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 화
‘재료는 다 들어왔구나.’
9월 24일, 오늘은 한승이가 쉬는 날이었다.
그를 대신해서 아침 일찍 매장에 출근한 나는 들어온 식재료와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특히 오늘은 조형우와 같이 우동, 소바 소스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그가 주문 요청한 재료들이 다행히 다 들어와 있었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물건을 한참 정리하고 있었는데 신상원이 출근을 해서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나는 그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 주었다.
“안녕하세요.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네, 잘 들어갔습니다.”
어제 회식을 하면서 술도 같이 마시고 진솔한 이야기도 조금 했는데 덕분에 한결 그와는 편해진 기분이 들었다.
특히 어제 표시 사항을 버리는 실수를 한 덕분에 회식 자리 초기에는 조금 위축되어 있었는데 그는 평상시와 다르게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스타일인지 말이 많아져서 쉽게 풀어질 수 있었다.
“다들 일찍 나왔네.”
그렇게 그와 인사를 하고 오픈 준비를 마저 하고 있었는데 곧이어 조형우가 출근했다. 그의 손에는 검은 봉지가 하나 들려 있었는데 나는 뭔지 궁금해서 그에게 물었다.
“실장님, 그건 뭡니까?”
“아, 이거 나이 먹으면 이런 거 하나 씩 먹어줘야 돼.”
그는 봉지에서 자양강장제를 하나 꺼내더니 나와 신상원에게 주었다.
“안 그래도 조금 피곤했는데 감사합니다.”
그에게 받은 자양강장제를 바로 마신 나는 그에게 재료가 들어 온 사실을 알렸다.
“아, 저번에 말씀하신 재료들 다 들어왔는데 오후에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요?”
“오, 빨리 들어왔네.”
“네, 생각보다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 아니어서 바로 주문했습니다.”
“오케이, 알았어. 그럼 내가 레시피는 적어 줄 테니까 그대로 이따가 브레이크타임 때 만들어 보자고 맛있게 만들어 줄 테니까 기대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오늘 할 일을 생각하면서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선우가 주방에 출근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 선우. 일찍 왔구나.”
나는 선우의 인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는데 그가 할 말이 있는지 나에게 다가왔다.
“사장님, 혹시 다음 주 화요일에 쉴 수 있을까요?”
“화요일? 무슨 일 있어?”
“적합성 검사하러 서울에 가야 하는데 그때 예약이 가능하다고 해서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어머니에게 신장 이식 수술이 가능한지 검사하는 것 같았는데 당연히 허락해 줄 수 있었다.
“그래? 알았어. 화요일에 시간 비워 줄게.”
“감사합니다.”
“어머님은 이제 좀 괜찮으셔?”
“네, 많이 좋아 지셨어요.”
“다행이네. 적합하다고 나오면 이식 수술 하는 거야?”
선우는 나에게 받은 돈으로 어머니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일단 몸이 너무 약해지셔서 회복을 한 다음에 수술을 하기로 했는데 적합성 검사를 한다는 것을 보니 많이 괜찮아 지셨나보다.
“네,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그래, 어머니 살리는 게 먼저니까 수술 날짜는 빠르게 잡아.”
“감사합니다. 사장님.”
선우는 나에게 인사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그동안 어머니에 대한 걱정 때문에 얼굴이 안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많이 편해진 것 같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가장 많이 하는 후회가 살아 계실 때 잘해 드릴 걸 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아직까지 우리 부모님은 건강하셔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지만 선우를 보고 나니 나도 조금 더 잘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제사가 이번 주 토요일이잖아..’
나는 핸드폰에 일정표를 확인했는데 토요일에 제사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 들어 시간이 진짜 빨리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엊그제 엄마에게 전화를 받은 것 같은데 벌써 제사가 다가왔다.
‘아마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겠지.’
최근 몇 년 동안 제사는 고모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약식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이번에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엄마가 신경을 많이 쓰실 것 같았다.
‘오랜만에 효도 좀 해야겠군.’
