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9 화
“으…유진이가 결혼하다니 믿겨 지지가 않아요.”
10월 24일, 오늘은 오랫동안 기다린 강성민과 최유진의 결혼식 날이었다. 예전에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래도 시간이 많이 있구나 생각했었는데 바쁘게 지내와서 그런 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아침 일찍부터 단비와 같이 미용실에 들려서 머리도 하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는데 단비는 아직도 친구의 결혼식이 실감이 나지 않는 분위기였다.
“나도 그러네.”
“둘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단비는 벌써부터 두 사람의 행복을 기원했는데 나 역시도 그랬다. 그동안은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이 많이 없어서 결혼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성민이 결혼을 한다고 하니까 나도 결혼을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빠. 차, 비싼게 좋기는 한 것 같아요.”
“응? 왜?”
“네, 제가 지금 여기 오면서 느끼는 건데 이 차 주변으로 다른 차들이 잘 안 오는 느낌이에요.”
나는 단비의 말에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보았다. 확실히 다른 차들이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이해가 되었다.
혹시나 잘 못해서 내 차와 스치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리비가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차들이 안전거리를 많이 확보한 것이다.
멈춰 있을 때는 어느 정도 가까이 왔지만 차가 출발하자 다른 차들이 거리를 벌려줬는데 그러다보니 도로를 혼자 달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괜히 사고나면 수리비 많이 나오니까 그런 것 같은데 나도 예전에 그랬어.”
로또에 당첨되기 전에 포르테를 타고 다닐 때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차 옆에는 주차도 잘 하지 않았다.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 맞는 이야기 였을 것이다.
예전에 은정이가 가정방문교사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집과 집을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차가 필수였는데 내가 운전 연수를 도와줬었다.
가족끼리는 운전 가르쳐 주는 거 아니라는 이야기를 그 전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은정이를 가르치고 나니 왜 그런 말이 나왔는 지 이해를 했다.
녀석은 운전에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공간이해능력이 제로에 수렴했다.
“오빠, 여기서 핸들 왼쪽으로 돌리라고?”
방향도 모르는 녀석이 어떻게 운전면허증을 땄는지 신기했는데 도로 주행은 다른 차들을 따라다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라인만 지켜서 달리면 괜찮았지만 진짜 문제는 주차였다.
한참 가르치던 나는 결국 두 손, 두 달 다 들고 당시 연애 중이던 안 서방에게 넘겼다. 안 서방이 지극 정성으로 알려줘서 차를 타고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문제는 은정이의 다음 발령지가 봉선동이었다는 것이다.
봉선동은 광주에서 조금 산다는 사람들이 있는 동네였다. 비싼 아파트도 많이 있었는데 아파트 가격과 맞물려 주차장에 있는 차들도 꽤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주차에 익숙하지 않았던 은정이는 항상 벌벌 떨었다.
“오빠, 주차장에 자리가 한 자리 있는데 옆에 있는 차가 뚜껑이 열리는 차인 것 같아.”
[ 야, 너 절대 거기다 주차하지마. 차라리 밖에다가 주차하고 걸어서 들어가! ]
“여기 큰 도로라 밖에 주차가 안 되는데…”
[ 미친, 그래도 절대 안 돼 차라리 다른 차 앞에다가 이중주차하고 욕 먹어. ]
“그게 좋겠지?”
이런 식으로 피해 다녔는데 그래도 언제까지 피해 다닐 수만은 없었다. 조금씩 주차에 용기를 내서 외제차 사이에 주차를 하기 시작했고 일을 그만둘 때 쯤에는 주차에 마스터가 되었다.
그 뒤로 은정이는 운전을 못 하는 사람을 볼 때면 이렇게 말했다.
“봉선동으로 가라.”
은정이도 그랬고 나 역시 과거에 그랬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니 기분이 좋았다.
‘이 맛에 사람들이 외제차 타는 건가…죄송합니다. 대표님.’
