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0 화
“차별해서 받고 있다고요?”
나의 폭로에 정수아가 다시 되물었다.
“네, 왼쪽에 있는 것은 현재 로이스에서 매장에 방문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메뉴판이고 오른 쪽에 있는 것은 배달의 가족이랑 저기요에 나와 있는 메뉴 가격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격 차이가 2천 원 정도 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로이스 상무점에서 배달이 생각보다 잘 되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분석할 때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리뷰 이벤트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한영축산을 통해서 배달비를 안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코로나 이후로 배달의 수요가 늘어나서 음식점도 좋아진 것 같지만 오히려 실질적으로 배달을 해주는 라이더가 부족해지면서 라이더들의 인건비가 많이 상승하였다.
인건비 상승은 고스란히 배달비의 상승으로 이어졌고 배달비를 받지 않고서는 운영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배달비를 0원으로 책정하였다. 이것을 매꿀만한 무언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한영축산처럼 물건을 납품하는 하청업체들에게 고통을 분담시키는 것으로 무마하는 줄 알았으나 자세히 살펴본 결과 매장에서 먹는 음식 가격과 배달로 주문했을 때 음식 가격에 차이를 두었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 배달로 주문하는 사람들은 배달로만 주문을 한다.
그래서 관심 있게 살펴보지 않으면 이러한 가격 차이를 알지 못한다.
그래도 회피할 요령으로 가게 설명란 제일 마지막에 배달 주문시 매장에서 먹는 것과 가격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적어 놓았지만 이런 것 까지 확인하면서 배달 주문하는 사람은 없다.
배달비 0원으로 설정해놓고 실제로는 음식값에 배달비를 추가해서 받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나는 배달을 하는 로이스의 지점들을 일일이 살펴보았는데 유독 광주에 있는 매장들만 이런 편법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매출이 떨어지자 아마 최지연이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편법이었다. 최지연은 불어오는 비바람을 피할 용도로 이런 수작을 부린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편법을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다. 들키면 분명히 문제가 되는 내용이다. 배달비 포함이라고 하지만 남들보다 비싼값을 주고 음식을 먹은 사람들의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이 사실을 안 고객들은 속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점을 강조하였다.
“저는 장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서 안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강단 있는 목소리로 나의 소신을 말했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런데 단 돈 몇천 원 때문에 고객들을 속이고 장사하고 있고 혹시나 나중에 이 사실이 알려진다고 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뉴월드백화점의 매출에도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내 말에 정수아를 비롯한 다른 심사위원들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사실 이 문제로 서울의 몇몇 가게에서는 논란이 된 적 있었는데 대체로 이해한다는 분위기보다는 가게가 너무 한다는 고객들의 의견이 대다수였다.
그때 정수아의 입이 열렸다.
“확실히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이네요. 혹시 이 문제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정수아는 강훈을 쳐다보면서 말했는데 강훈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일부 지점에서 독단적으로 일을 벌인 것 같은데 해당 사항은 즉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뉴월드 백화점 프리미엄 식품관에서는 배달을 하지 않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의 말에 정수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는데 나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기 위해 움직였다.
“제가 알기로 이번 프리미엄 식품관은 코로나로 인하여 떨어지고 있는 백화점의 매출을 살리기 위해 새롭게 시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뉴월드가 시도하는 기존과 다른 방식, 새로운 전략에 발 맞추어 나가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마인드 역시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끼어들자 강훈이 노려보았는데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이렇게 큰일이 있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로이스의 반응을 보니 앞으로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또 그렇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대신 저희 알로하는 아실지 모르겠지만 대외적인 이미지가 나쁘지 않습니다. 부디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셔서 뉴월드에서 좋은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만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발표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는데 반대편에 앉아 있는 강훈의 똥씹은 듯한 표정이 보였다.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는데 그때 서규철 과장이 마이크를 붙잡고 말했다.
“이상 발표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브랜드 관계자분들께서는 이만 돌아가셔도 되시고 심사 결과는 나오는 대로 개별적으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고생해서 준비했던 시식회와 발표가 끝이 났다.
회의장을 나오자 강훈이 나에게 뭐라고 소리쳤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하고 일행들과 주차장으로 왔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네, 사장님, 근데 발표를 엄청 잘하시던데요?”
“그래? 괜찮았어?”
“네, 솔직히 걱정했었는데 엄청 유창하게 말 잘하셨어요. 제가 심사위원이었으면 알로하 뽑았을 것 같아요.”
“그래, 심사위원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심사위원에 대한 생각을 하자 정수아가 떠올랐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녀의 번호를 알고 있지만 선뜻 연락하기가 그랬다.
그때 핸드폰의 전화가 울렸다.
< 정수아 >
수아의 전화였다. 나는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어, 정훈아. 많이 놀랐어? ]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는데 나는 나의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조금? 얼마 전에 나랑 친구 먹은 정수아 맞는 거지?”
