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0 화
“이쪽에 있는 거는 은정이 주고 이거는 네가 먹어라.”
제사를 마친 다음날 나는 아침에 일어났다. 광주로 가기 위해서 준비를 했는데 엄마가 남은 제사 음식들을 싸주면서 말씀하셨다.
“엄마, 너무 많이 주셨어요. 그리고 저 나물 잘 안 먹어요.”
엄마는 전이랑 생선 나물 등을 많이 싸주셨는데 내가 혼자 먹기에는 조금 많은 양이었다.
“그래도 가져가. 나물은 고추장에 비셔서 먹으면 맛있을 거야. 그러니까 버리지 말고 밥 먹을 때마다 꼭 챙겨먹어.”
약간의 잔소리와 함께 엄마는 반참을 담아 주셨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감사의 인사를 했다.
“네, 잘 먹겠습니다.”
차에 반찬을 넣어둔 나는 운전석 옆자리 서랍에서 그리고 미리 준비한 봉투 2개를 꺼내서 엄마에게 주었다.
“이게 뭐니?”
“용돈이에요. 제사 준비하느라 고생하셨는데 맛있는 거 드세요.”
“진짜? 고마워. 아들 그런데 왜 봉투가 2개야.”
“하나는 아빠 거에요.”
아버지와 고모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인사를 드리러 가셨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다. 나는 사람이 없을 때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지금 몰래 전해 드렸다.
용돈까지 전해드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고모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올라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첫째 고모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고모는 옷을 다 입고 준비를 다 마친 나를 보고 말했다.
“정훈이 벌써 가려고?”
“네, 고모. 가게에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어젯밤 제사가 끝난 후 나는 잠을 자기 위해 방에 누웠지만 아버지와 고모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는 밤 늦게까지 들렸다.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동안의 서운함을 푸셨던 것 같다.
“그래, 아버지 환갑잔치 네가 준비 하기로 했다면서…”
“네, 광주에서 할 예정이에요.”
“그래, 잘 생각했다.”
“고모도 오실 거죠?”
“당연히 가야지. 혹시 고모가 도와줄 것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해라.”
예전에 아버지와 대립했을 때를 생각하면 고모는 무서운 이미지였는데 나이를 드셔서 일까? 많이 유해지신 것 같았다.
하긴 나만 해도 그랬다.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면서 은정이랑 연락도 잘 안 하고 서먹해졌었다.
그런데 알로하 오픈하고 여러 가지 도움도 받으면서 친해졌고 이번에 조카를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쓰였다.
예전에 연락 안 하고 지낼 때는 몸은 편해도 항상 마음이 불편했는데 안 서방도 그렇고 사이 좋게 지내고 나니 지금은 마음이 편했다.
아마 고모도 예전에는 싸웠지만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 자신과 환갑이 된 오빠를 보면서 더 이상 자존심 때문에 시간 낭비하지 않으시려고 먼저 사과를 하신 것 같았다.
아직 철이 없는 사촌들을 보면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고모들이 조금은 바뀐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고모. 감사합니다.”
****
광주로 돌아온 나는 바로 매장으로 향했다. 매장에는 10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는데 영업 준비가 한창이었다.
“사장님, 오셨어요.”
매장으로 들어서자 선영이가 나에게 인사를 했는데 오늘 여기 온 가장 큰 이유는 그녀 때문이었다.
“그래, 선영아. 이쪽으로 앉을래? 사장님이 말한 거 생각해 봤어?”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는데 일전에 그녀에게 제시한 직원에 관련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어…네. 사장님. 생각했습니다.”
“그래? 어떻게 할 거야?”
“저, 직원으로 한 번 일해볼게요.”
그녀에게서 기대했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는데 나는 기분이 좋았다. 2월부터 알게 되었으니 벌써 그녀를 알게 된 지 6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지각도 한번 없이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했던 그녀였다. 앞으로 점포를 늘릴 생각이라 새로운 직원이 필요한 시점에 든든한 우군이 생긴 것이다.
“진짜?”
솔직히 권유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받아 들일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다. 요식업이 알바로 일할 때는 그럭저럭 괜찮지 직원으로 일한다고 하면 3D 직종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기업 입사를 꿈꾸면서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던 그녀였다.
“네, 사장님 말씀 듣고 생각해 봤는데 적성에도 맡는 것 같고 어제 하연이 언니하고도 이야기 해봤는데 괜찮다고 말씀해주셔서 한번 해 보려고요.”
“그래? 잘 생각했다.”
어제 내가 쉬는 동안 하연이와 직원에 관한 것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예전에 하연이하고도 일에 관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나를 따라오고 나서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것만 열심히 하면 다른 것은 거의 터치를 하지 않았고 또 다른 곳에 비해서 월급도 많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하연이였기 때문에 선영이에게도 좋은 이야기를 해준 것 같았다.
“그럼 저는 언제부터 직원으로 일하게 되는 걸까요?”
“다음 달부터 바로 직원으로 변경해줄게. 내일 모레 월급도 상의하고 정식으로 근로 계약서 작성하자.”
오늘이 9월 27일 다음 달이라고 해봤자 얼마 남지 않았다. 내 말을 들은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은 그동안 일하던 거랑 똑같이 하면 되는데 혹시 내가 일전에 부탁한 레시피 만드는 거 다 됐을까?”
“아, 그거 다 해 놨어요. 오늘 퇴근하고 파일로 보내드릴게요.”