나는 나에게 경제적 깨달음을 준 미래자산운용의 허준석 대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호텔에서 그의 방송을 본 이후로 꾸준히 그와 관련된 영상과 책들을 찾아보면서 배우고 있었는데 그는 금융문맹의 탈출을 위해서 여전히 소비의 절제를 강조하고 있었다.
그의 가르침을 어기고 차를 샀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단비를 태우고 달리는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주식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표님.’
****
“결혼 축하해요.”
“오빠, 감사합니다. 오빠도 단비랑 빨리 결혼 하셔야죠.”
결혼식장에 도착한 나와 단비는 바로 신부대기실로 찾아가 인사를 했다. 유진의 말에 단비는 눈치를 주었는데 나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저도 그러고 싶네요.”
나의 말에 단비는 창피하다는 듯 얼굴을 붉혔고 우리 세 사람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난 후 단비가 나에게 말했다.
“오빠는 친구들하고 있을 거죠?”
“어, 그래야지. 너는 여기 계속 있을 거야?”
“네, 아직 안 본 친구들이 있어서 여기서 기다리려고요.”
“그래, 나도 그럼 친구들하고 이야기 하고 있을게.”
단비와 헤어지고 신부 대기실을 나와서 친구들을 찾고 있었다. 확실히 코로나 이후로 결혼식에도 인원제한이 있어서 그런 지 예전만큼 사람이 많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예전에 한 번 인사를 리얼맛집탐방의 리포터 혜정씨였다.
“아, 안녕하세요. 혜정씨.”
“여기서 또 뵙네요. 단비랑 같이 오셨어요?”
“네, 단비는 지금 안에 신부랑 같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아, 이번에 PD님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좋은 아이디어 내셨던데요.”
“감사합니다. 어쩌다보니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저도 기존 방식이랑 좀 달라서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확실히 시청률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어요.”
“네, 혹시 가게들 어디로 결정 되었는 지 들으신 것 있으실까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이미 섭외는 꽤 많이 완료되었다고 들었어요. 아마 곧 연락이 갈 것 같은데…”
“그렇군요.”
오늘은 결혼식이 있고 내일은 아버지 환갑잔치가 있다. 여러 행사가 몰려 있어서 상당히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환갑잔치만 끝나면 시그니처 메뉴에 온전히 집중을 할 생각이었다.
“그럼 저도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볼게요. 나중에 또 뵈요.”
“네, 들어가세요.”
****
“여기 있었냐?”
친구들을 찾아서 돌아다녔는데 이미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녀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야, 미친놈 왔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민현호가 나에게 갑자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도 반가움의 인사로 자주 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많았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뭐? 미친놈?”
“어, 미친놈이지. 포르쉐 뽑았다면서?”
이제보니 호영이가 내가 차를 샀다는 이야기를 벌써 다 말한 모양이다. 하긴 이런 소식을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그래, 이번에 한 대 뽑았다. 나는 뭐 비싼 차 타면 안 되냐?”
“그래도 자기 수준에 맞게 차를 사야지. 할부로 샀다면서 너 자동차에 잠자려고 그러냐?”
“그것도 낫 베드. 시트 얼마나 푹신푹신 한지 아냐?”
“진짜로 미쳤구나. 너는 말하는 거 보니까 카푸어로 깡통차야 정신 차리겠다.”
“내가 나중에 봐서 시승식 해주려고 했는데 너는 안 태워 준다.”
나에게 뭐라고 이야기했지만 차를 태워주지 않는다는 말에 녀석의 눈빛이 흔들렸다. 사실 녀석도 차를 엄청 좋아하는 편에 속했다.
“에이, 왜 그래. 부러워서 그러지. 남자가 능력 되면 좋은 차 타고 다니는 거지.”
“그렇지?”
“근데 가게 장사가 잘 되나보다? 네가 차 살 생각도 다 하고 말이야. 원래 욕심 없었잖아.”
