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2 화
“여보세요.”
나는 갑작스럽게 걸려온 장민웅 PD의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 사장님.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
“네, PD님. 가능합니다. 무슨 일이세요?”
[ 불미스러운 사건이 좀 있어서 양해를 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
“불미스러운 사건이요?”
[ 네, 저희가 심사 테스트를 블라인드로 진행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네, 그러셨죠.”
[ 테스트에 문제가 좀 발생했습니다. ]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하는 PD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는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부정이 발생했나요?”
[ 네, 맞습니다. ]
부정.
혹시 해서 물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저번에 찾아온 여자 말고도 가게에 있으면서 테스터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몇 명 더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명의 사람을 더 만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을 돈으로 매수하면 쉽게 1등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불손한 마음 말이다.
아마 심사 테스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음식값에 하루 일당 정도만 받을 것이다.
순수하게 호기심에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르바이트 느낌으로 돈을 벌기 위해 참석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돈을 더 준다고 하면 넘어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1등을 하고 싶지 않았고 혹시나 걸렸을 때 가게가 가져가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희가 테스터들을 공고로 뽑았는데 참가하는 가게 중 한 곳이 테스터를 공고에 집어넣어 점수 조작을 했습니다. ]
“조작이요?”
기껏해야 심사하러 온 테스터들을 돈으로 유혹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공고에 사람들 지원하여 적극적으로 조작에 가담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은 놀랐다.
[ 네, 그래서 그리는 말씀인데 기존 6개 가게에서 조작에 가담한 한 군데를 제외하고 남은 5 개 가게가 승부를 가리는 것으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
당연한 이야기였다. 조작에 가담한 가게를 끼고 계속 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 그리고 이와 관련된 내용을 방송에서 공개할 생각입니다. ]
“공개까지 하시게요?”
아직 방송에 송출되기 전이니 이런 내용은 묻어서 뒤로 처리하고 방송에는 5개의 가게만 출연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공개하겠다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PD가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 네, 저는 이 컨텐츠를 돈가스 말고도 다른 메뉴로 계속해서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앞으로는 공고로 진행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확실하게 해둘 생각입니다. ]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다음에는 일반인을 안 뽑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심사위원을 돈으로 섭외할 수도 있었다.
애초에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또 좋은 점이 있었는데 바로 시청률이었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슈가 필요하다.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말이다.
비록 리얼맛집탐방이 지방방송국에서는 나름의 인기가 있는 방송이지만 전국적으로 따지면 시청률이 미비하다.
좋지 않은 일이지만 이 일이 알려지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는 높아질 것 같았다. PD가 노리고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말을 하는 그의 말투에서 사건을 키우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 네, 이제 곧 첫 방송이 진행될 건데 아무래도 기존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방송이 진행될 것 같아서 이렇게 먼저 연락을 드렸습니다. ]
첫 방송은 우리 가게가 나가기로 했었는데 그것에 변동이 생겨서 이렇게 직접 연락한 모양이었다.
“네, 이해합니다. 그런데 점수 조작을 한 가게가 어느 곳입니까?”
[ 아, 그걸 말씀 안 드렸군요. 무등산돈까스입니다. ]
****
전화를 끊고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웃고 있는 배병호의 얼굴이 보였다. 많이 신이 난 것 같은데 문득 아까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곧 가게에 큰일이 날 예정이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자신의 가게에 자신감이 넘쳐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인제 보니 점수를 조작해서 자신이 1등 할 줄 알고 있어서 한 말이었다.
‘부모님에게 가게를 잘 운영하는 법을 배워야지. 못된 짓을 배웠군.’
하긴 2세대로 넘어간 맛집 중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지 못하고 무너진 가게들도 많이 있었다.
‘여기 맛이 예전 같지 않은데?’
조금만 맛이 변해도 몇 년을 다닌 단골들은 놓치지 않는다. 몇 번은 괜찮겠지만,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동안 꾸준히 찾아왔던 고객들은 발걸음을 돌린다.