조형우가 만든 레시피, 그는 간단하게 필기로 적어서 나에게 전해 주었었는데 나는 그것을 선영이에게 보내서 문서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새로운 직원이 올 때 교육할 때나 또 다음 주에 OEM 공장에 갈 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래? 고마워.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부탁할게.”
“네, 저도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래, 이제 됐어. 가서 오픈 준비해도 돼.”
나는 이제 매장을 잠시 돌아보려고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왜? 무슨 할 말 있어?”
내 말에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네, 사실 제가 어제 퇴근하고 저녁에 야식을 시키려다가 발견했는데요. 사장님 혹시 알고 계실까 해서요.”
“뭔데?”
나의 물음에 그녀는 말 대신 배달 어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로이스가 나타나 있었다.
“저기 반대편에 있는 로이스 배달 시작했더라고요.”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선영이도 나와 로이스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 것 같았다
“진짜네.”
****
백화점과 아울렛에 입점한 점포에서는 배달이 힘들다. 이런 곳에서는 식당이 고층이나 지하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는데 배달을 해주는 기사들이 거기까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또 오토바이는 안전 상 이유로도 주차장에 잘 들여보내지 않기 때문에 혹시나 배달을 하더라도 밖에서부터 걸어와야 해서 시간이 더욱 걸렸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배달대행업체들도 들어오기를 꺼려했다.
그렇다고 로이스가 아예 배달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서울, 경기 일부 로드샵의 경우 배달을 시행하고 있었다.
나도 그쪽에서 일하는 점장들에게 배달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많이 들었고 알로하의 경우 배달을 시작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최지연은 배달을 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하더라도 최소 6개월은 지나고 매장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된 다음에 배달을 할 것 같았는데 이렇게 빨리 시작하고 있다니 완전 의외였다.
‘리뷰 이벤트도 하고 있네.’
나는 배달 어플에 나온 로이스를 자세히 살펴 보았는데 우리와 다르게 리뷰 이벤트도 하고 있었다.
리뷰를 남겨주면 미니 돈까스, 파스타, 샐러드 중 하나를 서비스를 주는 이벤트 였는데 벌써 꽤 많은 리뷰들이 남겨져 있었다.
‘최지연 많이 급했나 보구나.’
최지연이 로이스를 바로 건너편에 오픈을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많이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신경이 쓰지 않았다.
이미 매출의 격차가 상당히 벌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손님이 기다려야 할 만큼 만석이 차고 있지만 로이스는 널널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송에 출연한 이후로 더욱 격차가 벌어졌는데 더 이상 신경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벌어진 매출 격차를 로이스가 배달로 따라잡으려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나는 로이스를 따라서 리뷰 이벤트를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처음 배달을 시작할 때도 생각한 것이었지만 로이스가 리뷰 이벤트를 하고 있자. 다시 고민이 되었다.
내가 처음에 리뷰 이벤트에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 않은 이유는 배달보다도 본점이 장사가 잘 되어야지 오래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가게를 오픈할 때 광주 시장 조사를 할 때도 그랬다.
광주에서 이름있는 유명한 맛집. 특히 몇 십년 동안 명맥을 이어 온 맛집들을 보면 포장은 해주지만 배달은 안 해주는 곳이 많다.
물론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이런 곳도 배달은 시작하기 시작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방문하는 고객들을 만족 시켜 단골을 만들고 입소문을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가게들이 롱런을 했다.
알로하는 배달 전문점이 아니다. 수제 일본식 돈카츠 전문점이다. 돈카츠가 먹고 싶은 고객들에게 신선한 고기를 튀겨서 맛있게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배달은 시간이 지나서 돈카츠를 먹기 때문에 알로하의 진정한 맛을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정말로 먹고 싶은데 방문하기 어려운 고객들을 위해서 포장과 배달을 시행했었다.
단순히 매출을 올리거나 규모만 늘리는 것을 생각했으면 리뷰 이벤트도 막하고 매출을 올리면서 가맹점을 끌어모을 수 있다.
그럼 빠른 시일 내에 로이스에 버금가는 프렌차이즈를 만들 수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식으로 반짝 이름을 알리고 사라지는 식당, 카페 등 브랜드들을 많이 보았다. 나는 그들의 전처를 밟고 싶지 않다.
내가 돈을 벌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를 믿고 매장을 연 신상원 같은 사람들은 망할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리뷰 이벤트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매장을 알리는데 이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배달 어플이 홍보를 대신 해주는 효과가 있으니까 말이다. 이미 꽤 알려진 상무지구 본점에는 효과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막 생기는 매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2호점에는 리뷰 이벤트를 해야겠다.’
나는 상무지구 본점보다 내일이면 오픈을 하는 2호점에서 리뷰 이벤트를 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금요일까지 공사를 끝냈고 신상원과 그의 와이프가 어제부터 화정동 매장으로 가서 물건도 정리하고 오픈 준비가 한창이었다.
주변이 아파트 단지였기 때문에 집에서 포장으로 주문해 먹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배달을 시작할 예정이었는데 바뀐 매장을 알리기 위한 홍보 방법을 고민했었는데 리뷰 이벤트가 좋을 것 같았다.
‘화정동 뿐만 아니라, 여기 상무 지구도 새롭게 만들어 내는 우동과 소바를 리뷰 이벤트로 집어넣자. 메뉴도 홍보하고 가게도 알리고 괜찮은 것 같은데?’
배달을 시작한 로이스를 보고 충동적으로 한 생각이었지만 리뷰 이벤트 때문에 로이스에 주문할 고객들을 조금이라도 빼앗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그래, 이번 기회에 격차를 더 벌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