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2 화
20년 2월 1일.
“사장님, 엄청 떨리는데요?”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 나도 같이 있잖아.”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오늘은 그렇게 기다리던 3호점, 알로하 뉴월드광주점이 오픈 하는 날이었다.
공사를 마무리하고 오픈 준비를 하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작년 이맘 때 일을 그만뒀었지.’
작년 2월에 로이스를 그만두고 알로하를 만들었다. 근데 불과 1년 만에 이렇게 백화점에 가게를 오픈하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늘 엄청 바쁠까요?”
“아마도?”
백화점이 오픈하는 10시 30분.
문을 열었다는 안내멘트와 함께 직원들은 모두 가게 앞으로 나와서 인사를 할 준비를 했다. 재료 준비를 하고 있는 한승이를 제외하고 나와 이하연은 나란히 서 있었는데 그녀는 많이 긴장한 것 같았다.
이해는 되었다. 나도 예전에 오픈 지원을 많이 해봤는데 이게 은근히 사람을 피 말리게 한다.
처음 일하는 곳이라 나도 적응이 안 되는데 고객들을 대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곳은 백화점 다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기대하고 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실수하면 어떻게 하죠?”
이제는 꽤 경험이 쌓인 하연이였지만 그래도 무언가 불안한 지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너무 걱정하지마. 그냥 평소에 하던 것처럼 하면 돼. 그리고 나도 같이 있잖아.”
백화점의 오픈 멤버는 나와 한승이 그리고 하연이 들어가기로 했다. 푸드코트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직원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아서 일단은 여기에 설거지 하는 알바 두 명만 쓰기로 했다.
이하연은 주문 확인과 세팅을 하고 내가 오랜만에 돈카츠를 튀기기로 했는데 최근 몇 달은 주방에 잘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앞치마가 조금 어색한 기분도 들었다.
“힘드시면 말씀하세요. 바꿔드릴게요.”
위생모를 쓰고 주문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뒤에서 준비를 하고 있던 한승이가 말했다.
한승이는 오늘 우동과 소바를 담당하기로 했는데 왠지 여유가 있어 보였다. 하긴 그동안 상무본점에 있으면서 월 매출 1억 원 이상을 감당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오더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의 여유랄까? 처음 로이스에서 데리고 올 때보다 많이 성장한 모습이었다.
“나, 아직 안 죽었거든? 너나 힘들다고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마라.”
한승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띠리링하는 소리와 함께 주문프린터에서 용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첫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알로하 정식 하나, 어묵우동 하나.”
***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백화점도 그렇지만 아울렛도 월요일이 제일 한가하다. 그래도 오픈빨이라는 것이 있으니 나름 높게 잡아서 매출 200만 원을 예상하였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엄청 많은 주문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고기에 빵가루를 묻히고 또 묻혔는데 이렇게 바쁜 것은 진짜 오랜만인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푸드코트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거리를 두고 앉아야 했지만 그래도 다를 한 자리씩 자리를 차지해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김치우동 나왔습니다.”
한승이가 카운터로 우동을 전달 해주자 하연이가 준비한 상에 우동을 놓은 다음 고객님을 호출하였다.
며칠 전부터 동선을 연습하기는 했지만 처음 하는 시스템이어서 초반에는 잠깐 애를 먹었다.
하지만 짬을 무시할 수는 없는지 다들 적응을 하는 모습이었다.
‘이러다가 밥도 못 먹는 거 아니야?’
오후 2시.
본래라면 고객들이 점점 줄어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들어오는 주문의 속도는 줄어들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다들 정신 없이 일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매장 뒷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어! 신 사장님.”
화정점의 신상원. 그가 찾아왔다.
올해 1월 1일부터 나는 그에게 화정점을 넘겼다. 그 뒤로는 사장님이라고 불러주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다들 바쁘시네요. 이것 드시고 하세요.”
그의 손에는 커피가 들려있었는데 안 그래도 튀김기에서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매장은 어떻게 하시고 이곳에 오셨어요?”
“점심에 영업하고 왔습니다. 저희도 최근에 직원 하나 뽑았습니다. 오후에는 와이프랑 둘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여기 어떤지 좀 보려고 왔어요.”
그에게 화정점을 넘긴 이후에는 운영에 관해서는 크게 터치하지 않았다.
습관이 남아서 그런지 매출은 꾸준히 나에게 보내주었는데 부부가 둘이서 하기에는 힘든 수준이었다.
직원을 뽑아야 될 것 같다고 생각은 했는데 역시나 충원을 한 모양이다.
“결산은 해보셨어요?”
“네, 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번 달에 돈 많이 벌었습니다.”
매출도 높고 이곳에 들어오는 신상원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하긴 방학기간이기도 했고 코로나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에 잘 가지 않는다.
그 덕에 동성이 형님은 가게를 접게 되었지만 화정점은 반대로 매출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주변이 모두 아파트 단지였기 때문에 배달 주문이 많이 들어왔고 그동안 지속적으로 맘카페등에 광고를 한 것이 소문이 퍼지면서 고정 고객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거 다행이네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아, 최근에 가게로 찾아오셔서 가맹점 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이 있으셨는데 연락처 알려 드려도 되죠?”
“네, 당연하죠.”
사실 신상원에게 바로 가게를 넘길 필요는 없었다. 매달 천만 원 이상 수입을 나에게 벌어다 주고 있었고 계약 기간도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너튜브 영상을 보고 깨닫는 것이 있었다.
