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6 화
“공장 상황이 별로 안 좋긴 하죠. 원래 여기 사장님이 심장병으로 쓰러졌는데 그때 공장장이 직원이랑 거래하던 업체들 다 데리고 딴 살림 차렸다니까요. 오갈 곳 없는 사람 받아주고 공장장 자리까지 맡겼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거지.”
“저도 그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된 거죠?”
“현태가 열심히 공장 관리하면서 새로운 업체 계약 뚫어 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그 다음에 바로 코로나 터지고 요새 누가 새롭게 사업 늘리는 사람이 있나요. 계약도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 거지.”
“그렇군요.”
“일이 없어도 매일 나와서 쓸고 닦고 하는 것 볼 때마다 짠해 죽겠어요. 예전에 현태가 대기업 다니면서 기술이랑 경영 배워서 나중에 자신의 식품 공장 키우겠다고 했을 때도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말이에요.”
저번에 왔을 때 깔끔했던 공장의 모습이 인상에 남았었다. 그때는 작업 시작 전과 후에 청소를 열심히 하는 줄 알았는데 작업을 하지 않았어도 매일 관리를 하고 있다는 말에 조금 신뢰가 갔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요한 이야기는 다 들은 것 같아서 이제는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붙잡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혹시나 일 때문에 오신거면 여기에 한번 맡겨보세요. 내가 지인이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태생이 선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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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이 되자 나는 청원 F&C로 향했다. 솔직히 어제 김현태 사장은 만나지 못했지만 옆 가게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나니 그에게 조금 마음이 쏠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원래 사람은 자신이 아는 쪽으로 유리하게 말을 하는 법이니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싶어서 이곳으로 찾아왔다.
공장 가까운 곳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청원 F&C 입구 쪽에서 큰 언성이 들렸다.
“야, 허동민 사장님. 이러시는 게 어디 있습니까! 이건 처음하고 이야기가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뭐가 이야기가 다르다는 거야!”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청원 F&C의 허동민 사장과 한 남자가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나는 차 뒤로 몸을 숨기고 유심히 쳐다보았는데 소리치는 남자는 직원이었던 것 같았다.
“직원들 다 끝까지 같이 가자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하나 둘 씩 쫓아내면 어떻게 하십니까!”
“내가 언제 쫓아 냈다고 그래. 지금 공장 사정이 안 좋으니까. 잠깐 쉬고 있으면 내가 다시 부른다고 했잖아.”
“저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믿기 싫으면 다른 직장 구하면 될 거 아니야. 또 한 번 공장 찾아와서 소리치면 그때는 영업방해로 경찰 부를 거야.”
그 말을 끝으로 허동민은 공장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남자는 터벅터벅 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사연인 지 궁금하여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차 사이에서 튀어나와 말을 거는 나 때문에 그가 조금 놀라서 소리쳤다.
“깜짝이야. 누구세요?”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여기 공장에 관해서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잠깐 시간 되실까요?”
****
근처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긴 나는 명함을 그에게 주면서 물었다.
“저는 상무지구에서 돈카츠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정훈이라고 합니다.”
“네, 저는 양주혁이라고합니다.”
“저희 가게에서 만드는 소스를 공장에 맡기려고 찾아왔다가 우연치 않게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나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여기에 일 절대 맡기지 마십시오. 허동민 사장. 아주 영악한 사람입니다. 계약하시면 나중에 좋은 꼴은 못 보실 겁니다.”
“그런가요?”
“네, 저도 예전에는 아닌 줄 알고 그를 따랐는데 지금은 후회가 되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원래 저와 허동민 사장은 다른 공장에서 같이 근무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장에서 일이 있고 나서 허동민 사장이 저를 꼬시더군요. 자신이 공장을 차릴테니 같이 가자고 말이죠.”
이제 보니 양주혁이라는 이 남자도 그 전에 두레푸드에서 일을 했던 직원인 모양이다.
“처음에는 고민이 좀 되었습니다. 그 전에 있던 공장 사장님이 정말 잘해주셨거든요. 그런데 허동민 사장이 공장 거래처들을 다 가져간다는 이야기에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딸린 식구들이 있어서…”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공장 처음 만들고는 그 전에 공장에서 일했던 것과 큰 차이가 없이 진행이 되었는데 조금 안정이 되자 허동민 사장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요?”
“네, 그러면서 원래 일하던 식구들이 하나 둘씩 공장에서 쫓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런 가만히 계셨습니까?”
“처음에는 공장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코로나 감염의 위험이 있으니 인력을 감축해서 운영하자고 했습니다. 직원들도 다들 그렇게 받아 들였고요.”
“그런데 바로 퇴직 되셨나보네요.”
“네, 제가 이것을 알고 반대했는데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자. 결국 저도 강제로 퇴사 처리 해버렸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강제로 퇴사 당하셨으면 고용노동부에 신고는 하셨을까요?”
