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1 화
여자의 말을 듣고 한 남성이 다가가 바닥에 쓰러진 여자의 몸을 돌렸다. 엎드려 있을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젊은 여자였다.
남자는 여자의 코 쪽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크게 말했다.
“숨을 쉬지 않아요. 빨리 119에 신고해주세요.”
그의 말을 듣고 내 옆에 있던 여자가 119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의 후속 조치 없이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빨리 CPR을 해야 하는데…’
예전에 예비군 훈련장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사람이 쓰러지면 구급차가 올 때까지 심폐소생술로 골든타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이다.
주변을 둘러 보았는데 다들 걱정만 할 뿐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예비군 훈련장에서 실습으로 인형의 가슴을 눌러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잠시 고민을 한 나는 일단 해보기로 했다.
‘지금은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야.’
“잠시만 비켜주시겠어요.”
나는 여자의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말하고 쓰러진 여자의 옆으로 갔다. 훈련장에서 본 동영상을 떠올리면서 기도를 확보하고 두 손을 모은 뒤 천천히 가슴을 누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마음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일정한 박자로 움직였는데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인형을 눌렀을 때와 다르게 진짜 사람이어서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한 5분 정도 심장을 압박한 것 같은데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힘이 부치기 시작하자 누군가 바꿔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들 쳐다보기만 할 뿐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하는데까지 해보자.’
나는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는데 얼굴이 창백했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을 누르는 손에 힘이 더 들어갔는데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창백했던 얼굴이 조금씩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때 식당으로 119 구급대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환자는 어디 있습니까?”
119 구급대원들이 다가오자 나는 자리를 비켜 주었는데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의식은 없는데 호흡은 있습니다.”
아까는 분명히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색이 변한 것이 호흡이 돌아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구급대원들은 여자를 들것에 싣고 중식당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이마와 손에 땀이 한가득이었다.
'무사했으면 좋겠네.'
****
구급대원들이 떠나가고 어수선했던 식당이 정리 되자 구경하던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룸으로 돌아왔는데 막내 고모가 나에게 뭐라고 하셨다.
“너는 화장실 간다고 나간 아이가 왜 이렇게 늦게 오니.”
“아, 밖에서 일이 있었어요.”
“일?”
“네,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서 제가 심폐소생술을 했어요.”
“그…인공호흡?”
“네, 화장실 갔다가 오는 데 어떤 여자가 쓰려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밖이 소란 스러웠구나. 여자는 괜찮고?”
“네, 119 대원들이 와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으니 아마 괜찮을 것 같아요.”
“그거 다행이네.”
엄마는 다행이라고 말했지만 큰고모가 걱정이 된다는 듯 말했다.
“잘한 일이기는 하지만 다음에는 그렇게 나서지 마라.”
“네?”
“얼마 전에 뉴스 보니까 남자가 여자 구해주었다가 오히려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하더라. 흉흉한 세상이야. 괜히 호의로 도와주었다가 독박 쓰는 수가 있어.”
하긴 나도 그런 내용의 기사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에이, 설마 그러겠어요.”
“어허, 설마가 사람 잡는다. 뉴스에 나온 사람들도 도와줄 때 그런 생각했겠니? 다 지나고 후회하는 거다.”
“네…”
생각해 보니 고모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실제 그런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까 나를 빼고 아무도 나서지 않은 것이 그런 이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 여자였다. 심폐소생술을 하기 위해서는 가슴에 손을 대야 하는데 남자로서는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잠깐만, 나중에 진짜 성추행범으로 몰리면 어떻게 하지.’
큰고모가 심각하게 말하자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 사람 지인들은 뭐하고 있었다니? 혼자 오지는 않았을 것 아니야.”
고모의 말에 나는 아까 상황을 떠올렸는데 생각해보니 쓰러진 여자의 지인으로 추청되는 사람도 없었다.
밥을 혼자 먹으러 오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보통 지인이라면 바로 옆에서 걱정을 하거나 국급대원들을 따라 갔을 텐데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 어쨌든 다음에 혹시 이런 일 생기면 고모 말 명심하고 나서지 마라.”
고모는 나를 걱정하면서 말했는데 잠자코 듣고 있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오늘 일은 잘했다. 사람은 살리는 것이 우선이지.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는 거다.”
아버지는 나를 칭찬해 주셨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고모는 더 이상 그와 관련되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예전부터 고지식한 면이 있는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의 말이 맞고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고모의 걱정이 이해는 되지만 아버지의 말처럼 그것은 나중에 일어날 일이었다.
어찌 되었던 사람을 한 명 살렸다는 생각에 지금 나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네, 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제가 술 한잔 따라 드릴게요.”
****
“잘했어?”
환갑잔치를 끝내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단비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어, 잘했어.”
술을 드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바로 내려 가시지 않으시고 은정이의 집으로 향하셨다. 아직 나는 작은 투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계셨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본래 오늘 집을 샀다는 이야기도 하고 이곳으로 모셔 올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고모들이 차를 보고 잔소리를 심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설명하고 은정이도 내 편을 들어준 덕분에 넘어갈 수 있었지만 모은 돈으로 차를 샀다고 말했기 때문에 집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나도 가서 얼굴 봤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다음에 가자. 안 그래도 오늘 여자친구 있다고 말씀드렸어. 다들 궁금해 하시더라.”
