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 화
“옷은 마음에 들어?”
백화점에 오자마자 바로 새롭게 태어날 조카의 선물들을 구매하였다. 옷과 양말 거기에 아직은 필요가 없는 신발까지 내 눈에 조카가 입으면 예뻐 보이는 것들을 많이 사줬는데 은정이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어, 아기 옷은 마음에 드는 데 아직 성별도 안 나왔는데 너무 많이 산 것 같아.”
성별이 나오려면 보통 16 주는 지나야 한다고 하는데 아직 시간이 좀 있었다.
“그런가? 그래도 무난한 것 골랐잖아.”
옷을 고른 다음에 밥을 먹으러 왔는데 속이 안 좋은 은정이를 위해서 나는 이것 저것 챙겨주었다.
“오빠가 이러니까 조금은 어색하다.”
“그래?”
하긴 생각해보면 그동안 별로 우애가 있을 만한 일이 없었다. 은정이는 주로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쪽이었고 나는 묵묵히 듣고 무시하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일하는 것 만으로도 신경 쓸 것이 많았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조금은 무심했었다.
하지만 로또에 당첨되고 가게 장사도 잘 되면서 내 마음도 변한 것 같았다. 이제는 주변을 조금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밥 다 먹고 네 옷도 사러 가자.”
나는 은정이 옷도 사줄 생각으로 말했는데 은정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는 우리 튼튼이 옷 샀으니까 괜찮아.”
튼튼이는 은정이와 안 서방이 지은 아기의 태명이었는데 튼튼하게 자라라는 의미로 그렇게 지었다고 들었다.
“괜찮아. 오빠 가게 장사 잘 되는 거 알잖아. 너 옷 정도 사줄 능력 된다.”
비록 은정이가 가게에는 최근에 들렸지만 늘어나는 SNS 숫자와 댓글의 반응으로 우리 가게 장사가 잘 되고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니야, 그것보다 오빠 선물 사러 가야지.”
“선물?”
“어, 내가 생각해봤는데 고백할 때는 목걸이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무슨 선물인가 했더니 단비에게 줄 선물을 말하는 것이었다.
“목걸이? 반지가 괜찮지 않아?”
“아니야, 처음부터 반지는 조금 부담스러운 것 같아. 어차피 사귀면 나중에 커플링 같은 거 하면 되니까 처음에는 목걸이가 좋은 것 같아.”
“그래? 그럼 네가 골라줘 봐.”
****
“이거 어때?”
나는 은정이가 고른 목걸이를 쳐다보았다. 악세사리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하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예쁘네.”
“그렇게 건성으로 말하지 말고 오빠가 선물해 줄 건데 잘 생각해봐. 그 사람한테 어울릴지 안 어울릴지 말이야.”
은정이는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제품들을 나에게 계속해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착용하고 있는 단비의 모습을 생각했는데 솔직히 단비는 얼굴이 예뻐서 어떤 걸 해도 다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목걸이가 있었다.
“이거 괜찮은데?”
“어떤 거?”
내가 관심을 보이자 은정이가 다가와서 말했다.
“오, 이거 예쁘다.”
알파벳 D 모양으로 된 목걸이였는데 심플한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브랜드 이니셜 인 것 같았는데 단비의 이름과도 연관이 있어서 그런지 왠지 끌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이름이 단비거든 왠지 이거랑 좀 어울리지 않아?”
“아, 그래? 흔한 이름은 아니네. 이거 좀 보여주시겠어요?”
은정이는 직원에게 부탁하자 매장에 있던 직원이 목걸이를 꺼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리저리 살펴보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욱 마음에 들었고 나는 이걸로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이거 얼마에요?”
“지금 보고 계신 제품은 107만 원입니다. 고객님.”
“107만 원이요?”
가격을 듣고는 은정이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오빠. 이거로 할 거야? 좀 비싸지 않아?”
프로포즈도 아니고 그냥 사귀자고 고백하는데 쓸 목걸이였다. 은정이의 말처럼 조금 과한 것도 같기도 했다.
“그냥 이거로 하자.”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그냥 구매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단비에게는 가게 일에 여러 가지로 도움 받은 일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할 모습을 생각하자 별로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뜻 구매를 결정하자 은정이가 나에게 말했다.
“오빠, 진심으로 좋아하나보네.”
“어, 내가 아까 밥 먹을 때 진지하다고 했잖아.”
“그래, 오빠도 이제 결혼해야지.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은정이는 목걸이를 보면서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그런 은정이를 보면서 말했다.
“너도 가지고 싶은 거 있으면 골라. 오빠가 사줄게.”
“에이, 아니야. 괜찮아.
“아기 옷은 아기가 입는 거고 너도 뱃속에서 아이 키우느라 고생하는데 오빠가 하나 사줄게.”
내가 다시 권유하자 은정이는 이번에는 조금 흔들린 것 같았다.
“진짜?”
“어, 골라봐.”
“그래? 그럼 나 이걸로 할래?”
은정이는 나의 말에 목걸이를 하나 골랐다. 아까 나에게 추천해주었던 목걸이 중 하나였는데 사실 자신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가격을 확인했는데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이것도 같이 포장해 주세요.”
내가 직원에게 포장을 주문하자. 은정이는 진짜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좋냐?”
“어, 내가 새 언니 들어오면 진짜로 잘해줄게.”
“뭐? 새 언니?”