비록 무등산돈까스는 아직 맛을 잃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번 일로 인해서 신뢰를 잃을 것이다.
‘자기 집에 불난 것도 모르고 저러고 있다니…’
유초롱에게 관심을 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배병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비가 오는 줄 모르고 열심히 날갯짓을 하고 있는 나비 같았다.
나는 그에게 그냥 비가 아닌 태풍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방금 장민웅 PD에게 연락받았습니다. 심사위원 점수 조작에 무등산돈까스가 가담되었다고 하던데요?”
“그게…무슨…”
단도직입적인 나의 말에 배병호의 입이 떨렸다.
“발뺌하셔도 소용없을 겁니다. 이야기 들으니 이미 증인도 다 확보했다고 하던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당황한 배병호는 소리를 질렀다.
“저한테 소리칠 것이 아니라 빨리 사태 파악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너 잠깐만 기다려.”
내 말에 전화기를 챙겨서 밖으로 나가던 배병호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그대로 차를 타고 가버렸다.
“뭐야, 저렇게 가는 거야?”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박다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일행들에게 관련된 사건을 말했다.
사건의 내용을 들은 일행들은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헐, 대박 방송국이 어떤 놈들인데…겁도 없이 그런 일을 벌였을까?”
“아직 경험이 없고 세상 무서운 줄 몰라서 그렇겠죠.”
박다정의 물음에 남광준이 대답했다.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무등산돈까스는 유명하고 장사가 잘됐다. 아마 부족한 것이 없이 자랐을 것이다.
그를 생각하니 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강훈이었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한참 나를 괴롭히려고 노력하던 강훈이 최근에는 조금 조용했다.
‘하긴 이제는 본부장이니 여기에만 신경 쓸 시간이 없겠지.’
본부장으로 승진했으니 관리해야 할 부분이 늘었다. 거기에 코로나 때문에 전국적으로 매출이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광주에 신경을 덜 쓰게 되었을 것인데 아마 최지연에게 나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겼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자기 매장 지키기도 바쁘다. 꾸준히 매출이 오르고 있는 우리와는 다르게 로이스 상무점은 배달로 겨우 매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정훈씨가 말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배병호 씨는 저희 모임에서 빼야 하지 않을까요?”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가는 배병호를 차를 본 유초롱이 말했다. 평소에 그가 자주 그녀에게 집적거려서 그런지 그녀의 말에 날이 서 있었다.
“제 생각에도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사실이 확인되면 정식으로 모임에서 제외하겠습니다. 뭐, 그전에 알아서 탈퇴할 것 같기만요.”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PD가 어떤 식으로 편집할지 궁금해지는 군.’
****
11월 20일 오후 6시 드디어 기다리던 리얼맛집탐방 돈가스 최강자전이 방송되었다. 나는 집에서 차분히 방송을 봤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파격적이었다.
‘이건 거의 시사고발프로그램이잖아.’
장민웅 PD는 진짜로 작정을 했는지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공개하면서 무등산돈까스를 아주 파렴치한 가게로 만들어 놓았다.
무등산돈까스의 이미지 타격은 심각해 보였는데 방송 중 잠깐 살펴보니 벌써 배병호의 SNS에 찾아가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 여기가 주작가게 맞나요?
- 와, 여기 5년 전부터 단골이었는데 완전 실망이네요
- 요새 예전 사장님들 안 보이던데 다른 사람이 인수한 건가요?
- 이 사람은 그 전 사장님 아들이라고 하던데…가게는 성공했어도 자식교육은 실패하셨네…
- 에효, 어렸을 때 추억이 있는 곳이었는데 이렇게 사라지게 생겼네요.
‘이러다가 PD님 고소당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사실을 밝히는 일이지만 가게 경영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작정하고 덤빈다면 무등산돈까스가 프로그램을 고발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PD님이 그런 것까지 생각해서 일을 벌이셨겠지.’