****
점심 장사가 끝나고 조형우는 주방에서 새로운 레시피를 위한 조리를 시작했다. 준비해 온 재료를 펼쳐 놓고 한 차례 설명을 진행한 그는 바로 조리에 들어갔다.
“일단 먼저 육수를 만들어야 하는데 표고랑 무, 다시마, 양파, 대파, 멸치, 디포리 넣고 한 번 푹 끓여.”
“여기에도 그 디포리가 들어가는군요.”
일전에 된장국에 들어갔던 재료가 다시 사용되는 것 같았다.
“어, 국물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건 이 디포리가 최고거든. 멸치랑 같이 넣어주면 효과가 두 배야. 이렇게 한 번 끓이고 나면 거품이 좀 나는데 이때 다시마 건져주고 다시 좀 더 끓여줘. 다시마를 넣고 너무 오래 끓이면 거품이 너무 많이 나서 오히려 맛을 해치니까 빠르게 건져 주는 게 좋아.”
조형우가 말한 대로 끓이자 거품이 하얗게 올라왔는데 그는 국자로 거품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거품이 좀 올라오면 이렇게 거품을 걷어내면서 30초 정도 더 끓여주면 되고 더이상 거품이 안 나오면 이제 모든 재료를 건져 내면 돼.”
“오,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사실 처음에 가게를 시작할 때 돈카츠를 직접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동과 소바는 시중에 파는 제품으로 준비했었다.
그것까지 전부다 만들기에는 나 혼자서 너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만드는 과정을 보니 재료만 준비하고 끓여내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아서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미리 어느 정도 되는 양을 만들어 두고 나중에는 끓여서 나가는 식으로 하면 굳이 시판하는 제품은 사용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일부러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준비했어. 공장에 의뢰한다면서 간단해야 만들기 편할 것 아니야.”
“아, 그렇군요.”
“이제 여기에 가쓰오부시를 넣고 국물을 우려내면 되는데 가쓰오부시를 완전히 풀지 말고 이렇게 구멍 난 국자를 이용해서 향이 베이게 만든다는 느낌으로 저어주면 돼.”
조형우는 가쓰오부시 한 웅큼을 국자에 담아서 끓인 육수에 휘휘 저었는데 색깔이 조금씩 변하는 게 이제는 우동 소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쯔유를 조금 넣어주면 완성이야.”
쯔유를 붓자 색깔은 더욱 진해져서 갈색 빛을 띄고 있었는데 정통적인 일식 우동 국물의 모습이었다.
나는 바로 수저를 이용해서 국물을 먹어보았는데 확실히 기존에 사용하던 우동소스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특히 기존에는 일본식 우동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었는데 가쓰오부시 맛이 확 나는 것이 일본식 우동 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
“헐, 실장님. 이거 완전 맛있어요.”
“그렇지? 아무래도 시판하는 제품에는 재료를 줄이고 간장이나 소금으로 맛을 내기 때문에 깊은 맛이 부족하지.”
“그렇군요.”
“혹시 이거 좀 싱겁다고 느껴지면 우리도 여기에 간장이나 소금 조금 추가해서 간을 맞추면 돼.”
“아니에요. 저는 충분한 것 같아요. 다들 이거 드셔 보세요.”
내 말에 구경하고 있던 상원과 선우, 그리고 이하연까지 수저를 들고 국물을 조금씩 떠먹었다.
“오, 너무 맛있어요.”
사실 그동안 가게에서 일하면서 이하연은 우동을 많이 먹었었다.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돈카츠만 매일 먹기는 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확실히 다른 맛이었다.
“그렇지? 이제 여기에 냉동유부 데쳐서 올리면 유부우동이 되는 거고 볶음김치를 올리면 김치 우동이 되는 거야.”
조형우는 현재 우리 가게에서 파는 우동에 맡게 고명을 만드는 법도 보여주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간단하게 우동을 만들어 내는 그를 보면서 나는 그를 데려오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동은 이쯤 해두고 다음은 소바 만드는 것 보여줄게.”
