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8 화
혼밥.
혼자 밥을 먹는 것을 말하는데 요즘 들어서 많이 늘어나고 있는 식사의 형태였다. 대학가나 원룸촌 근처에서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곳 상무지구는 그렇지 않았다.
오피스 상권이었기 때문에 방문하는 고객의 대부분은 같은 직장 소속이거나 아니면 SNS와 블로그를 보고 찾아온 연인, 친구, 그리고 가족 단위 고객들이었다.
물론 간혹 일 때문에 점심시간을 놓친 직장인들이나 근처에 병원이나 관공서를 방문하고 혼자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의 눈에 혼자서 밥을 먹으러 온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이 눈에 띄었다.
가게에 들어온 그녀는 메뉴를 주문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무언가 생각나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움직이는 직원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보통 이럴 때 동종 업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서비스나 요식업에 근무하다 보면 다른 가게들은 어떤 식으로 일하고 있나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다른 가게를 가면 여기는 어떤 시스템으로 일하고 있나 관심 있게 쳐다보고 배울 점은 배웠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지켜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직원의 실수들도 눈에 더 잘 들어오는데 오죽했으면 불만 고객 중에서 절반은 동종 업계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인 만큼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강하게 항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저 사람이 동종 업계의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보다 테스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장님, 10번 테이블 주문 신경 써서 좀 해주세요.”
“10번? 체다모짜치즈 한 개…아는 사람이야?”
“아뇨, 왠지 맛 점검하러 온 블라인드 테스터 같아요.”
“그래?”
나는 바로 주방으로 가서 내 생각을 알렸다. 물론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나쁠 것은 없었다.
“네, 왠지 느낌이 그래요.”
“그래, 알았어.”
조금 시간이 지난 후 그녀의 테이블에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주문하신 체다모짜카츠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메뉴를 놓고 난 후 나는 카운터로 돌아왔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유심히 쳐다보았다.
물론 그녀가 내 시선을 느끼면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다른 일을 하는 척 연기를 하였다.
그리고 밥을 먹기 위해 준비를 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그녀가 테스터 일수도 있다는 내 생각에 확신을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오로지 메뉴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오랜 자취 생활로 식당에서 혼밥을 한 적이 많이 있다.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기는 하지만 혼자서 밥을 먹기에는 지루한 시간이다.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는다면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만, 단순히 입에 음식을 넣고 씹는 저작 활동만으로는 시간이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혼자서 밥을 먹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드라마나 예능 또는 너튜브를 본다. 요즘에는 웹툰이나 웹소설을 보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내가 테스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여자는 다른 행동 없이 오로지 메뉴에만 집중했다.
거기에 음식을 먹은 후 아까 꺼낸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는 모습을 보고서 나는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러면 너무 눈에 띄는 거 아니야?’
본래 블라인드 테스트라고 하면 가게 주인이 모르게 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저 여자의 행동은 너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일반인들이라 그런지 티가 난다.’
PD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일반인들이 진행한다고 했었다. 예전에 백화점에 있을 때 그 일만 하는 전문가들만 봐서 그런지 그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어설픈 모습이었는데 나는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구분해내고 좀 더 신경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필요하신 것 없으세요?”
나는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그녀는 갑자기 다가온 나를 경계하면서 메모지를 가렸다.
“아…네. 괜찮습니다.”
“저희 가게는 양배추, 밥, 장국, 반찬 다 리필 가능하시니까 드시고 부족하시면 더 말씀하세요.”
“네…”
잔뜩 경계하는 그녀에게 서비스 멘트를 날려준 후 다시 돌아왔는데 이하연이 옆으로 다가왔다.
“사장님, 저 여자가 테스터 맞아요?”
“어, 거의 90% 그런 것 같아.”
“어떻게 아셨어요?”
이하연은 나의 노하우를 궁금해했는데 한가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비법을 알려주었다.
내 말을 다 들은 하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녀는 여태까지 대부분 백화점이나 아울렛에 입점한 가게가 아닌 매장에서 일했었기 때문에 이런 경험이 부족했다.
“백화점이나 아울렛은 그런 점검이 많아서 힘들 것 같아요.”
힘들다는 것은 맞다. 대신 자리만 잘 잡으면 다른 매장 몇 개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돈을 더 벌 수도 있었다.
“지금 하는 것처럼 친절하게 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
예전에 처음 3호점을 생각할 때는 선영이와 선우를 직원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우가 일을 그만두고 백화점으로 입점하는 방향으로 결정하면서 하연이와 한승이를 보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처음에는 직접 관리하겠지만, 백화점은 서비스와 위생을 깐깐하게 확인하니까 하연이와 한승이가 메인을 맡아주어야 나도 신경을 좀 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많이 알려주세요.”
하연이에게 나의 숨은 노하우를 열심히 전수해주고 있을 때 식사를 다 마친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여자의 테이블을 쳐다보았는데 접시가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네, 맛있었어요.”
