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4 화
[ 사장님, 가능할 것 같습니다. ]
오후 3시. 한차례 주문과의 전쟁을 끝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김수진에게 전화가 왔다.
아침에 신상원을 통해서 예전 동료들과 연락을 하고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나는 혹시 두레푸드에서 일할 마음이 있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그거 다행이네요.”
[ 네, 방금 이야기했는데 그만 두신 분들이 좀 있더라고요. ]
“그만 둔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급식소에서 일했던 직원들을 김현태에게 소개시켜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혹시 문제가 있는 직원이라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유를 물었다.
[ 아, 원래 여사님들이 돈픽코리아라는 급식회사에서 일하셨는데 얼마 전에 대대적으로 인원을 줄였대요. ]
“코로나 때문인가요?”
[ 어…그것도 있는데 요즘에 초등학교에 학생이 한 반에 20명 조금 넘는 정도인데 예전보다 급식 먹는 아이들이 많이 줄어서 일할 사람도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에 코로나 핑계 삼아서 직원들 줄인거죠. ]
“그렇군요.”
내 기억에 예전에 초등학교 다닐 때 한 반에 40명이 넘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20명 밖에 안 된다니 조금은 놀라운 수치였다.
출산율이 낮아졌다고 언론에서도 많이 이야기하고 전문가들이 걱정을 하는 너튜브 영상도 많이 봤는데 별로 체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확실히 아이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그만두었다고 한다면 추천을 해주어도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 다들 그래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말씀하신 공장 이야기 했더니 관심을 보였습니다. ]
“그래요? 몇 명 정도 될까요?”
[ 일단은 저랑 친하신 분은 3명 정도고요. 혹시 더 필요하다면 구할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
“음…일단은 알겠습니다. 두레푸드 하고도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서 제가 통화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
***
김수진과 전화를 끊은 나는 바로 김현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솔직히 나는 그냥 추천을 해주는 것이지 직원을 뽑는 것은 그의 선택이었다.
아무리 내가 괜찮다고 생각해도 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억지로 추진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 네, 사장님. ]
“아,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 네, 지금 가능합니다. ]
“어제 말한 직원 있잖아요. 제가 아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관심 있으시면 면접을 좀 봐보시는 건 어떠세요?”
[ 면접이요? ]
“네, 저희 가맹점 사장님 중에 급식소에서 일하셨던 분이 있거든요. 거기에서 일했던 직원들이 지금 쉬고 있다고 해서 연락드렸는데 공장에 관심이 있다고 하시던데.”
[ 식품조리쪽으로 일하신 건가요? ]
“네, 어차피 식품 다루는 일이고 저번에 보니까 대량으로 작업하는 건 비슷할 것 같은데…”
말을 하고 보니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 갑질인가?’
하청업체에 자신의 지인들을 꽂아 넣는다.
나는 그냥 순수하게 공장이 빨리 안정화를 찾으면 좋을 것 같아서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바로 보충 설명을 하였다.
“아,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저도 믿을만한 직원 구한다고 하셔서 물어물어 알아본 것이지 저랑 친한 사이거나 그런 것 아닙니다.”
조금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는데 내 목소리에 김현태가 웃었다.
[ 네,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이 그럴 분 아니시라는 거. ]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이야기 들으니 급식소에서 일할 때 성실하게 하시던 분들이라고 하더군요.”
[ 어제 다녀가시고 나서 공고를 새로 올리기는 했습니다. 어차피 뽑을 직원 만나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
김현태도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다. 나는 잘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그에게 강조했다.
“절대로 제가 갑질하거나 그런 것 아닙니다. 사장님이 마음에 안 드시면 안 뽑으셔도 됩니다.”
[ 네네, 알고 있습니다. ]
“그런데 사람을 몇 명 정도 구할 생각이세요?”
[ 지금 당장 필요한 인원은 2명입니다. 그런데 창원점도 곧 오픈하지 않나요? ]
“네, 맞습니다. 창원점도 화정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전화로 필요한 물량을 매장에서 일주일 단위로 주문을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물류센터에 물건을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매장에서 필요한 사용량을 따로 주문하지 않고 일정하게 그냥 생산을 해달라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장사가 안 되면 재고가 쌓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그것을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 오픈한 매장들이 많이 있었다. 매출은 점점 더 올라갈 것이다. 특히 뉴월드 광주점의 경우 잘하면 상무 본점 정도까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매장 늘어날 것 생각해서…추가로 한 두명 정도는 더 필요할 것 도 같습니다. ]
잘됐다.
김수진이 나에게 말한 인원이 3명이었으니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잘 되었네요. 안 그래도 면접을 보신다고 하신 분이 3명이었습니다. 제가 연락처 알려드릴 테니 면접 보시고 결정하시면 될 것 같네요.”
[ 네, 안 그래도 공고 올리고 연락이 별로 없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그럼 면접 보시고 결과 알려 주십시오.”
[ 네, 알겠습니다. ]
공장이 직원을 뽑고 안정화가 되면 나도 당분간은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영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를 도와주었다.
‘잘 됐으면 좋겠군.’
***
< 사장님, 말씀하신 직원들 뽑기로 했습니다. 다음주부터 출근하기로 했는데 이제 공급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
며칠 후 저녁 김현태에게서 깨톡이 왔는데 내가 추천해준 사람들을 직원으로 뽑기로 했다는 연락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결정이었는데 다행히 내가 추천해주는 직원들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다행이네.’
