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8 화
고개를 돌려보니 수아가 직원들과 같이 서 있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그녀도 프리미엄 식품관을 보려고 온 것 같았다.
“다음주부터 공사 들어간다고 해서 매장 둘러보고 있었어. 너는?”
“나도 그렇지.”
예전에 혼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직원들과 같이 돌아다니고 있는 그녀를 보니 그녀가 재벌이라는 것이 실감이 되었다.
“이따가 시간 돼?”
그녀를 만나자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에 관해서 이야기할 겸 그녀에게 물었다.
“시간? 당연히 되지. 같이 점심이나 먹을까?”
“그래, 너 한가해지면 연락해. 저번처럼 사무실로 갈게.”
“그래, 그럼 이따가 보자.”
나와 이야기를 나눈 후 수아가 직원들과 함께 사라지자 안 서방이 다가와 물었다.
“형님, 누구입니까? 상당히 높은 사람 같은데…”
“뉴월드 광주점 지점장이야.”
“네? 그런데 형님이랑 친구 같아 보이던데…”
“어, 친구 맞아.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나이가 동갑이어서 친구 하기로 했어.”
“그렇군요…혹시 여자친구는 아니시죠?”
“여자친구?”
“네, 저번에 은정이한테 들으니까 여자친구 있으시다고 하던데…”
하긴 은정이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했으니 안 서방도 언젠가는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면 가족들이 다 알고 있는 건가?’
저번에 아버지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씀드린 후 얼마 있지 않아서 엄마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엄마는 전화를 할 때면 궁금한 것이 있는지 이것 저것 물어보셨다.
특히 ‘언제 결혼할 것이냐?’는 질문에 좀 당황스러웠는데 적당히 둘러서 위기를 넘겼다. 단비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직 결혼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크리마스구나.’
단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곧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백화점은 알록달록한 트리도 있고 연말 분위기를 잔뜩 내고 있었다.
‘주말에는 단비 선물을 사야겠다.’
부산에서 찍은 사진들을 어제 저녁에 보여주었는데 단비는 같이 가지 못한 것을 많이 아쉬워했었다. 나도 그랬고 말이다.
그래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같이 지낼 수 있게 그녀가 호캉스를 하자고 했는데 나도 좋은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아침에 잠깐 연락을 했었는데 지금은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많이 바쁜 모양이다.
‘크리스마스 때 깜짝 놀라게 해줘야지.’
***
“휴, 이제 끝났다.”
단비는 점심시간 전에 일을 끝내려고 바쁘게 움직였다. 다행히 일은 끝마칠 수 있었는데 몸은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더욱 힘든 것은 오후에는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힘을 내서 일을 해야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놀기 위해서는 말이다.
“현 대리, 점심 먹으러 안 가?”
“네, 지금 가려고요.”
서규철 과장의 말에 그녀는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들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에 있는 직원식당으로 내려가는데 그가 갑자기 뜻밖의 말을 했다.
“아, 나 아까 지점장님 모시고 점포 돌고 있었거든 근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
평소 사소한 일도 크게 부풀리는 그였기 때문에 단비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다른 직원들은 아니었는지 서규철에 물었다.
“그게 뭔데요?”
“지금 지하에 들어오는 식품관 있잖아. 거기 브랜드 중 한 곳이 지점장님 지인 이시더라고.”
“예? 진짜요?”
“어, 내가 아까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잖아.”
자신이 맡은 일이었다. 지점장의 지인이 식품관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에 단비도 관심이 생겼다.
사람들이 관심을 주자 서규철 과장은 신이 났는지 이야기를 보탰다.
“근데 내가 딱 보면 분위기를 알잖아? 보통 사이는 아닌 것 같았어.”
“네? 왜요?”
“점포 돌고 있었는데 지점장님이 그 남자 발견하니까 웃으면서 조용히 다가가시더라고 장난치려고 말이야.”
“헐, 그건 좀 놀랍네요.”
