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2 화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가족들과 즐겁게 밥을 먹고 계산 역시 잘 마치고 나왔다. 식당에서 전화 올 일이 따로 없었다. 그때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여기서 사람 구해주신 분 맞으시죠 ]
“네, 맞습니다.”
[ 고객 님을 찾으셔서 그러는데 혹시 연락처를 알려드려도 괜찮을까요? ]
“저를 찾는 다고요?”
매니저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았는데 그럴 수 있었다. 나 같아도 내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면 누군지 궁금해서 찾을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고모의 말이 생각 났다.
‘성추행 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
고모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를 찾는 이유를 물었다.
“제 연락처는 왜 알려고 하시는 지 아실까요?”
[ 고객 님, 실례지만 연락처 찾으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
매니저는 나와 통화를 하다 멈추고 갑자기 말을 했는데 이제 보니 나를 찾는 사람이 바로 앞에 있었던 것 같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매니저가 나에게 말했다.
[ 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사례를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
“사례요?”
사례라는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고모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기는 했다. 아직 대한민국은 살만한 나라였다.
하지만 굳이 사례를 바라고 도움을 준 것은 아니었다.
“사례 괜찮습니다. 그런 일 바라고 한 것 아닙니다.”
[ 고객 님, 사례는 괜찮으시다고 하시는데… ]
매니저는 나의 말을 다시 전달했는데 이번에는 전화기를 타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 원래 직접 만나서 사례금 드리려고 했는데 만나는 게 좀 그러시면 제가 선물을 보내 드리고 싶은데…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는지 물어봐 주시겠어요? ]
아주 희미하게 들렸는데 여자 목소리인 것을 보니 내가 구해준 당사자인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굳이 주겠다는 것을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주소를 알려주었다.
만나는 것이 아닌 주소로 선물을 보내주는 것이라면 큰 부담도 없으니까 말이다. 곧이어 매니저가 나에게 주소를 물어보았고 나는 가게 주소를 알려주었다.
“광주 서구 치평동 …”
****
“그럼 이따가 코돈부르 만들어 볼게.”
조형우는 시그니처 메뉴로 쓸 만한 메뉴들의 레시피를 여러 가지 가지고 왔다. 일전에 말한 코돈부르를 비롯해 나베와 거기에 일본식 덮밥인 돈부리까지 말이다.
조형우는 일본에 있을 때 가정식을 주로 공부했었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알고 있는 음식의 종류가 많았다.
레시피를 보면서 나에게 하나 씩 설명을 해주었는데 역시 가장 끌리는 것은 코돈부르였다. 좀 생소한 음식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장 돈카츠에 가까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먼저 만들어서 맛을 보기로 했다. 테스트할 레시피를 결정하고 주방을 나왔는데 나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사장 님. 리얼맛집탐방 작가 허보람입니다. ]
기다리던 방송국의 전화였는데 드디어 섭외가 완료된 것 같았다.
“출연하는 가게 다 결정 된 건가요?”
[ 네, 다 결정 되었어요. 아무래도 저희가 처음에 갔던 곳이라 첫 촬영은 거기서 진행하려고 하는데 촬영 일자 협의 차 전화 드렸습니다. 통화 가능하세요? ]
“아, 그러시군요. 네, 가능합니다. 혹시 가게가 어느 곳인 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 네, 제가 방송 관련 가대본이 나왔는데 거기에 가게 적혀있으니까 이따가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
“네, 알겠습니다.”
[ 촬영은 아무 때나 상관없으실까요? ]
촬영 일자를 물어보는 작가의 말에 나는 달력을 보았다. 아무 때나 진행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아니다, 주말은 피해야겠다.’
“주말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아요. 저희가 주말에 좀 바빠서.”
본래 우리 가게의 주요 상권은 오피스였다. 직장인들이 많이 오는 가게 말이다. 보통 이런 가게는 평일 점심 시간이 가장 바쁘다. 우리 가게 역시 그랬는데 최근에 변화가 일어났다.
주말의 매출이 평일의 매출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SNS와 블로그로 이름이 알려지고 맘카페 홍보가 겹치면서 주말에 가족, 커플, 친구들과 방문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 진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하연이와 선영이는 물론이고 알바생들까지 총출동해서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방송까지 촬영하면 너무 정신이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평일 점심시간이 지난 후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을 때 촬영을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시군요. 그럼 저희가 평일에 촬영 가능한 날 뽑아서 다시 한 번 연락 드리겠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
“음…규카츠도 들어가 있구나.”
나는 작가 보내준 가대본을 확인했는데 거기에는 출연할 예정인 가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도 맛있게 먹었었고 단비도 먹어본 적 있는 규카츠가 나와 있었는데 급하게 섭외한 것 치고는 출연하는 가게들의 이름이 상당했다.
나는 가게들을 인터넷에 검색하면서 하나 둘 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곳도 있었지만 처음 이름을 들어보는 가게들도 있었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평가들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들이어서 그런지 대체로 평가가 다 좋았다.
‘괜히 일을 벌린 거 아니야?’
1등을 뽑자고 내가 말했었다. 그런데 만약 꼴등을 해버린다면 그런 망신도 없었다. 하나 같이 잘 되고 있는 다른 가게들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양림카츠? 여기도 단비가 말했던 곳 같은데…”
가게들 중 한 곳은 예전에 단비가 언급했던 곳도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는데 검색해 보고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뭐야, 여기 시그니처 메뉴가 코돈부르잖아…”
양림카츠에서 메인으로 판매하고 있는 메뉴는 우리가 시그니처 메뉴로 생각하고 있던 코돈부르였다.
