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 화
“오, 저도 이게 더 맛있는 것 같아요.”
평소에는 매장에서 별로 말이 없는 선우도 이번에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눈치도 보지 않고 계속해서 수저로 소바를 먹었는데 그만큼 맛있었다.
“그래? 그럼 이렇게 만드는 레시피도 내가 적어줄게.”
“네, 일단 다들 배고프실텐데 식사하시죠.”
맛있는 것을 먹어서 그럴까? 아까까지는 그렇게까지 생각이 없었는데 배가 고파 오기 시작했다.
“그래, 다들 먹고 싶은 거 말해. 내가 금방 만들어 줄테니까.”
“저는 그럼 소바 한 그릇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
밥을 먹은 나는 고민이 되었다. 우동과 소바 모두 그 전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그래서 일까? 바로 매장에 적용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거 바로 매장에서 적용하려고 하면 아침에 손이 많이 갈까요?”
“우동이랑 소바?”
“네, 마음에 들어서 바로 바꾸고 싶은데 아침에 준비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면 차라리 나중에 소스 OEM 공장에 맡겨서 나오면 변경하려고요.”
저번에 조형우가 발전시킨 참깨 소스는 이미 만들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안 그래도 그거에 관련된 OEM 공장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이왕 만들 때 우동과 소바 소스도 같이 만들 생각이었다.
프렌차이즈로 가려면 일을 편하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다. 아무래도 가맹점을 받을 때 이런 조리 과정을 단순화해야지 맛도 똑같이 유지할 수 있고 일의 능률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내가 한다고 하면 일하면서 해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는데…한승이가 한다고 하면 그래도 30분 정도는 더 일찍 준비 해야 될 것 같은데…”
30분. 미리 재료를 준비해 두고 한다면 시간을 더 단축 시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면 바로 적용해도 될 것 같은데 실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나야 상관없지. 나도 어차피 바꾸려고 마음먹었으면 빠르게 바꾸는 게 좋다고 생각해. 손님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더 맛있는 음식 만들어 드리면 좋잖아.”
“네, 그러면 지금 들어와 있는 시판 소스들 떨어지면 바로 바뀐 레시피 적용하는 것으로 가시죠.”
손이 좀 많이 가고 힘들겠지만 그 만큼 손님이 많이 들어오면 직원이나 알바를 뽑아서 보충하면 된다.
가뜩이나 위생등급제로 한동안 고생한 한승이에게 또 새로운 일을 시키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지만 바꾸는 게 맞았다.
‘한승아, 미안하다. 내가 빨리 소스화 시켜줄게.’
“아, 그러고 보니까 여기는 슬러시아가 없구나.”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상원이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슬러시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슬러시아요?”
“네, 자동으로 살얼음을 만들어 주는 육수 냉장고인데…소바소스 미리 만들어서 거기에 넣어두면 편하거든요.”
“오, 그런 게 있었어요?”
“네, 지금 화정동 매장에는 그거 있어요.”
지금 가게에서는 커다란 통에 소바소스를 만들고 냉동고에 넣어둔 다음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그때 덜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는 우리 가게에서 소바가 그렇게 인기가 많은 메뉴가 아니어서 많이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 새로운 레시피로 만들어 낸다면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약 주문량이 늘어난다고 한다면 지금과 같이 만드는 것은 조금 힘든 방법이었다.
“그거, 그럼 그거 어디서 샀는지 저도 좀 알려주세요.”
“왜, 그거 기계 살려고?”
내가 관심을 보이자 조형우가 나에게 물었다.
“네, 아침에 재료 준비하는데 시간 걸리는데 소바라도 미리 만들어서 육수냉장고에 보관해두면 시간 아낄 수 있잖아요. 떨어지면 그때그때 만들면 되고요.”
“그래, 그거 좋겠다.”
생각해보니 내 말이 맞았는지 조형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도 그때 중고로 산 거라서 정확히 어디 회사 제품인지는 모르겠네요.”
“아, 괜찮아요. 어차피 현장에 사람 있으니까 제가 전화로 물어볼게요.”
****
“어, 안서방 거기 적힌 제품 번호 좀 나에게 알려줘.”
점심 식사를 마친 나는 안 서방에게 전화를 걸어서 슬러시아가 어떤 제품인지 물어봤다.
“원세…SL-80. 오케이 고마워.”
나는 안 서방에게 들은 제품명을 받아적고 이번에는 소스 OEM 공장에 문의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네,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공장의 사장님들에게 직접 전화를 하고 방문을 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생산을 대신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깨끗하게 음식을 만드는 지 직접 확인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 매장이 늘어나면 생산량도 늘어날텐데 그것도 감당이 가능한 지에 대해서 사장님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미래에 중요한 사업 파트너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할 말이 있는 지 이하연이 다가와서 물었다.
“사장님, 우동이랑 소바 오늘 먹은 거 바로 매장에 적용 시키는 거에요?”
“어, 지금 쓰고 있는 재료만 떨어지면 바로 바꿀 생각이야.”
“그럼 혹시 메뉴판도 바뀌나요?”
나는 이하연의 말에 메뉴판을 쳐다보았다.
