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 화
“네, 맞습니다.”
위생등급제를 신청하기는 했지만 식약처라는 말에 긴장이 되었다. 예전에 로이스에서 근무할 때 점검을 받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식약처에서 미리 연락을 하고 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때는 일주일 정도 전에 연락이 왔었는데 저번 주 금요일까지 연락이 없길래 이번 주에는 안 오려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 9월 23일에 방문할 예정인데 오후에 몇 시 쯤 찾아가면 매장이 조금 한가할까요? ]
나는 그녀의 말에 달력을 봤는데 23일은 수요일로 바로 내일 모레였다.
“어…오후 3시에 오시겠어요. 저희가 3시부터 4시까지가 브레이크 타임이어서 그때가 한가 할 것 같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내가 전화를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한승이가 궁금했는 지 끊자 마자 나에게 물었다.
“무슨 전화에요?”
“우리 위생등급제 날짜가 잡혔대.”
“진짜요? 언제 온다고 하는데요?”
“이번 주 수요일?”
“수요일이요?”
나의 말에 한승이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미리 언제 오는지 알려주고 오는 건데 무엇을 그렇게 놀라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미리 준비를 할 수 있어서 좋은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통과하기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했다.
특히나 세 가지의 등급 중에서도 제일 어렵다는 매우 우수로 신청을 했기 때문에 확실히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한승아, 준비 됐지?”
“네, 오히려 잘 됐네요.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어요.”
한승이는 오히려 빨리 와서 좋다는 듯이 말했는데 나도 거기에 동감했다. 어차피 받을 거면 미루는 것보다 빨리 받는 것이 좋았다.
“그래, 한승이 너는 오늘, 내일 나랑 같이 서류랑 보면서 누락 된 것 있는지 확인하자.”
“네, 알겠습니다.”
“이거이거 첫 출근하자마자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나와 한승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형우가 말했는데 나는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식으로 점검하는 지 봐두면 나중에 조형우나 신상원이 다른 점검을 받을 때도 도움일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 하필이면 이번 주로 일정이 잡혔네요.”
“그래, 나도 도와줄 수 있는 거 도와줄게.”
“음…일단은 실장님과 상원 씨는 주방에 적응하는 것에 집중해주세요. 특히 상원 씨는 다음주에 바로 2호점에 들어가시니까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음식물 쓰레기 관리 대장이 없는 것 같은데…”
“그것도 필요해요?”
“응, 여기 보면 나와 있잖아. 매일 버리는 음식물의 양을 기록, 보관해야 한다고.”
“아, 그렇군요.”
다음날 한승이와 나는 아침부터 열심히 위생등급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식약처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위생등급제에 대한 체크리스트는 없지만 그래도 매장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관한 매뉴얼은 나와 있다.
일전에 선영이에게 보여준 메뉴얼도 바로 여기서 참고한 것이었다.
메뉴얼을 보면서 우리 매장과 다른 점을 하나하나 어제하고 오늘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는데 음식물 관리 대장 빼고 나머지는 완벽한 것 같았다.
“어차피 오후에 점검 온다고 하니까 내가 출근하면서 만들어 올게.”
“네, 알겠습니다.”
“인터뷰만 잘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준비 제대로 잘했는데?”
위생 점검을 할 때 평가원이 이것저것 매장 관리에 관해서 물어볼 수가 있는데 그것을 로이스에 다닐 때는 인터뷰라고 그랬었다.
실제로 매장 운영을 잘 하고 있지만 인터뷰를 할 때 긴장을 해서 엉뚱한 대답을 하는 바람에 감점을 당한 사례도 있었다.
“으, 저번에 구청에서 왔을 때 엄청 긴장했는데…또 그러면 어떻게 하죠?”
“준비 잘했으니까 긴장하지 말고 그동안 공부한 것 잘 말하면 될 거야.”
처음에는 그동안 준비한 게 아까우니 내가 인터뷰를 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애초에 목적이 한승이의 성장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일은 온전히 그가 하는 것을 지켜봐야겠다고만 생각했다.
“네, 알겠습니다.”
****
“일은 하실 만 하세요?”
“어, 오랜만에 하니까 재미있네.”
한승이와 한차례 점검을 한 후 주방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조형우는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돈카츠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는데 어제 하루 보여주고 연습한 것 치고는 모양이 제대로 나왔다.
물론 내가 상태가 안 좋으면 버려도 되니까 계속해서 연습을 해보라고는 했었다. 그가 빨리 적응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돈카츠 모양도 잘 나오고 잘하고 있었다.
“상원 씨는 어떠세요?”
“저도 괜찮습니다.”
신상원은 원래 하던 일이 메밀집이었기 때문에 우동과 소바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는데 그도 생각보다 잘하고 있었다.
불편한 것이 있다면 내가 조금 어색하다는 것 뿐이었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대하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예전에 로이스에서 면접을 볼 때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구인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매장에 사회경험이 없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졌고 말도 안 되는 실수들도 많이 일어났다.
그런 실수는 일어난 순간 바로 교정을 해주어야 두 번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요청을 할 때 나는 지시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주방에서는 칼과 불과 같은 위험한 순간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조형우와 신상원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이전의 방식으로 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직원처럼 편하게 생각해야지 했는데 막상 일을 하고 있으니 그게 쉽지는 않았다.
