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1 화
“다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으아, 힘들어 죽겠어요.”
방송 등 여러 가지 시너지 효과로 한 달 매출이 1억이 넘는다. 우리 가게의 평균 돈카츠 가격은 만 원 정도였는데 1억 원 어치를 팔려면 직원과 알바들이 하루 종일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내가 고생했다는 말에 한승이가 바로 죽는 소리를 내었는데 나는 그를 위해 말했다.
“오늘 회식 있는 거 알지? 다들 저번에 그 소고기 집으로 가 있어.”
최근에 돈카츠 최강자전에서 1등으로 뽑혔다는 것도 확인했고 거기에 백화점 입점 계획도 성공하였다.
모든 일일 술술 잘 풀리고 있었는데 그동안 고생한 직원들을 위해서 오늘은 제대로 쏠 예정이었다.
“사장님은 같이 안 가세요?”
“아, 나는 일이 있어서 잠깐 어디 좀 들렸다가 갈게. 먼저 먹고 있어.”
“진짜요? 빨리 안 오시면 저희가 가게에 있는 고기 다 먹어 버릴 거에요.”
“그래, 다 먹고 있어라.”
그렇게 직원들을 먼저 보낸 나는 근처에 있는 선술집으로 향했다. 최지연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녀는 나에게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아마, 내가 배달비를 폭로한 것 때문이겠지.’
그녀가 강훈의 허락을 받고 했을 수도 있고 안 받고 그런 일을 벌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되었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것에 대한 원망을 하는 것이라면 별로 만나기 싫었다. 만날 이유도 없었고 말이야.
‘오빠 원망 안 할게. 그냥 예전처럼 소주 한 잔 하고 싶어서 그래.’
차분히 가라 앉은 그녀의 말투.
평상시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만나러 이곳에 왔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벌써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최지연이 보였다.
내가 테이블로 가서 자리에 앉자 그녀가 말했다.
“왔어?”
“어,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야.”
나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 없이 잔에 소주를 따른 후 들이켰다. 아무런 말 없이 술을 몇 잔을 더 먹었는데 결국 나는 그녀의 술병을 뺐었다.
“그만 먹어.”
술병을 빼앗긴 그녀의 손은 허공에 멍하니 떠 있었는데 나를 잠시 쳐다 보더니 손을 턱에 가져가 기대면서 말했다.
“나 오늘 로이스에서 짤렸다.”
그녀의 말에 조금은 놀랐다.
문제가 있었으니 강훈이 무슨 조치를 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평상시 강훈과의 관계가 있으니 감봉 정도로 예상했다. 그런데 바로 퇴사를 시켜버릴 줄은 몰랐다.
“그래? 축하한다.”
그녀는 기분이 안 좋아 보였지만 어떻게 보면 그녀가 나의 퇴사를 부추긴 것도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나는 그녀가 퇴사를 당했다는 이야기에 기분이 좋았다.
약간은 냉정한 나의 말에 그녀가 웃었다.
“예전에 기억나? 진짜 힘든 날은 퇴근하고 둘이서 이렇게 술 마셨잖아.”
그녀는 빈 술잔을 돌리면서 예전의 추억으로 빠진 것 같았다.
그녀의 말처럼 술 많이 마셨다. 지금도 잘 나가지만 예전에 한참 로이스라는 브랜드가 인기를 끌 때는 밥먹을 시간도 없었다.
최지연과 나는 서로 번갈아가면서 서서 밥을 먹을 정도로 바빴는데 그렇게 하루 일을 끝내고 나면 몸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서 단 둘이 술을 많이 면서 하루의 피로를 털어냈다.
나는 들고 있던 내 앞에 있는 잔에 술을 따르고 그녀에게도 한 잔 따라 주었다.
“그래, 힘들었지.”
“그때는 서로 눈만 봐도 뭐가 필요한 지 딱 알았잖아.”
파트너.
일을 하다 보면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 있다. 내가 무언가 필요한 순간 도와주고 가져다주고 손과 발이 잘 맡는 사람 말이다.