“그래? 우리 엄마도 오빠 궁금해 하셔.”
“진짜?”
“어, 저번에 만났잖아. 내가 사귀고 있다고 하니까 궁금해 하시더라.”
생각해보니 저번에 집 앞에서 단비의 어머님을 잠깐 만났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인사만 드리고 도망치듯 사라졌는데 언제 한번 제대로 인사를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다음에 인사 드리자. 그런데 할 말이라는 게 뭐야?”
“아, 보여 줄게 있어서.”
사실 단비가 이 곳에서 집에서 나를 기다린 이유는 보여줄 것이 있다고 해서였다. 나를 테이블에 앉힌 단비는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뉴월드 백화점 광주지점 프리미엄 식품관 입점의향서?”
“어, 일전에 말한 식품관 리모델링 말이야. 최종 결정되서 오늘 공고 올라왔어.”
“진짜?”
3호점은 백화점에 내고 싶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공고가 나왔다는 이야기에 나는 사이트로 들어가 공고의 내용을 확인했는데 생각보다 방식이 파격적이었다.
보통 백화점에 들어가는 식당 브랜드들은 어느 정도 인지도와 규모가 있는 프랜차이즈 회사들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메뉴를 결정하면 해당 메뉴의 브랜드 회사들에게 연락을 해서 서로 사업성을 타당한 후 입점을 결정하기 때문에 그렇다.
여러 가지 부서가 있는 회사라는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번에 입점을 원하는 가게 사장들의 지원서를 받고 내부 심사를 통해 결정한다는 차이가 있었다.
이렇다고 한다면 가게의 규모가 작더라도 경쟁력만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식품관이 푸드코트 형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입점에 필요한 비용 역시 많이 줄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심사에 가장 중요 포인트를 맛에 두고 있었다.
“맛이 중요하구나.”
“어, 기존에 식당가에 대해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오래 되어서 식상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맛이 별로 없다는 의견이 많더라고…”
하긴 내 생각에도 그랬던 것 같다. 몇 번 뉴월드 백화점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한식, 중식, 양식 등 다양한 업체들이 있었지만 딱히 맛있었다는 느낌이 드는 곳은 없었다.
그냥 한끼 배를 채우려고 먹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
“광주, 전라도 하면 음식 맛이 좋기로 유명한 곳인데 이것은 말이 안 된다고 내가 강력히 주장했지. 그래서 기존에 브랜드들이 아닌 진짜 맛집으로 유명한 가게들 중에 들어오고 싶은 곳이 있으면 의향서를 받고 심사를 하자고 했어.”
“오, 자기 말이 먹힌거야?”
“뭐, 내가 그 정도 힘이 있는 건 아니고…그냥 의견을 냈는데 새로운 지점장님이 좋게 봐주셨어.”
“그렇구나. 생각보다 진취적인 분이시네.”
보통 직장인들은 새로운 도전을 잘 하지 않는다. 기존의 방식을 꾸준히 유지만 잘해도 월급은 잘 나오기 때문이다.
괜히 새로운 도전을 했다가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을 그대로 져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어, 아직 젊어서 그런지 화끈하더라고.”
“젊어?”
“어, 로얄패밀리거든”
“로얄패밀리?”
“응, 회장님 막내딸이야. 최근에 광주 지점장으로 발령 받아서 왔어.”
“진짜?”
단비의 말을 듣고 나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오너의 가족이라고 한다면 실패에 대한 리스크도 적으니 새로운 도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어, 덕분에 이렇게 오빠 가게도 지원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 한테는 좋은 일이지.”
“그러네. 그런데 보통 재벌 2세들은 서울에서 일하지. 이런 지방까지는 잘 안 오지 않나?”
“그렇기는 하지. 그런데 몇 번 회의에 참석해서 본 적 있는데 얼굴도 예쁘고 그렇게 막무가내인 재벌 아가씨 같지는 않았어. 능력도 있는 것 같고…”
“그래? 그럼 다행이네.”
“그런데 아무리 맛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인지도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거야. 혜정이 방송 출연한다고 했지? 거기서 꼭 1등 해야 돼. 그럼 백화점 들어오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어, 안 그래도 그거 신경쓰고 있었어. 단비야. 고마워.”
“에이,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래도 단비가 기획서 쓴 게 먹힌 거잖아. 오빠 잘해서 3호점은 백화점에 들어갈게.”
“응, 오빠. 파이팅.”
****
“시그니처 메뉴 개발을 서둘러야 겠네.”
입점 공고를 자세히 살펴 봤는데 아직 시간이 좀 있었다. 방송을 통해서 인지도를 끌어올리기에는 충분했다.
당분간 상무지구로 출근하면서 조형우와 시그니처 메뉴 개발에 신경을 쓸 생각이었다.
‘그건 그렇고 방송국에서 곧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
결혼식에서 혜정 씨를 만났을 때 업체들과 연락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곧 방송국에서 연락이 올 것 같기는 했다.
‘기다리지 말고 내가 연락을 해볼까?’
그런 생각에 전화기를 들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처음 보는 번호였는데 방송국 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김정훈 씨, 핸드폰 번호 맞으세요? ]
“네, 맞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실까요?”
[ 아, 저는 로우하이 호텔 중식당 매니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