
“실장님. 오셨어요?”
“어, 그래. 빨리 왔네.”
뉴월드백화점 광주점 바로 옆에 있는 아이마트 지하 1층 사무실에서 나는 면접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오늘 있을 면접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면서 조형우가 들어왔다.
오늘 면접은 조형우와 내가 보기로 했다.
실질적으로 지금 조형우는 상무본점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각자 마음에 드는 직원을 선발하기로 했다.
그는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어서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조금은 어색했는지 자꾸 옷매무새를 만지작 거리면서 어색해했다.
“오랜만에 정장을 입어서 그런지 좀 작아졌네.”
“괜찮으신데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는 내 옆으로 와서 자리에 앉아 말했다.
“나, 이런 거 처음이라 그런지 엄청 떨리는데? 티 많이 나?”
“아니요. 그동안 알바 면접은 많이 봐보셨잖아요.”
상무본점에는 많은 알바들이 근무한다. 1억이라는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12명는 알바생이 있었는데 내가 최근에 바빴기 때문에 조형우가 뽑은 사람도 있었다.
“그거랑은 느낌이 다르지.”
하긴 알바생과 느낌이 좀 다르기는 했다.
“본점에서 직원이 되고 싶다고 지원서 보낸 친구도 있던데요?”
“어, 정욱이라고 지금 주방에서 일한 지 2달 정도 되었는데 일하는 센스는 나쁘지 않아. 직원 하고 싶으면 지원해보라고 했어.”
“잘하셨습니다.”
그와 오늘 면접에 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면서 또 누군가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상무본점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류소미였다.
아무래도 오늘 면접 진행을 도와줄 직원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녀를 불렀다.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일찌감치 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똑부러지는 맛이 있는 친구였다.
“소미, 오랜만이다.”
“네, 사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부산과 뉴월드 광주점을 오픈하면서 상무본점에 갈 일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실장님과 선영이가 매장 관리를 잘 이끌어 주고 있어서 그럴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예전에 입사하고 회식 자리에서 본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는데 얼굴 표정을 보니 회사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 나도 잘 지냈지.”
“그런데 저 오늘 어떤 일 해야 하는 거에요?”
“어, 지원자들 오면 여기 있는 번호표 나줘주고 내가 말하면 3명 씩 안으로 들여보면 주면 돼.”
“오, 어려운 건 없네요. 밖에 보니까 지원자들 몇 명 온 것 같은데 지금 번호표 나눠 줄까요?”
“벌써?”
시간을 보았는데 아직 면접시간까지는 30분 정도 시간이 있었다.
“네, 한 3명 정도 있었어요.”
“그래, 그럼 이거 나줘 주고 나랑 같이 책상 정리 좀 하자.”
“네, 알겠습니다.”
****
“그럼 고생하셨습니다. 결과는 나중에 문자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면접을 시작하였고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의외로 알로하에 관심이 많고 날카로운 질문들을 해오는 지원자들이 있었는데 나는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내 경험상 아무 목적없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 보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열정적이고 배우려는 자세도 남다르기 때문이다.
애초에 지원서에서 그런 열정이 느껴지는 사람들만 연락을 돌렸는데 확실히 접근하는 태도가 달랐다.
“나는 다 마음에 드는데?”
벌써 6명을 면접을 보았는데 조형우는 다 마음에 든다면서 누굴 뽑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마음에 드시면 다 뽑죠.”
“진짜? 농담이지?”
“아니요. 어차피 매장 계속 늘릴 건데 직원들 미리 뽑아서 가르치면 좋죠.”
“매장 늘어나는 건 좋은데 나중에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거 아니지?”
프랜차이즈 특성상 가맹점을 끌어모으는 것에만 집중하면 많이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마구잡이식으로 확장을 하다보면 무언가 사건이 터졌을 때 한꺼번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무너지는 카페, 식당들을 많이 봤다.
“에이, 저희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기가 탄탄하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다음 면접자 들어오시겠어요?”
조형우의 걱정을 없애준 후 나는 다음 면접자를 호출하였다. 이번에도 3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자리에 낮은 지원자들 중에서 낯이 익은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철수 씨?”
“네.”
“혹시 저희가 어디서 만난 적이 있나요? 낯이 좀 익은 것 같은데…”
“네, 예전에 저희 매장에 가전 제품 사러 오셨는데 그때 제가 도움을 드렸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지금 집으로 이사할 때 가전제품을 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를 담당했던 직원인 모양이다.
나는 긴가민가 했는데 반응을 보니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원서를 보니 전자제품 판매원으로 일했다고 적혀 있었는데 그것만 보고는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긴 예전에 볼 때는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지원서에 있는 사진은 벗고 찍은 사진이었기 때문에 많이 달랐다.
“아, 그때 TV를 설명해주신 분이군요.”
“네, 맞습니다.”
친절한 설명을 해준 직원으로 기억이 남았다. 하긴 그것 때문에 여러 가지 다른 제품들도 많이 구매했다.
“그렇군요. 원래 전자제품을 판매하셨는데 전혀 다른 요식업에 지원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파는 물건이 다를 뿐 저는 좋은 서비스와 제품을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영업이라는 관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비스적인 부분에서 강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건 내가 직접 그에게 겪은 일이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다. 매장에서도 나에게 보여준 것처럼 일한다고 하면 충분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장님은 궁금하신 것 없으세요?”
“어,,,실례가 안 된다면 그 전에 직장은 왜 그만두게 되신 건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아, 원래 제가 일성 전자에서 근무하기는 했지만 정규직이 아니라 하청업체에서 파견된 직원이었습니다. 계약직으로 1년 씩 연장하면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코로나로 인해서 매장 방문하는 손님들이 많이 줄어서 작년 12월 말에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전염병의 장기화로 인하여 국내 인력시장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기업들은 신규직원 채용을 정기가 아닌 상시로 변경하였는데 사실상 이것은 신규직원을 안 뽑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간혹 직원채용에 관한 글이 올라오더라도 경력있는 직원들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또 이런 경력있는 직원들의 급여는 낮게 설정하여 경력있는 신입을 구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었다.
신입들은 어쩔 수 없이 경력을 쌓기 위해 계약직이나 중소기업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가뜩이나 여러 가지로 어려운 청년들에게 가혹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회사 입장으로서는 이해도 되었다. 자선사업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만 하더라도 지금 면접을 볼 때 경력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이 지원자가 하는 말만 믿고 채용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이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바로 경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었다.
아무리 같은 영업이라고 하지만 나는 판매업과 요식업은 결이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일단 판매업은 한 번에 한 명의 고객만 대응하면 되지만 요식업은 그렇지 않다.
매장에 있는 모든 고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영업이라는 관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실제 근무환경은 많이 다릅니다. 몸을 많이 움직이셔야 할 것 같은데 가능하실까요?”
나는 걱정되는 부분을 물어봤는데 그는 자신있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판매업도 처음 시작하는 일이어서 제가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객님들에게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제품 설명서를 달달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설명서를 다 외우니까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요식업도 처음 해보는 일이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알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소화할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예전에 그가 진심을 다해서 설명 해주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의 말처럼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옆에 분께 여쭤보겠습니다. 저희 알로하에 지원하게 된 동기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