최지연과 나는 그런 관계였었다.
그래서 처음에 그녀가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충격이 더 컸던 것 같았다.
“그랬지.”
“그런데 왜 이렇게 틀어졌을까…”
그녀는 혼잣말로 조용히 이야기했는데 나는 ‘너 때문이잖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니다 그 사건이 없었으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최지연은 갑질 고객에게 무릎을 꿇은 사건 이후로 달라졌다. 자존감에 커다란 상처를 입어서 일까? 제대로 흑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 있잖아. 너 무릎 꿇은 거 그 일이 없었으면 우리가 지금처럼 싸우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나는 예전일을 떠올리면서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크’
그때 그녀가 말했다.
“사실 그때 그 사람한테는 그렇게 화 안 났어. 우리가 워낙 진상들을 많이 만났잖아. 그 정도야 익숙하지.”
뜻밖의 말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그녀가 그 일 때문에 흑화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그때 왜 그랬던거야.”
나의 말에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대답했다.
“나…사실…오빠 좋아했었어.”
“뭐?”
충격적인 말이었다. 최지연이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니…한 번도 그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놀라운 말을 내뱉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놀라는 거 보니까 진짜 몰랐나 보네. 나는 오빠가 모르는 척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 진짜 몰랐어. 언제부터 그랬던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계속 같이 붙어서 일하니까 정도 생기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좋아했던 것 같아.”
“그런데 나한테 왜 그런 거야.”
“미웠거든…그 무릎 꿇은 날.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나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든 거야. 그때 누군가 날 대신해서 화를 내줬으면 좋겠다. 이게 부당한 일이라고 따졌으면 좋겠다…이런 생각을 했어.”
“그게 나였구나.”
“어, 사실 나 혼자서 하는 매장이었으면 무릎 절대 안 꿇었을 거야. 근데 오빠한테 피해갈까 봐. 오빠 귀찮은 일 생길까 봐. 그랬던 건데…”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울음을 참는 것 같았다.
그녀가 왜 나를 미워 했는지 이해는 되었다. 나를 좋아했고 나를 위해서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 컴플레인이 발생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의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고객의 갑질은 자주 발생하는 일이었고 그러한 감정 소모에 익숙해져 있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나의 그런 반응이 그녀를 서운하게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변한 거니? 최지연.’
그녀는 울먹이던 눈물을 참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며칠 생각했어. 오빠에 대한 마음도 접고 성공만 생각하기로 말이야. 꼭 성공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었어. 더이상 갑질 안 당하게 말이야.”
나는 말없이 그녀에게 술을 한 잔 더 따라 주었다. 그녀는 바로 마시더니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퇴사 당하니까 조금은 편한 기분도 들어. 솔직히 그동안 오빠한테 그러고 나서 마음이 계속 불편했었거든. 그래서 오늘 만나자고 했어. 사과하려고, 오빠 자리 뺐어서 미안해…”
나에게 사과를 하는 그녀는 밝게 웃었는데 예전에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처음에 하연이를 보고 그녀를 떠올렸다. 상냥하고 친절하고 웃는 모습 말이다.
몇년 간 보지 못했던 모습인데 이렇게 둘 다 로이스를 그만 두고 나서야 웃을 수 있다니 조금은 슬픈 생각도 들었다.
“그래, 우리 같이 술 한 잔 마시고 다 잊어 버리자.”
“이해해 줘서 고마워.”
솔직히 예전처럼 친한 관계고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미 워낙 서로 다른 길로 많이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 원망은 안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녀와 술 잔을 기울였다.
짠.
“크, 로이스 그만두고 앞으로 뭐할 거야?”
“제주도에 가려고…”
“제주도?”
“어, 예전부터 노래를 불렀잖아. 오빠는 하와이, 나는 제주도.”
그랬다. 내가 하와이로 여행가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면 그녀는 제주도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다.
“그랬었지. 그래서 제주도에서 아예 살려고?”
