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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장사를 합니다-88화 (88/225)

제 88 화

평소 아버지에게 진지한 말을 잘하지 않는 나였기에 내가 갑자기 무거운 분위기를 잡으면서 말하자 아버지는 관심을 보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왜, 그러냐.”

“아버지, 저번에 가게 확장할 때 오천만 원 주셨잖아요. 저는 진짜 그거면 충분합니다. 이제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아버지랑 어머니 노후 준비하세요.”

나는 최대한 진지하게 말했는데 아버지는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말씀하셨다.

“그래, 나도 은정이에게 들어서 돈카츠 가게 장사가 지금 잘 되고 있다는 거 알고 있다. 그래도 장사가 언제까지 잘 될지 모르잖아.”

아무래도 코로나 시국이어서 그런지 괜찮다는 나의 말에도 아버지는 걱정을 하셨는데 나는 이번 기회에 좀 더 확실히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아버지도 보셨지만 저희 가게 뉴스에도 나오고 단골 손님도 엄청 늘어서 매출이 잘 나와요. 이번 달에는 순수익으로 천 오백만 원 벌었습니다.”

내가 구체적인 금액까지 말하면서 이야기 하자 아버지는 이번에는 꽤나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뭐? 천 오백만 원?”

“네, 그리고 가맹점 문의도 많이 들어왔어요. 그 중에서 한 곳이랑 계약해서 지금 안 서방이 공사 중이고요. 아마 다음 주에는 2호 점 오픈 할 거에요.”

“2호 점?”

“네, 프렌차이즈 사업 시작하려고 법인도 만들었습니다. 점포는 앞으로 계속 늘릴 거구요. 평범한 가게 주인이 아니라 이제는 어엿한 사장님이라고요. 예전에 월급 받고 다니던 아들 아닙니다.”

나는 살짝 오버해서 말했는데 아버지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시면 나에게 진지하게 물으셨다.

“그게 다 사실이냐?”

“네, 돈 바짝 모아서 아버지가 주신 돈 보태서 집도 살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남은 인생은 어머니랑 여행이나 다니면서 편하게 보낼 생각하세요.”

“그래. 그렇게 일이 잘 되고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장사가 잘 된다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으신 아버지의 표정은 엄청 좋아지셨다.

은정이에게 듣기는 들으시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식당이다 보니 ‘잘 되어봤자, 얼마나 잘 될까?’ 라고 생각하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말이다. 그래도 나중에 집 살 때 도움이 필요하면 아빠에게 말해라. 도와줄 테니까.”

솔직히 이 정도 말하면 이제 아버지가 더 이상 내 걱정을 안 할 줄 알았다. 이거 로또 당첨 사실까지 말씀 드려야 하나 고민이 되었는데 아버지의 다음 말에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거는 너한테 주는 돈이 아니라 며느리에게 주는 돈이니까. 그러니까 부담 같지 말고 꼭 말해.”

“며느리요?”

“그래, 그래도 시아버지가 집 사는데 돈 좀 보태줘야지.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겠냐?”

나는 아버지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 아버지가 돈 이야기를 하셨을 때 아들이 투룸에 살고 있으니 그게 마음이 쓰이셔서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고모들이 자식들에게 다들 도움 줬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해서 하는 이야기 말이다.

“아버지도 저 결혼 기다리고 계셨어요?”

사실 그동안 아버지는 나에게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아직 결혼 시킬 마음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른 넘은 자식 결혼하기를 안 기다리는 부모가 있을까?”

“그동안 결혼하라고 별로 강하게 말씀 안 하셔서 기다리시는 줄 몰랐네요.”

“사실 네 결혼보다는 아빠는 손주를 기다리고 있다.”

“손주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손주를 기다리고 있다니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했다.

“그래, 요즘 친구들이 깨톡방에서 얼마나 자기 손주 자랑하는 줄 아니? 그거 보고 있으면 부러워 죽겠다.”

아버지는 나에게 쑥스럽다는 듯이 말했는데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이미지는 진중함과 무거움 그 자체였다. 실제로 만나도 단 둘이 대화는 별로 많이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남들 모르게 그런 것을 부러워하셨다니 정말 의외였다.

“그러셨어요?”

“그런데 네가 결혼을 해야…손주를 볼 수 있을 것 아니냐. 고모들 말 들으니까 광주 집 값이 많이 오른 것 같은데 혹시 네가 그런 게 부담스러워서 여자도 안 만나고 그렇게 지내는가 해서 내가 말해 본 거다.”

“은정이…도 있잖아요.”

“결혼한 지 좀 됐는데 은정이는 아직도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쉽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아…”

나는 아이를 기다린다는 아버지의 말에 하마터면 은정이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말할뻔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말 하려다 가까스로 참기는 했는데 조금 있으면 은정이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할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네, 좀만 기다려 보세요.”

“왜? 만나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냐?”

나는 은정이가 전해 줄 소식을 기다려 보라는 뜻으로 이야기했는데 아버지는 다른 것으로 오해하신 모양이다.

하지만 단비는 좋은 사람이니 굳이 아버지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네, 여자친구 있어요.”

여자친구가 있다는 나의 말에 아버지는 기뻐하셨다.

“그래? 만난 지는 얼마나 됐냐?”

“아직 얼마 안 됐어요. 좀 더 만나보고 결혼하게 되면 인사 시켜 드릴게요.”

솔직히 단비를 부모님에게 소개하기에는 아직 너무 빨랐다. 원래 결혼을 하려면 최소 1년은 만나봐야 한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냥 여자친구가 있다는 정도만 알려드렸다.

“그래, 기다리고 있으마.”

****

그 뒤로 밖에서 아버지와 이런저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버지, 환갑 잔치는 제가 준비할게요.”

