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 화
광주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코로나 이전부터 많이 올랐다. 더군다나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 6월에 한 차례 더 크게 점프를 했는데 그 때문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오른 만큼 언제든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나 역시 이때 집값이 크게 올라서 기뻐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정은 이 곳 루인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꾸준히 오른 집값 덕분에 이곳 주민들은 좋아하고 있었지만 이미 이곳은 지어진 지 10년이 넘은 아파트로 역대 최고점을 달성 중이었고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역시 팽배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도 주변 신축 아파트에 비해서 호불호가 조금은 떨어져 있었다. 그나마 대단지 프리미엄으로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만약 이런 상황에서 갑질 아파트로 소문이 난다? 그 다음은 안 봐도 훤했다.
그래서 나는 이점을 강하게 어필하면서 회장을 설득했다. 다행히 회장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고 나를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었다.
“크흠…”
예민한 문제를 건드려서 일까? 다들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나마 심영숙이 분위기를 파악 하지 못하고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집값이 떨어지긴 왜 떨어져.”
악에 받친 목소리였는데 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 대꾸해주지 않았다. 이미 분위기는 나의 승리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회장이 나섰다.
“자자, 조용히 하세요. 지금부터 투표 진행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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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10표, 반대 0표
“지수 엄마…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결과를 받아든 심영숙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쌓아놓은 인맥이 있기 때문에 투표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받아든 결과는 나도 좀 놀랐다.
이렇게 압도적으로 입주민들이 그녀의 해임을 찬성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인성을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알 것도 같았다.
다들 그녀와 친하게 지내고 있는 척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알게 모르게 불만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이것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 분명했다.
“그럼 104동 입주민 대표 심영숙 씨는 해임하도록 하겠고 맡고 있던 부녀회장 자리도 같이 해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대표 선임에 관한 일정은 추후에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대표가 아닌 입주민께서는 나가 주시겠어요?”
회장은 노골적으로 심영숙을 쳐다보면서 나가달라고 이야기했는데 심영숙은 씩씩대면서 나에게 말했다.
“너, 이거 후회하게 될 거야.”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녀는 그런 나를 잠시 노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회의실의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자, 그럼 다음 안건으로 회의 이어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회장은 무거워진 분위기를 깨면서 회의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내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저도 이제 그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저녁 식사 안 드신 분이 있을까 봐. 저희 가게에서 판매하는 돈카츠를 조금 가져왔는데 여기에 놔둘테니 드시면서 회의 진행하십시오.”
이건 회장님에게 사전에 이야기를 해둔 것이었다.
오늘 일은 받아 들이기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입주민들에게 미움을 박힐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일종의 뇌물로서 돈카츠를 준비했다.
맛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시식회 느낌으로 우리 돈카츠를 먹어본다면 가게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식사 안 하신 대표님들 계신가요?”
회장의 말에 몇몇 사람이 손을 들었는데 그것을 본 회장이 말했다.
“그럼 식사하고 회의 이어서 진행하려고 하는데 다들 괜찮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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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아침 일찍 화정점으로 출근을 했다. 다시 한번 주변 상가들을 설득해보기 위해서였다.
어제 저녁에 진행한 시식은 성공적이었다. 그래도 자신들을 상대로 협박을 한 것으로 느꼈던 몇몇 입주민 대표들도 맛있는 돈카츠를 먹고 생각을 바꾼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나의 선한 이미지도 한 건했다. 불쌍한 아이들에게 돈카츠를 나누어 준 것이 또 한 건 올린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직위를 해제하고 민심도 어느 정도 얻었지만 나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악에 받친 그녀의 눈빛을 보니 계속해서 우리 가게를 공격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고소까지 진행할 생각이었다.
“어제 한탕 했다면서요?”
이미 몇몇 가게에는 소문이 퍼졌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인근 상가에 가게를 내고 루인아파트에 직접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네.”
“그 부녀회장 하는 짓 맘에 안 들었는데 정말 잘 됐어.”
확실히 이 전에 돌아다녔을 때와 다르게 그녀가 부녀회장에서 해임 됐다는 이야기를 해주자 적극적으로 나서는 가게 사장들이 많이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 고소에 필요한 자료들을 모으고 가게로 돌아왔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저는 심영숙 남편 장진남이라고 합니다.”
부녀회장의 남편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부인을 대신해서 이곳에 온 그를 보니 무슨 이야기를 할지 조금 긴장이 되었다.
“알로하 사장, 김정훈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와이프 관계된 일로 사과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가게에 피해를 끼쳐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혹시나 부인과 같은 막장이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생각과 다르게 그는 너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나에게 사과했다.
