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7 화
“으아!”
잠에서 일어난 나는 이불을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오후에 광주로 다시 돌아왔다. 긴 시간 운전을 해서 그런지 저녁을 먹고 바로 뻗어 버렸는데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창문을 열자 환하게 햇살이 비추고 있는 강이 보였는데 절로 마음이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집이 편해.’
호텔이 멋있고 음식도 맛있었지만 그래도 집보다 편하지는 않았다. 간단하게 빵과 커피를 준비한 나는 오늘 할 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가게를 가야겠지?’
며칠 동안 가게를 비워두었다. 다들 잘하고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백화점에 가야겠다.’
설계도가 완성되었다는 이야기는 안 서방에게 들었다.
그래서 오후에 뉴월드 백화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설계도를 보면서 설명을 해 준다고 했는데 나도 그에게 할 말이 있어서 그러자고 했다.
***
“어서 오세요. 사장님!”
“어, 소미야. 안녕. 네가 오픈이구나.”
류소미. 남시환과 함께 이번에 직원으로 뽑은 아이다.
예전에 로이스에 있을 때부터 같이 일했고 여기로 데려온 후 알바를 쭉 했었는데 이번에 직원으로 정식 채용했다.
“네, 사장님은 부산에 잘 다녀오셨어요?”
“어, 잘 다녀왔어.”
“나도 부산 가고 싶다. 해운대가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어떠셨어요?”
“좋았어. 해운대 보이는 호텔로 잡았는데 야경도 예쁘더라.”
“진짜요? 완전 좋았겠다.”
“너도 다음에 시환이랑 가라. 내가 휴가 맞춰줄게.”
류소미는 남시환과 커플이었다. 본래 두 사람은 로이스에 있을 때부터 썸을 타고 있었고 우리 가게로 올 때 쯤 사귀기 시작했다.
저번 회식 때 소미는 시환이 자기를 더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반대인 것 같았다.
“시환이가 멀리 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그녀가 우울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일은 어때? 할만해?”
“네, 하연이 언니한테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그래, 나중에 하연이 백화점으로 가면 선영이랑 네가 여기 맡아야 하니까. 지금 많이 배워 둬.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도 물어보고.”
“네~”
뉴월드 백화점 오픈 멤버로는 하연과 한승이가 들어가기로 저번 회식 때 결정 되었다.
가장 메인인 두 사람이 본점에 있어야 하나 백화점으로 가야 하나 고민을 좀 했는데 오픈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 사람이 가기로 했다.
이곳에는 실장님과 선영이 그리고 직원으로 경력은 짧지만 알바로 오랫동안 일한 소미, 시환이가 있으니 잘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직원을 더 뽑긴 해야겠다.’
두 명을 늘렸지만 상무본점의 매출이 1억을 넘겼다.
항상 바쁘게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직원이 최소 6명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두 명이 빠져나가니 다시 채울 필요가 있었다.
주방에도 들어가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가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돈가스!”
나는 소리에 놀라서 쳐다보았는데 형제 김밥의 동성이 형님이 서 있었다.
“어, 형님.”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네, 가능합니다.”
“그럼 우리 가게로 가자.”
***
나는 형님을 따라서 형제 김밥으로 갔는데 오랜만에 오는 기분이 들었다. 하긴 실제로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기도 했다.
저번에 형님이 도와준 이후로 일이 바빠져서 그렇게 대화를 나눌 일이 없었다.
가게로 와서 테이블에 앉았는데 형님이 맞은 편에 앉더니 말씀하셨다.
“우리 이번 달 까지만 하고 가게 접기로 했어.”
“네?”
좀 놀라운 이야기였다. 예전보다 장사가 덜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상황이 안 좋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데까지는 해보려고 했는데 이제 한계가 온 것 같아.”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가 휴교를 했다.
등교를 해도 전체 인원의 절반이나 1/3만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원래 김밥과 같은 분식집은 아이들이 많이 와야 하는데 그것이 가장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폐점하고 뭐 하시게요?”
“나는 규원 축산으로 가기로 했어.”
규원축산. 우리가게에 고기를 남품 해주고 있는 업체다. 형님이 소개해준 곳이기도 했는데 원래 이 일을 하셨다고 하니 그 쪽으로 가서 일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잘됐네요.”
혹시나 폐점하고 다른 일을 하면 형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접점이 있으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인데…부탁이 하나 있어서 보자고 했어.”
“부탁이요?”
“어, 동준이 이 녀석 좀 데리고 있어주면 안 될까?”
“동준이요?”
“저번에도 말했는데 이 녀석이 방황해서 이 가게 만들었거든 근데 혹시 가게 접고 혼자 일하면 또 그럴까 봐 걱정이 돼서 말이야. 동생이 데리고 있으면서 일 좀 가르쳐 줘.”
그동안 같이 일했지만 혼자 동생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걱정이 된 모양이다.
“아, 나는 괜찮다니까. 이제 정신 차렸어.”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동준이가 주방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돈가스 장사 잘 된다고 부러워했었잖아. 이번 기회에 가게 운영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배우면 좋잖아.”
나는 형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방금 직원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준이가 하고 싶다면 일을 시켜볼 생각은 있었다. 중요한 건 그의 의지였다.
“사실 저희가 곧 뉴월드 백화점 입점을 합니다. 한승이가 그쪽으로 가기로 해서 여기 자리가 비는데 동준아, 너 일할 마음 있어?”
내가 말하자 동준이도 방금 전까지 괜찮다고 이야기 했던 그도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나는 괜히 형이 너한테 부담줄까봐 그러지.”
