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 화
“은정아, 축하한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일단은 진심으로 은정이를 축하해 주었다. 축하는 해 주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기분은 얼떨떨했다.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어렸을 때부터 봐온 은정이가 결혼했을 때도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기를 가진 엄마까지 된다고 하니 조금은 어색한 느낌도 들었다.
“고마워, 그런데 나 임신했는데 축하 선물 당연히 해 줄거지?”
“그래, 해 줘야지. 뭐 필요한 거 있어?”
“생각 좀 해볼게. 솔직히 아직 뭘 사야할지 잘 모르겠어.”
“그래, 생각해보고 말해라. 사고 싶은 거 다 사. 이제 오빠 그 정도 능력 된다.”
“오, 진짜?”
빈말이 아니었다. 가게 넓히면서 안서방에게 도움 받은 것도 있고 저번에 와서 은정이가 도와준 것도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근데 엄마, 아빠는 알고 있어?”
“아니, 엄마, 아빠는 아직 몰라.”
사실 임신한 사실을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나보다도 부모님이었다. 그런데 아직 부모님들에게 이야기를 안 했다고 하니 조금은 의외였다.
평소 은정이는 부모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잘 하는 편이었는데 말이다.
“왜, 말 안 했어?”
“이제 조금 있으면 아빠 환갑이잖아. 그때 깜짝 선물로 말씀드리려고 그랬지.”
“아…”
생각해보니 10월에는 아버지 생일이 있었다.
이번 생일은 특히 중요했는데 아버지가 61세가 되는 환갑이었기 때문이다.
저번에 아버지에게 돈을 받은 이후로 잘 챙겨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환갑이라는 사실을 알고 준비를 하려고 했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뭐야, 모르고 있었다는 것 같은데?”
“아니야, 알고 있었어.”
“그거 상의도 할 겸 왔어.”
“잘했다.”
“그런데 이 언니는 주차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생각해 보니 은정이가 일행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 시간에 주차장 자리가 만석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었다.
“일단 자리 앉아서 주문 먼저 하던지 뭐 먹을래?”
“아니야, 언니 오면 같이 주문할래.”
은정이는 내가 안내해주는 자리에 앉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왠지 음흉한 미소를 지었는데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쳐다 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음…아니야, 그건 그렇고 장사 잘 되나보다?”
“어, 잘 되고 있지.”
“나도 SNS에서 오빠 가게 봤는데 팔로워 1만 명 넘었던데? 어떻게 한 거야? 완전 부러워.”
평소 SNS를 자주 하는 그녀였기 때문에 많이 늘어난 나의 SNS 계정을 부러워했다. 사실 그녀가 부러워 할 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기는 했다.
“그냥 뉴스 나오고 너튜브 나오고 이러니까 자연스럽게 늘어나던데?”
“맞다. 그러고보니까 쭈영이 너튜브에도 출연했던데 어떻게 한 거야?”
“그거 쭈영씨가 직접 매장으로 전화 오셨어. 매장에서 촬영하고 싶다고 하던데?”
“우와, 대박이다. SNS 계정도 남겨줬던데 설마 두 사람이 서로 팔로우한 것은 아니겠지?”
솔직히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를 팔로우하기는 했지만 내가 팔로잉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근데 나의 첫 번째 SNS 친구가 생겼는데 바로 쭈영이님이었다.
영상을 올린 후 DM으로 촬영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팔로우 신청이 왔는데 자신과 다르게 SNS 팔로워가 엄청 많은 그녀였기 때문에 팔로우 신청으로 가게를 더욱 알릴 수 있었다.
“쭈영이님이랑 팔로우 했는데?”
“진짜? 어떻게?”
“그냥 촬영 끝나고 팔로우 신청 하시던데…”
“우와, 완전 부럽다. 나는 쭈영이님에게 DM으로 맞팔 신청했는데 거절 당했어.”
“뭐야, 너 쭈영이님 팬이었어?”
“어, 나 초창기부터 시청한 팬이야.”
“그래?”
은정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매장 벨이 울리면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인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는데 몸이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전 여자친구 박지현, 그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
“언니, 뭐 먹을래요?”
“너 임신 했으니까 너 먹고 싶은 걸로 먹어.”
“그래요? 그럼 제가 고를게요.”
은정이와 지현이는 나란히 앉아서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고 있었는데 나는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두 사람 친했었다. 예전에 사귈 때 여자친구라고 소개를 해 준 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코드가 잘 맞아서 금방 친해졌다.
헤어진 이후로 은정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연락을 안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계속해서 연락은 하고 지냈던 모양이다.
“오빠, 나 이거랑 이거 먹을래.”
“그래.”
나는 은정이가 주문한 메뉴를 확인했는데 그때 지현이가 말했다.
“정훈아, 가게 오픈한 거 축하해. 몇 번 와보려고 했는데 혼자서 오기는 좀 그래서 오늘 은정이가 여기 온다길래 따라서 왔어. 괜찮지?”
“괜찮아. 그런데 오늘은 근무하는 날 아니야?”
“아, 그동안 일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하루 쉴려고 연차썼어.”
“그렇구나. 은정이랑 재미있게 놀다가 가.”
나는 주문을 받고 멀리서 수다를 떨고 있는 두 사람을 쳐다 보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지현이는 조금 불편했다.
단비에게 고백을 하려고 준비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애매했던 썸 관계해서 벗어나 제대로 사귀려고 생각중이었다. 어떻게 고백해야 하나 고민하지 않았다면 벌써 고백을 했을 것이다.
