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7 화
“가게 소개 잘 해드리겠습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강혜정을 잠깐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가게를 잘 소개해 주겠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 마음이 고마웠다.
“괜찮습니다.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해 주십시오.”
그녀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나중에 이것을 가지고 말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있는 그대로 말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어차피 맛 평가는 제가 안 하니까 그 정도는 문제 없을 것 같아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잠깐 이야기 한 것이 빈말이 아니었는지 강혜정은 가게 입구에서부터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잠시만요. 이거 위생 등급제 표시 같은데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위생이나 안전이 걱정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이렇게 나라에서 위생은 매우우수라고 표시를 해주었으니 이 가게에 오시는 시청자 여러분들은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많은 맛집들 돌아다녔는데 이런 거 가지고 있는 가게들 흔하지 않거든요.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 지금 바로 들어가서 사장님이 어떤 분인지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생 등급제에 합격한 후 현판은 한 달 후에 받을 수 있었다. 한승이가 고생해서 받은 결과였기 때문에 가게 입구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두었는데 따로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도 강혜정은 이것을 어필해 주었다.
‘고맙네.’
“사장님, 어디 계세요?”
“네, 안녕하세요. 제가 알로하 사장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이거 장사가 잘 되는 이유가 있었네요. 사장님! 너무 훈남이세요.”
“감사합니다.”
“여기가 맛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여기 맛집 맞나요?”
“네, 맛집 맞습니다.”
“오, 보통은 아니라고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사장님의 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그럼 지금부터 제가 사장님의 말씀처럼 이곳이 맛집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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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게에서는 고기에 있는 힘줄과 비계를 최대한 제거하고 칼집을 놓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훨씬 부드러운 육질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오, 그렇군요. 어떻게 작업하는 지 한번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강혜정의 말에 조형우는 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이런 방송이 나오면 가장 경계되는 것이 비법 노출이다.
레시피에는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누군가 우리 돈카츠를 따라서 똑같이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고기 손질만 하는 것이라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우리 가게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비결에는 숙성시간, 연육기 사용, 거기에 계란물에 들어가는 우유는 여러 가지 상호작용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만들어 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기 한 덩이리를 도마 위에 꺼내더니 연마봉을 이용해서 칼을 갈기 시작했다.
슥슥
칼 갈리는 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졌는데 머리에 두건을 질끈 동여 맨 조형우의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방송이 오기 전에 그와 이야기를 했었는데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일본에서 요리 수련을 떠났을 만큼 그는 요리에 진심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요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들어와 카페를 개업하고 나의 권유로 다시 칼을 잡았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떠있었다.
“등심 부위는 보시면 이렇게 위 쪽에 근막이 두텁게 올라와 있습니다. 이것을 얼마나 깔끔하게 제거하느냐에 따라서 돈카츠의 맛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죠.”
그는 말과 함께 등심 부위에 칼을 슥 집어 넣어니 단칼에 벗겨 내었다.
“오, 시원하게 벗겨지네요.”
강혜정이 옆에서 환호성을 질렀는데 그것을 듣고 조형우는 약간 으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상당히 어려운 기술입니다. 자칫 잘못해서 근막이 아닌 부위까지 썰어버릴 수도 있는데 그러면 아까운 재료를 다 버리게 되는 거죠.”
“그렇군요. 이렇게 직접 만드는 모습을 보고 나니까 얼마나 맛있을지 더욱 기대가 되네요.”
그렇게 한번 주방을 촬영한 다음 강혜정과 나는 미리 준비한 테이블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에는 우리 가게를 대표하는 메뉴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강혜정이 한상 차려진 테이블을 보더니 감탄사를 내 뱉었다.
“우와, 이거 양배추 이렇게 많이 주시는 거 맞나요? 방송 촬영한다고 일부러 이렇게 많이 주신거 아니에요?”
“네, 아닙니다. 저희는 가게에 방문하는 모든 고객님들에게 양배추를 이렇게 많이 드립니다. 더 드시고 싶으시면 직원에게 따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저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먹는 것이 좋은 지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일단 돈카츠를 드시기 전에 입가심을 하시는 것이 좋은데요. 여기 있는 참깨 소스를 양배추 위에 뿌리신 다음에 한 번 드셔보세요.”
“아, 이게 양배추에 뿌려 먹는 소스였군요.”
나의 말대로 강혜정은 양배추에 소스를 뿌린 후 입으로 가져갔다.
“음…”
그녀는 소리를 내면서 맛을 음미했는데 다 먹은 후 말했다.
“이거, 맛이 특이한데요? 다른 곳에서 먹었던 것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네, 저희 가게에서 만든 비법 소스입니다. 이 소스만 있으면 아무리 많은 양배추도 질리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죠.”
“그럴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양배추 너무 많이 주셔서 남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었는데 소스랑 먹으니까 아삭아삭 식감도 너무 좋고 새콤하니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겠어요.”
“식기 전에 돈카츠도 드셔보세요. 앞에 있는 것 가장 기본이 되는 돈카츠인 로스카츠입니다. 등심으로 만든 돈카츠죠. 여기에 있는 돈카츠 소스에 찍어서 드시면 됩니다.”
“음, 이것도 너무나 맛있어요.”
나는 메뉴를 하나 씩 설명해주면서 그녀에게 먹는 법을 알려주었고 확실히 전문 리포터답게 그녀는 음식을 맛있게 표현하면서 먹을 줄 알았다.
“이거는 저희 가게에서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메뉴인 체다모짜카츠입니다.”