“아니야, 나는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아.”
“진짜?”
괜찮다는 나의 말에 동준이는 관심을 보였다.
동준이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가게로 와서 설렁설렁 일 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점을 분명히 강조하고 싶었다.
“지금 주방 총괄은 실장님이 하고 있거든 그 분 눈 밖에 나가면 나도 너를 자를 수 밖에 없어. 그러니까 열심히 해야 돼.”
“여기서 깐깐한 형이랑도 일 했는데 그 정도야 눈치있게 잘하지. 그럼 나 일 해보고 싶어.”
“진짜? 잘 할 수 있겠어?”
“어, 나 거기서 열심히 배울테니까. 나중에 알로하 가맹점 하나 내어주라.”
“가맹점?”
“어, 나도 내 가게 오픈해서 너처럼 포르쉐 타고 다니고 싶다.”
나는 녀석의 말에 웃었다. 저번에 지하주차장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는데 나를 보고 부러워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봐봐, 아직 정신 못 차렸다니까?”
형님은 별로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래도 열심히 하려는 동기가 있으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 그럼 여기 문 닫으면 우리 가게로 출근하는 것으로 하자.”
“진짜?”
“어, 대신에 조건이 있어.”
“조건? 무슨 조건?”
“가게에서 일할 때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를 것. 지금처럼 가게에서 반말하고 그러면 안 돼.”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
가게로 돌아온 나는 주방도 살펴보았는데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워낙 그동안 체계를 잘 잡아 놨고 이제는 다들 익숙해진 덕분인지 잘 해주고 있었다.
동준이에 대한 이야기를 조형우에게 했는데 그는 자신이 잘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아, 실장님, 다음에 저랑 부산 한 번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부산?”
“네, 신규로 가맹점 한 곳 오픈 하기로 했거든요. 아직 계약 전인데 계약하고 인테리어 마무리 되면 오픈 전에 메뉴 교육 한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광택과 가맹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크게 바꿀 부분은 없었다. 간판과 내부에 알로하를 알리는 메뉴판, 배너 정도만 바꾸면 바로 영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가맹으로 바로 시작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에 따른 계약 사항은 남현성과 따로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같이 가야지. 부산…옛날 생각이 나네.”
“가보신 적 있으세요?”
“예전에 일본에 처음 갈 때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갔거든 그때 얼마나 긴장 했는지 몰라.”
“아, 그러셨군요.”
“처음에는 후쿠오카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도쿄로 넘어갔지.”
“형님도 대단하시네요. 그때는 일본말 하나도 못 하셨을 거 아니에요.”
“그랬지, 처음에는 한인 식당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정식 집으로 옮겼는데 거기 사장님이 한국드라마를 좋아했거든 그래서 나는 일본말 배우고 사장님은 나한테 한국말 배우고 하면서 적응했었지.”
“형님도 진짜 고생 많이 하셨네요.”
“많이 했지. 근데 지나고 보니까 다 추억인 것 같아.”
“여기서도 고생하시는데…제가 가게 좀 자주 와서 도와드려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에이, 괜찮아. 직원은 직원의 일이 있고 사장은 사장의 일이 있는 거지. 사장은 월급만 잘 주면 돼.”
“네, 제가 올 연말에는 보너스도 좀 챙겨드리겠습니다.”
“오, 그거 듣기 좋은 소리네.”
***
“설계도는 마음에 드세요? 동선 제가 기존 매장들 생각해서 일하기 편하게 짜봤는데…”
“어, 잘 했네. 이렇게 만들면 될 것 같아.”
공사와 관계된 부분에서는 안 서방이 백화점 관계자와 상의해서 진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크게 신경쓸 부분이 없었다.
그래도 최종적으로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에게 설명을 들었는데 일단 구조는 마음에 들었다.
“그럼 이쪽 라인은 전부 매장이 들어오는 거네?”
“네, 지금 계획으로는 1월부터 공사에 들어간다고 하네요.”
“그래? 오픈 예정일자가 언제 인지 나왔어?”
“아직 정확하지는 않은데 설날이 2월 12일이라 2월 초에는 오픈을 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렇구나.”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와 명절은 매출에 많은 영향을 주는 날이었다. 최대한 그 기간을 피해서 공사를 진행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촉박한 것도 같았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뭐에요?”
“아, 이번에 가맹점 계약을 하나 했고 앞으로도 가맹점을 계속 받을 생각이야. 상황에 따라서 인테리어를 좀 해야할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안 서방이 계속 맡아줄 수 있나 궁금해서 말이야.”
“그래요?”
“어, 어떻게 가능할까?”
“가맹점 어디 생각하시는데요?”
“부산.”
만약에 양혜원 점장이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면 이것은 신규 오픈을 해야 한다. 아직 연락은 오지 않았지만 나는 미리 가능한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부산이요?”
“어, 좀 멀지?”
“네, 저희는 주로 광주, 전남에서 작업을 했는데 부산은 솔직히 너무 머네요.”
“그래? 힘들까?”
“제가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랑 이야기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사돈어른?”
“네, 이게 저희는 설계 인테리어만 하고 작업은 기술자들이 하는데 광주 전남은 제가 아는 라인이 있어서 괜찮은데 부산은 새로 뚫어야 하니까 아버지 도움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내가 사돈어른께 직접 말씀드릴게. 안 서방이 자리 좀 만들어줘.”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안 서방과 공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나의 등을 두드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돌아봤는데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어, 수아야.”
“여기서 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