갑자기 고기 업체 사건이 터지면서 고백을 하는 일이 조금 미루어졌지만 내 마음에 변함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는 어떻게 사귀었지?’
나는 예전에 지현이와 처음 사귀었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에 진짜 신기하게도 그녀와 스케줄 표가 완전히 똑같았었다. 그래서 같이 밥 먹고 과제하고 공부하고 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러다가 카페도 가고 영화도 같이 보는 시간도 생겨났다.
그렇게 서로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안 생겨서 신세 한탄하던 어느 날 지현이가 말했다.
“야, 이러다가 우리 대학 졸업할때까지 솔로겠다. 그냥 우리 둘이 사귀는 거 어때?”
나는 그녀의 고백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래도 그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고백을 받았고 그때부터 연인이 되었다.
그렇게 첫 연애를 시작해서 일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고백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
“정훈아, 돈카츠 너무 맛있다.”
“그래? 너 원래 돈카츠 좋아했잖아.”
“맞아. 근데 너 예전에 놀러 가서 요리하면 맨날 고기 태워 먹었잖아. 요리에 재능 없는 줄 알아서 솔직히 기대 안 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맛있어.”
“어…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다.”
“시간 될 때마다 자주 올게.”
“그…그래.”
나는 솔직히 자주 온다는 그녀의 말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면전에 대고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친구처럼 지낸다고 해도 그녀는 전 여친이었다. 단비가 이 사실을 알게되면 싫어할 것 같았다.
“오빠, 그럼 이제 우리는 갈게. 맛있게 잘 먹었어.”
은정이는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나는 그녀를 붙잡았다.
“넌 잠깐만 남아.”
“왜? 나 언니랑 커피 마시러 가야 하는데…”
“할 이야기가 있어.”
“그래? 무슨 이야기?”
“아빠, 환갑 이야기하기로 했잖아.”
“아, 맞다. 언니 먼저 차에 가 있으세요. 오빠랑 이야기 좀 하고 내려갈게요.”
“어머, 아버님. 환갑이셔?”
생각해 보니 지현이는 엄마, 아빠와도 밥을 한 번 먹은 적이 있었다. 특히 성격이 좋은 그녀를 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하셨다.
“네, 언니 올해가 환갑이세요.”
“오, 진짜? 아버님 한테 내가 축하드린다고 전해드려.”
“네, 제가 꼭 말씀드릴게요.”
“나는 그럼 먼저 차에 가 있을게.”
그녀가 가게 밖으로 나가자 나는 은정이에게 말했다.
“무슨 속셈이야?”
“응? 뭐가.”
“지현이랑 밥 먹는데 왜 굳이 여기로 와. 우리 헤어진 거 알고 있잖아.”
나는 아까 은정이의 그 음흉했던 미소를 떠올리면서 분명 무슨 속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는 그냥 두 사람 다시 잘 됐으면 좋을 것 같아 가지고…이야기 들어보니까 그렇게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니더만…”
“지현이가 그래?”
“어, 내가 보니까 언니는 아직 오빠에게 마음이 조금 있는 것 같아. 두 사람 다시 시작해보는 거 어때?”
“뭐라고?”
“왜, 언니 솔직히 괜찮잖아. 얼굴도 예쁘고 직업도 이제 공무원이니까 얼마나 좋아. 성격은 서로 잘 알 테니까 진지하게 생각해봐.”
은정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 했는데 나는 그것을 보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현이에게 예전과 같은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연락을 안하고 지내서 친구라고 하기에도 멀어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다시 만나라고 한다니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였다.
“아니야, 괜찮으니까. 앞으로 이런 일 벌이지 마라.”
“왜, 어차피 오빠 지금 여자친구도 없잖아. 그냥 한 번 다시 만나봐. 혹시 알아 예전처럼 사랑이 불타오를지?”
은정이는 신이 난다는 듯 말했지만 나는 확실히 이야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다른 일을 벌이기 전에 말이다.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나의 말에 이번에는 은정이가 놀랐다.
“뭐라고?”
“관심있는 사람 있다고 그러니까 지현이랑 다시 엮으려고 하지마.”
“헐, 대박. 누구? 내가 아는 사람이야?”
“아니, 네가 모르는 사람이야.”
“그래? 저번에 소개팅 했다고 하더니 그거 잘 된 거야?”
“어, 맞아. 근데 아직 여자친구는 아니야. 그래서 말 안했어.”
내가 진지하게 이야기하자 은정이는 어느 정도 알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잘 됐으면 좋겠네.”
내 말을 은정이가 알아들은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아, 아버지 환갑은 걱정하지마. 오빠가 준비할게.”
“오빠가? 가게 준비로도 바쁘잖아.”
“너는 이제 애기 신경 써야 하잖아.”
“그래. 그럼 오빠가 준비해. 필요한 경비는 나랑 안서방도 보탤게.”
“아니야, 괜찮아. 오빠 이제 장사 잘 된다. 그것도 오빠가 준비할게 너는 그 돈으로 아기 용품이나 사라.”
“오, 오빠가 이렇게 든든해 보이는 거 처음인데?”
“그러냐?”
“어, 오빠 고백도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빠 환갑도 오빠도 소개시켜 드려.”
“사귄 지 얼마나 된다고 벌써 아빠한테 말씀드리냐. 나중에 결혼하기 전에 말할 거다.”
“우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나보네.”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래, 나는 사실 지현이 언니가 오빠가 결혼 상대로 괜찮다고 생각했어. 근데 오빠가 그렇게 까지 이야기 하니까 더 이상 엮지 않을게. 대신 오빠 꼭 성공해야 한다.”
“그래,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나도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