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 화
‘무슨 일이지?’
나는 선우가 걱정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한승이와 하연이 모두 열심히 했지만 그동안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을 또 한 명 뽑으라고 하면 그건 선우였다.
처음에는 봤을 때는 설렁설렁 일할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고 거기에 더해서 배우려는 의지도 이어서 지금은 직원들이 먹는 돈카츠는 스스로 만들어 볼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 성우가 아무런 연락이 없이 출근을 안한다? 이건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코로나에 걸린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나는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사장님, 오늘 장사 어떻게 하죠?”
“어, 나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 내가 그 쪽으로 갈게.”
“오늘 쉬셔야 하는 거 아니세요?”
“어쩔 수 없지. 좀만 기다려 금방 가니까.”
“네, 알겠습니다.”
한승이 혼자서 주방일을 하기에는 너무 바쁘고 어렵다. 나는 얼른 매장으로 가서 일을 도와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나저나 큰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네.’
****
“사장님 선우 아직도 연락 없었죠?”
“어, 없었어.”
일하는 동안 꾸준히 핸드폰을 봤는데 점심 영업이 끝나고 브레이크 타임이 될 때까지 선우의 연락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승이는 다른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혹시 최지연에게 간 것은 아니겠죠?”
“지연이에게?”
“네, 최근 들어 자기네 매장으로 오라고 연락 왔었거든요. 사장님 신경 쓰실까 봐. 말씀은 안 드렸는데 선우에게도 접근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었다.
돈이 필요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선우는 처음부터 돈이 필요해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쪽에서 더 많은 돈을 준다고 했으면 흔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설마.”
혹시나 돈 때문에 갔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동안 지켜본 선우는 이렇게 갑자기 잠수를 탈 아이는 아니었다.
분명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때 전화가 울렸다.
<< 장선우 >>
기다리던 선우의 전화였다. 나는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선우야.”
[ 사장님, 죄송합니다. 연락이 늦었습니다. ]
“어, 괜찮아. 무슨 일이야?”
[ 갑자기 어머님이 쓰러지셔서 급하게 병원에 왔습니다. ]
“어머님이?”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님이 쓰러지셨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 네, 원래 지병이 있으셨는데 오늘 상태가 안 좋아 지셔서…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오늘 출근 못해서 죄송합니다.]
“어, 어쩔 수 없지. 그 어머님은 괜찮으시고?”
[ 일단 여기 병원에 입원했는데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며칠 쉬어야 할 것 같은데…괜찮을까요? ]
“그래. 어머님 옆에 있어야지.”
[ 감사합니다. ]
“출근 걱정하지 말고 일단 어머니 잘 보살펴 드려.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 네, 알겠습니다. ]
전화를 끊은 나는 선우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우리 어머니는 건강한 편이시지만 만약에 쓰려져서 병원에 가셨다고 하면 나도 아무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선우, 전화에요?”
“어, 어머님이 쓰러지셨대.”
“진짜요?”
한승이는 나의 말에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으시데요?”
“그건 잘 모르겠어. 병원에 좀 있어야 한다고 하네. 나중에 결과 나오면 알려 달라고 했어.”
“그렇군요. 큰일이네요.”
“그러니까 별일 없어야 할텐데…”
“저번에 일하면서 잠깐 이야기 했는데 선우는 어머니랑만 사는 것 같았어요.”
“그래?”
“네, 그때 자세한 사정은 안 물어봤는데 아버지가 안 계시는 것 같더라고요.”
사연 없는 집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래도 한승이 말처럼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그런 일이 발생했다니 더욱 신경이 쓰였다.
****
<< 전남 대학병원 >>
퇴근한 나는 선우를 만나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걱정이 되기도 하고 어떤 상황인지 궁금한 마음이 들어서 가보고 싶었다.
병원 로비에 도착해서 선우에게 연락을 했는데 조금 기다리니 선우가 1층으로 내려왔다.
“사장님, 안 오셔도 괜찮은데…”
“아니야, 밥도 안 먹었지?”
“네, 정신이 없어서 아직 못 먹었네요.”
“이거 받아.”
“이게 뭐에요?”
나는 선우에게 매장에서 포장해온 도시락을 건네 주었다. 다른 맛있는 것을 사오려다가 평소에 그가 자주 먹는 메뉴로 그냥 포장했는데 좋아했다.
“오, 히레카츠네요. 잘 먹겠습니다.”
“밥 먹을만한 곳 없나?”
“저기 식당 쪽에 휴게실 있던데 거기서 먹을 수 있어요.”
“그럼 거기 가서 밥 먹자.”
나는 선우와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서 같이 휴게실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 선우는 진짜 배고 고팠는지 포장지를 뜯고 돈카츠를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라.”
“네, 사장님 얼굴 보니까. 그래도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
확실히 걱정을 많이 해서 그런지 어제보다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이렇게 병문안도 와주시고 감사합니다. 어머니 퇴원하면 바로 출근하도록 할게요.”
“그래. 근데 어머니는 어디가 아프신 거야?”
“아, 원래 어머니가 만성신부전증이세요.”
“신부전증?”
“네, 원래 꾸준히 신장투석으로 노폐물을 빼줘야 하는데 갑자기 쇼크가 오신 것 같아요.”
“그러셨구나.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거야?”
“아니에요. 예전에 처음 병 알고 병원 지속적으로 다니면서 투석 진행해서 괜찮았는데 오늘 갑자기 그런신 거에요.”
“의사는 뭐라고 해?”
