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 화
<< 일본식 돈카츠 전문점 알로하 화정점 >>
9월 28일 월요일, 화정점의 신규 오픈이 진행 되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매장을 방문했는데 홀에서 열심히 준비중인 신상원의 아내, 김수진을 만날 수 있었다.
“사장님, 오셨어요.”
“네, 안녕하세요. 매장 엄청 깨끗한데요?”
제사 때문에 강진으로 내려가기 전에 잠깐 들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막 공사가 끝난 시점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청소 업체를 부르기는 했지만 신상원 부부도 나와서 정리를 한다고 들었는데 원래 일하던 곳이어서 그런지 정리가 깔끔했다.
“주말에 열심히 청소 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홀을 확인한 나는 이번에는 주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주방에서는 신상원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한승이도 이곳에 와 있었다.
지난 주에 이곳에서 일할 주방과 홀 알바를 뽑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혼자서 일을 하기에는 정신도 없고 어려울 것 같아서 한승이를 이곳에 며칠 출근 시키기로 했다.
상무지구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선우도 꽤 실력이 올라와서 이제는 우동과 소바를 혼자 만들 줄 알았고 조형우는 경력이 있어서 돈카츠 만드는 것을 금방 배웠기 때문에 믿어 보기로 했다.
“사장님, 나오셨습니까!”
“어, 한승아. 일찍 나왔네.”
“오픈인데 미리미리 준비해야죠.”
“그래, 며칠만 고생 좀 해주라.”
“네, 알겠습니다.”
한승이는 충성을 하면서 자신을 믿으라는 제스처를 취해는데 나는 그에게 웃어주고 신상원에게 다가갔다.
“기분이 어떠세요?”
“주방은 크게 바뀐 것 없어서 비슷한 것 같았는데 이렇게 돈카츠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으니 조금 낯설기는 하네요.”
솔직히 말해서 주방은 아예 바뀐 것이 없었다. 식재들만 우리가 쓰는 식재로 바꿔서 준비했고 홀은 그나마 홍보물과 가게를 꾸며주는 소품들이 알로하의 스타일로 바뀌어서 조금 티가 났다.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입구였는데 기본 알로하처럼 눈에 확 띄게 만들었다.
“금방 익숙해 지실 겁니다.”
“네, 제 가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곧 그렇게 되실겁니다.”
원래 신상원의 가게였지만 내가 인수했다. 그리고 신상원을 직원으로 썼다. 그에게 나중에 다시 넘겨 준다는 약속을 했지만 이거는 그가 하기에 따라서 달렸다.
만약 그가 설렁 설렁 일하고 이곳의 평판이 안 좋아진다고 하면 그를 직원으로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열심히 해주기를 바랬다. 그런 관점에서 아직까지는 합격이었다.
“냉장고 정리 잘 하셨는데요?”
그동안 공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서야 물건들이 들어왔다. 정리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로이스에서 일할 때도 이렇게 급하게 오픈을 하면 식재 정리를 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충 쑤셔 넣는 경우가 많았는데 생각보다 잘 정돈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 좀 일찍 출근했습니다. 애 엄마가 도와줘서 할 수 있었어요.”
예전에도 느꼈지만 김수진은 영양사로 일을 해서 그런지 이런 정돈을 잘했다. 신상원이 그녀의 장점을 잘 배우고 흡수한다면 위생적인 것도 염려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커피 사왔는데 다들 한 잔씩 하고 일하시죠.”
“네.”
나는 아침부터 고생하는 직원들을 위해 맛있는 커피와 간식을 사 왔는데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한 모금 하려는 순간 가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어머, 회장님. 안녕하세요.”
김수진이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아는 척을 했는데 나이가 한 50은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에, 사장님은 그대로였구나. 나는 또 가게 모양이 바뀌어서 접고 다른 곳으로 간 줄 알았는데. 지나가다가 궁금해서 들어와 봤어.”
“아, 저희가 메뉴만 바꿨어요.”
“그래요, 내가 여기 메밀 좋아했는데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아쉬웠는 줄 몰라.”
“그러셨구나. 감사합니다. 돈카츠로 바꾸기는 했는데 소바도 판매하고 있으니까. 자주 드시러 오세요.”
“그러게. 나중에 모임 있을 때 여기 와서 먹어야겠네요. 그럼 수고해.”
김수진은 아주머니와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나는 김수진이 그녀를 회장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누군지 궁금했다.
그래서 누구인지 그녀가 나가자마자 물어보았다.
“누구입니까?”
“아, 여기 옆에 아파트 단지 부녀회장님이세요.”
“아…그렇군요. 예전에 자주 오셨나 보네요?”
“네, 자주 오기는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안 왔으면 좋겠어요.”
김수진은 방금 전 친근하게 말한 것과 다르게 질색이라는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왜 그러는지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요?”
“식당하면서 고객들 가려서 받으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솔직히 말해서 저 부녀회장 엄청 진상이거든요.”
“진상이요?”
“아파트 부녀회장이라고 내세우면서 서비스 엄청 달라고 해요.”
“그래요?”
“네, 자기가 입주민들에게 이야기 잘 해주겠다고 하는데 여기가 아파트들 끼고 하는 동네 장사잖아요. 혹시나 가게에 대해서 안 좋은 소문 낼까 봐. 조금씩 서비스로 줬는데 저번에는 외상으로 하자고 하면서 그냥 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나중에 주던가요?”
