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 화
“마장동 칼잡이요?”
왠지 형님과 어울리는 별명에 나는 순간 웃음이 나왔는데 형님은 한 껏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하셨다.
“어, 나 예전에 마장동에 있는 축산시장에서 일했잖아. 그때 돼지 엄청 잡았지.”
생각해보니 형님이 예전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번에 술을 마실 때 스쳐 지나가듯이 김밥집 오픈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었는데 도축을 하셨다는 것은 또 새로운 이야기였다.
“그러셨군요.”
“그때 알았던 형님들 중 한 분이 광주에서 축산업체 하시는데 솜씨는 확실한 형님이니까 돈까스 마음에 들 거야.”
형님은 자신감 있게 말씀하셨는데 이상한 곳을 소개시켜 주실 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믿음이 갔다.
“그럼 거기 저 좀 알려주십시오.”
“잠깐만 기다려봐. 내가 형님한테 연락을 좀 해볼게.”
내 말에 동성이 형님은 전화를 들어서 통화를 시작했다.
“예 형님. 저 동성입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그의 전화에 나도 괜히 긴장이 되었는데 통화를 하던 형님이 나에게 물었다.
“부위 어디 어디 필요하냐고 물어보시는데?”
“등심이랑 안심 둘 다 쓰고 있습니다. 돈카츠 만들 거라고 말씀하시면 아실 겁니다.”
“네, 형님. 돈까스용으로 등심이랑 안심 둘 다 쓴다고 합니다. 아, 가능하세요?”
전화로 들려오는 가능하다는 말에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계약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어떤 식으로 고기가 들어오는 지 직접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형님, 혹시 고기 상태 직접 보고 싶은데 방문해도 되는 지 여쭤봐 주시겠어요.”
내 말에 형님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더니 전화로 물었다.
“형님 지금 문 여셨죠? 이따가 저녁에 가도 될까요?”
시간이 촉박해서 오늘 안 된다고 할까 봐 긴장이 되었는데 다행히 허락을 해주었다.
“네, 형님. 그럼 조금 있다가 뵙겠습니다. 들어가세요.”
동성이 형님은 전화를 끊고 나에게 가도 된 다고 말을 해주었는데 나는 형님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아서 좋았다.
물론 동성이 형님이 소개해준 업체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겠지만 그거는 고기를 확인하고 난 다음에 고민할 문제였다.
혹은 고기가 마음에 들어도 너무 비싸면 또 문제가 될 수 있었기에 일단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제발,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
저녁이 되자 나는 동성이 형님의 차를 타고 출발했다.
나 혼자 가고 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형님이 오랜만에 자신도 얼굴을 보고 싶다고 기어코 따라오셨다.
“근데 형님 마장동에는 언제부터 일하신거에요?”
“마장동?”
“네, 칼잡이라고 하시는 거 보니까 잠깐 일한 게 아니신 것 같으신데…”
“오래 됐지. 19살부터 했으니까.”
“19살이요?”
생각보다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나는 놀랐다.
“어, 보육원 나오고 바로 서울 가서 일자리 알아보다가 마장동에서 핏물 닦는 것부터 일 시작했지.”
“그러셨군요.”
저번에 술을 마실 때 형님에 관해서 몇 가지 안 사실이 있었는데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바로 형님이랑 동준이가 실제 형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말이다.
두 사람은 모두 고아로 같은 보육원에서 자랐는데 보육원 원장 선생님이 자신의 성으로 이름도 지어주고 진짜 형제처럼 자랐다고 했다.
18세가 되면서 보육원 정책상 동성이 형님이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되었는데 동준이가 보육원에서 나올 때 같이 살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동준이는 동성이 형님이 자신을 버려두고 갔다는 생각과 사춘기가 겹쳐서 방황을 했고 형님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보육원을 나오고 연락을 끊어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연락을 피하면서 살았는데 키워주신 원장님이 돌아가시고 만난 장례식장에서 만나 서로 오해를 풀었고 다시 형제처럼 지내기로 했다.
형님은 그 길로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다시 광주로 내려오셨고 그나마 요리에 재능이 있는 동준이를 위해 김밥집을 같이 차리셨다.
서로 체격도 그렇고 생긴 것도 닮지 않아서 형제라고 했을 때 조금 의외였었는데 나름의 속사정이 있었다.
****
<< 규원 축산 >>
“안녕하십니까! 형님!”
도착한 가게에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동성이 형님이 밝게 인사를 하였다.
“어, 왔어.”
사장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마중 나왔는데 동성이 형님처럼 상당히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잘 계셨죠.”
“어, 잘 있었지. 이분이 아까 말한 사장님이신가?”
“네, 저랑 친하게 지내는 동생인데 싸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규원 축산 사장, 박규원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남자는 말과 함께 손을 내밀었는데 나도 그 손을 붙잡고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돈까츠 전문점 알로하 운영하고 있는 김정훈이라고합니다.”
“일단 고기 상태부터 보셔야겠죠? 마침 작업해 놓은 게 있는데 한 번 보시겠어요?”
“넵.”
나는 박규원의 안내에 따라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보통 다른 업장에서도 위생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작업장을 보고 싶어했는데 대부분 꺼려했다.
하지만 먼저 자신 있게 안내해주는 것을 보니 그런 부분에 있어서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작업장으로 들어가서 둘러 보았는데 확실히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자신 있을만 하군.’