[ 어, 맞아. 시간 되면 잠깐 올라올래? 커피 한잔 하자. ]
그녀는 나에게 만나자고 말을 했는데 나도 그녀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 만나자. 어디로 가면 돼?”
[ 여기 9층에 지점장실로 와. ]
그녀와 전화를 끊은 나는 조형우 실장님과 한승이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가게로 가실거죠?”
“어, 그래야지. 왜, 약속있어?”
“네, 갑자기 약속이 생겼네요. 오늘 두 분 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고생했어. 가게는 걱정하지 말고 일 봐.”
“네, 이것 때문에 고생 많이 했는데 조만간 소고기 회식 쏘겠습니다.”
****
일행과 헤어진 나는 수아가 말한 9층으로 올라갔다. 지점장실이라고 적힌 방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녀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어서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괜찮지?”
“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그녀에게 물었는데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일부러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야. 사실 저번에 가게에서 돈카츠 사간 이후로 지원한 건 알았는데 말할 타이밍이 좀 그랬어.”
“저번에 밥 먹을 때 마트라고 했잖아.”
“물건 팔면 그게 마트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아까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던 여자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게 어떻게 똑같아. 그러니까 뉴월드 그룹 막내 딸이 맞는 거지?”
“어, 맞아.”
그녀의 입을 통해서 직접 사실을 들었는데 갑자기 부담스러워졌다. 나도 로또당첨자로 일반인 답지 않게 돈을 맣이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재벌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좀 부담스러운데…”
나는 솔직한 심정을 말했는데 수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달라지는 건 없어. 그냥 동네 친구라고 생각해.”
그녀는 커피를 마시면서 연신 미소를 지었는데 아마 지금 상황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웃는 그녀의 얼굴이 보니 나도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동네 친구. 좋네.”
“근데 내가 발표를 많이 들어봤는데 너 엄청 잘하더라?”
“그래? 연습을 좀 많이 했지.”
“연습으로 가능한 정도가 아니던데? PPT 보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설득 당했어.”
“그래? 그럼 우리 가게 뽑아주는 거야?”
“그거는 아직 비밀.”
그녀는 또 장난 스럽게 말했는데 이쯤 되니 나도 약이 좀 올랐다. 그런데 또 아까 무표정으로 앉아 있었던 모습을 생각하니 도대체 어떤 것이 그녀의 진짜 모습인 지 의문점이 들었다.
“근데 아까는 좀 어색했어. 왜 이렇게 무게 잡고 있던 거야?”
“아, 그거? 직원들 때문에 그렇지.”
“직원들?”
“어, 내가 그래도 명색이 재벌집 막내딸이고 지점장이잖아. 나이가 어린데 혹시 무시하는 사람들 있을 까봐 일부러 다른 사람들 만날 때는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고 있어.”
그녀는 말과 함께 다시 도도한 표정을 지었는데 은근 잘 어울리면서도 일부러 그랬다는 생각을 하니 나도 웃음이 나왔다.
“포커페이스?”
“어, 맞아. 요새는 직원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 같더라.”
“그래, 나도 그 이야기 들었어. 너 인줄은 몰랐는데 새로 온 지점장님 카리스마 넘치고 포커페이스라고 하더라.”
“응? 내 이야기 들었어? 누구한테?”
단비에게 지점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나서 말했는데 말을 하고 나서도 아차 싶었다.
프리미엄 식품관 관련해서 단비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알려져서는 안 될 것 같았고 혹시나 단비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싫었다.
“어, 여기 직원 중에 아는 사람이 있어.”
“그래? 누군데?”
“음…그건 나도 비밀.”
“아, 궁금하게 이러기야?”
“나중에 알려줄게.”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커피를 마셨는데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사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이 됐었다.
그런데 그녀는 며칠 전에 밥을 먹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조금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 돈 많은 재벌 친구 하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매장을 관리하면서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단비에게 깨톡이 왔다.
< 오빠, 축하해요. 프리미엄 식품관 돈카츠 매장으로 선정됐어요. >
아직 뉴월드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는데 단비가 먼저 확인하고 나에게 알려온 것이다.
솔직히 수아와 이야기를 했을 때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뽑히지 않았다면 그녀는 미안한 기색을 보였을 텐데 시종일관 밝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백화점에 오픈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올해 2월에 아울렛에서 근무하다가 퇴사를 당했다. 그런데 나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백화점에 입점하다니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행복인가? 오늘 회식하는 것이 좋겠지?’
좋은 일도 생겼으니 오늘은 직원들과 회식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 핸드폰으로 깨톡이 하나 더 왔다. 단비의 연락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의 연락이었다.
< 최지연 : 오빠, 오늘 저녁에 시간 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