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 화
“뭐라고?”
“어, 진짜 네 말처럼 얼마 안 하네. 안 그래도 차 바꾸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바꿔야겠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는데 민교가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야, 우리끼리는 허세 부릴 필요 없다. 그냥 한번 태워달라고 하면 돼지. 무슨 산다는 드립을 치냐? 완전 재미없거든?”
내 말에 민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그런 그에게 말했다.
“왜? 나는 사면 안 되냐?”
“아니, 말이 안 되잖아. 차도 적당히 수준을 맞춰서 사야지. 똥차 타던 애가 갑자기 무슨 벤츠야.”
자기는 빚을 내서 차를 타고 다니는 주제에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자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대출 끌어다가 차사는 건 말이 되고?”
“하, 나는 갚을 능력이 되잖아.”
민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래, 나도 능력이 돼. 너도 아까 말했잖아. 나 장사 잘 되는 것 같다고.”
“그게 이거랑 같냐? 구멍가게 장사 잘 된다고 해서 얼마나 잘 된다고…”
“한 달에 천 오백 정도는 버는데? 그 정도면 살 수 있는 거 아니야?”
“뭐? 천 오백?”
“어, 요새 그 정도 벌어. 어때? 이 정도면 나도 살 수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매출을 공개하자 녀석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긴 아버지 회사 밑에서 거의 용돈식으로 월급 받아 생활하는 녀석에게는 큰 금액이니까 말이다.
그때 약간 언성이 높아진 우리를 보고 있던 성일이 나섰다.
“에이, 형들 오랜만에 봤는데 왜 그래요.”
민교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고모가 화해를 해서 모이게 된 자리에서 언성을 높이는 게 좋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이쯤하고 그만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일이 나의 신경을 거슬렀다.
“근데 정훈이 형. 아무리 기분이 나빴다고 해도 천 오백만 원은 과장이 좀 심하네요. 그거 그냥 총 매출이죠?”
“총 매출?”
성일의 말에 민교가 물었다.
“네, 가보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미소가 SNS에 올려서 가게 크기 대충 알고 있어요. 그 정도 크기면 나올 수 있는 매출이 한계가 있는데 제 눈은 못 속이죠. 저 경제학과 출신입니다.”
“그렇지?”
생각해보니 성일이도 예전부터 밉상이었다. 둘째 고모는 예전부터 공부를 빡세게 시켰는데 그 덕인지 녀석은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좋은 대학에 간 것은 상관이 없지만 그때부터 명절에 모이면 ‘지방 국립대는 경쟁력이 없다.’ 등과 같이 스트레스 받는 말을 많이 했었다.
“네, 아마 노무비랑 임대료 제외하고 나면 순이익은 얼마 안 될 것 같은데? 제 말이 맞죠? 저 대원그룹 재경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안 통하죠.”
대원그룹에 취직했다는 이야기만 듣고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는 안 들었는데 그래도 나름 괜찮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 자랑이 심한 성일을 보고 있으니 나는 배알이 꼴렸다.
“그래, 좋을 대로 생각해라. 근데 미안해서 어떻게 하지? 순수익인데?”
“순수익이요?”
“어, 이번 달에 그 정도 벌었다.”
내가 순수익이라고 말하자 성일은 상당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신입사원인 자신의 월급에 3배 정도 되는 금액이니까 말이다.
“에이, 구라치지 마세요.”
녀석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하긴 녀석이 믿든 안 믿든 상관없었다. 내가 실제 그 정도 능력이 된다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다.
“거짓말 아니야.”
“그 정도 버는데 왜 포르테를 타고 다니세요?”
“아…그냥 별로 차에 큰 관심 없었는데 민교 말 들으니까 관심이 생겨서. 아까 그래서 물어본 거야.”
내 말에 민교와 성일 모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성일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는지 현실을 부정했다.
“아, 알았다. 형 뉴스 나왔다는 이야기 들었는데 그거 때문에 잠깐 매출이 뻥튀기 된거죠?”
완전히 모르고 사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뉴스에 나왔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뻥튀기?”
“네, 방송 출연하고 사람들이 갑자기 몰리면서 매출이 확 올랐을 거에요. 그러면 충분히 그런 순수익 나올 수도 있죠. 근데 형 그런 거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평균 매출을 이야기 하셔야죠. 평균 매출!”
물론 성일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가게 확장하고 너튜브랑 뉴스에 출연하면서 일시적으로 사람들이 몰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점포도 더욱 늘릴 예정이었고 매출은 앞으로 더욱 오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더 이상 구구절절 사연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매장이 늘어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그래, 알아서 생각해라.”
나는 이것을 끝으로 그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성일은 포기할 줄을 몰랐다.
“역시 그런 거죠? 저도 이번 달에 주식으로 좀 벌었거든요? 형처럼 따지면 저는 평균 월급 천만 원에 연봉은 1억이 넘겠네요.”
주식을 하고 있다는 성일의 말에 조금은 관심이 생겼다.
“뭐? 천만 원.”
“네, 이번 달 제 주식 수익이 오백만 원 넘겼거든요. 월급이랑 합치면 그 정도 됩니다.”
성일은 엄청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귀여운 맛이 있었다.
민교는 그런 성일을 보면서 물었다.
“야, 너 주식 언제부터 한거야? 그런 말 없었잖아.”
“대학교 다닐 때부터 모의로 주식 투자 했었어요. 같이 공부하는 모임도 있고요. 이번에 취직하고 나서 마이너스 통장 뚫었는데 수익률이 나쁘지 않아요.”