내가 온다는 소리에 어느 정도 정리를 해 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나마 이런 성의도 보이지 않는 업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면 만족이었다.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사장님은 냉장고에서 작업한 고기들을 꺼내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등심하고 안심입니다.”
나는 사장님이 꺼내준 고기를 확인했는데 동성이 형님의 말처럼 이 전의 가게들과는 다르게 깔끔하게 작업된 모양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내가 원했던 근막제거와 같은 부분이 말끔히 작업되어 있었고 그램수 대로 썰기만 하면 바로 돈카츠 작업을 해도 될 것 같은 모양이었다.
“형님 고기가 엄청 좋은데요?”
옆에 있던 동성이 형님이 고기를 보더니 감탄을 내뱉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미세한 고기 신선도의 차이까지는 구분하지 못 한다.
맛을 보면 맛있는 지 아닌 지 어느 정도 알 수 있겠지만 눈으로만 보고는 좀 힘들었다.
“좋은 거에요?”
“어, 이렇게 미홍색에 불빛에 반사되서 윤기가 잘잘 흐르는 거 보이지? 같은 등급 중에서도 최상위야.”
“그렇군요.”
“동성이 아직 고기 보는 눈 안 죽었구나? 이게 도축된 지 5일 지난 고기인데 아마 가게에는 이 정도 컨디션으로 들어갈 겁니다.”
“도축 시간에 따라서 고기 질에 차이가 있나요?”
“당연히 있죠. 보통 돼지고기는 도축 후 2일이 지날 때부터 사후강직이 풀리는 데 5~6일 지난 고기가 가장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그랬군요.”
그러고 보니 업체들을 돌아다니면서 똑같은 등급에 같은 부위여도 미세하게 차이가 있다고 느껴졌었는데 도축이나 숙성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이인 것 같았다.
“그래도 동성이 지인이니까 가격적인 부분도 저희 마진 빼고 최대한 맞춰드리도록하겠습니다.”
“네, 혹시 얼마까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등심 같은 경우 이 정도면 1Kg에 8,900원은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장님은 생각하는 가격을 말했는데 이 전에 들렸던 가게들이 9,000원 이상을 불렀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저렴하게 해주신 것 같았다.
“네, 그 정도 가격이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고기 언제부터 필요하세요?”
“저희가 당장 다음주부터 써야 해서 혹시 가능할까요?”
“다음주 부터요?”
내 말에 사장님은 조금 놀란 것 같았는데 달력을 들어 일정을 확인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우리도 월요일에 고기 받아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화요일 날 아침에 물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정도면 괜찮습니다. 혹시 여기 발주는 어떤 식으로 하면 될 까요?”
“필요한 양 나한테 바로 문자 넣어 주시면 됩니다.”
물건을 발주하는 방식은 그 전에 한영 축산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럼 일단 화요일날 등심이랑 안심 10kg 씩 넣어주시겠어요.”
“잠시만요.”
나는 일단 당장 화요일에 필요한 물량을 사장님에게 말씀드렸는데 사장님이 팬을 꺼내더니 작업장 한 쪽에 적힌 보드판에 적기 시작했다.
“알로하 등심 10kg, 안심 10kg.”
보드판에 주문수량을 적은 사장님은 명함 한 장을 꺼내서 나에게 건내주었다.
“다음부터는 거기 적힌 번호로 주문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혹시 급하게 고기 필요하시면 바로 전화주세요. 물건 있으면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사장님에게 명함을 받았는데 지갑에서 나의 명함도 꺼내서 드렸다.
<< ALOHA 사장 김정훈 >>
공사하는 기간 동안 명함을 하나 새로 팠는데 가게 간판과 비슷한 글씨체로 만들어서 상당히 예쁘게 잘 나왔다.
“혹시 지금보다 더 많은 물량도 가능할까요?”
“더 많은 물량이요? 장사가 잘 되는 날이 따로 있나요?”
“아, 그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프렌차이즈를 생각하고 있어서 더 많은 고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가게 또 만들려고?”
나의 말에 동성이 형님이 조금 놀란 듯이 끼어들면서 말했다. 하긴 가게를 넓힌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가게를 만든다고 하니 놀랄일은 맞았다.
“그러시군요. 혹시 필요한 물량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세요.”
사장님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을 했다.
일단 로이스가 광주에 3개의 점포가 있으니 나도 3개까지 늘리는 것으로 목표로 잡았다.
“한번 입고 될 때 부위당 30kg 정도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의 말에 사장님은 호탕하게 말했다.
“그 정도면 괜찮습니다. 저희가 충분히 소화 가능합니다.”
나는 괜찮다는 사장님의 말에 안심을 했다. 혹시나 나중에 물건이 부족하면 다시 구해야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에 미리 이 부분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도 거래가 성사 돼서 다행이네.”
동성이 형님도 그래도 나와 친한 형님이 서로 거래를 하기로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 지 기뻐했다.
“네, 형님. 아니었으면 고생 좀 할 뻔 했네요.”
나도 동성이 형님이 아니었으면 당분간 새벽같이 나와서 고기 작업을 할 뻔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형님도 오랜만에 봤고, 기분도 좋은데 다 같이 소주 한 잔 하는 건 어떨까요?”
나는 형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앞으로 자주 볼 사이였는데 친해지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한영 축산 사장님과는 그런 인간적인 대화가 부족했다.
내가 프렌차이즈 생각을 가지고 있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면 이런 일이 안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그래, 그러지.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고 동성이 너 때문에 거래처 얻었으니까 내가 한턱 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