조형우는 원래 그 전부터 알던 사이라 특히 실장이라는 직책을 주고 난 후 말은 편하게 해도 나의 말에 잘 따라주고 들어주면서 많이 존중해 주고 있어서 괜찮았는데 신상원에게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앞으로 친해지면 괜찮겠지.’
****
“사장님, 저 왔어요.”
주방을 돌봐주고 한승이와 점검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오후에 선영이가 찾아왔다.
“어, 무슨 일이야?”
“이거 매뉴얼 만들어 보라고 하셨잖아요. 어느 정도 된 것 같아서 확인 보시라고 가지고 왔어요.”
내가 화요일 까지 부탁하기는 했지만 저녁이 되어서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근 후에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올 지 몰랐다.
“엄청 빨리 했네? 근데 그냥 메일로 보내줘도 되는데 왜 왔어.”
“아, 사장님이랑 보면서 수정할 것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지금 바쁘세요?”
“아니야, 지금 얼른 보자.”
나는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선영이가 한 작업물을 보았는데 생각보다 엄청 훌륭했다. 사실 그녀에게 보여준 식약처 예시 매뉴얼은 공무원들이 몇 년간 작업한 집합체였다.
그녀에게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 정도 수준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선영이는 엄청 깔끔하게 잘해왔다. 처음에는 타이핑만 대신해줘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면 아주 훌륭했다.
“선영아, 완전 깔끔하게 잘했는데?”
“그래요?”
“어, 이런 그림은 어디서 난 거야?”
선영이는 메뉴얼에 나오는 여러 가지 상황에 맞게 아기자기한 그림도 추가시켜 놓았는데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아, 그거 그냥 인터넷에 찾으니까 있던데 없는 거는 제가 포토샵으로 대충 짜집기 했어요. 많이 엉성하죠?”
그녀는 창피한 듯 말했지만 나는 이제 대학생인 그녀가 이 정도 작업 능력을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아니야, 엄청 잘했어.”
“그래요? 사장님 마음에 드시다니 다행이네요.”
“어, 너무 마음에 들어 혹시 이런 느낌으로 더 작업 해줄 수 있어?”
그녀가 작업한 부분은 매장 오픈과 마감 등 처음 직원들이 일을 시작할 때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이제 메뉴 레시피, 서비스 응대 방법 등 앞으로 작업해야 할 내용도 많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가능하다고 하면 그 부분도 맡길 생각이었다.
“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짜?”
할 수 있다는 그녀에 말에 나는 기뻤다. 그리고 나는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선영아,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너 취업 준비는 잘 되고 있니?”
“취업이요?”
“어, 준비한 지 좀 된 것 같은데 별다른 말이 없어서.”
“아, 몇 군데 원서 넣어 봤는데 다 떨어졌어요. 하반기에는 신규채용하는 곳도 많이 없어서 알바는 계속 할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로나 시국이었다.
잘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퇴직자로 몰리고 있는데 새로운 직원들을 뽑는 기업이 있을 리가 없었다.
너튜브에서 본 적이 있는데 내년에는 기업들이 정규채용도 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만 구인하는 상시채용의 형태로 바뀐다고 들었다.
“그렇구나. 이거 사장님. 생각인데 너 우리 알로하에서 알바가 아닌 직원으로 일하는 건 어때?”
내가 말에 선영이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직원이요?”
“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 가게 장사도 잘 되고 있고 사장님은 점포를 더 늘릴 생각이거든 그래서 직원을 더 뽑을 생각이었는데 선영이 네가 일해주면 좋을 것 같아.”
3호점을 늘리고 직원을 구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을 때 이 생각을 먼저 했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알바들을 직원으로 바꾸는 것 말이다.
원래는 3호점 오픈 준비를 할 때 권유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훌륭한 결과물을 봐서 선영이가 다른 곳에 취업을 하기 전에 잡아 두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음…한번도 고민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어요. 생각을 좀 해봐도 될까요?”
“그래, 너도 원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고민이 될 거야. 생각 좀 해보고 나에게 알려줘.”
“네, 알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수요일 오후, 약속된 시간이 되자 가게 문이 열리면서 두 명의 여자가 들어왔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나는 그녀들을 맞이했는데 식약처에서 나온 평가담당원들이었다.
일단 테이블로 안내해 주자 그녀들은 점검 준비를 시작했는데 먼저 나에게 서류를 요청했다.
“사업자등록증, 영업신고증, 보건증 보여주시겠어요.”
본래 이런 점검은 서류 점검을 먼저 시작한다. 일단 필수 구비 서류를 점검하고 누락되어 있으면 점검은 그걸로 끝이다.
굳이 주방을 살펴보지 않아도 이미 서류상 탈락이 되기 때문에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승이는 평가원의 말에 서류가 보여 있는 파일철을 가져다 주었는데 그녀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서류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승이는 긴장한 듯 쭈뼛거렸는데 나는 자신이 있었다. 어제까지 한승이와 같이 살펴보았을 때 서류는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내 예상대로 서류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지 그녀들이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어면서 파일을 덮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요한 서류는 다 있으시네요. 주방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서류 점검이 필기시험이라고 한다면 주방 점검은 실기시험이었다. 이것을 완벽하게 통과 해야만 위생등급제에서 매우 우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네, 주방은 이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