“뭐? 환갑 잔치? 그런 거 필요 없다. 그냥 가족들끼리 간단하게 밥 먹으면 되지.”

“아니에요. 이번에 고모들하고 화해하셨으니 다들 모시고 근사하게 해요. 제가 해드리고 싶어요.”

“그래?”

“네, 저 이제 그 정도 능력 됩니다.”

“그건 좀 생각해 보자.”

그래도 내가 환갑을 준비해준다고 하자 아버지는 싫지 않으신 것 같았다. 하긴 자식이 생일을 챙겨준 다는데 싫어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

솔직히 이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아버지와 한층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때 집으로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차 한 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는 내 차가 주차 되어 있는 곳 바로 옆에 주차를 했는데 그것을 보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애들 왔나 보구나. 이제 슬슬 제사 지낼 준비 해야겠다.”

이제 보니 오후에 드라이브를 나갔던 사촌들이 이제야 돌아온 것이었다.

차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아버지는 제사 준비를 하기 위해 집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차로 다가갔다.

“형, 스피드가 장난 아닌데요?”

“그러게. 나도 이렇게 밟아 본 것은 처음인데, 역시 차는 벤츠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차를 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는데 보니까 가격이 꽤 나가는 비싼 차였다. 일전에 차에 대해서 알아봤을 때 가격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차에 대해 자랑하고 있던 민교가 나를 발견하고 인사를 했다.

“어, 정훈아. 오랜만이다. 언제 왔어?”

“응, 아까 왔어. 이거 뭐야. 네 차야?”

민교는 나와 동갑이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서로 말을 놓고 편하게 지냈었다. 하지만 서로 나이가 먹고 민교가 아이를 가지고 결혼하면서 그 뒤로는 아예 연락이 뜸해지게 되었다.

“어, 이번에 뽑았어.”

“민교 형, 저 완전 부러워요. 저도 빨리 형처럼 좋은 집하고 차 사고 싶어요.”

민교의 옆에서 그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둘째 고모의 아들인 성일이었다.

그는 나와 민교보다 두 살 어렸는데 어렸을 때부터 고모들끼리는 왕래가 잦았기 때문인지 나보다 민교와 훨씬 친해 보였다.

“너도 좋은 데 취직했잖아. 이번 기회에 하나 뽑아. 그 정도 능력 되잖아.”

“그럴까요?”

민교의 말에 성일은 진짜로 차를 뽑을 기세였는데 나이가 먹었지만 아직도 철이 없는 것 같은 사촌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나는 장남이어서 그런지 항상 어떤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촌들은 어렸을 때부터 고모들이 너무 오냐 오냐 하면서 키우기는 했었다.

“야, 정훈이. 너 요새 장사 잘 된다며 나도 너튜브에서 너희 가게 나오는 거 봤어.”

“어, 다행히 고객들이 좋아해주셔서 장사가 잘 되는 편이야. 너는 결혼생활 어때?”

“결혼? 당연히 안 괜찮지…너는 결혼 진짜 천천히 해라.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야. 너무 빨리 한 것 같아.”

“뭐라고?”

나는 민교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갑자기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집을 구해야 했고 그 때문에 고모와 아버지의 사이가 틀어졌다고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화해해서 다행이지만 사건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민교가 이제 와서 결혼을 후회하는 것 같다는 말을 하니 좀 어이가 없었다.

“결혼하고 아기 태어나니까 진짜 내 시간이 없어. 진짜 차 안 샀으면 스트레스로 진작에 돌아 버렸을 거야.”

“근데 차는 무슨 돈으로 어떻게 산 거야?”

민교는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금형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공장이 잘 돌아가서 돈을 꽤 잘 벌었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 공장 운영이 잘 안 되고 어려워지고 있다고 들었다.

“이거? 담보 대출 땡겼지.”

“담보 대출?”

“어, 이번에 집 값 많이 올라서 추가 대출 가능하더라고 그래서 질러 버렸어.”

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는 민교를 보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차에 대한 욕심을 버린 나였다.

뭐…아예 포기했다는 것보다 뒤로 미루었다는 것이 맞았는데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살아가는 것 같은 민교를 보고 있으니 나의 정신건강에 해로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축하한다. 들어가자.”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민교가 쳐다보면서 말했다.

“정훈이, 갑자기 왜 저래?”

“글쎄요? 부러워서 그러는 거 아닐까요?”

“그런가?”

나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사촌들의 이야기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웬만해서는 무시하려고 했는데 다음에 들려오는 말이 나의 신경을 거슬렀다.

“이거 정훈이 형 차 아니에요? 아까는 안 보이던데…”

“그러네. 이거 차종이 뭐지? 처음 보는 건데? 이런 차도 있었냐?”

“이거 포르테 아닌가요? 준준형으로 알고 있는데…지금은 단종 됐을걸요?”

“그래? 야, 정훈이 부러워서 그러냐? 너도 차 한 번 태워줘?”

나는 약간 약 올리는 듯한 민교의 말에 화가 났다.

“뭐라고?”

“아니, 너 어렸을 때부터 내가 좋은 장난감 가지고 놀면 부러워 했었잖아. 말 만해 내가 너도 드라이브 시켜 줄게.”

민교의 말은 어느 정도 맞았다. 고모부의 금형 공장이 잘 될 때 민교는 다른 사촌들이 가지지 못하는 장난감을 많이 가지고 놀았는데 어렸을 때는 그것이 부럽기는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예전에도 그랬지만 왠지 그런 것을 자랑하면서 으스대는 민교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그래? 저 차는 얼마나 하는데?”

“오, 이제 관심이 생기냐? 얼마 안 해. 한 8천만 원 정도 하나?”

“그래? 진짜 얼마 안 하네? 나도 하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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