나는 나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고소는 안 했을 것 같았다.
이미 조작으로 이미지를 많이 날려 먹었다. 당분간은 숨을 죽이면서 지낼 때였다. 여기다가 프로그램을 고소한다고까지 알려지면 제 얼굴에 침 뱉기나 다름없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자기가 잘못을 저질러 놓고 매출이 줄었다고 고소한다고 해도 이해해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록 이런 일이 발생했지만 조작된 점수표를 제외한 점수에서 무등산돈까스는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다른 5개의 브랜드가 기본적으로 무등산돈까스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죠. 다음 주 방송에서는 광주 돈까스의 명예를 살리기 위해서 더 좋은 점수를 받은 5개의 브랜드를 공개하겠습니다.”
방송 막바지에는 평가 점수를 어느 정도 공개했는데 조작에 가담한 무등산돈까스가 제일 맛이 없는 가게였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나머지 5개의 진짜 맛집끼리 대결을 하는 구도를 만들어 내었다.
‘편집을 진짜 잘했는데?’
대략적인 가게 실루엣도 보여주면서 기대감을 키웠는데 그렇게 방송이 종료되고 나는 인터넷에 프로그램을 검색해보았다.
‘혹시 부정적인 의견이 있는 건 아니지?’
처음부터 조작에 연루되었다. 나는 혹시나 프로그램에 안 좋은 여론이 형성되었을까 봐 걱정되었다.
- 와, 솔직히 예전에 무등산돈까스는 맛있었는데 거기보다 맛있는 곳이 다섯 군데 나 있다고?
- 돈카츠 맛집 많이 있지. 솔직히 무등산돈까스는 이름값이 전부인 가게임 실제로 가면 실망하는 사람들 많을걸?
- 저기 3번째 실루엣은 동명동 규카츠 아님? 거기 맛집인데
- 점수 보니까 조작한 무등산돈까스랑 1점 차이인 가게가 있던데 사실상 거기가 1등 아님?
- 1등은 나중에 공개하나 본데? 어디인지 궁금하다
1등이 어디인지는 나도 모른다.
“나중에 방송을 통해서 보세요.”
장민웅 PD가 거기까지는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방송을 통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었는데 많은 사람 역시 나처럼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SNS도 그렇고 실시간으로 프로그램 관련해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광주, 전남에서 나름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인터넷에 반응이 뜨거울지는 몰랐다.
그때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 방송 잘 봤어요. 저기 중 한 곳이 알로하 맞죠?>
최근에 만남을 가졌던 인플루언서 모임에 관련된 단체 톡방 알림이었다.
< 저도 팔로워들에게 꼭 시청하라고 태그 남겼어요. >
생각보다 반응이 핫해서 왜 그런 가 했더니 모임에서 SNS를 통해서 프로그램 홍보를 많이 해준 모양이었다.
< 감사합니다. 1등 하면 다음에 또 한 턱 쏘겠습니다. >
저번 모임에서 음식을 대접하느라 꽤 많은 돈을 지불 했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프로그램 태그와 나의 SNS도 알려주었는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나의 SNS를 찾아와 댓글을 남기고 있었다.
- 여기가 리얼맛집탐방 나온 곳 맞음?
- 맞는 것 같은데 지금 찾아보니까 제일 처음 나온 실루엣이 여기랑 비슷함
- 여기서 돈까츠 먹어봤는데 진짜 맛집임 상무지구 최강 돈까스
- 아;;;;여기 유명해지면 안 되는데 지금도 기다리면서 먹어야 한다고요!
- 저희 집이랑 가깝네요. 내일 바로 가겠습니다!
10만 명을 넘긴 이후로 정체기에 들어선 느낌이었는데 방송이 끝나고 살펴보니 순식간에 천 명 정도의 팔로워가 더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일은 엄청나게 바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