“당연히 안 줬죠. 그냥 처음부터 공짜로 먹을 심상이었던거에요.”
“저런 진상이 맞네요.”
자영업을 하면서 많은 진상이 있지만 저런 진상은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해도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서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공평과 이해였는데 내가 어떤 고객에게 서비스를 주기로 했으면 다른 고객들에게도 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서비스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 사람은 부녀회장이니까 서비스 주고 나는 안 준다?
이것은 다른 고객들이 보기에는 부당한 처사였다. 괜히 손해보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다. 예외가 되는 상황이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이해가 되는 상황일 때는 서비스를 줘도 상관없다.
고객이 주문을 했는데 우리가 실수로 다른 음식이 나갔다. 그래서 이것은 서비스로 드리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다른 고객들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왜 저기만 서비스로 주냐고 따지는 고객들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였기 때문에 부녀회장이 그 전에 했던 행동들은 받아 들일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또 올 것 같은데…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수진은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예전에는 그녀가 사장이나 다름 없었으니 그냥 서비스로 주거나 외상으로 다는 것으로 끝냈지만 이제는 그녀의 권한 밖의 일이었다.
“다음에 또 오면 사장님이 바뀌어서 안 된다고 하세요.”
내 말에 김수진이 걱정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될까요? 아파트에 악의적인 소문 내면 어떻게 하죠?”
“우리가 잘못한 게 없는데 나쁜 소문을 내면 거기에 맞게 대응하면 됩니다. 제가 봤을 때 그녀가 부녀회장이라고 해서 굳이 휘둘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
“그럼 고생 좀 해주세요. 저는 공장에 좀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화정점에서 점심 영업을 도와주었는데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아무래도 직장인들이 적은 곳이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예전에는 만석이 들어서는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오픈 첫날인 오늘 매장이 가득 찼다.
이유를 살펴 보았는데 코로나로 학교들이 학생의 절반만 등교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학교를 가지 않는 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주변 상가 2층 이상에는 학원들이 꽤 많이 들어와 있었다. 직장인은 별로 없었지만 돈카츠를 좋아하는 젊은 학생들의 수요가 꽤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오픈하는 것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11시부터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쉽게 몸을 뺄 수 없었다.
결국 앞치마를 입고 영업을 도와 주었는데 점심 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 시간이 되었다.
“네, 들어가세요. 사장님.”
“혹시 문제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화정점에서 나온 나는 동천동으로 향했다. 이번에 공장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생각보다 광주에는 소스 제조 공장이 별로 없었다.
서울과 경기도 부근에는 제법 규모도 있고 나름 유명한 제조 공장들이 많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일단은 거리가 가까워야 좋을 것 같아서 광주 있는 소스 공장들을 먼저 방문할 예정이었다.
<< 두레푸드 >>
네비게이션을 찍을 때 주변에 뭐가 없어서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자 공장은 생각보다 한적한 곳에 있었다.
크기도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곧이어 사무실로 보이는 곳에서 한 명의 남자가 나왔고 그는 나에게 인사를 했다.
“혹시 저번 주에 전화 주신 사장님 이실까요?”
“네, 맞습니다. 돈카츠 전문점 알로하 사장 김정훈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두레푸드 사장을 맡고 있는 김현태라고 합니다”
자신을 사장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젊은 모습이었다. 나보다 어려 보여서 그냥 직원인 줄 알았는데 사장이라는 말에 조금은 놀랐다.
“전화로 간단하게 말씀드린 것처럼 매장에서 사용하는 소스 OEM 맡기려고 찾아왔습니다.”
“네, 일단 이쪽으로 들어오시겠어요. 사무실에서 이야기 나누시죠.”
나는 남자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 있는 테이블에 앉자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커피랑 녹차 있는데 마실 거 드릴 까요?”
“커피 한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의 말에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직접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그를 쳐다보고 있자 그는 약간 머쓱하다는 듯이 말했다.
“조그마한 공장이다보니 사무실에 직원은 따로 없습니다.”
현태는 막 탄 따뜻한 커피를 나에게 주었는데 말했다.
“소스 만든다고 하셨는데 혹시 어떤 소스일까요?”
“네, 우동이랑 소바 그리고 양배추에 뿌려먹는 참깨 소스입니다.”
사실 이번 기회에 돈카츠 소스도 바꿀까 생각을 해 보았다. 이것 역시 기성 제품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이왕 바꾸는 것 같이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형우가 돈카츠 소스 같은 경우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알고 있는 레시피로 한 번 만들어 본 적이 있었는데 맛있기는 했지만 기존의 제품과 크게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서 일단은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군요. 예전에 우동이랑 소바 소스는 만들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아, 지금도 만들고 계시나요?”
“지금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버님이 계실 때 몇몇 업체에서 의뢰를 받아서 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거래가 종료해서 만들고 있지 않습니다.”
하긴 사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어 보여서 조금 의아해했는데 아버지의 공장이었던 모양이다.
“아버님께서 공장 물려 주신 건가요?”
“아, 작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셔서 돌아가셨는데…그 뒤로 제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런…상심이 크셨겠습니다.”
“네,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혹시 소스 레시피 있을까요? 저희 공장에서 제조 가능한지 견적 봐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