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3 화
“얼마를 결제했다고?”
“500만 원이요…”
나는 하연이의 말에 결제 영수증을 살펴 보았는데 진짜로 500만 원이 찍혀있었다.
“잘못 계산한 건 아니지?”
“네, 아니에요. 고객님이 괜찮다고 그렇게 결제 해주라고 하셨어요.”
“언제?”
“아까 사장님이 포장에 필요한 박스 가지러 가셨을 때 카드 주시던데요..”
내가 구해 준 것이 많이 고마웠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은혜는 아는 사람이구나.’
생각보다 너무 큰 금액이었지만 그래도 이왕에 벌어진 일 나는 감사하게 받기로 생각했다. 그동안 요식업에 있으면서 많은 경험을 해봤지만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벌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생각해보면 예전에 아이들에게 돈카츠를 주었을 때도 그렇고 내가 벌인 선행이 오히려 나에게 좋은 일이 되어서 돌아왔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니 앞으로도 좋은 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것도 로또 당첨 덕분이지.’
나라는 사람의 기질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어렸을때부터 아버지가 주변에 어려운 사람을 잘 도와주라는 말을 많이 하셔서 속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예전에는 도와줄 능력이 없었다.
나혼자 먹고 살기에도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또에 당첨된 이후로는 심리적,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서 그런 지 행동에 여유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겼다.
이런 마음의 변화가 나를 더 이롭게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좋은 일 많이 하자.’
****
“아가씨, 진짜 이렇게 돌아다니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괜찮아요.”
“그래도 병원에서는 며칠 더 쉬시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회장님이 아시면 크게 화내실 겁니다.”
“아저씨, 아빠한테는 비밀인 거 아시죠?”
“그건 안됩니다.”
집사 송우석의 단호한 말에 정수아는 입을 삐죽거렸다. 자신도 알고 있다. 어차피 병원에서 아버지에게 연락이 갔을 것이고 아마 곧 있으면 연락이 올 것이다.
정수아는 어렸을 때부터 심장이 별로 좋지 않았다. 가끔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답답한 정도였는데 이렇게 쓰러진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정밀 검사 후에도 특별한 이상은 나오지는 않았다.
의사는 스트레스와 같은 심리적인 요인이 큰 것 같다고 했는데 정수아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쓰러진 날은 자신에게 매우 슬픈 날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던 이제부터는 옆에 있으라는 회장님의 지시입니다. 어디 갈 때 저를 꼭 부르십시오.”
“네, 그런데 아시잖아요. 그 날은 혼자 있고 싶었어요.”
정수아의 말에 송우석은 자동차 백미러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안타까웠다.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매년 같은 날에 그 식당을 방문했다.
어머니가 그 식당을 좋아해서 정수아를 자주 데리고 갔는데 돌아가신 후 그녀는 어머님 생일이면 항상 그 식당을 찾았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근데 최근에 일도 많아지시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신 것 같아요. 조금 쉬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매출 많이 떨어졌잖아요.”
코로나로 인하여 매출이 떨어진 곳은 비단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백화점, 아울렛 등 대형 쇼핑몰도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매출이 많이 감소하였다.
정수아는 뉴월드 그룹의 막내 딸로 본사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는데 광주점의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에게 부탁하여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광주점은 어머니와 추억이 있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10살 무렵, 그녀의 아버지인 정민구와 어머니 한유영은 성격 차이로 인하여 별거를 했다. 당시 광주점이 막 오픈에 들어가는 시기라 어머니 한유영이 지점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이곳으로 내려왔다.
나이가 비교적 어린 정수아는 어머니를 따라서 광주에 살았는데 그녀에게 뉴월드 백화점은 어렸을때부터 뛰어놀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매출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 광주로 내려왔다.
“그래도 건강이 우선입니다.”
“네.”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하는 집사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내려올 때 유일하게 같이 따라와 도움을 준 아저씨였다.
아저씨의 말에 대답은 했지만 그렇다고 일을 쉴 생각은 없었다. 해야할 일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식품관만 잘 되면 매출은 올라갈 거야.’
코로나로 인해서 가장 큰 매출 감소를 보인 곳은 식당가였다. 아무래도 음식은 마스크를 벗고 먹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쇼핑은 하더라도 밥은 집에 가서 먹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별로 좋지 못했다. 그래서 프리미엄 식품관을 기획했다.
푸드코드 형식으로 바꿀 생각이었는데 집에 가더라도 포장해서 먹게 만들려는 생각이었다. 거기에 기존과 다르게 이름 있는 맛집들을 많이 집어넣을 계획이었다. 직원의 아이디어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하여 일반 자영업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기존에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던 맛집으로 고객들이 많이 쏠리고 있었다.
외식의 수가 극도로 줄었지만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해야 한다면 코로나를 감수하고 가야하니 맛집으로 가는 것이다.
자신도 거기에 동의했다.
맛집으로 손님들을 끌어들이고 자연스럽게 쇼핑까지 연결시킬 수만 있다면 다시 백화점 매출도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있는 돈카츠는 제가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돈카츠라는 말에 그녀는 아까 만난 남자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주소를 검색하기 위해 알로하를 찾았는데 가게와 관련된 기사를 읽으면서 조금 관심이 생겼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뉴스에도 출연했다. 요즘 세상 같지 않은 착한 사람이었다.
‘하긴 그랬으니 나도 구해줬겠지.’
블로그와 SNS에 있는 글도 몇 개 봤는데 음식의 평가도 좋은 것 같았다.