“왜, 오빠랑 잘 돼서 결혼하면 새 언니 되는 거지. 그럴 생각으로 만나는 거 아니야?”
하긴 나도 이제 나이가 서른이 넘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은정이의 말에 조용히 웃었다.
“고객님, 여기 있습니다.”
나는 정성스럽게 포장된 제품을 쳐다보았는데 이것을 받은 단비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언제 전해주지?’
****
‘무슨 사이일까?’
단비는 아까 일을 떠올리자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너무 다정해 보였어.’
서로 밥 먹으면서 챙겨주고 목걸이를 골라주고 하는 모습이 너무 다정해서 보통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친구라고 하기에는 조금 과한 것 같았고 정훈이 몇 번 말했던 여동생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에는 너무 안 닮았다.
더군다나 자신이 알기에 여동생과 그렇게 살갑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백화점까지 와서 목걸이를 사주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정훈은 자신이 여태까지 만났던 다른 남자들과 조금은 달랐다.
나름 그녀가 호감을 표시했고 정훈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고백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이 바빠서 그렇다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신중한 성격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벌써 썸도 아니고 연애도 아닌 관계가 지속되어 오고 있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자신은 관계를 확실히 하고 싶었다.
거기에 걱정되는 것이 또 있었는데 최근에 정훈의 SNS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에게 호감을 보이는 댓글들도 적지 않았다.
- 여기, 사장님. 존잘
- 훈남 사장님이 설명도 엄청 친절해요ㅋㅋㅋ
- 사장님, 여자친구 있으세요???
- 은기 실장님이랑 실친이라고 하던데 역시 훈남은 훈남끼리ㅋ 자신도 SNS에서 가끔 남자들이 호감을 보이며 DM을 보내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정훈 오빠는 벌써 1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관심을 보이는 여자가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설마…나는 그냥 어장 관리 하는 거 아니겠지?’
전 남친 중 한 명이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에 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자신이 아는 정훈 오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 안 좋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낮에 보았던 그 여자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
은정이를 데려다 주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단비에게 전화가 왔다.
“어, 단비야.”
[ 오빠, 어디세요? ]
“나? 지금 집에 가는 중이야.”
[ 그래요? 어디 갔다가 오는 길이에요? ]
순간적으로 백화점에 갔다고 이야기 하려다가 나는 말을 삼켰다.
“어…뭐 살게 있어서 잠깐 나왔어. 일 끝났어?”
[ 아직 안 끝났어요. 음…이따가 저녁 같이 먹는 것 어때요? ]
“그래, 그러자.”
나는 단비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안 그래도 그동안 매장에 일이 있어서 그녀와 시간을 보낸 지 오래 되었다.
그녀와 단둘이 저녁을 먹으면서 기회를 봐서 선물도 전해주고 마음을 고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럼 오빠는 집에서 쉬고 계세요. 제가 일 끝나고 바로 데리러 갈게요. ]
나는 나를 데리러 온다고 하는 단비의 말에 놀랐다. 아직 그녀에게도 집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도 아직 집을 샀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에게 이사한 사실을 먼저 알리는 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그 전에 살던 투룸에서 지내고 있다고만 말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곳을 찾아온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아…아니야. 내가 너희 집으로 갈게. 저번에 네가 요리 해줬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해줄게.”
당황해서인지 말이 떨려왔는데 곧이어 들려오는 단비의 말에 나는 몸이 굳을 수 밖에 없었다.
[ 아니에요. 모처럼 오빠 쉬는 날인데 제가 집으로 갈게요. 저 이제 회의 들어가야 돼서 이따가 다시 연락할게요. 주소 깨톡으로 남겨주세요. ]
“저…단비야?”
단비와 마지막 대화를 끝으로 전화가 끊겼는데 나는 얼른 대책을 세워야 했다.
****
좀 고민을 하다가 나는 예전 집 주소를 단비에게 알려주었다. 미리 그 전에 살던 곳에 가 있는 다음에 1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계획이었다.
혹시 그녀가 집을 궁금해 할 수 도 있지만 나는 ‘집이 더럽다.’ ‘먹고 싶은 것이 있다.’ 등 여러 가지 변명을 대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녀의 퇴근 시간에 맞춰서 예전 집인 덕성빌 1층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의 차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 오빠. 내려와 있었어요?”
“어…기다리고 있었지. 배고프지? 얼른 가자. 내가 맛있는 맛집 알아 놨어.”
“그래요? 근데 가기 전에 집 잠깐만 구경하면 안 돼요?”
“우리 집?”
“네, 오빠 어떻게 살고 있는 지 너무 궁금해요.”
,
그녀의 말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단비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또랑또랑 쳐다보았는데 나는 그녀를 집으로 안내할 수 없었다.
우리 집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음…투룸이라 별로 볼 것도 없어. 며칠 청소도 못해서 더럽기도 하고 내가 다음에 보여줄게.”
나는 급하게 말을 돌렸는데 단비는 포기할 줄을 몰랐다.
“에이, 괜찮아요. 남자, 혼자 사는 집이 다 그렇죠. 우리 얼른 들어가요.”
그녀는 나를 쳐다보면서 1층에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단비야. 사실 내가 최근에 이사를 했어.”
“네? 이사요?”
“어,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해.”
나는 단비에게 사과를 했는데 내 말을 듣고 그녀의 표정이 안 좋아 지더니 나에게 말했다.
“오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하실 수 있어요. 솔직하게 말하세요. 저 말고 다른 여자 있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