“어, 그랬는데 형이 여자친구 생겼잖아. 포르테만 타고 다니기 좀 그러더라고.”
나의 말에 현호의 표정이 다시 안 좋아졌다.
“아,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이제 나만 솔로인 거냐?”
이미 친구들 단톡방에서는 단비와 연애를 하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내가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다.
“은기도 솔로잖아.”
“은기는 인기가 많잖아.”
현호의 말에 은기가 조용히 웃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은기의 미용실에 자주 가고 SNS에 관한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인기가 많아서 예약으로 꽉찬 은기를 볼 수 있었는데 잘생긴 얼굴 때문에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하기 네가 문제기는 하다.”
“그때 소개팅을 내가 했었어야 했는데…”
현호는 단비와의 소개팅을 자신이 하지 않은 것을 항상 후회했는데 처음에 현호에게 하라고 이야기 했던 나도 만약 그랬으면 크게 후회를 할 뻔 했다.
“그러게 이런 게 인연이 아닌가 싶다.”
“오늘 오시지?”
“어, 지금 신부대기실에 있어.”
“좋아, 오늘 컨셉은 커플 브레이커다. 내가 너의 단점을 모조리 말해 주겠어.”
현호는 솔로의 한이 서린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는데 오랜만에 녀석들을 친구들을 보고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테이블로 누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너희도 왔구나.”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봤는데 대학동기 우창식이 서 있었다.
“어…안녕.”
나와 녀석의 사이를 알고 있는 친구들은 어색하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창식이는 나와도 눈이 마주쳤는데 잠깐 말없이 바라보더니 인사를 했다.
“정훈이, 너도 오랜만이다.”
“그래.”
“회사 그만두고 돈카츠 가게 차렸다면서?”
나는 녀석이 뭐하고 지냈는 지 잘 모른다. 그런데 녀석은 나에 대해서 소식은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 그랬지.”
“요즘 코로나 때문에 자영업자들 힘들다고 하던데 망하지 않게 조심해라. 너는 대학교 성적도 안 좋아서 받아주는 곳도 별로 없었잖아.”
어쩜 저렇게 말을 듣기 싫게 하는 지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대학교 때 회장도 하고 차곡차곡 스팩을 쌓은 그와 다르게 나는 그저 그런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렇기 때문에 요식업에 뛰어든 것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다른 대기업들보다 로이스의 취업문이 낮았기 때문이다.
“너도 오지랖은 여전하구나.”
나의 말에 공기가 순간적으로 무거워졌는데 분위기를 풀기 위해 호영이가 말했다.
“저번에 SNS보니까 너 여자친구 있던 거 같은데 너는 결혼 안 해?”
“아…얼마 전에 헤어졌어. 서로 좀 안 맞더라고.”
“그래? 그거 안 됐네.”
“괜찮아. 원래 이별의 아픔은 새로운 사랑으로 잊는 거 아니겠니?”
“뭐야. 벌써 다른 사람 만나는 거야?”
“아니, 오늘 만들어 보려고.”
“오늘?”
“어, 아까 보니까. 괜찮은 여자가 여기 있더라고 재수씨 친구인 것 같은데 나는 오늘 여기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볼란다.”
“친구?”
새로운 인연을 만들겠는 녀석의 말에 나는 조금 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결혼식장에 꽤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설마 하는 마음이었는데 그때 창식이 말했다.
“오, 저기 있다. 오늘 내가 먼저 번호 딸 거니까 너희들은 끼어들지 마라.”
창식이는 결혼식장 입구에서 들어오는 한 여자를 가르키면서 말했는데 그의 말에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말한 여자가 단비였기 때문이다.
“오, 나랑 눈 마주쳤다. 아, 벌써 통하면 안 되는데…”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는데 그때 단비가 나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뭐야, 왜 이쪽으로 오지?”
단비가 가까워지자 창식이는 부산을 떨었는데 단비는 비어있는 내 옆자리에 서서 말했다.
“오빠,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