“아, 제 것 하나는 남겨주세요. 무슨 맛인지 먹어보고 싶네요.”
“네, 알겠습니다.”
****
“자, 그럼 먹어 볼까요?”
5백만 원을 벌어서 기분이 좋아진 나는 바로 시그니처 메뉴 테스트에 들어갔다. 직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조형우가 만든 코돈부르를 가지고 나왔다.
돈카츠 사이사이 하얀 치즈가 흘러 나오고 있었는데 일단 비주얼은 합격이었다.
“맛있어 보이는데요?”
한승이가 말했는데 나도 거기에 동의했다. 코돈부르 한 조각을 떼어내어서 입에 넣었는데 입안에 치즈가 가득 들어찬 느낌이었다.
코돈부르는 등심 원육안에 채소와 치즈를 같이 넣어서 튀긴 음식이다. 어떻게 보면 치즈 카츠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채소가 들어 있어서 아삭한 식감을 더 느낄 수 있었다.
“맛이 어때?”
요리를 만든 조형우가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가 만들기는 했지만 우동, 소바를 만들었을 때와는 다르게 자신은 조금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일본에 있을 때 우동과 소바는 자주 만들었던 음식이었다. 돈카츠의 경우 등심, 안심과 같은 기본 돈카츠는 자주 만들었는데 코돈부르와 같은 이색돈카츠는 처음 도전 하는 거였다.
“맛있습니다.”
맛있다는 나의 말에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기, 치즈, 싱싱한 야채가 들어갔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좋은 맛이었지만 나는 의문점도 들었다.
‘이걸로 이길 수 있을까?’
양림카츠, 이미 몇 년전부터 코돈부르를 만들어서 팔고 있는 가게였다. 그리고 그 가게와 같이 방송에 출연한다.
똑같은 메뉴를 소개한다고 하면 아마 양림 카츠가 유리할 것 같았다. 물론 역전의 기회는 있었다.
이번에 대결에서 일반인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총 10명의 일반인들이 오로지 맛을 가지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1점부터 10점까지 음식의 점수를 표기하고 10 명의 점수를 모아서 평균을 내기 때문에 맛만 있다고 하면 더 맛있는 코돈부르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음식을 만들었던 노하우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고민이 되네. 맛있기는 한데…다른 것도 생각을 해봐야겠다.’
그렇게 직원들과 코돈부르를 먹으며 맛을 평가하고 있을 때 가게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왔다.
“형님. 오셨어요.”
형제김밥의 동성이 형님이었다. 그동안 일이 바빠서 별로 볼 일이 없었는데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돈까스, 요즘에 왜 이렇게 바빠? 얼굴 보기가 힘들어.”
“가게 사장이 바쁘면 좋은 거죠. 그동안 잘 지내셨죠?”
“그래, 바빠야 좋지. 그런데 우리는 안 바빠서 죽겠어.”
나는 형님의 말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장사가 잘 되고 있지만 주변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있는 이 건물만 봐도 그렇다. 내가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가게마다 손님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가게만 잘 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힘내십시오.”
“그래야지. 오랜만에 돈까스 먹고 싶어서 포장해 가려고 왔어.”
“잘 오셨습니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음, 뭐가 좋을까? 지금 먹고 있는 건 뭐야?”
“아, 저희가 새로 만들려고 실험 중인 메뉴에요.”
“그래? 냄새가 좋은데?”
“그래요? 한번 드셔보실래요?”
우리는 매일 같이 돈카츠를 먹는 사람이었다. 일반인인 그의 관점에서 맛이 어떤 지 궁금해서 나는 그에게 코돈부르 한 조각을 내어 주었다.
그는 젓가락으로 코돈부르를 먹었는데 어느 정도 맛을 보고 나자 나는 그에게 물었다.
“맛이 어떠세요.”
“맛있네. 근데 나는 좀 느끼한 것 같은데?”
“느끼해요?”
“응, 뭔지 모르겠지만 좀 느끼한 맛이 나.”
느끼하다는 말을 듣고 조형우가 나서서 말했다.
“아마 마요네즈가 들어가서 그럴 겁니다. 야채랑 치즈를 잘 섞게 만들기 위해서 마요네즈를 넣었는데 아무래도 이걸 기름에 튀겼으니 느끼한 맛이 좀 날 겁니다.”
조형우의 말에 나는 이해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매일 기름 냄새를 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서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심사는 일반인들이 한다. 그럼 동성이 형님처럼 느끼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군요. 근데 이것도 치즈 카츠 아니야? 나는 원래 있던 치즈카츠가 조금 더 맛있는 것 같은데…”
“원래 있던 치즈카츠요?”
“어, 몰랐어. 나 여기 오면 맨날 그거 먹잖아. 오히려 담백하니 그게 더 맛있는 것 같아.”
하긴 생각해보니 기존에 판매하고 있는 치즈카즈도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알로하 정식, 로스 카츠,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것이 바로 치즈카츠였다.
하지만 이 치즈카츠를 시그니처 메뉴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석이기 때문이다.
등심 돈카츠로 알려진 로스카츠와 등심으로 치즈를 감싼 치즈카츠는 일본식 돈카츠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메뉴다.
그래서 생각을 안 했다. 가게를 알리기에는 특색이 부족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방송에 출연하는 가게들을 떠올렸을 때 치즈카츠를 메인으로 하는 가게는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가 치즈카츠인데 이걸 메인으로 하는 가게가 없다니 아마 작가들이 새로운 맛집들을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배제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 어쩌면 기본이 가장 잘 먹힐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