지금 메뉴판에는 우동, 소바와 관련된 메뉴판들이 나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고명이나 겉모양이 바뀌는 것이 아닌 국물이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메뉴판을 바꿀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메뉴판? 아니 메뉴판은 안 바꿔도 될 것 같은데…왜?”
“아, 보통 신메뉴 나오면 신메뉴 출시 하고 홍보하잖아요. 저희도 그렇게 하나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 확실히 우리 가게는 단골 손님이 많아지고 있었지만 기존에 우동과 소바를 먹었던 고객들의 재주문율은 많이 떨어졌는데 이런 인식을 변화 시킬 필요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러네. 메뉴판은 안 바꿔도 배너는 설치하는게 좋겠다.”
나는 이하연의 말에 바뀐 우동과 소바를 위해 버너를 설치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가 베너를 설치한다고 하자 이하연이 의견을 하나 더 추가했다.
“사장님, 그러면 우리 우동, 소바 들어간 세트 메뉴 만드는 거 어때요?”
“세트 메뉴? 런치 세트처럼?”
지금 우리 가게에서 세트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메뉴는 런치 세트 하나였다. 점심시간에만 판매하는 메뉴였지만 인기가 엄청 좋아서 판매량으로 따지면 1등이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우동과 소바가 들어간 1인 세트 메뉴를 말하는 줄 알았으나 그녀의 의견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저는 2인 세트 생각했어요.”
“2인 세트?”
“네, 저희 가게에 2인 커플 고객님들이 엄청 많이 오시잖아요. 그런데 오시면 항상 두 명이서 먹을 수 있는 세트 메뉴 없냐고 물어보시거든요. 그래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음…”
하연의 말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지금 알로하는 너튜브, 블로그, SNS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이것은 젊은층들이 많이 사용하는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저녁과 특히 주말에 2인 이상 커플들의 매장 방문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커플들을 상대로 세트로 판매한다면 고객 방문 평균 객단가를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로이스에서도 많이 하던 방법이었다.
로이스에 있을 때 돈까스 2개를 판매하는 것보다 파스타 추가하고 거기에 음료수 2잔을 묶음 세트로 조금 할인해서 팔면 결론적으로 한 명에게 더 많은 음식 판매할 수 있으니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었다.
하연이 세트로 하자고 권유하는 것은 그런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돈카츠 2개에 사이드로 우동이나 소바 거기에 음료수 추가로 세트로 판매하는 거 말하는 거지?”
“네, 맞아요. 햄버거에서 일할 때 그런 세트 많이 팔았거든요. 은근히 메뉴 결정 힘들어 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많이 주문하시고 또 새로운 우동, 소바 홍보하기도 좋은 것 같아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괜찮은 생각이다. 그렇게 진행하자.”
내가 좋다고 하자 하연이가 기뻐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의미에서 기뻤다.
그동안 하연이는 시키는 일도 잘해주고 바빠도 항상 친절하게 고객을 응대해주어서 별다른 걱정도 하지 않고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그녀가 매장에 장사가 잘되기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마웠다.
나도 직원으로 일해 보았지만 저러기가 쉽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일이 늘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고민 없이 나에게 말을 해주었다. 햄버거집까지 데려가서 데려온 보람이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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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2만 5천원이세요.”
“네, 여기 결제해주세요.”
“카드 받았습니다.”
토요일, 오늘은 제삿날이었다. 집으로 내려가기 위해 준비를 마치고 나는 가까운 건강보조식품 매장으로 왔다.
엄마를 위해서 갱년기에 좋다는 건강식품과 아빠를 위해서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홍삼이 들어간 물품을 구매했다.
솔직히 무엇을 사야 하나 고민이 되었는데 단비가 나에게 추천을 해주었다. 아무래도 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그녀였기 때문에 이런 것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 이제 나이가 좀 있으시니까 건강보조식품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저번에 엄마 생일에 선물해 줬는데 엄청 좋아하셨어요.’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았는데 한번도 이런 것을 사준 적이 없기는 했다. 하지만 선우의 어머니가 아픈 일도 있고 이제 엄마와 아빠도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인 것 같아서 준비를 했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에게 줄 선물을 사고 나와서 차에 물건을 실었는데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 여보세요. ]
“네, 엄마.”
[ 오늘 제사인 거 알고 있지? ]
“안 그래도 지금 내려가려고 했어요.”
[ 그래, 운전 항상 조심하고. ]
“네, 고모들은 오셨어요?”
[ 아니, 고모들도 이제 출발하신다고 하더라. 아마 오후에나 도착하실 것 같아. ]
“혹시 뭐 필요한 거 없어요? 제가 들어가면서 사갈게요.”
[ 아니야, 어제 엄마가 다 샀으니까 그냥 들어오면 돼. ]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차에 올라타서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예전에는 고모들을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아빠와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래서는 안 되지만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마 내 기억에 대학교 다닐 때, 마지막으로 봤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도 만나면 항상 공부 열심히 하냐, 어디 대학에 갈 예정이냐, 연봉은 얼마냐 등 대답하기 어려웠던 것들은 많이 물어봤었다.
그때는 자신이 없어서 그런 질문을 받는 것이 싫었지만 이제는 그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누구나 부러워할 로또 당첨자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