우동을 다 만든 조형우는 이번에는 소바의 제조에 들어갔다.
“일단은 처음은 아까랑 비슷해 디포리와 다시마 멸치를 넣고 한 번 끓이다가 재료들 다 건져내고 여기에 가쓰오부시 넣고 1분 정도 끓이면 돼.”
“가쓰오부시 또 들어가는군요.”
“어, 그래야 일본식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 다음에 가쓰오부시도 건져 내고 이번에는 여기에 진간장을 넣으면 되는 거야.”
“이번에는 진간장이 들어가는군요.”
“어, 그 다음에는 맛술을 넣는 곳이 있는데 맛술보다 정종을 넣어야 훨씬 깔끔한 맛을 낼 수 있어서 되도록 정종을 넣는 것이 좋아.”
“정종…”
그가 레피시를 적어서 가져오기는 했지만 나는 그래도 다시 한번 메모를 하면서 공부를 했다.
“정종을 넣고 마지막으로 설탕을 넣으면 소바 소스는 끝. 차갑게 먹어야 더 맛있긴 한데 그래도 다들 먹어 봐.”
조형우의 말에 우리는 다시 한번 수저를 들고 맛을 보기 시작했다. 다들 조금씩 떠서 맛을 보았는데 이번에도 너무나 맛있었다.
“실장님, 이거도 맛있는데요?”
“그렇지? 약간 살얼음 생기게 얼려 놓고 와사비랑 무 곁들여서 먹으면 훨씬 맛있을 거야.”
“네, 그럴 것 같아요.”
나는 그의 말에 호응했고 다른 사람들도 다들 맛있게 먹은 것 같았다. 그때 신상원이 손을 들고 말했다.
“저, 이건 제 생각인데 조금 짠 것 같지 않으세요?”
“아, 원래 물에 희석해서 쓰려고 조금 강하게 만든 거야. 물하고 1:1 비율로 섞어서 쓰면 될 거야.”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금 짠 것 같았는데 물과 희석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때 신상원이 다시 말했다.
“아, 그게 아니라. 제가 소바집을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약간 짠맛이 나는 소스보다 단맛이 나는 소스를 더 좋아한다고 배웠거든요.”
그러고 보니 신상원은 소바가게를 하고 있었다. 저번에 갔을 때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판하는 제품들을 사용하고 있어서 그에게는 물어보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오, 상원씨도 공부를 좀 했나보네. 그것도 맞는 말이야. 여기서 소스를 더 달달하게 하려면 진간장 대신에 맛간장을 쓰면서 설탕의 양을 늘리면 되는데 맛간장은 따로 조리 과정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갈 것 같아서 일단 이 방법으로 해봤어. 달달한 소스도 한 번 만들어 볼까?”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에 차이가 얼마나 있는지 솔직히 궁금했다.
“네, 어떤 차이가 있는 지 한 번 먹어 보고 싶네요.”
“그럼 잠깐만 기다려봐.”
내 말에 조형우는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일단 간장에 여러 재료를 추가해서 맛간장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계량도 해야 되고 확실히 그의 말처럼 손이 많이 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맛간장을 만든 후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소스를 만들었다. 그는 이번에는 면까지 함께 삶아서 준비했는데 10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작은 메밀 소바 한 그릇을 만들어 내었다.
“자, 이거 먹어봐.”
조형우는 시원한 얼음을 띄워서 나에게 소바를 건네 주었는데 그것을 받아 들고 젓가락을 들어서 면을 먹었다. 후루룩하는 소리와 함께 면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아까 국물만 먹었을 때는 신상원의 말처럼 맛은 있었지만 짠 느낌이 있어서 우동만큼의 감동은 없었는데 시원하고 달달한 소바 국물은 계속해서 먹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국물까지 단숨에 들이킨 나는 조형우에게 말했다.
“너무 맛있습니다. 제가 먹어 본 소바 중에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