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5 화
“단비야,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아까 거기 있던 여자가 저랑 같이 입사한 동기인데 얼마나 밉상인지 몰라요. 그런데 마지막에 표정 봤죠? 완전 부러워 하는 거?”
단비는 아까 있었던 일을 나에게 설명하면서 엄청 신나 보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어, 봤어.”
“그런데 오빠, 이 차는 어디서 구한 거에요? 빌린 거에요?”
“아, 아니야. 차 산 거야.”
나의 말에 단비는 조금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아까 이야기 들어보니까 엄청 비싸다고 하던데…돈 어디서 났어요?”
“어…일단은 할부로 샀어.”
“오빠…요즘 장사 잘 되는 거 저도 잘 알고 있는데…그래도 이렇게 막 돈 쓰면 안 돼요.”
단비는 내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하긴 나 같아도 여자친구가 집 대출금도 많이 남아 있는데 고가의 차까지 할부로 가지고 왔다고 하면 걱정이 될 것 같았다.
“걱정하지마. 2호점 매출도 엄청 좋아져서 충분히 감당 가능할 것 같아.”
“네, 오빠가 벌어서 쓰는 거니까…그렇다고 하면 다행인데…그래도 돈은 모을 수 있을 때 모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하긴 월급쟁이로 돈을 모아서 자그마한 집을 산 그녀였다. 나도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그녀처럼 생활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 지금부터 열심히 모을게.”
“네, 근데 차가 좋기는 하네요.”
“그렇지? 사실 오늘 단비가 해줘야 할 게 있어.”
“제가요?”
“응, 나 SNS에 올릴 사진 찍어주기.”
“SNS요?”
“광주에서 장사 잘 되는 사장들 보니까 자기 돈 번 거 자랑하면서 가게 홍보 많이 하더라고 사실 나도 그렇게 해볼까 생각해서 겸사겸사 차 산 거야.”
“그렇군요. 하긴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요. 경제가 어려워지고 물가가 높아지니까 가성비 좋은 제품들을 많이 찾는다고요. 또 그렇게 아끼다 보니 일종의 보상 심리로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관점에서 명품은 또 쉽게 쉽게 산다고 들었어요.”
“오, 맞아.”
“그렇다 보니 오히려 자신을 위해 플렉스 하는 모습들이 예전에는 허세로 느껴졌는데 지금은 좋게 보여지는 것 같다고 말이죠. ‘열심히 일한 당신 즐겨라!’ 이런 느낌이려나.”
“그거랑 비슷해.”
“그런 의미라면 걱정하지마세요. 제가 SNS에 예쁘게 올릴 수 있게 사진 많이 찍어 드릴게요.”
“고마워.”
내가 본 단비는 그렇게 낭비가 심한 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차곡차곡 돈을 알뜰히 모으는 여자였는데 비싼 차를 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백화점에서 일을 해서 그런 지 좋은 방향으로 해석해 주었다.
“그런데…걱정 되는게 또 있네요.”
“걱정?”
“네, 저번에 말 한 백화점 식당가 리뷰얼 있잖아요…백화점에 들어와서 공사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 할 텐데…차를 사버려서…”
그녀의 말에 나는 일전에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10월 정도에 공고가 나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뒤로 말이 없어서 잊어 먹고 있었다.
“아, 맞다. 그거 어떻게 됐어?”
“내부적으로 고민이 좀 많아서 회의가 늦어 지고 있는데 제가 오빠네 가게도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선정되면 돈이 많이 들어가게 될 텐데…어떻게 하죠?”
단비는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는데 나는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아직도 로또 당첨금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 만약에 된다고 하면 어떻게든 마련해야지.”
나의 말에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심한 듯이 말했다.
“혹시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제가 있는 만큼은 빌려드릴게요.”
솔직히 그녀의 금전적인 도움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아직 사귄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에게 선뜻 돈을 빌려준다는 그녀의 마음이 고마웠다.
“진짜? 내가 망해서 못 갚으면 어떻게?”
