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 화
[ 네? ]
전화기 너머로 놀란 듯한 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계속해서 고민을 했었다. 이게 맞는 일인지 말이다. 내가 로또에 당첨되었지만 2천만 원은 큰 돈이었다.
선우가 일을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알게 된 시간은 선영이보다도 길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빌려 주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 가게를 차릴 때도 그랬다.
만약 가게를 차리고 망하면 어떻게 하지? 모은 돈을 다 날리고 빚이 생길 텐데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내 결론은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 취업해서 다시 돈을 모으면 된다. 그러니까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자. 그래서 코로나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가게를 오픈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혹시 잘못되어 선우의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면 어떻게 될까?
비록 같이한 시간은 짧았지만 선우를 바로 도와주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수술비를 입금해 주었다.
물론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고 최근에 선풍제약으로 큰 돈을 벌어서 편한 마음으로 돈을 보내 줄 수 있었다.
“대출 알아본다며 다른 곳에 돈 빌리지 말고 내가 빌려줄 테니까 어머니 수술 빠르게 진행해라.”
[ … ]
나의 말에 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숨소리에서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제 병문안을 갔을 때는 괜찮아 보였지만 사실 그도 엄청 불안했을 것이다. 하나 뿐인 어머니가 쓰러졌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가 도움을 준다고 하니 설움이 폭발한 것 같았다.
“그거 그냥 주는 거 아니야. 너한테 이자 받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매달 월급에서 조금씩 깔태니까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 네, 사장님…감사합니다…저 열심히 할게요… ]
****
선우가 어머니 때문에 며칠 출근을 하지 못해서 내가 계속해서 주방에 들어가 한승이를 도왔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바로 한승이의 위생 교육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저번에 자료를 나누어준 후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알려주고 몇몇 부분은 개선하면서 발전하고 있었는데 워낙 가게가 바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
최근에 화정동에 있는 메밀 집을 다녀온 후로 더 느끼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가게보다 주방을 깔끔하게 관리 되어있는 그 가게를 보고 오니 긴장감이 생겼다.
“우리 같이 튀김기 많이 쓰는 곳에서는 가장 청소를 열심히 해야 되는 곳이 바로 주방 후드야.”
“네, 안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주방의 튀김기 위에는 기름을 튀길 때 발생하는 연기와 유증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후드와 빨아들인 연기가 밖으로 나가는 덕트가 있다.
식용유를 많이 튀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 후드와 덕트에 기름때가 끼곤 하는데 나는 이것들을 청소하는 것을 강조했다.
“이게 단순히 위생상 깨끗하게 해야하는 이유도 있지만 화재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거든.”
“화재 예방이요?”
“어, 주방 후드에 기름이 많이 끼게 되고 거기에 불똥이 생기면 기름때를 타고 큰불이 생길 수도 있어.”
“그렇군요.”
“저 안쪽에 덕트는 닦기 힘들어서 업체 불러야 하지만 그래도 눈에 부이는 후드는 깨끗하게 청소해 주는 게 좋아.”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하다.”
나는 오늘 전체적으로 돌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교육을 했는데 그래도 한승이가 혼자서 열심히 한 흔적들이 보였다.
내가 물어보는 것들에 대해서도 대답을 잘 했는데 그동안 퇴근하고서는 나름 열심히 공부 했던 모양이다.
그런 한승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한승아, 위생등급제 이제 신청하자.”
“벌써요? 조금 빠르지 않을까요?”
나의 말에 한승이는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아마 빠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아니야, 지금 하는 것처럼만 하면 충분히 좋은 결과 있을 것 같아.”
“그래요?”
이미 로이스에 있을 때 위생 등급제를 받아봤던 나였다. 그때와 비교했을 때 바뀐 규정도 있지만 큰 차이는 없으니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어, 내가 말한 부분만 몇 가지 수정하면 잘하면 매우 우수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한 번 해볼게요.”
사실 위생 등급제를 신청하고 점검이 나오는 데까지는 또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더 준비를 마치면 되니 그렇게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혹시나 떨어지면 나중에 다시 신청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한승이와 열심히 교육을 하고 있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전화기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네, 사장님.”
전화의 주인은 맥다방 사장이었던 조형우였다.
[ 어, 매장 바쁜 시간 아니지? 지금 전화 통화 가능해? ]
“네, 가능합니다.”
[ 나, 이번 주에 퇴원하기로 했어. ]
“오, 진짜요? 축하드립니다.”
그래도 교통사고였다. 수술까지 했으니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는데 한달만에 퇴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어, 의사 선생님이 경과가 좋다고 이번 주에 나가도 될 것 같다고 하셔서 그냥 바로 퇴원하기로 결정했어. ]
“잘하셨습니다.”
[ 그래서 말인데 그때 말한 것처럼 바로 알로하 출근해서 일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
그때 병원에 다녀온 이후로 출근에 관한 이야기를 따로 하지는 않았다. 당분간 그가 치료에만 전념하기를 바래서 그런 것이었는데 내가 연락이 없자 조금은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네, 언제든지 오셔도 되는데 바로 일하실 수 있겠어요? 그래도 퇴원하셨는데 며칠 더 쉬셔도 괜찮습니다.”