“다들 지점장님이 웃거나 장난치는 거 본 적 있어?”
“혹시 남자였어요?”
“어, 이야기 하는 거 잠깐 들어보니까 둘이 친구 인 것 같던데…”
“그거 완전 특종이네요. 프리미엄 식품관에 지점장님 친구가 있다!”
“그래, 그러니까 혹시 다들 혹시나 거기 방문할 일 있으면 몸조심하라고 내가 알려주는 거야. 어때? 이 정도 완전 대박 정보지?”
“네, 그러네요. 그런데 그 브랜드가 어디에요?”
“나중에도 실수하면 안 되니까 잘 들어.”
서규철이 뜸을 들이면서 말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단비도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알로하라고 알지? 바로 거기야. 거기 남자 사장이 바로 지점장님 친구고.”
***
“이렇게 쌈을 싸서 먹어봐. 그럼 엄청 맛있어.”
점심은 수아가 좋아한다고 하는 샤브샤브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나에게 먹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는데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자주 오는 단골집 인 것 같았다.
“그래.”
나는 그녀가 설명한 것 처럼 쌈을 싸서 먹었는데 확실히 맛이 달랐다.
“맛있지?”
“오, 완전 맛있는데?”
“여기는 고기도 맛있는데 나중에 국물에 칼국수랑 죽 끓여주거든 그게 진짜 맛있어. 우리 그거까지 다 먹고 가자.”
그녀의 말에 나는 옆에 쌓여있는 고기를 쳐다보았다.
“다 먹을 수 있겠어?”
“당연하지.”
그녀는 웃으면서 국물에 고기를 더 집어 넣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웃음이 나왔다.
“그래, 많이 먹어. 내가 사줄게.”
“응, 매장 준비는 잘 되고 있어?”
“어, 잘 되고 있지. 안 그래도 너한테 물어 볼게 있었는데.”
“나한테?”
“어, 너희 계열사 중에 뉴월드푸드라고 있잖아. 혹시 거기 다른 브랜드 계약도 받나?”
“뉴월드 푸드? 물류 계약하려고?”
사실 오늘 그녀와 만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본래 생각을 좀 정리하고 그녀와 만날 생각이었는데 이왕 만난 김에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로이스가 국내 1등 돈카츠 프랜차이즈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이 프레쉬푸드라는 것을 예전에 배운 적이 있었다.
전국에 깔려있는 물류 유통망을 이용하여 본사와 지점간의 물품 배송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저번에 뚝불 사장님을 만난 이후로 이 점에 관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뉴월드 푸드가 생각이 났다.
부산과 계약했으니 그쪽에 우리가 사용하는 고기와 소스를 보내주어야 한다.
본래는 택배를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뉴월드의 물류망을 사용하면 조금 더 수월하게 배송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맞아. 부산에서 한 곳하고 계약 예정이거든 뉴월드가 가능하다고 하면 물류를 맡기려고…”
“오, 벌써 그 쪽에도 가맹점을 구한 거야?”
“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가능 할까?”
“내가 알기로 우리 회사 소속 브랜드가 아니어도 계약하는 걸로 알고 있어. 자세한 내용은 그쪽에 연락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담당자 찾아서 연락줄게.”
“진짜? 고마워.”
“뭐, 연결만 시켜주는 건데 근데 거기서 안 된다고 하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근데 우리 물류 사용해도 되겠어? 프랜차이즈는 물류로 돈 버는 거잖아.”
그녀의 말도 맞았다. 보통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수익을 내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물류비도 그중 하나이다.
구매팀에서 물건이나 재료를 대량으로 구입하고 그것을 각 지점에 공급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간 마진을 본사가 챙겨가는 것인데 주 수입원 중 하나이다.
근데 나는 이것을 뉴월드푸드에 맡기려는 계획이다.
