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8 화
“헐, 선우 그만 두는 거에요?”
다음날 선우는 직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매장을 방문했다. 그가 이제 출근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승이가 가장 안타까워했다.
가게에 취직한 이후로 매일 같이 붙어서 일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한승이는 나보다 선우와 친했었다.
“그만 두는 게 아니라. 잠시 꿈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거지.”
“그래도 이제 못 보는 거잖아요.”
나의 말에 한승이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선우가 웃으면서 한승이를 위로했다.
“혹시 광주에 오면 매장에 꼭 들릴게요.”
“그래, 이왕 캐스팅 된 거 열심히 해봐. 그런데 찍는 작품 이름이 뭐야?”
“강철왕후라고 사극이에요.”
생각해보니 어제는 그가 어떤 작품을 출연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는데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로서 관심이 생겼다.
“사극?”
“네, 주인공이 유명한 쉐프인데 조선시대 왕후의 몸 속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로맨스 드라마에요.”
“오, 재미 있겠다. 그럼 막 요리도 하고 그러겠네?”
“네, 아마 그럴 것 같아요. 대본 보면 커틀렛이라고 돈카츠랑 비슷한 것도 만들던데요?”
“아, 그래? 완전 재밌겠다.”
커틀렛은 돈카츠와 비슷하게 고기를 빵가루에 입혀서 튀긴 음식이다. 하지만 같은 음식은 아니다. 커틀렛은 소고기와 닭고기를 주로 사용하고 후라이팬이 기름을 두르고 동그랑땡처럼 지저서 만드는 음식이고 돈카츠는 돼지고기를 사용해서 기름이 담가 튀긴 음식이다.
같은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기를 써는 방식, 사용하는 빵가루, 그리고 소스까지 다른 점이 많이 있었다.
경양식 돈까스는 그나마 커틀렛과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우리 알로하가 추구하는 일본식 돈까츠 전문점과는 차이가 있다.
“네, 그래서 이 작품에 더 끌렸던 것 같아요. 저도 일하면서 요리에 관심이 생겼거든요.”
“그래, 우리가 너 연기하는 모습은 안 봤지만 여기서처럼 성실히 하면 분명히 성공할 수 있을거야.”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있는데 지켜보고 있던 하연이도 아쉬운 표정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가게에 들어왔고 선우와는 동갑이라서 빠르게 친해졌었다.
“내가 너 드라마 나오면 100번씩 봐줄게.”
“고맙다, 하연아.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
선우가 떠나고 다들 다시 일에 집중했지만 왠지 싱숭생숭한 분위기였다.
물론 그동안 요식업에 일하면서 수 많은 알바들과 직원들을 만나고 만남과 이별을 했지만 사연이 있어서 그런지 선우는 더욱 마음이 쓰였다.
‘이왕 간 거 진짜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내 일을 해볼까?’
선우가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났듯이 나도 내일을 열심히 해야할 때였다. 알로하를 키우는 것 말이다.
나는 인터넷에 알로하를 검색해 보았다. 검색 결과로 글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상당했다.
‘우리 가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네.’
가게 디자인을 해준 미희 씨의 지인들 중 블로거들이 많았는데 그녀의 소개로 꾸준히 매장을 방문해 주고 있었고 블로그에도 글을 많이 올려주고 있었다.
돈을 주고 포털 사이트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서 많은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수고스러움을 덜 수 있었다.
‘어, 이거 올라왔구나.’
그렇게 인터넷을 뒤지다가 맘카페에서 올린 리뷰 글도 발견할 수 있었다. 회원가입이 되지 않아 지금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올리기 전에 메일로 내용을 확인했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있었다.
맘카페의 효과 때문일까? 화정점의 매출은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었다. 일전의 부녀회장 사건 이후로 화정점의 매출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상당히 많이 올라왔다.
처음에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주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었는데 기우에 불과했었다.
주변 가게 사장님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는데 그들 역시 이곳 화정동의 주민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부녀회장의 악행에서 벗어난 그들은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가게의 단골이 되었고 덕분에 매출이 많이 오를 수 있었다.
거기에 이 맘카페에서 해준 리뷰, 배너 홍보를 기점으로 아이와 함께 매장을 방문하는 가족의 빈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아무래도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았는데 덕분에 가게에 필요한 일손도 많이 필요했다.
일반 손님들과 다르게 아이를 동반한 고객의 경우 손이 더 많이 간다. 수저, 포크나 가위 등 준비해 줘야 하는 식기도 더 많고 매운 거, 야채를 못 먹는다는 등 조리에 수정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가 소리라도 지르고 돌아다녀서 다른 고객들의 인상이 찌뿌려지기라도 한다면 아이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으니 가게 주인으로서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진상이라고 이야기하는 자기 자신의 아이만 생각하는 예민한 엄마들이 매장을 방문할 때면 진땀이 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보통은 아이가 먹을 음식을 따로 주문하지 않고 부모와 나누어서 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반 손님을 받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손은 더 많이 가는데 매출에는 차이가 없다.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노키즈존을 하는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돈카츠 가게는 그럴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돈카츠는 어른들이 많이 먹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예전에 직원들을 뽑을 때 아이들을 좋아하는 지 물어본 적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매일 많은 아이들을 봐야하는데 좋아하지 않고서는 일을 할 수가 없다.
한 예로 예전에 면접을 볼 때 자신의 꿈이 아이를 11명 낳아서 축구단을 만드는 것이 목표일 정도로 아이를 좋아한다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가 일을 그만 둘 때 아이는 한 명만 낳을 것이라고 말을 하고 떠나갔다.