맛을 좀 씩 본 그녀에게 나는 마지막으로 시그니처 메뉴인 체다모짜카츠를 소개해 주었다.
“우와, 사실 아까부터 이게 눈에 확 들어와서 궁금했었거든요. 치즈카츠 맞죠?”
“네, 치즈카츠 맞습니다. 모짜렐라치즈와 체다치츠를 섞어서 만든 치즈카츠인데요. 기존 치즈 카츠랑 다른 맛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네, 그럼 지금 바로 먹어보겠습니다.”
그녀는 바로 젓가락을 가져가 체다모짜카츠 한 조각을 입에 넣었는데 한 번 베어 물고 남은 치즈가 쭉 늘어나기 시작했다.
“엄마야, 시청자 여러분 이거 보세요. 치즈가 꼭 피자처럼 늘어나네요.”
그녀는 쭉 늘어난 치즈를 카메라에 비추면서 웃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프로 방송인 같았다.
“음…이게 다른 곳에서 먹었을 때보다 치즈 맛이 더 강한 것 같은데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걸까요?”
“그게 체다치즈를 같이 넣어서 그럽니다. 체다치즈가 일반 모짜렐라보다 풍미도 좋고 더 고소한 맛을 내거든요.”
“아, 저는 처음에 그냥 예쁘게 보이려고 두 가지 치즈를 사용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네, 음식은 맛이 가장 중요하죠.”
사실 다른 곳보다 치즈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고기의 두께 때문이다.
규원 축산에서 얇은 고기를 받은 후 들어가는 치즈의 양을 더욱 늘렸다. 고기는 단순히 치즈를 감싸는 역할만 하게 만들었는데 결과는 성공이었다.
예전에 오픈 준비를 할 때 다른 가게에서 치즈카츠를 주문하면 고기가 두꺼워서 상대적으로 안에 들어가 있는 치즈가 적다고 느껴진 적이 있었는데 고기를 얇게 하는 대신 치즈를 더 많이 넣었더니 늘어나는 모양도 더 예쁘고 맛도 훨씬 좋았다.
더군다나 치즈가 고기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니 줄어든 고기의 양만큼 치즈를 더욱 고급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음…치즈는 먹다 보면 느끼해서 많이 못 먹었는데 여기는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벌써 그녀는 상당히 많은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계속해서 맛있게 먹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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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셨습니다.”
거의 두 시간 정도 걸렸을까? 길었던 촬영이 끝이 났다. 촬영팀이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옆에 있는 강혜정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너무 맛있게 먹어 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진짜 맛있었어요.”
“다음에 시간 되실 때 단비랑 꼭 같이 봐요.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저 먼저 가봐도 괜찮을까요? 너무 많이 먹어서 차에 가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조금 있다가 다른 가게 촬영이 또 있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네네 괜찮습니다.”
“네, 제가 원래는 다음 촬영 생각해서 적당히 먹는 편인데 진짜로 돈카츠 진짜 맛있었어요. 단비가 자랑한 이유가 있었군요.”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꼭 1등하시기를 바랄게요.”
그녀가 가게를 나가자 나는 촬영분을 점검하고 있는 담당 PD 장민웅을 찾아갔다.
“PD님, 촬영은 잘 되신 것 같으세요?”
“아, 사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사장님이랑 직원들 표정이 좋으셔서 오늘 촬영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그런데 심사는 오늘 안 하는 걸까요?”
저번에 작가에게 일반인들이 심사를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오늘 그것과 관련된 촬영 내용이 없어서 궁금해 하던 차였다.
“아, 그거 말씀을 안 드렸군요. 심사는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블라인드 테스트요?”
“네, 아무래도 그냥 저희랑 같이 돌아다니면서 심사를 하면 앞에 촬영한 가게들이 불리할 것 같아서 총 10명의 심사자들은 자신이 가고 싶은 가게를 랜덤으로 찾아가 음식을 먹고 평가를 할 겁니다.”
“그렇군요.”
사실 첫 촬영을 우리 가게에서 시작한다고 했을 때 저것이 걱정되기는 했었다. 아무래도 다 같은날 촬영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먹는 가게가 평가자들의 기억에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로 촬영하는 우리 가게는 손해를 볼 수 있었는데 장민웅이 그것을 생각해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기획한 모양이다.
우리 가게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예전에 촬영 다니다가 보면 방송에 나올 때만 잠깐 신경 쓰는 가게들도 없지 않아 있는데 심사자들이 언제 올지 모르니 항상 긴장하고 계셔야 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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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이 끝나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줄 알았다. 차분히 백화점 입점에 필요한 준비를 할 생각이었는데 블라인드 테스트 때문에 꼼짝없이 가게에 붙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첫 방송 전까지는 분명히 다 다녀갈거야.”
하연이는 어차피 블라인드 테스트니 내가 가게에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로이스에 입사하고 아울렛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것이 바로 대기였다.
고객님이 나를 찾기 전에 기다리고 있는 것 말이다.
대기를 오래 하다 보니 늘어난 것이 있는 데 바로 고객을 파악하는 능력이었다. 가만히 서서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으니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특히나 아울렛은 CS 평가라고 해서 친절도 같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많이 했다. 몇 년을 그런 평가를 받다 보니 이제는 일반 고객과 평가원들을 어느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나는 매의 눈으로 손님들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심사자가 언제 올까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촬영 며칠 후 드디어 발견할 수 있었다.
‘왔다.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