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2 화
20년 12월 11일
드디어 리얼맛집탐방 돈카츠 최강전의 최종화가 방영되었다. 4주에 걸쳐서 방송이 진행되었는데 그동안 꾸준히 시청률이 올라서 마지막화에서는 리얼맛집탐방의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담당피디인 장민웅은 방송이 끝난 후 기뻐서 나에게 연락을 했는데 나도 축하를 해주었다.
마지막화에서는 우리 가게가 1등을 했다는 내용이 공개되었는데 덕분에 블로그나 SNS에 한 동안 우리 가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올라왔다.
부모님과 고모들은 물론 친구들까지 그 소식을 들었는지 다들 한 번씩 돌아가면서 연락이 왔다.
또 방송의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했는데 서울에 있는 다른 방송국에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가지 맛집 프로그램들에서 출연할 생각이 없냐고 연락이 왔는데 어디에 출연을 해야 할지 골라야 될 정도였다.
“여보세요.”
[ 네, 형님 접니다. ]
“어, 그래. 안 서방 무슨일이야?”
[ 방금, 뉴월드 쪽에서 설계도 받았는데 일단 이거 대로 내부 인테리어 설계하도록 하겠습니다. ]
나는 뉴월드 백화점에 들어갈 3호점의 인테리어도 안 서방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제는 우리 가게의 스타일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공사가 편했다.
“그래, 부탁 좀 할게. 아기는 잘 크고 있지?”
[ 네, 좋은 거 많이 사주신 덕분에 잘 크고 있습니다. ]
예전에도 말했지만 아이들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이어서 그런지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피가 섞여서 그런지 조카는 다른 것 같았다.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산모에게 좋다는 음식이나 아기 장난감들을 시간 날 때마다 인터넷으로 보내주고 있었는데 잘 먹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다행이네. 예정일이 언제라고 했지?”
[ 내년 4월입니다. ]
벌써 12월이니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배 좀 많이 불렀겠다.”
[ 조금 나오기는 했는데 그렇게 많이는 안 나왔어요. ]
“그래, 안 서방이 아기 신경 쓰고 공사도 하려면 많이 바쁘겠어.”
[ 형님일인데 열심히 도와야죠. 아, 내일부터 부산 다녀 오신다고 하셨죠? ]
“어, 부산에서 매장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서 가는데 간 김에 며칠 좀 쉬었다가 오려고…”
부산에 있는 로이스의 양혜원 점장.
저번에 그녀와 잠깐 통화를 한 이후 몇 번 연락을 하였는데 그녀는 퇴사할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그녀도 나온 후에 창업을 하고 싶어했는데 알로하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나도 그녀가 오픈을 해준다고 하면 믿고 맡길 수가 있을 것 같아서 일종의 사업설명회 느낌으로 부산에 한 번 가기로 했다.
또 2월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몸과 정신이 많이 피곤했는데 부산에 간 김에 며칠 쉬고 올 생각이었다.
[ 그럼 갔다 오시면 보실 수 있게 인테리어 설계도 마무리 해 놓을 게요. ]
“그래, 항상 고마워.”
“네, 들어가십시오.”
안 서방과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단비에게 온 연락을 볼 수 있었다.
< 오빠, 미안해 ㅜㅜ 나는 도저히 시간 안 될 것 같아. 우리는 봐서 크리스마스 때 놀러가자. >
원래 부산 여행 겸 출장을 단비와 같이 가고 싶었다. 그녀도 같이 가고 싶어서 휴가를 쓴다고 했는데 어려워진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프리미엄 식품관 자체가 처음에 그녀가 기획한 프로젝트였다. 기존에 있는 업체들을 마무리도 해야 하고 새로운 브랜드들에 대한 정리도 해야 한다.
그녀의 인생에 제일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 괜찮아, 다음에는 꼭 같이가자. >
****
다음날 나는 광주 톨게이트를 나와서 부산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한번 밟아볼까?’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왠지 달리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매일 시내 주행을 계속 했기 때문에 시원하게 달려본 적이 별로 없었다.
저번에 은기와 담양을 갈 때 조금 속도를 내긴 했지만 전혀 성에 차지 않았다.
좋은 차를 타는 이유가 안정감도 있겠지만 이 녀석 포르쉐 파나메라 터보S다.
터보라는 말이 붙은 것처럼 스피드에 강점이 있는 놈이었다. 그런 놈을 출퇴근용으로 타고 다녔으니 엔진이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SPORT.
나는 자동차의 모드를 변경하고 엑셀을 잠깐 밟자마자 차가 앞으로 확 나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평상시와 다른 느낌에 겁이 살짝 났는데 여기는 고속도로였다. 빠르게 달리라고 만든 도로이니 나는 서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시속 100km 제로백이 4초 밖에 안 걸리는 녀석이어서 그런지 빠르게 속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그냥 빠른 것이 아니라 안정감도 있었다.
달릴수록 차가 바닥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는데 코너링도 엄청 편안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비싼 차를 사는 구나.’
사람은 자기가 보고 경험한 것만큼 생각하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직장에 다닐 때 비싼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돈지랄이라는 생각을 많이했다.
물론 부러운 마음은 있었어도 가성비를 생각하면 기름을 땅에 뿌리고 다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좋은 차를 타고 다니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다들 자기 능력이 되니까 타고 다니는 거지.’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눈 앞에 휴게소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네.’
아침부터 준비를 해서 출발을 했다. 벌써 시간이 12시가 넘었는데 휴게소를 보니까 배가 고팠다.
