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 화
“으으, 속이 쓰려.”
나름 술에 자신이 있었는데 한 덩치 하는 형님들의 술을 연속으로 받아 먹어서 그런지 속이 좋지 않았다.
오늘은 한승이가 쉬고 주방 근무를 하는 날이어서 몸을 많이 움직일 예정이었는데 어제 술을 마신 것이 조금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 나는 돈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니까.’
술이 조금 들어가자 박규원 사장님에게 업체를 바꾸게 된 자초지종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말씀드렸는데 의리가 있는 형님이신 지 나를 대신해서 화를 내시더니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동성이 형님과의 관계도 있어서인지 신뢰가 갔는데 강훈이 규원축산을 상대로 또 다른 로비를 하더라도 쉽게 넘어가실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군.’
그래도 며칠 마음고생을 했던 고기 업체에 관한 일을 해결해서 속이 시원해서 기분 좋아하고 있었는데 하연이가 출근했는지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 하연이 왔구나. 안녕.”
나는 하연이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는데 그녀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사장님,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왜? 또 무슨 일 있었어?”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나는 내가 없는 사이에 또 무슨 사건이 터졌는 지 긴장했는데 그녀가 말했다.
“제가 어제 문 닫고 퇴근하려고 여기 버스 정류장에 있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저기 로이스 점장이 저에게 다가오더니 커피 한 잔 하자고 하는 거에요.”
“최지연이?”
“네, 그 여자요.”
“그랬는데?”
“그래서 무슨 이야기 하는지 궁금해서 제가 따라 가봤거든요. 근데 저보고 글쎄 여기 그만두고 로이스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는지 물어봤어요.”
“뭐라고?”
나는 하연이의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한영축산 일로 이제 순탄하게만 흘러가지 않을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접근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당연히 거절했죠.”
“그랬더니 최지연이 뭐라고 했어?”
“저 보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어요. 사장님이 저 이용만 하고 버릴 거라고 아주 악담을 하던데요. 서로 안 좋은 사이라고 한승이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어요.”
“그랬어?”
사람이 부족해서 지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양혜원 점장에게 들었는데 인원을 이런 식으로 채울 줄은 몰랐다.
물론 나도 어떻게 보면 잘 다니고 있던 한승이나 이하연을 스카웃 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떠난다고 한다면 말릴 수는 없겠지만 막상 내가 당하고 나니 기분이 안 좋기는 했다.
다행인 점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하연이는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네, 사실 한승이 오빠는 사장님 신경 쓰일까 봐. 말 안 한 것 같은데 다시 돌아올 생각 없냐고 몇 번 연락 왔었나 봐요.”
“그랬구나.”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절대로 로이스 안 갈 거니까.”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이곳에 오고 공사한다고 쉬기도 하고 갑자기 바빠져서 그 전보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녀는 항상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도 내일이 바빠서 그녀를 많이 챙기지 못했는데 그녀의 말에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미랑 시환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확인했는데 역시 다시 돌아오라고 연락이 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지연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지?’
****
9월 9일.
가게 오픈하고 모처럼 쉬는 날이 생겼지만 가만히 집에 있을 수는 없었다. 업체에 손을 쓰고 직원들에게 접근하는 강훈과 최지연의 움직임에 나는 빠르게 가게를 넓히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오늘은 일전에 찾아온 신상원의 가게에 가볼 생각으로 아침 일찍 나섰다.
<< 청일 모밀 >>
화정동에 위치한 가게는 오피스 상권은 아니었다. 대신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를 많이 끼고 있어서 평판만 좋게 유지된다면 손님들이 꾸준히 올 것 같았다.
거기에 대단지 아파트가 가까이 있으면 배달 매출 올리기도 좋으니 상권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만약 신상원에게 상호를 내어준다고 하면 첫 분점이니 장사가 잘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주변 상권에 대해서 꼼꼼하게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위치는 나쁘지 않아.’
처음 가게를 오픈하기 전에 진짜 많이 돌아보러 다녔었다. 그때는 전 재산이 걸린 일이었기 때문에 진짜 꼼꼼히 봤었다.
그런데 지금 있는 이 가게 위치 나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처음에 가게를 오픈한다고 생각했어도 도전을 해 볼만한 자리였다.
상권 분석을 어느 정도 끝낸 나는 가게로 들어갔는데 오픈 준비를 하고 있던 여자 직원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10시 30부터 오픈인데 조금 있다가 오시겠어요?”
나는 시간을 봤는데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식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용건을 말했다.
“사장님을 잠깐 뵈러 왔습니다. 혹시 계실까요?”
“아, 잠시만요.”
내 말에 직원은 주방으로 가더니 사장님을 불렀다.
“지호 아빠, 손님 왔어요. 잠깐 나와보세요.”
단순 여자 직원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사모님이었던 모양이다.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신상원은 밖으로 나왔는데 나를 발견하고 놀란 듯이 달려왔다.
“사장님,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일전에 말씀하신 것도 있고 해서 매장 관리 어떻게 하시는 지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요즘에는 배달 어플 리뷰나 인터넷 블로그로 평판이 워낙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직접 가보지 않아도 대략적으로 어떤 느낌인 지 찾아보면 알 수 있다.
인터넷에 적혀진 글로만 보면 여기 메밀집은 맛은 그저 그랬는데 서비스와 친절적인 부분은 합격이었다.