“아…네.”
“와이프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시는 여기나 다른 가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고개를 90도로 숙이면서 하는 사과의 말에 방금 전까지 아줌마를 고소하기 위해서 자료를 모으고 왔던 나는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괜찮습니다. 사장님께서 잘 못하신 것도 아닌데요.”
“와이프가 직접 와서 사과 드렸어야 하는데 못난 마누라라 이렇게 제가 대신 사과 드리겠습니다.”
진정성이 보이는 거듭된 사과에 조금은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모습에 내가 모아온 자료들을 일단 보여주었다.
“이것은?”
“그동안 인근 상가들이 당한 피해입니다. 사실 월요일에 이 건에 관해서 고소를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내 말에 장진남은 자료를 천천히 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양에 그도 놀란 것 같았다.
“염치없는 말씀이지만 제가 이렇게 사과 드릴테니 고소는 철회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남편은 다시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했는데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이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만 이제는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많은 가게들에게 고소를 하겠다고 이야기 하고 받은 자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용서한다고 해도 다른 가게들이 아주머니에게 화가 많이 나 있습니다.”
자료를 봐서 그런 지 장진남도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다시 부탁을 하였다.
“피해를 다른 가게에는 제가 직접 사과하고 적절한 보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직접 사과하고 피해를 보상한다는 말에 나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약간 맺혀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을 보고 있으니 나도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신다면 저도 고소까지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추후 이런 일이 또 발생하거나 다른 가게에 사과를 하지 않으신다면 그때는 진짜 어쩔 수 없이 고소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줌마를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곳까지 찾아온 남편을 봐서 그녀에게 한 번더 기회를 주기로 생각했다.
나의 말에 장진남은 연신 고개를 흔들면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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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게를 나가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이 힘이 없어 보였는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배우자의 잘못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처럼 보였는데 언뜻 보았던 피해보상 금액이 상당했기 때문에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나마 남편은 착한 사람인 것 같아서 용서를 해주었다. 만약 부부가 똑같이 개념이 없었다면 고소까지 진행했을 것이고 그 이후에는 용서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정신 차렸으면 좋겠네.”
부녀회장의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고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부디 남편을 봐서라도 그녀가 자중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래서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그러는 건가?”
마누라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남편을 봐서 그럴까? 결혼에 대한 호의감이 올라왔는데 문득 안 그런 사람이 생각났다.
“단비는 천사네 천사.”
한번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단비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사귀고 난 뒤로 갑자기 여러 가지 일이 생겼기 때문에 남자친구로서의 역할을 잘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회사 일로 바쁘기는 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나에게 연락도 자주하고 집에서 요리도 자주 해주었다.
가게 때문에 바쁜 나를 잘 이해해주고 맞춰주었는데 최고의 여자친구였다. 나는 오랜만에 그녀와 데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어, 오빠. 무슨 일이에요? ]
“어, 단비야. 나 이제 일 끝나서 전화해봤어. 아직 회사야?”
오늘은 일요일 본래 그녀는 쉬는 날이었다. 하지만 일전에 이야기한 리뉴얼 관계된 문제로 정신이 없는지 그녀도 오늘도 잠시 회사에 간다고 했다.
[ 네, 이제 거의 끝났어요. ]
“그래? 그럼 내가 데리러 갈게. 저녁 같이 먹자.”
[ 진짜요? ]
“어, 오늘은 밖에서 저녁 먹자.”
[ 좋아요, 저 그럼 얼른 일 마칠게요. 도착하면 전화하세요. ]
외식을 한다는 말에 그녀가 좋아했다. 아무래도 서로 출퇴근 시간이 달라서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보니 서로 집에서 기다리다가 만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밖에서 밥을 먹자고 해서 그런지 그녀가 조금은 들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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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일하는 백화점으로 간 나는 차를 주차하고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 네, 오빠. 도착하셨어요? ]
“어, 방금 도착했어. 여기 지하 3층 주차창이야.”
[ 네, 그럼 지금 내려갈게요. ]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다. 다녀오면서 무엇을 먹을지 찾아보았는데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단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를 부르려고 했는데 단비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여자였는데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아서는 상당히 친해 보였다.
“단비야.”
나는 조용히 다가가서 단비를 불렀는데 단비가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어, 오빠. 왔어요?”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어.”
단비는 나에게 인사를 해주고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여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이쪽은 제 고등학교 친구 혜정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단비 남자친구 김정훈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단비가 이렇게 잘생긴 남자친구를 숨기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 저는 단비 친구인 강혜정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