“아니, 한 달 살이가 가능한 곳이 있다고 해서 일단 거기서 지내면서 머리 좀 시키려고 몇 년 동안 일을 해서 그런지 휴식이 좀 필요한 것 같아.”
“그래, 잘 생각했다.”
“솔직히 이제가면 다신 오빠 못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었어.”
“그래.”
“오빠는 백화점 입점 성공한 거지? 축하해. 앞으로 장사 더 잘 되겠다.”
“어, 더 잘되게 만들어야지.”
“이번에는 나처럼 되지 않게 직원들도 잘 해주고…”
“안 그래도 원래 오늘이 회식날이었다. 너 때문에 일부러 시간 내서 잠깐 들린 거야.”
“그래? 고맙네. 나 이제 할 이야기 다 했어. 오빠 일 있으면 가봐도 돼.”
“너는?”
“나는 여기서 혼술 좀 하다가 가지 뭐. 손님도 별로 없고…분위기 나쁘지 않은데?”
같이 조금 더 마셔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그녀도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 지연아. 잘 살고 힘들면 가끔 찾아와. 예전처럼 소주한 잔 정도는 같이 마셔줄게.”
“어, 고마워.”
****
“우와, 사장님 오셨다!”
“사장님! 사장님!”
지연이와 헤어진 이후로 약간은 착잡한 걸음으로 회식자리로 왔다. 그런데 벌써부터 다들 술을 많이 마신 건지 분위기가 엄청 좋았고 나를 반겨 주었다.
“다들 왜 이래?”
“사장님은 당연히 상석에 이쪽으로 앉으세요.”
나름 조용한 편이던 선영이도 술이 좀 들어갔는지 목소리 톤이 많이 높아져서 나를 끌고와 자리에 앉혔다.
내가 자리에 앉자 이번에는 조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래 젊은 사람들끼리 재밌게 놀으라고 회식 자리에 잘 참석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내가 말해서 특별히 왔다.
그는 소주병과 맥주병을 들고 오더니 내 앞에서 소맥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내가 소맥도 잘 만드는 건 몰랐지? 먹으면 맛이 완전 다를 거야.”
“술도 맛이 다르나요?”
“이번에 내 실력 못 봤어? 내가 만들면 달라. 내 칼질에 다들 쓰러지는 거 봤지? 한승아 너가 이야기 좀 해줘라.”
“네, 실장님. 칼 솜씨 잘 봤죠. 당근에 팍팍 썰리던데요.”
“아이, 당근 말고 사람들 말이야. 내 칼솜씨에 다들 기절했잖아.”
다들 하하호호 엄청 좋은 분위기였다. 최근에 가게에 좋은 일만 가득하니 일하는 직원들도 당연히 기분이 좋을 것이다.
“다들 한 잔씩 따랐나?”
조형우는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쏘맥을 한 잔씩 따라주었는데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나에게 말했다.
“자자, 그래도 이제 사장님이 오셨으니까? 그래도 좋은 말씀 한 번 듣고 다들 건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나는 조형우의 권유에 잔을 들었다. 그때 나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시환과 류소미.
로이스에서 그만 둔 이후로 우리 가게에서 알바로 일하고 있던 두 사람은 선영이처럼 최근의 나의 권유로 직원이 되었다.
직원이 더 필요했었는데 다른 곳에서 구하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뽑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물어보았는데 두 사람다 흔쾌히 받아 주었다.
“제가 말하기 전에 우리 신입사원들 각오를 먼저 들어보고 싶은데 어떤 가요?”
“오오오, 좋아요!”
내 말에 남시환과 류소미는 자리에서 쭈뼛쭈볏 일어나 말했다.
“앞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할게요.”
“와와, 다들 박수!”
어색해 하는 두 사람을 위해 한승이가 박수를 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는데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직원들의 얼굴을 하나씩 쳐다보았는데 지연이를 만나고 와서일까? 약간은 기분이 이상했다.
‘이 사람들과는 끝까지 함께 가고 싶다.’
나는 그런 나의 마음을 담아서 잔을 내려 놓고 고개를 숙여 직원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