밥도 먹고 마실 음료수를 살 겸 나는 휴게소로 방향을 틀었다. 차를 주차하고 내렸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마 차 때문인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부담스러웠겠지만 방송에 출연을 하면서 낯짝이 좀 두꺼워진 나였다.
나는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 먹을만한 메뉴들을 살펴보았는데 역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돈가스 였다.
‘휴게소 돈가스 맛있지.’
돈가스 가게에서 오래 일해서 질릴 만도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돈가스를 엄청 좋아한다. 만약 싫어했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못 했을 것이다.
비록 휴게소에서 주는 돈가스는 냉동돈가스로 저렴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나름 이런 것들이 주는 매력이 있었다.
나는 키오스크로 돈가스를 주문하고 영수증을 받은 다음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코로나 때문인지 휴게소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자리마다 유리도 된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빨리 코로나가 끝나야 할 텐데…’
처음에는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가 이제는 장기화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코로나에 익숙해졌고 지속되는 영업제한 덕분에 자영업자들의 피해는 커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피해가 없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방문을 해야 돈을 버는 업종들은 피해가 갈수록 누적되고 있어서 그 상황이 많이 심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매장 홍보를 하기 위해서 부산에 가다니 나는 진짜 운이 좋구나.’
다들 어려운 시국이었다. 그런데 알로하는 잘 되고 있다. 그냥 잘 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승승장구였다.
감사한 일이었다.
‘로또 당첨된 이후로 인생이 편해진 것 같아.’
로또 당첨 때문일까? 마음이 편해져서 일까?
인생이 180도로 변했다. 30억이 넘는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쉽게 도전할 수 있었고 덕분에 알로하가 커질 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낯익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아, 저번에 돈카츠 맛있는 거 먹었더니 그 뒤로는 다른 가게는 맛이 없는 거 같아.”
“그래? 무슨 돈카츠인데?”
“알로하라고 광주 상무지구에 있는 돈카츠인데 진짜 맛있더라.”
“아, 나도 SNS에서 들어본 것 같아.”
나와 같이 휴게소 돈가스를 주문하고 먹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우리 가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동안 밖에서 밥을 먹은 종종 있었는데 이렇게 우리 가게 손님들을 만난 적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가게가 알려진 것이겠지.’
두 사람은 가게에 대해서 칭찬을 했는데 바로 뒤에서 듣고 있으니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또 저 사람들의 기대에 부흥하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 전국에서 알로하가 알려지도록 더 열심히 하자.’
****
“길이 복잡하기는 하네.”
로이스에 근무할 때 서울에서 점장회의를 가끔씩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점장들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안면을 트는 경우가 많았고 회의가 끝나면 서로 술도 먹고 했었기 때문에 친해질 수도 있었다.
가끔씩 부산에서 온 점장님들이 운전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때는 공감하지 못했다.
광주도 운전이 험악하다면 험악하기로 유명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와서 느낄 수 있었다.
도로 자체가 엄청 헷갈리게 만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운전하기가 엄청 어려웠다. 특히 초행길이라 더 헷갈렸는데 다행인 점은 내 주변으로 차가 가까이 잘 안 온다는 것이다.
비싼 차를 끌어서 좋은 점은 도로를 넓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네비게이션에 의지하면서 목적지로 향했는데 점심 때 광주에서 출발했는데 오후 4시가 되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 뉴월드 백화점 센텀시티 >
양혜원 점장은 내일 만나기로 했다. 나는 그 전에 일단 백화점에 들려서 쇼핑을 좀 하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입을 옷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저번에 발표를 할 때도 생각하기는 했는데 이제는 한 브랜드의 대표였고 전국적으로 지점을 늘리려면 남들에게 보여지는 일도 많았다.
이제는 사업가인 것이다.
그 전에는 트레이닝이나 청바지 같은 편안 차림으로 돌아다녀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좀 꾸밀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광주에 있는 뉴월드 백화점에서 구매해도 됐었지만 이왕 부산에 놀러 왔고 또 센텀시티점은 전국적으로 엄청 크다고 알려진 백화점이었다.
브랜드의 종류도 광주보다 훨씬 많았는데 그래서 여기서 옷을 좀 살 생각이었다.
차를 주차하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는데 크다고 이야기만 들었지 그대로 광주랑 어느 정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엄청 넓었다.
나는 안내표를 보면서 내가 갈 곳을 찾아보았다.
‘일단은 정장이 있어야 겠지.’
일반 옷도 살 예정이었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정장이었다. 나는 인터넷 검색으로 꽤 비싸다고 알려진 브랜드의 정장을 사기 위해 들어갔다.
이왕 사기로 마음 먹은 거 오늘은 제대로 플렉스 할 생각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매장으로 들어서자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달려왔다. 그의 반응은 마치 오랜만에 주인을 보는 강아지 같았는데 이해가 되었다.
광주 뉴월드 백화점도 코로나로 인하여 매출이 많이 떨어졌다. 이곳이라고 다를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오늘은 주말이라 고객들이 좀 있는 것 같았지만 딱 봐도 매장에 사람이 없었다. 내가 오랜만에 구경하러 온 고객님인 것 같았다.
“정장을 몇 벌 사려고 하는데요.”
“아, 그러시군요. 혹시 특별한 일이 있어서 구매하시는 걸까요?”
“특별한 일이요?”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사정이 있으시면 거기에 맞춰서 어울리는 옷 추천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발생했을 때 입을 옷도 필요했다. 예전에 로이스에 입사했을 때 산 적이 있었는데 벌써 5년도 넘어서 유행이 많이 지난 옷들이었다.
“아, 그것도 필요하겠네요. 다 보여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