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7 화
Work and Life Balance.
워라벨. 처음에 로또에 당첨되고 꿈을 꿨다. 편하게 일하면서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여행도 다니는 그런 삶 말이다.
한승이를 직원으로 뽑은 이유? 내가 일을 좀 덜하고 쉬고 싶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어떻게 보면 이하연도 그런 이유에서 직원으로 뽑았다.
직원과 알바들이 일하고 사장은 편하게 쉬는 오토매장.
그런데 처음 생각한 것과 다르게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가게가 점점 유명해 지면서 잘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이제는 로이스를 넘어서 대한민국에서 돈카츠로 최고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이제는 알로하가 나의 삶에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몸이 좀 힘들기는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사장님, 너무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들려주세요.”
강철왕후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가게로 몰려왔다. 방송국에서 너튜브 계정으로 돈카츠 부분만 따로 편집해서 올려주었는데 다른 음식들보다 반응이 아주 좋았다.
나는 이런 인기에 힘입어 고객들을 위한 이벤트도 진행하였다.
“왕후돈까스 하나 주세요.”
강철왕후에 출연한 돈카츠는 등심으로 만든 로스카츠였다.
처음에 어떤 메뉴를 보여줘야 할지 고민을 했었다. 솔직히 말해서 로스카츠는 우리 가게에서 그렇게 엄청 많이 팔리는 메뉴는 아니었다.
순위로 따지면 5등 정도 될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맛이 없어서라기보다 메뉴판에서 보이는 비주얼이 너무 평범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종류의 돈카츠가 있는 알로하 정식이라던 지 치즈가 단번에 시선을 끄는 치즈카츠에 비하면 돈카츠만 딱 놓여있는 로스카츠는 너무나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어딜 가나 근본은 인기가 있는 법.
원래 일본식 돈카츠하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로스카츠이기 때문에 꾸준히 찾는 사람은 종종 있었다.
방송에서는 기본이 좋을 것 같아서 로스카츠로 준비했다. 하지만 이것이 조금 달라졌다.
드라마에서는 대왕대비에게 주는 음식이었다. 평범하게 주는 것이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궁중음식 답게 여러 가지 화려한 데코레이션이 많이 들어갔다.
돈카츠는 평범했지만 그 주위는 화려했다.
양배추 위에 기존과 다르게 적양배추도 올리고 식사 후 디저트로 먹을 수 있게 돈카츠 옆에 홍시떡도 있었는데 이것도 인기가 많았다.
방송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은 강철왕후에 나온 돈카츠를 많이 찾았는데 방송과 다른 모습에 조금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뭐, 로스카츠가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SNS로 예쁜 사진을 남길 것을 기대하다가 평범한 모습에 실망한 것이다.
나도 SNS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느낌인 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급하게 방송에 나온 것처럼 여러 가지 데코레이션을 하고 뉴월드푸드를 통해서 홍시떡도 주문을 하였다.
대형유통사를 끼고 있다는 것이 확실히 이럴 때 좋은 것 같았다. 우리 가게에서 필요한 재료 뿐만 아니라 다른 재료들도 구입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왕후돈카츠였다. 기존 로스카츠의 확장판 느낌이랄까?
고객들의 반응은 당연히 좋았다. 방송을 보고 온 고객들은 모두다 만족했는데 문제가 있다면 매장에서 일하는 우리들의 손이 2개 씩 뿐이라는 것이다.
“사장님, 적채가 부족해요.”
“어, 금방 썰어줄게.”
양배추는 일반적으로 기계로 커팅하지만 왕후돈카츠 위에 올라가는 적채는 손으로 커팅을 해야했다.
안 그래도 바빴는데 작업양이 엄청나게 늘어나서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
오늘도 엄청 고생한 아이들을 위해서 나는 퇴근후 근처 고깃집으로 맛있는 것을 사주기 위해서 데리고 왔다.
다들 피곤에 지친 표정이었는데 보고 있으니 좀 안쓰럽긴 했다.
“동준이 오늘 어땠어?”
“처음에 상무점 비슷하겠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여기가 더 힘든 것 같아.”
동성이 형님의 동생인 동준이는 올해 1월부터 상무본점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광고 촬영 때문에 서울로 출장을 가야했는데 그때부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일할 때는 나를 사장님으로 높여주고 있었지만 이런 사석에서느 그냥 편하게 친구처럼 대화하고 지냈다.
“사장님, 맥주 한잔 해도 되죠?”
“그래, 편하게 먹어.”
오늘 많이 힘들었는지 한승이는 바로 술을 주문하였고 하연이까지 우리 네 사람은 잔에 맥주를 채웠다.
“자, 오늘도 다들 너무 고생했다.”
짠.
건배를 한 후 맥주를 원샷했는데 시원한 술이 목구멍을 넘어가자 하루에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예전에 시골에서 아버지가 일하실 때 항상 새참으로 반주를 드시곤 했다. 가뜩이나 몸도 힘든데 어떻게 이겨 내려고 술을 마시나 했었는데 나도 나이가 좀 먹은 모양이다.
“사장님, 이거 잘하면 이번 달에 1억 찍겠는데요?”
술을 한 잔 마신 한승이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날짜가 2월 22일. 평일에 250만 원 이상 팔고 있었고 주말에도 500만 원을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었다.
벌써 8천만 원 가까이 매출을 올렸으니 이번 주에 빡세게 영업을 한다고 하면 충분히 1억을 찍을 수 있었다.
“근데 상무본점도 같은 1억 매출인데 여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맞아. 여기가 훨씬 힘들거야.”
이하연이 비슷한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상무본점과 비교해서 이야기했는데 그녀의 말이 맞았다.