프랜차이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니라 점주들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국내 치킨 1등 브랜드인 규촌치킨.
매출도 1위이고, 매장 수도 1위인 이 치킨 브랜드는 폐업율도 치킨업계 1위이다. 폐업율로 따지면 벅스커피 다음일 것이다.
한 마디로 차리기만 하면 안 망하고 돈을 잘 벌 수 있는 프랜차이즈라는 이야기였다.
가게를 차리기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보다 매력적인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알로하를 그런 브랜드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신상원에게 가게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저렇게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바쁘시네. 저도 좀 도와드리겠습니다.”
신상원원은 앞치마 하나를 집어 들더니 허리 춤에 감고 일을 할 준비를 했다.
“에이, 괜찮습니다. 일하고 오셨는데 커피 드시면서 쉬고 계세요.”
나는 그를 말렸는데 그는 기어코 모자까지 쓰면서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어떤 것부터 커팅 할까요?”
모자까지 쓰고 제대로 일할 준비를 갖춘 그를 보니 웃음이 나왔는데 이렇게 서로 돕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인 것도 같았다.
“히레카츠 하나 썰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
오후 3시 30분이 되자.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카운터로 가서 매출을 확인했는데 벌써 200만 원을 넘기고 있었다. 저녁 매출만 조금 받쳐 준다면 오늘 300만 원을 넘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재료를 더 시켜야겠네.’
나름 준비한다고 했는데 이정도 페이스라면 준비한 물량이 빨리 떨어질 것 같았다. 나는 뉴월드푸드의 발주시스템으로 들어가 재료를 더 추가해서 주문했다.
1월 15일부터 뉴월드 푸드에 식자재 배송을 맡겼는데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물류비가 조금 비싼 것을 제외하고는 대기업이라 그런지 시스템도 사용하기 편했고 일처리도 깔끔했다.
만약 내가 직접 하려고 했으면 이러한 발주 프로그램도 개발해야 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부산은 잘 하고 있을까?’
비교적 인테리어 공사가 덜 들어가는 남천점은 1월 15일에 알로하의 간판을 달았다.
부산에 양혜원 역시 1월 25일에 오픈을 했는데 저번 주까지 그곳을 도와주고 왔다. 그녀는 광안리 해수욕장이 있는 광안동에 자리를 잡아서 광안점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자신이 일하던 해운대 쪽으로 자리를 잡고 싶어 했는데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방향을 틀었다.
가까운 곳에 남천점이랑 붙어 있으니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공사는 사돈어른이 큰 도움을 주었다.
사돈어른을 만나서 사정을 설명하고 인테리어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부산에 있는 지인들을 소개시켜 주셨다.
안 서방이 하는 것처럼 완전 저렴하게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시세보다는 많이 싸게 인테리어를 완료할 수 있었다.
지금도 창원에서 새롭게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창원점이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그곳은 설이 지나고 난 다음인 2월 15일 오픈 예정이었다.
창원점의 사장이 될 서기석은 양혜원과 다르게 욕심이 좀 있었는데 모든 비용을 자신이 대고 바로 가맹점으로 들어왔다.
1월에 견학을 하고 싶다고 해서 광주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상무본점과 화정점이 장사가 잘 되는 것을 보고 직접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 같았다.
매출을 확인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 양혜원 점장 >
“여보세요.”
“네, 사장님. 통화 가능하세요?”
“어, 말해.”
서기석과 다르게 양혜원은 일단 1년 동안은 직원으로 일을 해보기로 했다.
그녀에게는 점장의 지위를 주고 전권을 일임했는데 그녀가 일하는 것은 예전부터 봐 왔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본래 동기였지만 내가 나이는 더 많았다.
이번에 부산에 있으면서 제법 친해져서 나는 말을 편하게 하기로 했다.
“제가 지금 발주를 하려고 하는데요. 우동소스가 발주가 안 돼서요. 혹시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그래? 잠깐만 기다려봐.”
그녀의 전화에 발주프로그램을 확인했는데 진짜로 우동소스가 발주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 전화를 잠시 중지하고 핸드폰을 열어서 확인했다. 뉴월드푸드 담당자에게 연락이 와 있었는데 우동소스 물량 부족으로 잠시 코드를 막아놓는다는 연락이 와 있었다.
아침부터 매장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확인을 못했다.
“우동소스 잠깐 물량이 부족해서 코드 막아놨다고 한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거야?”
“목요일까지 쓸 거는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우동이 너무 많이 나가서 여유분 좀 가져가려고 했거든요. 그럼 코드 언제 열릴까요?”
“그거는 내가 확인하고 연락해줄게.”
“네, 알겠습니다.”
광안점도 오픈 이후에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인플루언서 모임을 통해서 부산 쪽에도 인맥을 넓히고 있었는데 몇몇 분들이 도움을 주기로 해서 홍보가 좀 되면 매출이 더 많이 오를 것 같았다.
‘물량 부족이면 이건 뉴월드푸드의 문제라기 보다는 두레푸드의 문제 인 것 같은데…’
매주 일정 분량의 물건을 만들어서 뉴월드푸드의 물류센터로 보내주기로 했는데 거기에 차질이 생긴 것 같았다.
겨울이라 그런지 우동소스의 사용량이 많았다. 오늘 이곳만 하더라도 꽤 많은 수의 우동이 팔렸다.
오픈이라 그래도 어느 정도 물량을 갖춰 놓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장사가 된다고 하면 금방 떨어질 것이다.
나는 바로 두레푸드의 김현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고 긴 통화음이 울렸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가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