“노폐물 쌓이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투석 주기를 더 짧게 잡아야 할 것 같다고 하시네요.”
“그게 계속 투석을 받아야 하는 거야?”
“네, 안 그러면 오늘처럼 쓰러지실 수 있어서. 제가 출근 전이어서 다행이지 혼자 계셨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선우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가 말하는 큰일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자 나는 뭐라고 해줄 말이 없어다.
“그랬구나…”
“그래도 이제 알았으니까 병원 더 열심히 다니면 되죠.”
“그래, 근데 이거 투석하는 방법 밖에 없는 거야?”
“아니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으면 되는데…”
“신장 이식? 신장이 콩팥 말하는 거 맞지?”
“네, 맞아요. 안 그래도 신장 이식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인간의 몸에는 신장이 두 개가 있어서 하나를 떼어내어도 생활이 가능하다.
그래서 신장이 안 좋은 가족을 위해 기증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선우가 그런 모양이다.
“네 거 신장 이식 하려고?”
“네, 다른 사람 신장 기부로 받으려면 5년 정도 걸린다고 말씀하시고 가족도 저 밖에 없어서 제가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구나. 아버님은 돌아가셨어?”
“어…원래 어머님이 미혼모셨어요. 아버지는 저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지셔서 얼굴도 모르고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엄마랑 단둘이 살았죠.”
나는 선우의 말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하다. 내가 괜히 물어봤네.”
“아니에요. 저도 오랜만에 이런 이야기 하니까 속이 시원하네요. 사실 그동안 이런 이야기 어디 할 곳이 없었거든요.”
매장에서 선우는 밝은 아이였다. 그래서 이런 속사정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그래, 그럼 이식 수술은 언제 하는 거야?”
“일단 적합성 조사도 해야 하는데…수술비가 좀 많이 들어서 돈을 좀 모으로 하려고 했어요.”
선우가 배우일을 그만 두고 알바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재능의 한계를 느끼고 꿈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어머니 수술비를 벌기 위해서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괜히 그런 그에게 예전에 머리가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라 민망했다.
“그래? 그래서 배우 그만두고 알바 한다고 했었구나…”
“네, 원래는 돈을 좀 모아서 수술을 하려고 했는데 봐서 근데 대출이라도 받아서 이식 수술 진행 할까 생각 중이에요. 어머니가 갑자기 저러시니까 좀 불안해서…”
나는 선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와 같은 상황이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래, 네 얼굴 봤으니까 나는 이제 가봐야겠다. 너도 어머니 괜찮으신지 보러 가야지.”
“네, 여기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래, 너도 힘내고. 알지?”
“네, 힘내겠습니다.”
그렇게 선우와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인터넷에 신장이식에 관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다행인 점은 수술만 잘 되면 두 사람보다 큰 지장이 없이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위험했다는 선우의 말처럼 만성신부전증을 겪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도 많이 있었다.
‘괜찮으려나…’
사정을 듣고 나니 선우가 몹시 안쓰러웠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월급날이네.’
나는 컴퓨터에 있는 달력을 봤는데 생각해보니 내일이 9월 10일. 월급날이었다.
우리 가게는 매월 10일에 월급을 지급해 주었는데 사실 오늘 휴무로 잡은 이유도 원래 월급을 계산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스케줄 표에 적힌 대로 선우의 월급을 계산해 보았다.
1,881,000원
2백 만원이 안 되는 돈이었다.
신장 이식 수술 비용을 검색해보았는데 적게는 천만 원에서 많게는 이천만 원까지 들어간다고 나와 있었다.
선우가 아무 것도 쓰지 않고 최소 5개월에서 10개월은 모아야 한다. 아마 지속적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투석을 한다고 했으니 그 비용까지 생각하면 최소 1년 이상은 걸릴 것 같았다.
알로하에서 일한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아서 1금융권에 신용대출은 어려울 것이 분명 했다.
아마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을 이용해야 할 것인데 그 이자에 대한 부담도 장난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하지.’
****
다음날 출근한 나는 직원들에게 열심히 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다들 안녕.”
“사장님. 안녕하세요.”
“그래.”
“사장님, 안 피곤하세요? 저번 주부터 쉬지도 못하고 일하고 계시잖아요.”
한승이가 내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는데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래도 어쩌겠니. 내 가게니까 내가 열심히 해야지. 아, 다들 월급은 다 맞게 들어왔지?”
“네! 들어왔습니다!”
내 말에 한승이와 하연이 그리고 오늘 소미까지 모두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가게를 운영하면서 세운 원칙이 하나 있었는데 월급을 꼭 새벽이나 아침 일찍 입금해 주었다.
이건 예전에 로이스에 있을 때 경험했던 것으로 내가 생각한 장점 중 하나였는데 월급이 빨리 들어와서 아침에 들어온 돈을 보고 하루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사장님이 월급을 늦게 주면 하루 종일 월급이 언제 들어올까 생각하면서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모두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선우에게 전화가 왔다.
“어, 선우야.”
[ 사장님, 저 선우입니다. 아침에 월급을 확인했는데 잘못 보내신 것 같아요. ]
“잘못 보냈다고?”
[ 네, 확인해보니까 2천만 원 들어와 있던데…2백만 원을 잘못 보내신 거 아니에요? ]
나는 선우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어제 집에 돌아와서 계속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좋은 일을 한 번 더 하기로 결정했다.
“그거 잘못 보낸 거 아니야.”
[ 네? ]
“그거 사장님이 어머니 수술비로 빌려주는 거니까. 미루지 말고 수술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