“신고를 하긴 했는데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처음에 공장을 차릴 때 근로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6개월 짜리 단기 계약으로 일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죠?”
“지금은 공장 오픈하고 정신이 없으니 그 전에 받던 월급으로 일하고 6개월 지나면 새롭게 연봉 협상해서 올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믿고 따라온 직원들 다 그렇게 계약했는데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일을 잘하게 되자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양주혁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허동민은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데리고 온 것 같았다.
“질이 안 좋은 사람이군요. 그런 사람인 줄 모르셨습니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양의 탈을 쓴 늑대인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전에는 일도 잘하고 다른 직원들에게도 진짜 잘하고 했는데 전 사장님이 갑자기 쓰러지시고 무슨 욕심이 생겼는지 자신이 직접 공장 운영하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사람이 변했습니다.”
“두레푸드에서는 안 그랬던 모양이군요.”
“그것을 어떻게?”
내가 두레푸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양주혁은 놀랐다.
“아, 사실 그곳과 여기에 소스 샘플 제작을 맡겼는데 어느 업체로 선정을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셔군요. 그럼 두레푸드로 하십시오. 지금 생각하면 현태에게도 참 몹쓸 짓을 한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삼촌이라고 하면서 저를 많이 따랐었는데…”
양주혁의 말에는 후회가 가득해 보였는데 이미 지나 버린 일이었다.
“사정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마음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
양주혁과 헤어지고 마음을 정한 나는 일단 허동민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사장님. 알로하의 김정훈입니다.”
[ 네, 사장님. 안 그래도 전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허동민은 나의 전화를 아주 밝은 목소리로 받았는데 나는 그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네, 죄송하지만 계약은 두레푸드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거 말씀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 두레푸드요? 그렇게 결정하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저보다 더 싸게 부르던가요? ]
“솔직히 맛은 두 업체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단가 역시 그렇고요. 대신 저는 일을 하는데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두 업체 간의 신뢰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았을 때 두레푸드가 더 마음에 끌려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 그렇군요. ]
신뢰라는 말에 자신이 그동안 한 일을 알고 있는지 허동민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으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는데 그때 허동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저와 두레푸드에 관한 이야기를 다 들으신 것 같은데 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처음에 저는 두레푸드를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형님이 쓰러지고 나셔서 저한테 아들을 부탁하시더군요.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대를 이어서 보필하는 머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말이죠. ]
그의 목소리는 원래 약간 밝은 톤이었는데 지금은 한 없이 차분한 목소리였다.
[ 한 평생을 공장에서 노동자로 살아서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도 아들이 있습니다. 그 아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머슴의 자식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장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제 아들도 비빌 언덕이 있는 사장 아들로 만들어 주고 싶었거든요. ]
양주혁이 그가 두레푸드에 있을 때와 다르게 변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어떤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런 이유인 줄은 몰랐다.
[ 두레푸드로 결정하셨다고 하니 저도 다른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를 너무 나쁜놈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알로하가 장사가 잘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
그의 말을 들으니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바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지만 나는 결국 한 마디 해버렸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아드님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셨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군요. 정말 아드님을 위해서 그랬다면 남의 가정에 피해를 주면서 공장을 세우는 모습이 아닌 스스로 밑바닥부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어야죠. 아드님이 사장님을 통해서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나의 말에 허동민의 말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그가 하는 말은 스스로 한 행동을 위로하기 위한 위선에 불과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남의 등의 칼을 꽂은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럼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
전화를 끓은 나는 이번에는 바로 두레푸드의 김현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김현태입니다. ]
“네, 사장님. 저 알로하입니다.”
[ 네네, 알고 있습니다. ]
“두레푸드와 계약 진행하고 싶은데 지금 공장에 계실까요?”
[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사장님. 지금 공장에 있습니다. ]
계약을 한다는 나의 말에 김현태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럼 제가 지금 그 쪽으로 가겠습니다.”
[ 네, 사장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두레푸드와 계약을 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그에게 가서 계약에 관해서 세부적인 내용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차에 올라탔는데 갑자기 전화기가 또 울렸다.
<< 화정점 신상원 >>
신상원의 전화였다. 평소에는 잘 전화를 하지 않는 그였다. 그는 보통 매장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전화를 했는데 그의 번호가 뜨자 나는 걱정이 되었다.
“여보세요.”
[ 아, 사장님. 저 신상원입니다. ]
“네, 매장에 무슨 일이 있나요?”
[ 그 맘카페에 저희 가게에 관한 글이 올라왔는데 이게 내용이 좀 심한 것 같아서 확인해 보시라고 연락 드렸습니다. ]
“맘카페요?”
[ 네, 제가 내용 캡쳐해서 보내 드릴테니까 한 번 확인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