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4 화
“아, 그런 것 아닙니다. 조그마한 가게를 하나 하고 있는데 요즘 장사가 잘 되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는데 나는 웃으면서 둘러댔다.
“아, 그러시군요. 요즘에 보면 어린 나이에 장사로 성공에서 외제차 구매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러신가 보군요. 대단하십니다.”
“네, 감사합니다.”
정동우의 말처럼 일찌감치 사업 수완이 있어서 젊은 나이에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있었다. SNS를 하다 보니 그런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실제로 몇몇 사람들에게는 DM으로 서로 친하게 지내자고 연락도 왔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벌어들인 돈을 좋은 집이나 차 그리고 명품을 사는데 쓰고 또 SNS에 자랑했는데 처음에는 그냥 단순 과시인 줄 알았는데 몇몇 젊은 사장들과 이야기 하면서 그게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영앤리치, 젊은 나이에 부자가 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그들은 스스로를 홍보하면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예전에는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사회, 경제 등에 경험이 있어야 부자가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경험을 쌓고 고생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고금리에 단순히 적금만 넣어도 집을 살 수 있었던 시대의 이야기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집값은 미친 듯이 오르고 있었고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한 경쟁도 강화되어서 젊은층들이 사회에 느끼는 벽은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단순히 월급만 모아서는 집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벽을 뚫고 어른들보다 먼저 부자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으니 사람들은 이런 어린부자들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예전에는 아이돌이나 배우 같은 연예인들이나 운동선수 들이 주로 이런 부자에 속했으나 요즘에는 주식, 코인, 사업, 너튜브 등 다양한 방법으로 빠르게 돈을 모은 젊은 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장사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부자가 된 모습을 자랑하고 그것을 부러워한 사람들이 어떻게 장사를 하고 있나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직접 매장에 찾아오고 또한 고객이 되는 것이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그동안 고생한 만큼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욜로적인 행동이지만 이것이 홍보의 효과도 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생각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좋은 차를 타고 다닌 것에만 관심을 가져서 자신의 소득을 넘어서는 차를 구매하는 카푸어들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었다. 물론 내가 걱정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 사무실로 가시죠. 인수 절차 알려드리겠습니다.”
****
“그럼 조심히 타십시오.”
다음날 오후 계약을 완전히 마친 나는 차 키를 받았다. 내가 할부 없이 결제한다고 하자 정동우가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는데 주식으로도 돈을 좀 벌었다는 말에 그도 이해를 했다.
다만 혹시 호영이가 물어보면 할부로 샀다고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돈을 많이 벌면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자신도 중고차 사업하면서 돈을 좀 벌었다고 알려지니 주변에 돈 빌려달라는 지인이 많다고 이해한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이게 제 차입니다.”
나는 여기까지 타고 온 포르테의 차 키를 넘겼는데 군데군데 연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동안 별탈없이 열심히 달린 녀석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섭섭한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차를 넘겨주고 새로운 차에 올라탔는데 확실히 기분이 좋았다. 가슴이 떨리는 기분이랄까?
솔직히 집을 살 때도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이 정도 느낌은 아니었다. 로또 때문에 편안 마음으로 살 수 있었지만 이런 차를 탈 수 있다니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차에 앉아 있었는데 호영이에게 전화가 왔다.
“야, 너 진짜로 그거 산 거 맞아?”
“어, 맞다.”
“미친놈이네.”
호영이에게 바로 보험을 넣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믿기지 않아 또 전화를 한 모양이다.
“보험은 넣었냐?”
“어, 넣었는데 나는 이게 맞는 지 모르겠다.”
“원래 인생 한 방 아니겠냐?”
“그 돈 있으면 차라리 집을 사지 그랬냐. 완전히 카푸어잖아.”
아직 친구들에게는 집을 샀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굳이 나서서 알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릴 생각이었다.
“네가 차 사라고 했었잖아.”
“나는 그냥 감당가능한 적당한 차를 사라고 했지. 누가 파나메라 사라고 했냐.”
“야, 자동차 시동 소리 들리냐? 죽이는데?”
나는 차에 시동을 걸면서 호영이에게 말했는데 그 소리를 듣더니 잔소리를 하던 호영이도 흥분했다.
“오, 장난 아닌데? 나 언제 태워줄래?”
“일단은 단비 먼저 태워주고 너는 결혼식장에서나 봐라.”
“단비? 아 여자친구?”
“어, 찬물에도 위 아래가 있잖아. 너가 먼저 옆 자리에 타는 건 예의가 아니지.”
“미친 놈. 이제 보니까 여자친구한테 자랑하려고 차 샀구만…”
“뭐, 겸사겸사지.”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비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좋은 차에 태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쨌든 부럽기는 하다. 그래더 열심히 일해라. 할부금도 그렇고 보험금도 장난 아니다. 이거 감당 못 해서 나락 간 사람들 많이 봤다.”
“당연히 일도 열심히 해야지.”
“그래, 사고나면 수리비도 장난 아니니까 조심히 타고 결혼식 날 보자.”
“오케이, 들어가라.”
호영이와 전화를 끊은 나는 바로 단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있으면 퇴근 시간이니 오늘 저녁에는 그녀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하고 싶었다.
“여보세요.”
[ 어,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나 이제 일 끝났는데 저녁 같이 먹는 거 어때? 곧 퇴근이지?”
[ 네, 좋아여. ]
“그럼 저번에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을래? 내가 그 쪽으로 차 가지고 갈게.”
****
“으, 춥다.”
단비는 백화점 뒤 편에 있는 도로에서 정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주로 택시와 자동차들이 잠시 정차를 하는 곳이었는데 픽업하거나 할 때 사람들이 이 도로를 많이 이용했다.
