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 화
“네?”
그녀가 아까 내가 고백하려고 할 때 짓굳게 장난쳤던 것이 생각나서 나도 그녀에게 장난을 치기 위해서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나의 예상 밖이었다.
“그럴까요?”
“응?”
“같이 살면 매일 볼 수 있고 좋잖아요.”
그녀가 원래 적극적인 성격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개방적인 줄은 몰랐다. 그녀가 이렇게 나오자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는데 그녀가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웃었다.
“오빠, 긴장하지 마세요. 장난이에요.”
“어…그렇지?”
띵동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벨소리가 울렸다. 집으로 오면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그것이 도착한 모양이다.
“네, 감사합니다.”
주문한 음식을 받아서 세팅하고 단비와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단비는 배가 많이 고팠는 지 허겁저겁 먹기 시작했다.
“단비야,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나는 컵에 음료수를 따라주면서 그녀를 챙겨주었다.
“네, 떡볶이 먹었더니 스트레스 좀 풀리는 것 같아요.”
“그래?”
나는 아까 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분위기를 느끼고 그녀가 말했다.
“아, 꼭 오빠 때문만은 아니에요. 오늘 새로운 업무를 받아서 일이 많아졌거든요.”
“그랬구나. 근데 여름 세일 끝나고 지금 한가한 기간 아니야?”
보통 백화점은 여름하고 겨울이 성수기다 거기에 단비가 근무하고 있는 식품관은 여름철 식중독 예방이라던 지 신경 쓸 게 많아서 특히 여름에 할 일이 많았다.
“네, 원래는 가을 세일 전까지 한가한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바빠요.”
“일?”
“어, 오늘 아침에 결정난 일인데 아마 백화점 식품관이 싹 바뀔 것 같아요.”
“바뀐다고?”
“네, 사실 올해 초부터 기획은 계속 했었는데 너무 큰일이라 미루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점장님 최종 승인 났어요.”
“그래? 어떻게 바뀌는 데?”
“아마 푸드코트 형식으로 바뀔 것 같아요.”
지금 단비가 일하고 있는 뉴월드 백화점 1층 식품관은 가게가 하나 씩 들어가 있는 식당가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다.
뉴얼드 백화점은 처음 생길 때 이런 구조로 만들어서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었는데 최근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의 트랜드는 식당가보다 푸드코드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푸트코드로 운영하면 많은 종류의 음식을 백화점에서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고 또 더 많은 브랜드에게 임대료를 받을 수 있으니 운영적인 측면해서 좋았다.
“푸드코트?”
“네, 서울에 있는 다른 지점이 올해 초 식품관을 푸드코트 형식으로 바꿨는데 고객들 반응이 엄청 좋았던 모양이에요. 실제로 매출도 엄청 상승 했고 그래서 저희도 내년 초 오픈을 목표로 전체 리모델링 들어가기로 했어요.”
“헐, 그럼 앞으로 엄청 바쁘겠다.”
“네, 앞으로 야근도 많이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기존에 있는 가게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일단은 협상을 먼저 하겠지만 지금 식품관에 있는 업체들 계약은 11월에 다 끝나는데 아마 푸드코트 형식으로 남을 매장들은 남아있고 아니면 그냥 계약 종료 할 것 같아요.”
“계약종료?”
“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면 푸드코트 들어가는 매장들은 새롭게 선정하는 거야?”
“당연히 그러겠죠? 아직 결정된 것은 없는데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그럼 우리도 들어갈 수 있나?”
나의 말에 단비가 놀란 듯 했다. 단비의 말을 듣고 있으니 솔직히 욕심이 났다.
광주 뉴월드 백화점은 마트와 연결되어있는 복합쇼핑몰이고 거기에 대형 영화관과 터미널까지 연결되어서 광주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다니는 상권 중 하나였다.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돈이 있어도 가게가 차리기 어렵다고 했던 곳인데 거기에 매장이 나올 수가 있다고 하니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음…알로하가 맛있기는 한데..보통 어느 정도 규모와 단골이 있는 프렌차이즈 업체들과 우선협상 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씀드려서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런가?”
단비의 말에 나는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백화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러는 것이 당연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검증 받은 업체를 집어 넣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그래도 한 두 개 정도는 자리 나와서 노려 볼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모집 공고 뜨면 오빠에게 알려드릴게요.”
“그래, 꼭 알려줘. 예상하는 모집 공고일이 언제야?”
“아마 10월 중순에는 시작할 것 같은데…내년 1월 2일이 오픈 예정이라 그 전에 업체 선정하고 공사까지 진행하려면 그 정도는 할 것 같아요.”
“그래?”
단비의 말을 듣고 달력을 살펴보았는데 일정이 빡빡하기는 했다. 하지만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기회였다.
‘빠르게 2호점을 안정시키고 3호점도 준비해야겠어.’
단비의 말이 맞았다. 백화점에 알로하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
“오빠, 조심히 가세요.”
“그래, 단비야. 조심히 들어가.”
단비는 정훈과 헤어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화장대에 앉았는데 정훈이 준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정훈이 고백하기를 기다렸는데 막상 연인이 되니 부끄러우면서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오빠랑 결혼하면 이런 느낌일까?’