“네, 혹시 분점 내주시는 건가요?”
그는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매출이 너무 낮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돈카츠 가게에 다녀왔는데 그 뒤로 별다른 연락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던 참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게 생각하고 있다는 나의 말에 그의 얼굴이 펴졌다.
“일단 주방 상태를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매장 관리가 엉망이면 분점을 내어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네, 가능합니다. 편하게 보십시오.”
나는 사장님과 함께 주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방금 청소를 했는지 바닥에 물기도 있고 깨끗했다.
“방금 청소를 하셨나 보네요.”
“네, 아침에 야채 작업하고 좀 어질러져서 물 좀 뿌렸습니다.”
나는 사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야채는 여름에 하루만 내버려 둬도 변하기 시작한다.
장사가 안 될 수록 이런 것이 아까워 며칠 가져가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는 매일매일 아침에 필요한 양을 작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냉장고도 열어 보았는데 잘 정리된 모습이 눈에 잘 들어왔다. 받드에는 특히 라벨링도 제대로 되어 있었는데 작업 시간, 보관 방법 등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건 좀 의외였다. 보통 개인 집에서 이렇게 까지 관리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최근에 한승이가 위생등급제에 도전하기 위해 관리를 빡세게 하고 있는 편이었는데 거의 그 정도 수준이었다.
“혹시 예전에 프랜차이즈 경험 있으세요?”
보통 프랜차이즈나 백화점 아울렛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익숙하기 때문에 잘 하는 편이어서 나는 물어 보았다.
“아닙니다. 원래 중소기업 다니다가 그만두게 되어서 퇴직금으로 가게 차렸습니다.”
“회사 다니다가 가게 하시기 힘드셨을 텐데…모밀집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가게 차린다는 생각만 하고 업종은 고민하고 있었는데 소바가 상대적으로 초심자들도 하기 편하다고 해서 관심이 있었고 또 여기가 가게 째 인수가 가능해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냉장고 관리를 엄청 잘 하셨네요.”
“아, 그거 와이프가 도와주었습니다. 원래 직업이 영양사여서 이런 거 꼼꼼하게 잘합니다.”
나는 그의 말에 왜 이렇게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학교 같은 경우에는 감사도 있기 때문에 특히 관리가 빡센 편이었다.
“그러셨군요. 어쩐지 관리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 낳고 계약 해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 뒀습니다. 아마 아내가 아니었으면 가게 차릴 생각도 못 했을 겁니다.”
“네, 잠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나는 사장님과 밖으로 나와서 테이블에 앉았다. 매장 상태를 점검하고 나니 불성실하게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 같지는 않았다.
“잘할 수 있습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사장님은 다시 나에게 부탁을 했는데 그의 굳은 눈빛을 보고 마음을 정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가맹점보다는 직영점을 늘리면서 프랜차이즈화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네.”
프랜차이즈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가맹점을 늘리는 것은 더욱 그렇다 내가 직접 관리하는 경우는 직원만 뽑으면 되지만 가맹점은 여러 가지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계약서나 조항을 세밀하게 따져야 한다.
내가 생각한 직접 돌아다니면서 관리할 수 있는 점포의 숫자가 3개 정도였기 때문이다.
일단 3개의 점포를 운영하면서 알로하의 이름을 좀 더 알리고 프랜차이즈화는 차근차근 준비해서 전국에 매장에 넓힐 계획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장님에게 다른 제안을 하였다.
“혹시 가게를 저에게 넘기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가게를요?”
“네, 제가 여기를 인수하고 알로하 직영점으로 운영하겠습니다. 사장님은 여기서 직원의 형태로 일하시는 거죠. 그렇게 일을 하시다가 사장님이나 저 모두 확신이 섰을 때 저에게 다시 가게를 인수를 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그때 가맹점 내어 드리겠습니다.”
며칠 고민을 하면서 생각한 방식이었다.
이건 나의 리스크도 줄이고 사장님의 리스크도 줄일 수 있는 방식이었다. 물론 그동안 사장으로 일했는데 내 눈치를 보면서 다시 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내 말에 사장님도 고민이 되었는지 대답을 망설였다.
“와이프랑 상의를 해야 해서 지금 답변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 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장님도 며칠 생각을 해보십시오.”
나는 사장님에게 그 외 여러가지 조건을 말하고 가게를 나왔다. 가게 상태가 별로 였다면 이런 조건을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가 이 조건이 싫다고 한다면 나는 천천히 다른 분점을 낼만한 곳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태생이 성실한 부부인 것 같았다. 자리도 괜찮은 편이었고 열심히 하려는 의지도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일을 잘 한다면 인수 조건도 좋게 해줄 의향도 있었다.
‘이제 좀 쉴까?’
아침부터 주변을 돌아다니고 바쁘게 움직였더니 피곤한 것도 같았다. 이제 그만 집에 가서 쉬려고 했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번호를 보니 한승이었다.
“여보세요.”
“어, 한승아.”
“사장님, 선우가 출근을 안 했어요.”
“선우가?”
갑자기 선우가 출근을 안 했다는 말에 나는 의아했다. 그동안 지각도 한 번 한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전화 해봤어?”
“네, 해봤는데 연락이 안 돼요. 어떻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