이제 10월이어서 그런지 아침 저녁으로 제법 날씨가 쌀쌀했다. 손을 비비면서 정훈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단비, 누구 기다리니?”
단비는 고개를 돌리고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봤는데 별로 반갑지 않은 인물이 서 있었다. 바로 자신의 입사 동기 서아름이었다.
“어, 아름아.”
두 사람은 뉴월드 백화점 입사 동기로 같이 연수를 받고 이곳 광주점에 배정되었는데 약간 라이벌의 관계였다.
“식품팀 요즘에 프로젝트 준비중이던데 일찍 퇴근 하네?”
“어, 주말에도 나와서 일했는데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일찍 퇴근 하려고…”
“그랬구나. 하긴 식품팀은 매출 올리려면 일 열심히 해야겠더라.”
식품팀에서 일을 하고 있는 단비와 다르게 서아름은 1층에 있는 명품 브랜드샵을 관리하는 영업 1팀에서 일했다. 가뜩이나 자존감이 강한 아이였는데 명품 브랜드들을 상대하더니 더 심해졌다.
“그래, 근데 여기는 무슨 일이야? 너 차는 주차창에 있잖아.”
“어, 내가 좀 피곤하다고 했더니 남자친구가 데리고 온다고 하더라고..”
“아, 그래?”
단비는 더 이상 길게 그녀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지만 옆으로 바짝 다가온 그녀는 재잘재잘 말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저번에 1층에 경품으로 있던 볼보 알지? 그거 튼튼하다고 소문 났잖아. 오빠가 그거 보더니 나도 사고 나서 다치면 안 된다고 이번에 바꿨잖아. 차가 커서 승차감은 별로 일 것 같았는데 완전 부드러워서 잠이 절로 온다니까.”
“그래, 축하한다.”
“아, 단비, SNS 보니까 너도 남친 생긴 것 같던데…지금 남자친구 기다리고 있던 거야?”
“어…맞아.”
“그래? 잘하면 볼 수 있겠네. 너희 오빠는 뭐 타고 다니니?”
솔직히 차를 물어보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런 개념이 없는 아이였다. 단비는 오빠가 어떤 차를 다니는 지 상관이 없었지만 괜히 아름이가 이런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싫어서 둘러 대었다.
“그렇게 좋은 차는 아니야.”
“그래? 하긴 차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아름이는 자신이 이겼다는 표정으로 말했는데 단비는 그것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입사 동기인데다 둘 다 일도 잘하고 예쁨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상사들도 그렇고 주변에서 비교를 많이 했었다.
물론 실력으로는 단비가 조금 더 높게 평가 받아서 진급을 먼저 했는데 그 이후로 틈만 나면 자신을 못 잡아 먹어서 안 달이었다.
그때 두 사람 앞에 차가 한 대 멈춰 섰는데 아름이가 말한 볼보였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아름이에게 달려와 말했다.
“자기야, 오래 기달렸어?”
“어, 나 지금 추워서 손 떨리는 거 보이지?”
“미안 미안,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혀서 오빠가 엉뜨 틀어놨으니까 빨리 가자.”
눈꼴시린 모습에 단비는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그때 남자가 물었다.
“이 분은 누구셔?”
“아, 나랑 입사 동기인 단비라고 해.”
“그래? 안녕하세요. 아름이 남자친구 박힘찬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현단비라고 합니다.”
단비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인사하는 남자를 외면할 수 없어서 받아주었다.
“네, 안녕하세요.”
“혹시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던거야?”
남자가 아름이에게 물었는데 아름이는 손을 저었다.
“아니야, 단비도 남자친구가 데리러 올 거야. 우리는 이만 가자.”
“그래.”
남자는 차 문을 열어주면서 아름이를 태우려고 했는데 갑자기 시선을 끄는 차 한 대가 단비가 있는 도로로 들어왔다.
커다란 배기음 소리와 잘 빠진 차체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는데 단비와 두 사람도 자연스럽게 차에 시선이 갔다.
서서히 속도를 줄인 하얀색 외제차는 볼보의 뒤편으로 멈춰 섰는데 그것을 본 아름이 말했다.
“우와, 오빠 저 차 너무 이쁘다. 저거는 뭐야?”
“포르쉐 파나메라 같은데…나도 인터넷으로 보기만 했는데 예쁘다.”
“그래? 저거 많이 비싼 거야?”
“비싸지. 아마 내 차 몇 대는 있어야 바꿀 수 있을 걸?”
“그래? 백화점 VIP 차인가. 너무 멋있다. 오빠도 빨리 돈 많이 벌어서 저런 차로 바꾸자.”
“알았어. 좀 만 기다려 오빠가 아름이도 저 차 태워 줄게.”
남자는 자신감 있게 말했지만 현실성이 떨어졌다. 아마 자신이 저 차를 사려면 월급을 10년은 모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자친구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때 차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남자는 세 사람이 있는 곳을 보면서 밝게 웃었는데 단비도 확인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비야!”
이곳까지 차를 타고 온 정훈은 기분이 좋았다. 빠른 속도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왠지 자신이 달리면 주변에 있는 차들이 피하는 기분이었는데 우월감이 들었다.
신이 나게 달려와서 그럴까? 단비를 발견하고 기분이 좋았다. 빨리 그녀를 차에 태우고 싶었다.
그때 그녀의 옆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보였다. 옆에 있는 여자가 정훈을 보면서 단비에게 물었다.
“단비야, 저분은 누구셔?”
“아, 내 남자친구야.”
단비의 말에 아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그래? 좋은 차 안 타고 다닌다고 하지 않았어?”
“저게 좋은 차야? 내가 차에 대해서 잘 모르거든…이제 가봐야겠다. 다음에 보자. 아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