보통 푸트코트는 키오스크를 사용해서 주문을 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해서 주방에만 집중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프리미엄 식품관은 내가 생각한 푸드코트와는 조금 달랐다. 백화점은 서비스도 중요시하기 때문에 각 매장에서 주문을 직접 받고 응대해야했다.
요즘 백화점의 주 고객층이 젊은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래도 40대, 50대가 아직까지는 백화점의 주요 고객이라고 할 수 있다.
40대는 그나마 괜찮지만 50대가 넘어가면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사용해 보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말이다.
백화점은 내가 편하게 쇼핑하기 위해서 오는 곳인데 이런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되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식품관 키오스크 사용은 빼버린 것 같았다.
덕분에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있는 이하연은 특히나 일이 많았다.
주문, 세팅, 포장도 해야 하고 거기에 뉴월드 포인트 적립, 주차권 등록 등 상무본점과 비교하면 해야 될 멘트가 2배 이상은 늘어났다.
동준이가 와서 내가 세팅과 포장은 도움을 주고 있었는데 나도 정신이 없을 정도 였으니까 말이다.
“직원 더 뽑고 있으니까 좀 만 기다려 보자.”
강철왕후로 손님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바로 직원을 뽑는 공고를 올렸다. 몇몇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오기는 했는데 찾아온다고 하고 잠수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승이가 우스겟소리로 찾아왔다가 매장에 줄 서있는 거 보고 도망간 거 아니냐고 했는데 나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 없어?”
나는 주변에 지인들에게 혹시 일하고 싶은 사람 있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네, 없어요. 관심을 보인 친구가 한 명 있긴 했었는데 백화점에서 일한다고 하니까 안 한다고 하던데…”
“그래?”
하긴 예전부터 로드샵보다 백화점이 사람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했다. 여러 가지 규정이나 규칙들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점장님들이랑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가 있는데 자기 직원이 담배 때문에 일을 그만 뒀다고 했다.
로드샵은 그냥 가게 뒤로 나가서 사람이 안 보이는 곳에서 담배를 피면 되지만 백화점은 지정된 흡연 구역까지 걸어가서 담배를 펴야 하기 때문에 흡연자들이 일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비흡연자인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담배를 펴야 하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흡연자들에게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았다.
“근데 보면 요식업 자체가 환경이 열악한 것 같아.”
동준이의 말에 한승이와 하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형이랑 김밥집 하기 전에 여러 군데 일해봤었는데 수석 주방장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욕했어. 거기에 사장은 엄청 깐깐하고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 텃세 엄청 심하고 진짜 적응하기 힘들었어. 근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안 보여.”
“미래?”
“내가 여기서 고생한다고 해서 얻는 게 있을까? 하는 마음 말이야. 그럼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하는데 요식업이 돈도 짜잖아.”
“나는 많이 주는데?”
“너는 많이 주지. 다른 사장님들 말이야.”
나는 직원들에게 월급을 후하게 주는 편이었다. 초창기부터 일한 한승이와 하연이는 대기업 부럽지 않게 월급을 가져가고 있다고 말해 줄 수 있었다.
“근데 요새는 돈 많이 준다고 해도 일 안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워라벨이라고 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나도 예전에 워라벨을 꿈꿨기 때문에 하연이의 말에 동감했다.
“나는 빨리 열심히 배워서 가게 차려야지. 정훈아, 나 가맹점 내주기로 한 거 잊어버린 거 아니지?”
“어, 하고 싶으면 언제 든지 말해.”
동준이는 우리 가게에서 일한 이후로 알로하 가맹점에 대한 욕심이 더 높아졌다. 장사가 잘 되는 모습을 직접 보니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진 것이다.
그런 그를 보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알로하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에게는 나중에 가맹점 할 때 혜택을 주면 어떨까?”
“혜택이요?”
“어,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직원들 중에 가맹점을 하고 싶으면 그동안 고생한 거 생각해서 가맹비라던 지 로얄티 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주는 거지.”
“오, 나쁘지 않은데요? 지금 식품관에 소프트베이커리라고 빵집 있잖아요.”
“어, 거기도 장사 잘 되잖아.”
“제가 쉬는 시간에 휴게실에서 들었는데요. 거기는 가맹점을 본사에서 근무한 정직원들에게 밖에 안 내어 준대요.”
“진짜?”
“네, 그것도 5년 이상 근무한 정직원들만 가맹점을 신청할 수 있다고 하던데요.”
“5년은 너무 긴 거 아니야?”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5년 동안 근무하고 퇴직금을 브랜드 가맹점으로 받는 거죠. 그런데 이게 소프트베이커리 가맹점들이 다 장사가 너무 잘 되니까 빵가게에 욕심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는 5년 채우려고 노력한대요.”
“그것 좀 신박한 방법이네.”
“네, 휴게소에 있는 직원들은 신입들인 것 같았는데 5년 동안 돈 모으면서 기술 배우고 나중에 가맹점 만들 생각인 것 같았어요.”
이하연의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드는 생각이 또 있었다.
SNS를 통해서 오는 메시지들. 가맹점 문의를 비롯해서 맛있는 돈카츠를 만드는 비법에 대한 문의도 오고 있었고 거기에 장사를 잘하기 위한 팁에 대한 문의도 많이 있었다.
나의 노하우를 그냥 알려주는 것은 무리가 있어서 죄송하다는 답변을 해주고 있었는데 이하연의 말처럼 그런 사람들을 직원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나중에 가맹점을 만들 때 혜택을 주면 직원 수급과 안정적인 가맹점 늘리기가 한번에 가능할 것 같았다.
좋은 생각 같았는데 이것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려면 그런 확신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알로하 가맹점은 망하지 않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확신 말이다.
확실히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 이것만큼 좋은 비전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직까지는 가맹점 모두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그거 나쁘지 않은 생각 같다. 정리 좀 해서 SNS에 글 올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