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9 화
다시 백화점으로 간 우리는 회의실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는데 별로 반갑지 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강훈과 장용철 등 로이스의 참가자들이었다.
강훈은 나를 발견하고 잠시 머뭇거렸는데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안 타?”
나의 말에 강훈이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일행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출발하자 강훈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김정훈 점장, 출세를 많이 했네. 이런 곳에서 다 만나고 말이야.”
“이제 점장도 아닌데 아는 척 하지 말죠.”
“아, 그렇지. 쏘리쏘리. 그런데 싸가지 없는 건 여전하구나.”
“너도 재수 없는 건 여전하네.”
“그래, 이렇게 나와야 재미가 있지. 그래도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온 모양인데 원래 제일 높은 곳에서 떨어져야 속이 쓰린 법이지.”
“로이스도 곧 추락할 예정인데 속이 많이 쓰리겠네?”
“크크크, 재미있어.”
강훈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하고 있다 보니 엘리베이터는 8층에 도착했다. 강훈 먼저 밖으로 나가면서 나에게 말했다.
“발표 자신 없으면 그대로 내려가는 것도 괜찮고 내가 잘 말해줄게.”
“너나 잘하세요.”
강훈과 그의 일행이 모두 내려서 회의장으로 향하자 조형우와 한승이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강훈을 욕했다.
“와, 형한테 들어서 재수 없는 지는 알고 있었는데 완전 싸가지가 바가지인데요?”
“그러게, 나는 자네가 왜 싫어하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
두 사람은 나를 대신해서 화를 내주었는데 나는 예전에 로이스에 다닐 때 익숙하게 봤던 모습이어서 그렇게 많이 화나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직급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 오히려 좋았다.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가 이기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갈 겁니다.”
나와 일행은 강훈의 뒤를 따라서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회의장에는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었는데 아까 조리장에서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었던 서규철 과장이라는 사람이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알로하 관계자들이시죠? 이쪽으로 앉으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발표자료 가지고 오신 것 있으시면 저에게 먼저 보여주시겠어요? 제가 나오는 지 미리 확인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준비한 우리쪽 파일을 넘겨주었다.
‘휴, 막상 시작하려니까 긴장이 되네.’
최대한 편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그랬다. 하지만 곧 시작을 한다고 그러니 마음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잠시후 문이 열리면서 일련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이 심사위원인가?’
들어오는 포스가 다들 상당했는데 아마 최종 결정을 하는 심사위원들 같았다. 그때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왠지 낯이 익었다.
‘잠깐만, 저거 수아 아니야?’
얼마 전 친구를 먹은 정수아가 심사위원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같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뜻밖의 일에 놀랐는데 수아가 그냥 같이 들어온 정도가 아니라 가장 가운데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누가 봐도 수아가 상급자잖아…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도저히 상황파악을 할 수 없었는데 그때 수아와 눈이 마주쳤다. 수아는 반가운 듯 나에게 눈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그녀는 이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서규철 과장이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 브랜드 입점 경쟁의 마지막 심사를 맡아주실 분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왼쪽부터 저희 식품팀 맡고 계신 표주환 팀장님, 그리고 그리고 가운데 분은 저희 뉴월드 백화점 광주점을 총괄 책임 및 관리를 하고 계시는 정수아 지점장님…”
나는 서규철의 말을 곰곰이 들었는데 수아가 광주점의 지점장이라는 말에 충격을 맡았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 가지 퍼즐들이 하나씩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직원이 많았고, 아버지에게 마트를 물려받았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었다. 뉴월드 그룹 산하에는 아이마트라고 하는 커다란 대형마트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단비가 저번에 새로온 지점장님이 로열패밀라고 이야기 했는데 아마 그 사람이 정수아 인 것 같았다.
‘수아가 뉴월드 그룹 재벌 2세?’
처음에 그녀가 친구가 되자고 했을 때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네 친구 정도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엄청 부담스러워졌다.
하지만 이런 나의 고민과 상관없이 최종 발표는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혹시 발표를 먼저 하시고 싶은 브랜드가 있으십니까?”
서규철 과장의 말에 강훈이 손을 들었다.
“저희가 먼저 하겠습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나도 로이스보다 먼저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수아 때문에 흔들린 마음을 조금 가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네, 그럼 로이스에서 먼저 나오셔서 발표 준비하시고 시작하시면 되겠습니다.”
강훈은 앞으로 나섰는데 로이스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2 명이 단상으로 따라 올라가 이것 저것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긴 이런 준비를 강훈이 스스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보통 이런 발표까지는 직원들에게 시켰는데 직접 하려고 하다니 조금은 의외였다.
‘나를 신경쓰는 건가?’
처음에는 나를 견제하는 줄 알았는데 시종일관 가운데에 앉아 있는 정수아를 쳐다보면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니 제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수아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로이스에서는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동영상이었다.
강훈의 손짓에 직원이 동영상 하나를 재생했는데 로이스에 대한 홍보영상이었다. 확실히 여기서 기업 능력의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회사에 조직적으로 준비한 티가 났다. 직원 수가 200명이 넘고 곧 중견기업을 넘보는 로이스의 마케팅팀이 사활을 갈아서 준비했는데 영상은 화려함의 그 자체였다.