“안 망하게 열심히 하셔야죠. 대신 빌려 드린 만큼 알로하 지분은 저한테 주셔야 되요.”
똑 부러진 그녀의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중에 필요하면 말할게. 그 백화점 입점 업체 공고도 결정 되면 꼭 말해줘. 꼭 들어가고 싶으니까.”
선영이도 직원으로 이제 적응이 되었고 선우도 이제 수술이 끝나서 곧 있으면 돌아온다.
3호점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말처럼 백화점에 입점 할 수 있다고 하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광천동에 있는 뉴월드 백화점은 광주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지역으로 특히 식당가는 장사가 엄청 잘 된다고 소문이 났다.
매달 1억 이상의 매출을 찍는 가게들도 많다고 이야기 들었는데 좋은 기회였다.
또 여기서 이미지를 좋게 만들면 전국에 있는 뉴월드 백화점 지점에 들어갈 수 있는 명분도 생긴다.
물론 지금은 대다수의 뉴월드 백화점에 로이스가 들어가 있다. 돈까스라는 메뉴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시에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잘하면 로이스를 밀어내고 우리가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3호 점은 백화점을 노려보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자리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단비의 전화였다. 단비는 전화를 보고 웃으면서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머, 혜정아. 무슨 일이야?”
단비의 말에 나는 일전에 그녀가 소개 시켜 주었던 친구가 떠올랐다.
“뭐, 우리 오빠 가게를 촬영하고 싶다고?”
단비는 전화를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나도 촬영이라는 말에 관심이 생겨 고개가 돌아갔다.
“오빠, 혜정이가 자기 프로그램에 오빠네 가게 촬영하고 싶다고 하는데 가능하죠?”
“진짜? 당연히 가능하지.”
****
“자자, 이번에는 이렇게 찍어보자.”
상무지구 본점에서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음식들을 찍고 있었는데 맘카페에서 온 리뷰 담당자들이었다.
일전에 나에게 연락한 대로 그들은 무료 홍보를 위해 매장을 방문했는데 마침 내가 있어서 과정을 지켜 볼 수 있었다.
이런 일을 많이 해본 전문가 들이어서 그런지 음식들의 위치를 요리조리 바꿔가서면서 촬영을 했는데 뒤에서 지켜본 결과 메뉴판 사진으로 써도 될 만큼 잘 나온 사진들이 많았다.
“저 혹시 오늘 찍은 메뉴 사진들 저에게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진이요?”
“네, 나중에 메뉴판 바꿀 때나 다른 이벤트 홍보할 때 이미지로 좀 쓰려고 하는데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메일 주소 알려주시면 제가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바로 메모지에 메일 주소를 적어서 담당자에게 건내 주었는데 그가 말했다.
“그…카페 메인에 걸릴 배너도 이 주소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보시고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연락주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최근에 우동, 소바 신메뉴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너무나 좋았다. 맘카페에도 우동과 소바 위주로 홍보를 부탁했는데 이게 잘 알려지면 고객들의 연령층과 메뉴 호감도가 상승해서 매출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방송까지 타면 금상 첨화지.’
단비를 통해 연락 온 섭외전화를 바로 수락했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프렌차이즈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뻗어 나갈 필요가 있다.
부산에 있는 맛집을 내가 알기 어려운 것처럼 광주라는 지역적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이런 것을 타파하고 전국적으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방송과 너튜브 SNS를 이용하는 방법이 최고라는 생각이었다.
촬영 일은 20 일로 잡혔는데 일전에 너튜브로 매장을 촬영하기는 했지만 이건 그래도 방송국에 출연하는 것이니 조금 더 긴장이 되고 철저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 청소에 신경을 좀 써야겠어.’
매장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그때 가게 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나는 매장에 들어오려는 손님인가 하고 문을 열어주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사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문 밖에 서 있던 사람은 그 전에 우리 가게에 고기를 납품하던 한영 축산 사장님이었다. 그가 로이스와 계약하면서 사실상 우리와 관계가 끊어졌는데 왜 이곳에 왔는지 의문이었다.