[ 아, 아니야. 병원에 계속 누워 있었더니 몸이 너무 찌뿌둥해서 안 되겠어요. 돈까스만 괜찮다면 다음 주부터 바로 출근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
나야 그가 빨리 와서 일을 도와 준다면 좋았다. 안 그래도 쉬지도 못하고 계속 일하고 있어서 피곤이 많이 쌓였던 참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그럼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하시겠어요?”
[ 오케이. 알겠어. 그럼 다음주에 보자고 ]
“네, 마지막 몸조리 잘하세요.”
내가 전화를 끊자 한승이가 통화 내용이 궁금한 듯 나에게 물었다. 생각해보니 한승이에게 말을 따로 해주지 않았다.
“사장님 누구에요?”
“아, 다음주부터 새로운 직원 하나 올 거야.”
“직원이요?”
“너도 알지? 옆에 맥다방 사장님. 우리 가게에서 일하기로 했어.”
“진짜요?”
“어, 사장님이 알고 봤더니 예전에 일본에서 가게를 하셨더라고 그래서 매장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오라고 했어. 너도 혼자 계속 일하기 힘들잖아.”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맥다방 사장님. 나이 좀 있으시지 않아요?”
“그렇기는 하지.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한 40대 초중반 되신 것 같은데…”
“그렇죠?”
“너무 걱정하지마 나이 많다고 막 함부로 대하고 그럴실 분은 아니야.”
“네, 알겠습니다.”
한승이는 약간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솔직히 한승이는 매장에서 나를 제외한다면 제일 나이가 많고 제일 대장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온다고 하니 아무래도 좀 불편한 것이다.
이것은 한승이뿐만 아니었다. 물론 나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조금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없이 받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전 맥다방 사장님을 여기서 교육 시킨 후에 다음 점포를 확장할 때 관리자로 보낼 생각이었다.
일전에 말한 직영점을 늘리는데 필요한 관리 직원으로 사장님이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메밀 집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없네.’
생각해 본다고 해서 꽤 시간을 드린 것 같았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었다. 이해는 되었다. 그래도 꿈을 가지고 자기만의 가게를 만들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만약 안 하신다고 하면 다른 곳을 알아봐야지.’
그때 다시 한번 전화기가 울렸다.
“사장님, 오늘 전화기가 바쁘네요.”
한승이는 울리는 전화기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는데 나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전화기에 뜬 이름을 보고 이번에는 조금 긴장을 했다. 기다리는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 네, 사장님. 저 메밀 집 신상원입니다. ]
“네, 그동안 잘 지내셨죠?”
나는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가게 위치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가 나와 같이 일하는 선택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고민해봤는데 사장님에게 가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
“진짜요?”
[ 네, 사실 가게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부족한 점도 많은 것 같아요. 사장님에게 운영노하우 배운 다음에 나중에 다시 인수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잘, 생각셨습니다.”
[ 그런데 혹시…나중에 저희 직원으로 쓰시다가 버리시고 그러시는 것 아니죠? ]
걱정하는 듯한 그의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는데 생각해보니 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오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 사기꾼과 도둑놈들이 많으니까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계약서에 명시하시면 되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 네, 사장님만 믿겠습니다. ]
“음…제가 시간 나는 대로 매장에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자세한 이야기 나누도록 하시죠.”
[ 네, 언제든지 연락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전화를 끊은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생각보다 2호점 개점을 빠르게 진행 시킬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메밀집을 2호점으로 변경하고 거기에 더해서 맥다방 사장님을 교육해서 3호점을 개점하면 단숨에 매장을 3개 까지 늘릴 수 있다.
‘이거 돈이 꽤 들어 가겠는데…’
한번에 꽤 많은 돈이 나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번에도 안 서방에게 맡겨야 겠지?’
일단 2호점은 상호만 바꾼다고 해도 기본적인 인테리어 변경이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았다.
이미 한번 일을 해봤기 때문에 은정이의 남편 안 서방에게 맡길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매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나왔어.”
나는 주방에서 나와서 홀로 나갔는데 매장에는 은정이가 있었다. 안 그래도 안 서방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진짜로 은정이가 온 것을 확인한 나는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네가 무슨 일이야?”
저번에 일을 그만두고 가게를 진짜로 오랜만에 찾아왔다. 안 서방과 일을 하고 있을 때도 가게를 찾아오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보니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오빠한테 할 말도 있고 오랜만에 돈카츠 먹으로 왔어.”
“돈카츠? 혼자서?”
“아니, 일행은 주차하고 있어.”
“그래? 근데 나한테 할 말은 뭐야?”
“응, 오빠 축하해.”
뜬금없이 축하 한다는 말에 나는 가게 오픈한 것을 이야기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무슨 축하? 가게 오픈한 거?”
“아니, 오빠 이제 조카 생겼으니까 축하한다고.”
나는 조카라는 말에 은정이의 배를 쳐다보았다. 계속 준비만 한다고 하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엄마, 아빠는 좀 걱정하는 것 같았는데 아이가 드디어 생겼나보다.
“너 임신한 거야?”
“응, 한달 전에 알았는데 몸조심해야 된다고 해서 집에만 있었어. 어때? 조카가 생긴 기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