이유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물류망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체인점이 전국으로 들어나면 전국에 배달을 해줄 수 있는 유통망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내가 로또에 당첨되었다고 하지만 그 정도까지 감당할 여력은 안 된다. 저번에 뚝불 사장님이 자신들의 물류를 사용하라고 해서 떠올린 것인데 이왕이면 대기업에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기는 한데…돈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아서.”
나의 말에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재벌인 그녀의 기준으로 나를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긴 그렇기는 하지. 돈이 좀 필요하면 투자자를 모집하는 건 어때?”
“투자자?”
“어, 지분을 좀 주고 투자금을 받으면 되잖아.”
아직 로또 여유자금이 많이 있었다. 이것을 사용해서 지점을 늘릴 생각이었기 때문에 투자금을 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음…나한테 투자할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있지. 아마 모집하면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좀 있을걸? 없으면 내가 해줄게.”
“네가?”
“어, 나도 여유자금이 좀 있거든 알로하 나중에 엄청 커질 것 같으니까 지금 미리 발 좀 담가 두려고 하는데 어때?”
한 번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투자금이라고 하지만 내 기준에 보기에 이것도 빚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나 혼자서 나의 신념 대로 경영이 가능하지만 투자금을 받으면 왠지 그것이 어려울 것 도 같았다.
“한 번 생각해 볼게.”
“그래, 장기적으로 보면 투자금 받는 것도 나쁜 것 아니야. 집도 대출 받아서 사잖아. 회사도 대출 받아서 키우는 거지.”
“그래, 그것도 일리가 있네.”
“일단은 내가 뉴월드푸드에는 전달해 놓을게. 이야기 들어보고 뭐가 더 좋을지 네가 생각해봐.”
“그래, 고맙다.”
***
수아와 점심을 먹고 헤어진 나는 화정점으로 이동해서 신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장사가 잘 돼서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나에게 넌지시 가게를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금 화정점에서 내가 순수하게 가져가는 순 매출이 1,500만 원이 넘었다.
만약에 자신이 직접 운영한다고 하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1,500만 원이 넘는 월급쟁이가 되는 것이다.
그는 처음에 자신이 직접 운영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 같았는데 안 그래도 그것과 관련해서 남현성과 정리를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화정점에서 잠깐 일을 도와준 후 집에 돌아왔는데 어느새 시간이 저녁이 되어버렸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익숙한 구두가 보였는데 단비가 집에 와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주방 쪽에 있는 식탁에서 그녀가 웃으면서 앉아 있었다.
“뭐야, 오늘 일 일찍 끝났네?”
“어, 오빠 보고 싶어서 그냥 대충 끝내고 왔어. 우리 며칠 못 봤잖아.”
“진짜? 그래도 되는 거야?”
“왜? 그럼 다시 회사로 갈까?”
“아니, 잘했어. 그런데 이건 뭐야?”
그녀의 앞에는 작은 냄비가 하나 있었는데 그녀가 뚜껑을 열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냄비 안에는 떡볶이가 있었는데 나를 위해서 준비해 놓은 것 같았다.
“짜잔, 오빠랑 같이 먹으려고 내가 만들어봤어.”
“우와, 맛있겠다.”
“그렇지? 얼른 손 씻고 와. 우리 같이 먹자.”
나는 손을 씻고 와서 식탁에 앉아 그녀가 만든 떡볶이를 먹었다. 그녀가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는데 나는 칭찬을 해주었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다. 만들어서 팔아도 되겠는데?”
“진짜? 맛 없는데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지?”
“어, 아니야. 진짜 맛있어.”
빈말이 아니었다. 진짜 맛있었다. 서로 일이 바쁘기 때문에 만나면 주로 외식을 하거나 배달을 해먹었다. 하지만 가끔씩 그녀가 해주는 요리는 진짜 맛이 있었다.
“그럼 다행이네. 아, 아까 오빠 백화점 왔었어?”
“어, 어떻게 알았어?”
“다 아는 수가 있지. 그래서 나 궁금한 게 있는데…오빠 지점장님이랑 무슨 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