“그래? 모의 투자랑은 좀 다르지 않아?”
“다르기는 한데 저처럼 제대로 경제 공부한 사람한테는 안 통하죠. 형님 기다리세요. 저도 돈 벌어서 조만간 차 뽑겠습니다.”
이미 선풍제약으로 큰돈을 번 나였다. 선풍제약을 매도하고 다른 종목으로 바꾸면서 주식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수익이 나쁘지 않았다.
주식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존버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물론 아무런 계획이 없는 무지성 존버는 잘못된 것이지만 적절한 확률에 기반하여 존버하니 승률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평일 오전에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는 9시부터 10시까지는 주식을 보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투자하고 있었는데 성일이 돈을 벌었다고 하니 관심이 생겼다.
“그래? 수익률이 얼마인데?”
“저 이번에 서로투어 투자해서 100% 먹었습니다.”
“100%? 얼마 안 먹었네?”
****
“네?”
성일은 얼마 안 된다는 정훈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최근에 거리두기 단계를 낮추면서 다시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여행관련주들이 꽤 많이 올랐다. 그것을 미리 예측해서 저점에 들어가 상당한 수익을 볼 수 있었다.
같이 투자 공부하는 모임에서도 완벽한 저점매수였다고 감탄했는데 주식의 주자도 모를 것 같은 정훈이 무시하자 화가 났다.
“형도 주식 하세요?”
“나? 당연히 하고 있지. 요새 주식 안하는 사람도 있냐?”
정훈이 주식을 한다고 이야기하자 성일은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자신을 얼마나 수익을 내었기에 자신을 무시하는 지 확인하고 싶었다.
“형은 얼마나 버셨어요?”
“음…나도 그렇게 많이는 못 먹었어. 한 160% 먹었나?”
“160%요? 어떤 거 사셨는데요?”
160%를 먹었다는 정훈의 말에 성일은 놀라서 정훈에게 물었다.
“나? 선풍제약으로 먹었지.”
선풍제약이라는 말에 성일은 이해가 되었다. 자신도 관심 있게 지켜보던 종목이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들어갈지 말지 고민을 했던 종목인데 들어가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저점 대비 몇 배는 오른 종목이어서 정훈의 말처럼 그정도 수익률을 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주식에서 중요한 것은 수익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분산해서 투자하도보면 한 종목 정도는 저정도 수익률을 달성할 자신이 있었다.
투자해서 얼마나 벌어들였느냐가 중요하니까 말이다.
“얼마나 버셨는데요?”
성일은 실제로 벌어들인 돈은 얼마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정훈은 수익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했다.
“아니야, 수익은 다음에 알려 줄게. 들어가자. 이제 제사 시작해야지.”
정훈의 행동에 성일은 확신가졌다. 그가 실제로 번 돈은 얼마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에이 그러시는 게 어딨어요. 원래 주식인들끼리 계좌 인증을 해야죠.”
“계좌 인증?”
“네, 자신의 손해는 숨기고 얼마 벌었다고 말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이죠. 제가 먼저 보여드릴게요.”
성일은 자신있게 자신의 핸드폰을 열어서 정훈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벌어들인 돈은 진짜 였으니까 말이다.
“오, 진짜로 벌었네.”
“그럼 제가 거짓말 하겠어요. 이제 형님이 인증하실 차례입니다.”
“아, 이거 해도 되나 모르겠네?”
정훈은 쭈볏대면서 핸드폰을 꺼냈는데 곧이어 성일은 그의 주식 계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 십, 백, 천, 만….잠깐만요.”
정훈이 보여준 핸드폰 화면에는 선풍제약의 수익률이 나와 있었는데 그의 말처럼 160%가 넘는 수익률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성일이 놀란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수익률 옆에 찍혀 있는 수익이 말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거 맞아요?”
“어, 그럼 가짜냐?”
“어떻게 1억 5천만 원을 버셨어요?”
선풍제약으로 벌어들인 돈은 1억 5천만 원이었다. 그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성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 이야기를 듣고 민교도 달려 들었다.
“가게 차리기 전부터 조금씩 했었는데 벌써 이렇게 되었네? 주식 쉽던데? 종목 좀 알려줘?”
****
아버지가 절을 올리기 시작하자 사촌들과 나는 뒤에서 바라보았다. 집 밖에서 내가 큰 돈을 번 사실을 보여준 이후로 사촌들은 기가 많이 죽었다.
자신들은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할 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속이 시원했다.
솔직히 사촌들이라 말은 안 했지만 만날 때마다 많이 까불까불했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가 절을 올리고 나자 다음은 고모들이 절을 올렸다.
“아버지, 오랜만에 와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오빠랑 사이좋게 지낼게요.”
첫째 고모는 할아버지에게 조용히 말하면서 절을 올렸는데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절을 올리면서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로또 당첨되게 해주시고 장사 잘 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 초등학교 때 한자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지구상에 많은 종교와 사상이 있지만 그중에서 굳이 하나를 믿어야 한다면 자신은 유교를 믿겠다고 말이다.
학생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서 묻자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나님, 부처님은 수억 명의 소원을 듣고 있지만 우리 조상님들은 오로지 자손들의 소원만 듣고 계시거든 영적인 능력이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조상님을 믿는 게 확률이 높지 않겠니?”
나도 거기에 동감해서 그 뒤로는 다른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고 명절이나 제사 때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었다.
그리고 이제 그동안의 기도가 먹혀든 것 같아서 이번에는 더욱 정성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