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 화
“우와, 정훈 씨 차도 바꾸셨어요?”
카페를 나온 나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저녁에 술을 먹을 생각이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왔다고 했는데 내가 같이 이동하자고 제안했다.
“네, 최근에 바꿨습니다.”
“저, 이런 차 처음 타봐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기대감이 느껴졌다. 내가 차를 타자 그녀도 차 문을 열고 안에 앉았는데 내부를 살펴보면서 신기해 하고 있었다.
“와, 안에도 너무 예쁘네요. 이거 이름이 뭐에요?”
“포르쉐 파나메라입니다.”
“저번에 친구들한테 들어본 것 같아요. 이거 많이 비싸죠?”
“3억 정도에 구매 했습니다.”
“3억이요?”
내가 대략적인 금액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저는 한 1억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절대로 못 사겠네요.”
“점장님도 가게 잘 되시면 금방 구입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네, 제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제 가시죠. 여기와 가까운 곳이라 금방 갈거에요. 예전에 오셨던 곳이라 금방 가실 수 있을 거에요.”
예전에 왔었다는 이야기에 나는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사실 나는 이번 부산행이 초행길이 아니었다. 로이스에 입사하고 얼마되지 않아서 워크샵이 부산에서 열린적이 있었는데 사실상 직원들 단합대회였다.
바닷가에 있는 팬션 같은 곳이었는데 영화 촬영도 했던 곳이라 그런지 운치가 정말 좋았다.
그때 꽤 많은 술을 마셨는데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먹어서 그런지 술이 바로 깨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오늘 또 거기서 모이기로 한 모양이다.
“그러면 이미 고기랑 다 사신 거 아니에요? 제가 사드릴 수가 없겠네요?”
나는 식당에서 모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팬션이라고 하면 이미 준비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정훈 씨는 다음에 맛있는 거 사주시면 되죠.”
“네, 알겠습니다.”
다음을 이야기 하는 그녀의 말투로 봤을 때 가게를 오픈하는 것에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 온 첫 번째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
< 보름달 >
팬션의 이름치고는 좀 이상하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여기 야외에서 술을 먹으면 바다도 보고 달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12월, 야외에서 밥을 먹기에는 상당히 무리인 날씨였다.
다행히 이 팬션이 좋은 점은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게 바비큐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나와 양혜원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 잔 씩 하고 있었는지 분위기가 좋았다.
“나 왔어.”
“안녕하세요.”
“점장님, 오셨어요!”
양혜원 점장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인사를 했는데 다들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총 다섯 명이었는데 대부분 아는 얼굴들이었다.
“점장님도 어서 오세요. 아, 이제 점장님이 아니네요.”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십시오. 김정훈입니다.”
“네, 정훈 씨.”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한 남자는 로이스 센텀시티의 점장으로 이는 조우영이었는데 그 역시 나와 동기였다.
그런데 양혜원 점장처럼 연락을 자주하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친한 편은 아니었다.
그와 인사를 나눈 후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를 했는데 막상 인사를 나누고 나니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 되었다.
“자자, 분위기가 이렇게 어색할 때는 술이 최고죠. 다들 한 잔씩 마시자고.”
양혜원도 어색함을 느꼈는지 술병을 들면서 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밥과 술을 먹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바로 달리다니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분위기에는 오히려 이게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자, 그럼 짠 할까요?”
****
몇 잔의 술이 돌아가자.
분위기는 사뭇 부드러워졌다. 직원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가 다들 그렇겠지만 예전에 만났을 때 기억이나 일하면서 힘들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진짜 최근에 업무량 미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나는 지금 솔직히 이직 알아보고 있어. 워라벨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휴일이 없는 삶은 진짜 끔찍해.”
“코로나 때문에 장사도 안 돼서 죽겠는데 이것 저것 신경 쓰이는 것이 많네요.”
일 떄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은 양혜원 점장 뿐이 아니었는지 다들 한 마디씩 하면서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자영업자의 좋은점?
장사가 안 되면 스트레스 받겠지만 잘 된다고 생각하면 나는 이렇게 좋은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직원들만 잘 구성해 놓으면 알아서 일을 잘 해주고 돈도 차곡차곡 들어온다. 스트레스 주는 상사도 없으니 나름 괜찮은 일이다.
실제로 SNS 모임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다들 돈을 잘 벌고 있어서 그런지 삶에 여유가 있었다.
나 역시 출장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가게를 비워두고 부산까지 올 수 있었고 말이다.
그때 조우영 점장이 나에게 물었다.
“퇴사 하시고 가게 차리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장사는 잘 되세요?”
“네, 잘 되고 있습니다.”
드디어 가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말을 하려고 했는데 나보다 양혜원 점장이 먼저 나섰다.
“사실 정훈 씨가 부산에 오신 것 나 때문이야. 나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발언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진짜로 하시게요?”
“어, 결심했어. 그동안 몇 번 생각했었는데 술 마시고 스트레스 푸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 같아. 도저히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그녀의 말에 나는 공감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만 회사가 좋아서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회사를 다닌다.
당연히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일 때문에라도 인간관계 때문에라도 말이다.