그렇게 영상의 재생의 끝나고 로이스는 자신들의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희 로이스는 2019년 소비자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돈가스 부분에 당당히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마디로 가장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돈가스 1위라는 말이죠. 그 말에 어울리게 현재 전국에 60개가 넘는 직영점을 가지고 있으면 많은 가맹 문의로 인해서 최근에는 가맹점을 10개 이상 늘렸습니다.”
‘가맹점을 늘렸다…’
이거는 내가 확인 못한 사실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로이스의 전 대표였던 전상욱 사장님은 맛과 퀄리티의 일관성을 위해서 직영점 운영을 강조했었다.
나도 빠르게 기업을 키우고 싶은 마음만 아니었다면 직영점으로 차근차근 점포를 늘렸을 것이다.
어쨌든 그 영향 때문인지 로이스는 직영점 위주로 운영하고 가맹은 잘 내어주지 않았는데 최근들어 가맹점을 늘렸다고 하는 것이 기업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강훈이 가맹점을 늘리는 방식을 선택한 것 같았다.
“거기에 지금 뉴월드 백화점 전국 지점에 15개 정도의 로이스 매장에 들어가 있는데 매출도 좋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관련된 자료들을 가지고 있는지 식품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어쩔 수 없이 우리 알로하가 밀리는 분야였다. 로이스는 그동안 뉴월드 백화점과 아이마트 지점 몇 군데에 입점해서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서울, 대전, 대구, 광주, 부산에 있는 프레쉬푸드의 물류센터에서 직접 식품과 자재를 납품받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 영업 운영이 가능합니다.”
규모의 차이.
대기업 프레쉬푸드의 자회사라고 할 수 있는 로이스였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어필할 수 있는 것은 다 어필하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몇 차례의 설명이 더 끝나고 강훈은 너희는 끝났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단상을 내려왔다.
다들 발표가 끝난 그를 보면서 박수를 쳤는데 나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로이스의 직원이었다는 사실이라던 지 우리 가게의 불안 요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이 넘어갔다.
‘그런 것 없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뭐 상관없었다. 이제 주사위는 굴려졌고 다음은 나의 차례였다. 나는 한차례 심호흡을 한 후 무대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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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알로하의 사장으로 있는 김정훈이라고 합니다. 최종 라운드까지 올라와서 너무 기쁜데 꼭 뉴월드 같이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발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발표 시작과 함께 PPT 화면을 틀었다.
동영상으로 화려하게 시작했던 로이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PPT였다. 하지만 선영이와 같이 밤을 새면서 만든 노력이 담긴 PPT 였다.
‘화려함보다는 내용으로 승부하는 거야.’
“먼저 이번 프로미엄 식품관의 처음 기획은 지역에 있는 맛집들을 백화점으로 가지고 들어와 맛집 거리를 조성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다시피 뉴월드 백화점은 광주 사람들에게 쇼핑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곳입니다. 저는 이런 곳에 들어오는 가게라면 당연히 광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빅데이터 분석 기업인 스플렁크에 의뢰하여 시식회에 참여한 업체들 중 어느 가게를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검색하는 지 조사를 했습니다.”
나는 일단 비싼 돈을 들여서 이 조사를 의뢰하였다. 알로하는 최근에 방송을 타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있었다.
검색으로도 다른 가게들에 전혀 밀리지 않을 것 같아서 조사를 했는데 역시나 나의 생각이 맞았다.
우리 가게는 최근에 다른 가게들을 제치고 포털사이트에서 압도적인 검색량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관련된 자료를 화면에 띄우자 사람들은 관심을 보였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로이스는 가맹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전국적으로는 저희보다 인기가 많이 있을 줄은 모르겠지만 광주, 전남에 한해서 브랜드 인지도는 저희에게 밀리고 있습니다.”
나의 설명에 강훈은 안 좋은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무시하고 다음 자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자료인데 저희 알로하는 최근에 광주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리얼맛집탐방 돈가스 최강전에 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1등을 차지했습니다.”
리얼맛집탐방 1위.
사실 이건 아직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우리가 1등이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장민웅 PD를 만나서 점수 공개를 부탁하였다.
처음에는 그도 알려줘도 되나 고민을 했는데 나의 충고 덕분에 점수 조작을 알아낼 수 있었다면서 시청자들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면 상관없겠다는 단비는 친구 강혜정의 설득에 우리가 1등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만약 1등이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사용할 수 없었겠지만 1등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대단했다.
난다 긴다고 하는 돈카츠 맛집들이 자웅을 겨루는 프로그램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 것은 어필이 되었는 지 심사위원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아직 마지막 한 발이 남았다.
“그리고 아까 로이스에서 안정적인 영업 운영이 가능하다고 이야기 했는데 제가 조사해본 결과 로이스는 심각한 리스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나의 로이스 언급이 강훈이 자리에서 나에게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강훈이 소리쳤지만 나는 무시하고 바로 다음 PPT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로이스의 매장 중 일부. 특히 광주에서 영업하는 매장이 배달로 주문 받는 금액과 현장에서 식사하는 금액을 차별해서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