“김 사장님. 잠깐만 할 이야기가 있는데…시간 좀 내어 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희 사이에게 할 이야기가 있을까요?”
“그러지 말고 조금만 시간을 내줘.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한영 축산 사장님의 얼굴은 일전과 다르게 한껏 수척해진 모습이었는데 나를 배신하고 떠나간 그였기 때문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왠지 로이스와 관련이 돼 있다는 생각에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알겠습니다.”
****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신 거죠?”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긴 나는 그에게 나를 찾아온 영문을 물었다. 그는 커피 잔을 몇 번 만지작 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염치 없는 거 잘 알고 있지만 혹시 우리랑 다시 고기 거래를 시작해 줄 수 없을까?”
“거래요?”
“그래, 내가 이야기 들어보니까 이 전보다 장사고 잘 되고 2호 점도 내서 필요한 고기가 많을 것 같은데…내가 이전보다 훨씬 저렴하게 고기 넣어줄게.”
그의 말처럼 장사가 잘 되었기 때문에 고기가 많이 필요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동성이 형님이 추천해준 업체가 너무나 일을 잘 해주고 있었다.
전문적으로 오래 일을 한 업체여서 그런지 고기의 상태도 그렇고 납품 기일도 아직도 넘겨본 일이 없었다.
가격도 저렴하게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고기를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로이스에 납품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어, 맞아.”
“로이스에서 저희 쪽에 고기 납품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할텐데요?”
애초에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를 떠났던 한영 축산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이제 로이스하고 일을 안 하려고 생각 중이야.”
“로이스와 거래를 끊는다고요?”
“그래…처음부터 나는 속은 거였어. 그래도 규모가 있는 외식 업체라 믿고 계약한 건데 믿은 내가 바보인거지.”
“무슨 사정인지 정확히 말씀해 주십시오.”
내 말에 그는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말했다.
“처음에 자기와 거래하고 있을 때 로이스에서 찾아와 말하더군. 자기들에게 고기를 공급해 달라고 말이야. 나도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계속해서 나를 설득했어. 추후 광주 지역 매장에도 물건을 납품할 수 있게 해주겠다면서 말이야.”
“거기에 넘어 가셨군요.”
“맞아. 그녀의 말처럼 나중에 광주에 있는 매장에 모두 고기를 넣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돈을 벌지는 못했어. 원래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최근 들어 리뷰 이벤트를 한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고기 단가를 더 낮춰 달라고 말하더군.”
나는 그의 말에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했다. 아무래도 리뷰 이벤트를 하면 공짜로 음식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손해가 발생한다. 그것을 아래 있는 하청 업체 쪽으로 떠넘기기 한 것이다.
“뭐, 자기들도 힘들다고 몇 달만 고통을 분담하자고 해서 참아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배달 비까지 떠넘기더군.”
“배달 비요?”
“어, 최근에 배달 비를 0원으로 낮춰서 주문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부담이 크게 되자 우리에게 다시 압박을 하는 거야. 받아 주지 않는 다면 다른 업체를 알아 볼 수 밖에 없다고 말이야.”
“그렇군요.”
배달 비를 낮춰서 받는 다는 것은 몰랐던 사실이다. 어쩐지 최근 들어 배달이 많아졌다고 해서 리뷰 이벤트 때문이라고 생각했지 배달 비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나의 불찰이다.
“근데 이거는 우리 보고 망하라는 이야기 밖에 안 되거든…그래서 로이스하고 거래 끊으려고 하는데 우리 다시 받아 주면 안 되겠나?”
주식을 하면서 인간은 욕심 때문에 선택과 후회를 반복하는 종족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사장님을 보고 있으니 이해가 되었다.
그는 무릎까지 꿇을 기세로 나에게 부탁했는데 나는 받아 줄 마음이 없었다. 이미 우리 사이에 믿음 깨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선택을 했고 이제 후회를 할 차례였다.
“네, 안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