단비는 아까 집에서 같이 밥먹었던 것을 떠올렸다. 너무나 편하고 좋았다. 이제 자신도 나이가 어느 정도 먹어서인지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결혼적령기가 많이 늦춰졌다고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유진이 곧 결혼식을 올려서 그런지 마음이 더 그랬다.
‘정훈이 오빠가 더 잘 됐으면 좋겠다.’
결혼을 생각해서 일까? 단비는 정훈의 가게가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화점에 오빠 가게가 들어오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아마 힘들겠지?’
자신이 결정권자라면 알로하는 무조건 집어넣었을 것이다. 맛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충분히 먹힐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윗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잠깐 이름을 알리고 사라지는 점포들이 엄청 많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안정성을 원한다. 1년 365일 꾸준히 매출을 올려서 임대료를 내줄 매장을 말이다.
보통 백화점은 퍼센트로 임대료를 받기 때문에 이 매출을 항상 잘 올리는 것이 엄청 중요하다.
‘내가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단비는 단순히 입점 공모를 알려주는 것 이외에 정훈을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그때 떠오르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꽂아줄 수는 없으니까…오빠가 능력으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면 어떨까?’
갑자기 드는 생각에 단비는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기획서 파일을 불러와 작성을 하기 시작했다.
‘제목은 이게 좋겠다.’
<< 광주, 전남 지역 맛집 프리미엄 식품관 조성 기획서 >>
****
<< 오빠, 오늘도 단비 생각하면서 힘내세요. >>
일요일, 아침 일찍 출근하려는데 단비의 문자를 받았다. 원래도 밝은 단비였지만 왠지 사귄 이후로 애교가 많아진 것 같았는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알로하 매장으로 들어온 나는 바로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켰다. 매뉴얼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내일이면 조형우와 신상원이 출근을 한다. 일단 신상원에게 기본적인 매뉴얼을 전달해주기는 했지만 대부분 주방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매장을 운영하려면 서비스나 다른 것에 대해서도 기본 적인 가이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매장이 고객들에게 동등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프렌차이즈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우리 가게 맞은편에 있는 유명하게 벅스 커피에서는 직원들이 6개월에서 1년에 한번 씩 다른 점포로 이동한다는 말을 들었다.
같은 요식업 종사자로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나 의문이 들었는데 벅스커피에서는 모든 기물이나 컵, 제품의 위치가 전 점포가 동일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처음 매장에 출근하더라도 바로 일을 시작하기가 어렵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것을 상당히 효율이 좋은 방법 같았다.
요식업에는 항상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프렌차이즈에서는 지원을 받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저런 식으로 매장이 되어 있으면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적게 받는다.
물론 지금 여건상 벅스커피처럼 모든 매장을 동일하게 만들수는 없겠지만 나는 최소한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은 비슷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점포가 늘어나는 지금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열심히 메뉴얼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가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 선영이 왔니.”
시간을 보니 벌써 10시가 되었는데 주말 알바인 선영이 출근하는 시간이었다.
“사장님, 일찍 오셨네요?”
“어, 아침에 할 일이 있어서. 나 신경 쓰지 말고 오픈 준비해.”
“네.”
선영이는 옷을 갈아입고 와서 일단 테이블에 메뉴판부터 세팅하기 시작했다. 나는 선영이가 일하는 것을 한 번 쳐다보고 내 일에 집중했는데 갑자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씨, 이게 왜 이러지?”
열심히 한글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칸을 나누기 위해서 ‘---’ 로 선을 그렸는데 자꾸 이것이 기다란 선으로 변하는 것이다.
몇 번 지웠다가 쓰기를 반복했는데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자 짜증이 났다.
“사장님, 왜 그러세요?”
내가 컴퓨터를 보면서 화를 내고 있자.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던 선영이 나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이게 자꾸 선으로 모양이 바뀌는데 혹시 이거 어떻게 해야 안 바뀌는 지 알아?”
나는 선영이에게 어떤 현상인지 보여주었는데 선영이는 그것을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아, 이거 빠른 교정 설정되어 있어서 그래요.”
“빠른 교정?”
“네, 잠시만요. 제가 바꿔드릴게요.”
선영이는 나를 대신해서 마우스를 잡더니 설정을 몇 가지 바꾸었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써보자 아까와 같은 현상이 안 일어났다.
“오, 고쳐졌네.”
“고쳐진게 아니라. 설정만 바꾼거에요.”
“근데 너 한글 잘하는구나. 이런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네.”
선영이와는 오픈 초기부터 일했다. 최근에는 직원도 있고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는데 예전에는 1:1로 단 둘이 일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많이 했었다.
“저, 취준생이잖아요. 이 정도 문서 작업은 기본이죠.”
생각해보니 그녀는 아직도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전에 취업 준비로 그만둔다고 해서 주말 알바로 바꿔주고 나도 그녀가 취업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알바를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요즘 취업이 어렵다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그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들었다.
“선영아, 너 이거 깔끔하게 정리 좀 해줄 수 있겠니?”
나는 내가 작성한 매뉴얼북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적어두고 인터넷에 있는 요식업 관련 내용을 퍼 온 수준이었기 때문에 내용이 엄청 난잡했다.
일단은 적어두고 추후에 정리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내 실력으로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정리요?”
“어, 이거를 파트별로 나누어서 정리하고 싶은데 내가 한글 다루는 게 좀 어설퍼서 네가 잘하는 것 같은데 좀 도와줄래? 내가 따로 알바비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