며칠 이 일이 신경이 쓰였는데 나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마음 편히 드라마 볼 수 있겠군.’
퇴근하면서 나는 편의점에서 맥주와 함께 이것저것 간식을 샀다. 오랜만에 드라마를 볼 생각이었는데 오늘은 선우가 촬영한 드라마의 첫방송이 시작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 강철왕후 >
촬영을 시작했다는 연락을 선우에게 받고 너튜브로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어 있나 수시로 확인했는데 막상 첫방송이 시작되니 내가 다 떨렸다.
‘시청률이 잘 나와야 할텐데…’
기나긴 무명 생활 끝에 배우의 꿈을 포기했었다. 그에게 실패하면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녁 10시.
드라마가 시작되고 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선우가 언제 나오나 쳐다보았다. 하지만 처음에는 선우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역들이 나오는 씬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주연배우들의 어렸을 적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선우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거의 드라마가 끝날 때쯤 아역배우들이 사라지고 성인 배우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집중해서 선우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강철왕후의 호위무사.
커다란 칼을 차고 왕후의 뒤에서 호위를 하는 역할이었는데 원래 키가 커서 눈에 확 들어오고 사극 복장도 엄청 잘 어울렸다.
‘저렇게 보니까 배우는 배우네.’
메이크업도 하고 조명도 받아서 그런지 매장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춥사옵니다. 마마.”
등장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선우의 첫 대사가 울려 퍼졌다. 낮게 깔리는 저음이 매력있게 들렸다.
그리고 문득 저 목소리 때문에 한승이와 선우가 투닥거리던 것이 생각났다.
상무본점에 주방은 오더가 올라오는 프린터가 한 개였기 때문에 우동이나 소바 같은 메뉴가 들어오면 한승이가 불러주었다.
그러면 선우가 메뉴명을 따라 말하면서 복창을 했는데 한승이는 그런 선우의 저음 목소리를 따라하면서 놀렸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한승이는 끝까지 따라했는데 선우가 성격이 좋아서 웃어 넘겼다. 그랬던 목소리가 지금은 너무나 좋게 들렸다.
나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여 인터넷에 있는 드라마 실시간채팅을 들어가 보았다.
- 오 저 호위무사 누구임?
- 그러게 완전 잘생겼는데?
- 신인인 것 같은데 목소리 엄청 좋다 ㅋㅋ
- 왕후 짝사랑하는 역할 인 것 같은데?
사람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선우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고 있었는데 아직 1화였고 나는 기나긴 무명생활에 비하면 이 정도는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선우, 파이팅!’
***
“사장님, 어제 드라마 보셨어요?”
출근을 하자마자 하연이 나에게 물었다. 그녀 역시 나처럼 선우의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는데 어제 방송을 본 모양이다.
“어, 당연히 봤지. 드라마 재미 있던데?”
선우가 나와서 시청을 했지만 드라마의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첫 방송 시청률을 확인했는데 요즘 드라마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은 스타트였다.
“네,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오늘 저녁에 또 보려고요.”
하연이와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오픈 준비를 정신없이 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10시 30분 되었다.
백화점의 오픈 시간.
주문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면서 멍하니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소리에 놀라서 나는 푸드코트 쪽을 쳐다봤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서있다.
장선우. 그가 찾아온 것이다.
“선우야. 너, 무슨일이야?”
“백화점 오픈한 거 축하 드리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너, 드라마 촬영해야 하는 거 아니야?”
드라마가 시작했지만 촬영이 한창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까지 올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네, 오늘 새벽까지 촬영했어요. 잠깐 시간이 비어서 인사 드리려고 왔어요. 원래는 오픈 하는날 오고 싶었는데 그때도 도저히 시간이 안 되더라고요.”
“야, 새벽까지 촬영했으면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다음에 오면 되지 광주까지 왜 왔어.”
“차에서 자면 돼요. 매니저 형님이 운전해줘서 그렇게 안 피곤해요.”
비록 조연이지만 비중이 적지는 않았다. 거의 매화 등장하고 나름 중요한 역할이었는데 그를 좋게 본 매니지가 있어서 최근에 계약을 했다고 들었다.
“그래? 그거는 다행이네. 아침은 먹었어?”
“아직 안 먹었어요. 저 돈카츠 하나 튀겨주세요.”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나는 그가 먹을 돈카츠를 튀기기 시작했다. 어제 방송을 보고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는데 이렇게 보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돈카츠를 튀기면서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오랜만에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하연이는 어디 갔어요?”
“아, 사무실에 일이 있어서 잠깐 올라갔어. 맞다. 어머님은 이제 괜찮으셔?”
“네, 이제 건강 거의 회복하셨어요. 어머니가 사장님 만나면 꼭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그거 다행이네. 자 여기 돈카츠 먹어라.”
나는 그를 위해서 알로하 정식 한 상을 차려 주었는데 선우는 먹지 않고 갑자기 핸드폰을 들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원래 그런 거 잘 안하잖아.”
“제가 SNS에 올려드릴게요.”
“우리 가게 홍보 해주는 거야?”
“네, 아직 사장님보다 팔로워는 적지만 기다리세요.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어제 첫방송 이후로 그의 SNS 팔로워가 많이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 확실히 드라마의 영향력은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솔직히 배우가 되고 나서 마음이 변할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찾아오고 도움을 주려는 그의 모습을 보니 나는 예전에 그를 돕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더 유명해져서 우리 가게 이름 많이 알려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