예전에 군대가 힘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내가 마음에 안 들면 같이 안 놀면 되지만 군대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선임은 물론 요즘에는 폐급인 후임들까지 꽤 많은 시간을 같이 있어야 한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가 좋은 사람만 있을 수는 없다. 분명히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한다.
그런데 참는 것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자신이 정한 기준을 넘어섰다고 생각했을 때 사람은 퇴사를 결심한다. 군대에서는 불가능하지만 회사는 내 손으로 떠날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그녀 역시 그런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럼 뭐하시게요? 진짜로 가게 하시려고요?”
“어, 오늘 그것 때문에 정훈 씨랑 이야기 나눠 봤는데 상당히 괜찮은 것 같아서 너희도 이야기 들어보라고 이렇게 모시고 왔어.”
“그래요? 저희도 알려주세요.”
그녀의 말에 몇몇 점장들이 관심을 보였는데 나는 그들에게 준비해온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었다.
내일도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몇 개를 더 준비를 했는데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점장들은 내가 건네 준 포트폴리오를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로 관심이 이었는지 생각보다 자세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각자 궁금한 것들을 나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게 나중에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꼭 인수를 안 해도 되는 거에요?”
“네, 그렇죠.”
“이게 어떻게 보면 직원같이 일을 하는 거잖아요. 제가 중간에 그만두고 싶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만두시면 됩니다. 대신 한 달 정도의 유예기간을 주셔서 저희가 다른 직원을 구할 수 있게만 해주세요.”
“나중에 저희가 점포를 인수하게 되면 가맹비는 어떻게 되는 거죠?”
“보시면 인수 결정일이 2년 후라고 나와 있는데 2년 동안 가게를 위해서 고생해주셨으니까 그 이후 2년 동안은 면제해 드릴 생각입니다.”
“아, 인수 결정일이 2년이면 너무 긴 것 같은데 장사가 잘 돼서 빨리 인수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죠?”
“저희가 2년으로 잡은 이유는 가게를 오픈하는데 들어간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에 더 빠르게 인수하고 싶다고 한다면 저희가 들어간 투자금을 상환하시면 바로 인수할 수 있도록 해드릴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기존에 다른 프랜차이즈랑 방식이 좀 다른 것 같은데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매장을 빨리 늘리는 것과 전국적으로 동일한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그래도 나름 요식업에 짬이 있으신 분들이니 잘 관리해주실 것이라고 믿고 이런 제안을 드리는 겁니다.”
생각보다 많은 질문들이 들어왔는데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경영방식에 대해서 그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시면 들어가는 돈이 상당히 많을 것 같은데…다 감당하실 수 있으실지?”
“그러니까요. 점장님. 올해 퇴사하시고 가게 오픈하지 않으셨어요? 그동안 많이 모았어도 한계가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아버님이 지역 유지? 원래 좀 사셨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번에는 가게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가졌는데 사람의 호기심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 그런 것 아닙니다. 회사 다니면서 주식을 좀 했는데 돈을 좀 벌 수 있었습니다. 여기 계신분들 가게 오픈할 정도의 투자금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와, 그렇셨군요. 부러워요.”
“하긴 요즘 주식, 코인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들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주변에 있을 줄은 몰랐네요.”
“얼마나 버셨어요?”
“그건 비밀입니다. 너무 많이 물어보셔서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참았네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어느 정도 질문이 끝난 것 같자.
나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보다 점장님들의 반응이 좋아서 나도 기분이 좋았는데 다시 바비큐장으로 들어가려다가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근데 이거 너무 우리에게 조건이 좋은 것 같은데?”
“좋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
“아니, 솔직히 김정훈 점장 별로 좋지 않게 퇴사했잖아. 강훈 본부장에게 찍힌 거는 모르는 사람이 없고 말이야.”
“아, 그래서 퇴사 한 거 였어요?”
“몰랐구나. 나는 왠지 우리 스카우트해서 로이스에 복수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수도 있잖아.”
목소리를 들어보니 동기였던 조우영인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동기라서 잘 아는데 별로 일 잘하는 스타일 같지는 않아서 믿음이 안가네.”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바로 들어가서 한 마디 해주고 싶었는데 나보다 양혜원이 먼저 나섰다.
“내가 전에 말했지, 너는 남 이야기 하는 것 좀 고쳐야 한다니까.”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그냥 다들 고민하는 것 같으니까 결정에 도움을 좀 주려고 그런거지.”
“너 그냥 김정훈 점장이 퇴사하고 잘 나가는 것 같으니까 부러워서 그러는 거 아니야?”
“내가? 부러워 한다고? 나 부산 사나이 조우영이야. 나는 진짜 걱정이 돼서 말하는 거라고.”
조우영은 아니라는 듯 벌쩍 뛰면서 이야기 했는데 아까는 뒷담화에 조금 화가 났었지만 지금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 그래 할만하지.’
동기였고 예전에는 자신이 더 잘나간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의 아래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충분히 뱀심이 생길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뒷담화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 사람들은 꼭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찾는다.
가맹점을 한다고 해도 귀찮게 할 것이 분명했다.
나중에 그가 하고 싶다고 해도 이번에는 내가 거절할 생각이다.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굳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설득하면서 억지로 끌고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조우영, 당신은 저희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