음식도 다 먹었고 그녀의 표정 역시 밝아 보였는데 맛있었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다행이네.’
****
“으…떨려…”
회의실로 향하는 단비는 긴장되었다. 오늘은 입점 의향서를 보낸 업체들의 1차 컨펌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빠 가게가 뽑혀야 할 텐데…”
사실상 오늘 하는 회의는 예선전이었다. 진짜로 본선에 나갈 가게를 뽑는 전초전 말이다. 서류를 통해서 본선에 올라갈 업체들을 선정할 계획인데 여기서 떨어진다면 아마 가게를 어필할 기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참여 업체가 81곳….이 가운데 20개…”
지원한 업체 중에서 푸드코트로 들어올 수 있는 가게는 20개 정도 뿐이었다. 확률로 따지면 1/4 정도로 높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메뉴별로 입점할 수 있는 가게는 한 개로 한정되어 있었다.
돈카츠로 한정하면 경쟁하는 업체는 여덟 군데나 되었다. 다른 메뉴들보다 경쟁이 치열했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서 4개의 업체가 서류상 탈락을 할 예정이다. 8개 중의 4개, 확률은 절반이었다.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만약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단비는 고민하지 않고 알로하를 뽑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선택권이 없었다. 오늘은 그냥 회의 진행과 회의가 끝난 후 테이블 정리를 위해서 참석할 뿐이었다.
‘제발, 오빠 가게 뽑히게 해주세요.’
단비는 한쪽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도했는데 자신이 처음 뉴월드 백화점 취업을 지원했을 때보다 더 떨렸다.
잠시 후 회의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회의실로 들어왔다. 각 부서 팀장들을 비롯해 지점장님까지 자리에 앉자 회의는 시작되었다.
단비의 직속 선배인 서규철 과장의 설명하에 회의가 진행되었는데 업체가 많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회의는 빠른 속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다음은 베이커리로 들어가겠습니다. 현재 지원한 입점 제안한 업체들은 송베이커리, 황궁제과, 비비베이커리, 또또식빵입니다.”
서규철은 PPT를 넘기면서 각 업체를 설명했는데 사람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소개한 브랜드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비비베이커리는 이미 샤롯백화점에 있는 브랜드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샤롯백화점은 뉴월드백화점과 더불어 백화점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벌 백화점이었다.
“거기 있는 브랜드를 굳이 우리가 여기서 알려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 생각은 어떠세요?”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새롭게 온 지점장 정수아.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본사에서 온 오너 가족이었다.
그것만 해도 무서운데 본사에서 온 칼잡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매출이 떨어지고 있는 뉴월드 백화점 광주점에 철퇴를 치기 위해 내려왔다고 해야 할까?
실제로 오자마자 여러 가지 파격적인 시도를 많이 하고 있는데 그녀가 최근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푸드코트였다.
괜히 그녀의 말을 거슬러서 좋을 것은 없었다.
“그럼 비비베이커리는 제외하세요.”
그녀의 말 한마디에 입점을 희망했던 업체 한 군데가 사라졌다. 단비는 실시간으로 탈락하는 가게들을 보고 있으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오늘 최소 절반의 업체가 떨어질 것이라고 서규철에게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고 있으니 긴장이 되었다.
‘역시 포커페이스.’
정수아는 지점 내에서 포커페이스로 알려졌었는데 그녀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지시를 내리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단비는 정수아를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에 막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우유부단한 부장이나 팀장들 때문에 답답한 적이 많았는데 정수아는 그런 것이 시원시원했었다.
오너 가족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말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다음은 돈까스입니다.”
‘드디어 왔다.’
회의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까? 많은 업체가 본선에 오르지 못하고 떨어진 그때 드디어 단비가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돈카츠는 가게가 좀 많네요?”
“네, 단일 메뉴로는 지원한 업체들이 가장 많습니다.”
“그렇군요. 계속하세요.”
정수아의 손짓에 서규철은 돈카츠 부문에 지원한 브랜드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몇 장이 지났을까? 드디어 기다리던 알로하가 나왔다.
단비는 반가운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는데 얼른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다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으로는 알 수 없었다.
관련된 브랜드 소개가 끝나고 각자 자신의 생각을 말하라고 했는데 식품팀 표주환 팀장이 손을 들어 말했다.
“알로하 같은 경우는 생긴 지 얼마 안돼서 지역 맛집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제외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표주환의 말에 단비는 눈을 치켜뜨고 노려보았다.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다. 대리로 진급시켜준 고마운 분이었다.
혹시 자신과 관련이 있으면 업체 선정에 문제가 될까 봐 알로하와의 연관성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배신할 줄은 몰랐다.
“그렇네요. 다른 곳에 비해서 경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아무래도 식품관을 푸드코트로 리뉴얼 하는 회의였다. 당연히 식품팀장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팀장들 역시 그의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는데 그때 정수아가 말했다.
“음식점의 경력과 전통은 맛으로 나타나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지금 맛집을 찾고 있는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