꽤 오래전부터 판매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 좋았다.
“이거 큰일인데…”
생각해보니 작가들이 다 같은 돈카츠 가게로 대결을 하더라도 상징하는 메뉴들은 다르게 섭외를 한 것 같았다. 규카츠는 소고기를 이용한 비프카츠가 메인이었고 양림카츠는 방금 말한 것처럼 코돈부르가 메인이었다.
카레를 전문으로 하는 돈카츠 가게도 있었고 다들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똑같은 코돈부르를 시그니처 메뉴로 고르는 게 리스크가 있었다.
‘다른 걸로 해야 하나…’
사실 코돈부르로 마음을 어느 정도 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면서 한 여자가 들어왔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연이가 손님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알로하입니다. 한 분이세요?”
“네, 혼자 왔어요.”
“네, 자리 이 쪽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혹시 가게 사장님이 김정훈 씨 맞을까요?”
“네, 맞는데 무슨 일이세요?”
나는 나의 이름이 들리자 여자를 처다 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내가 엊그제 목숨을 구해준 여자였기 때문이다.
내가 쳐다보자 그녀도 나를 바라보았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혹시 김정훈 씨?”
그녀는 나에게 다가왔는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제가 김정훈입니다.”
내 인사를 받은 그녀는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목숨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건데요. 뭘…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제가 너무 고마워서 사례품으로 선물을 보내려고 했는데 말씀하신 주소 찾아보니까 가게인 것 같더라고요. 아까 선물은 좀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도 같고 차라리 매출을 올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직원들 음식을 포장해 가려고 왔어요.”
“아, 그러시군요. 잘 오셨습니다.”
나는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례금이나 사례품은 솔직히 좀 부담스러웠는데 매출을 올려준다고 하니 앞으로 단골 고객이 한 명 생길 것 같아서 마음이 편했다.
“포장하려고 하는데 가장 맛있는 메뉴가 어떤 걸까요?”
“보통 알로하 정식을 가장 많이 드세요. 여러 가지 돈카츠가 다 들어가 있어서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럼 그걸로 20개 포장해주세요.”
“20개요?”
“네, 20개 포장 해주세요.”
“직원이 많이 있으신 가보네요…”
많아야 두, 세 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20개를 포장해 달라고 하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네, 그 정도는 있어야 직원들이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알로하 정식 20개 포장 준비해드릴게요.”
주문을 넣고 포장을 준비하는 동안 여자는 카운터 근처에 있는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았는데 얼굴도 예쁜 편이고 옷을 입은 스타일도 세련되었다. 명품처럼 보였는데 예사롭지는 않았다.
‘어디 쇼핑몰 사장인가?’
평범하지 않은 모습에 젊은 나이에 성공한 쇼핑몰이나 카페 사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하루 입원했는데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가만히 앉아서 포장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그녀가 부담되기도 해서 조용히 말을 걸었다.
“그거 다행이네요. 갑자기 쓰러지셔서 놀랐습니다.”
“네, 제가 심장이 좀 약한데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인 마비가 온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런 그러셨군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기는 하죠.”
“매니저에게 이야기 들으니까 그때 아버님 환갑 잔치를 하고 계셨다고 하던데.”
“네, 맞습니다. 그 날이 아버님 생신이셔서 거기서 축하를 하고 있었어요.”
“그렇군요. 저도 그 날이 엄마 생일이었어요.”
“오, 그러셨군요. 어머님이 걱정 많이 하셨겠어요.”
그때 그녀의 지인은 보지 못 했는데 엄마의 생일이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생일에 딸이 그렇게 되었으니 큰 걱정을 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항상 제 걱정을 달고 사셨죠.”
엄마를 이야기 하는 그녀는 왠지 슬픈 목소리였는데 그때 주방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돈카츠, 다 나왔어요.”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돈카츠가 다 준비가 되었다. 포장을 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봉투에 담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차 가지고 오셨죠?”
“네. 가지고 왔어요.”
“그럼 박스로 포장 해드릴게요.”
나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재활용품을 분리해서 보관해두는 창고가 있었는데 종이 박스도 많이 있었다.
박스를 가지고 와서 포장을 마무리 한 후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차 어디에 두셨어요? 제가 실어 드릴게요.”
“잠시만요.”
그녀가 어딘 가로 전화를 했고 곧이어 가게 앞으로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꽤 비싸 보이는 고급 세단이었는데 확실히 돈을 많이 번 여자가 맞는 것 같았다.
트렁크에 포장 된 박스를 싣고 나니 그녀가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제는 아까 했는데 맛있으면 다음에 또 포장하러 올게요.”
“네, 아마 직원들이 좋아하실 겁니다. 드셔 보시고 맛있으면 또 오세요.”
그녀는 그렇게 차를 타고 바로 떠났고 나는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 하연이가 나를 부르면서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이유를 물었다.
“왜 그래?”
“아까 그 여자 분이 결제를…”
“설마 결제 안 했어?”
생명의 은인이라고 나를 고마워 했기 때문에 따로 계산 했는지 확인을 안 하고 그냥 보냈다. 그런데 하연이가 결제를 이야기하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결제를 500만 원이나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