나 역시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많이 낳을 생각은 없다. 간혹 자신의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식들 입에 밥 넣어주겠다고 챙겨주는 엄마들을 보고 있으면 짠한 마음이 절로 들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신상원이 알바를 더 뽑아야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그렇게 하라고 했다.
****
우리 가게에 대한 검색을 마친 나는 이번에는 광주 돈카츠 맛집을 검색해 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맛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광고로 올라온 글 들도 있겠지만 예전에 가게를 오픈하기 전에 시장조사를 하면서 다녔던 맛집들은 여전히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았다.
‘섭외가 잘 되고 있으려나.’
PD의 반응을 봐서는 아마 내가 제안한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할 것 같았다. 그러면 지금 보고 있는 이 가게들 중에서 대결을 펼칠 것이 분명했다.
다른 맛집들은 어떻게 장사를 하나 지켜보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가게와 가장 큰 다른 점이 있었다.
‘시그니처 메뉴!’
보통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맛집이라고 하면 그 가게를 상징하는 메뉴가 하나 씩은 있다.
‘야, 거기가면 그거 먹어야지.’하는 그런 메뉴들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 가게에는 그런 메뉴가 없다.
나는 가게 POS기로 가서 손님들이 주문한 메뉴의 분포를 찾아보았다. POS기 설정에서 고객들이 결제한 메뉴들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검색을 하자 가게의 메뉴별로 많이 주문한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동과 소바도 많이 올라 왔구나.’
확실히 신메뉴로 시작해서인지 이 전보다 우동과 소바의 판매량이 많이 올라왔다. 기존 메뉴에 우동과 소바만 추가로 주문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는데 매출을 올리기에는 아주 좋은 현상이었다.
‘그래도 제일 많이 나가는 것은 알로하 정식이네.’
알로하 정식. 일종의 모듬 세트였다.
가게에서 판매하는 히레카츠, 로스카츠, 새우 튀김, 거기에 치즈카츠까지 여러 가지 돈카츠를 조금씩 세트로 구성한 메뉴인데 매출의 25%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여러 가지를 다 먹어 볼 수 있어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 메뉴판의 제일 앞에 나와 있는 추천메뉴 이기 때문에 고객들의 주문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알로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고객들이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알로하 정식이 우리 가게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메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매출이 안 좋아?”
POS기를 붙잡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밖에 나온 조형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 아닙니다. 매출은 좋습니다.”
“그렇지? 힘들어 죽겠어.”
조형우는 힘들다는 듯 어깨를 토닥거렸다. 하긴 매일 같이 밀려드는 손님에 그의 손에는 밀가루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네, 항상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고민이 좀 있습니다.”
“고민?”
“네, 저희 곧 방송에 출연하잖아요. 그런데 보통 맛집들 하면 가게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메뉴가 하나씩 있는 것 같은데 저희도 그런 게 필요한 것 같아서 고민이 됩니다.”
방송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그에게도 알렸었다. 그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우동과 소바는 안 되겠지?”
그가 자신이 만든 신메뉴 우동과 소바를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새롭게 만든 신메뉴가 맛도 있고 고객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지만 우리는 돈카츠 가게이다. 어디까지나 메인은 돈카츠가 되어야 한다.
“네, 돈카츠로 해야 할 것 같아요.”
“기존에 있는 히레, 로스 중에 하나 골라서 홍보하는 건 어때? 이것도 맛있잖아.”
물론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기본이 되는 안심 돈카츠 히레와 등심 돈카츠 로스도 맛이 있었다.
실제로 알로하 정식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메뉴들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메뉴는 일본식 돈카츠 전문점이라면 다 하고 있는 메뉴들이었다. 우리 가게만의 시그니처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거는 다른 돈카츠 집에 많이 하고 있어서 방송에 나간다고 하면 이슈가 되지 못할 것 같아요.”
방송에 몇 개의 가게들이 나올 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가게와 같은 메뉴로 대결에 나서면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기는 한데…”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는 말에 나는 관심이 생겼다.
“어떤 거에요?”
“나중에 신메뉴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게 있어. 소고기로 만든 비프 카츠도 맛있고 또 요즘에는 그 제주도 흑돼지 있잖아. 그것도 부드러워서 돈카츠 재료로 많이 쓰더라.”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SNS를 통해서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비프 카츠는 이미 광주에서 유명한 가게가 있었고 흑돼지는 광주보다는 제주도에 있는 돈카츠 가게들에서 많이 알려져 있었다.
“저도 본 적어요.”
“또, 코돈부르나 나베도 괜찮은 것 같아.”
“코돈부르가 뭐에요?”
“아, 일종의 치즈카즈 비슷한 건데 속을 치즈, 야채, 마요네즈 등등 재료를 넣어서 튀긴 거야. 나도 일본에 있을 때 먹었던 건데 생각보다 맛있어. 나베는 먼지 알지?”
“네, 전골 말씀하시는 거죠?”
“어, 나베 국물에 돈카츠 넣어서 끓이는 건데 이것도 느끼할 것 같으면서 국물이 담백해서 괜찮아. 한국 사람들 뜨거운 국물 좋아하잖아.”
그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확실히 메뉴에 대해 잘 아는 그와 이야기 하니 여러 가지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일단은 말씀하신 것들 필요한 재료들 주문해서 테스트 한 번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오케이, 알겠어. 그럼 내가 준비해 놓을게.”
“네, 부탁 좀 드릴게요.”
그가 여러 가지 메뉴들을 말했지만 이상하게 확 끌리는 메뉴는 없었다. 앞으로 알로하의 미래를 책임질 수도 있는 시그니처 메뉴였다.
‘맛을 보고 조금 더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