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 화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렸는데 그녀의 집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긴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녀가 혼자 사는 집이라고 생각하니 묘한 떨림이 있었다.
‘이거 좋아할지 모르겠네.’
내 손에는 포장된 디퓨져가 들려있었는데 그래도 처음 집에 오는 건데 맨손으로 오기 그래서 선물로 준비했다.
평소 그녀에게는 좋은 향기가 흘러 나왔는데 최대한 그것과 비슷한 향으로 골랐다.
나름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고 신중하게 고른 것인데 그녀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로 들어가서 벨을 누르자 그녀가 나왔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나를 맞이해 주었는데 평상시와 다르게 청바지에 평안한 복장으로 있는 그녀가 새로웠다.
“오빠, 오셨어요.”
“어, 그래...”
그녀는 밝게 웃었는데 나는 오랜만에 보는 그녀가 반가우면서도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들어오세요.”
그녀의 안내를 받아 집으로 들어갔는데 집은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깨끗한 분위기였다. 처음 오는 그녀의 집이 신기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그녀가 창피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무 그렇게 자세히 보지는 마세요. 더러운 곳이 있을 거에요.”
“아니야, 집 너무 깨끗한데?”
“그래요? 열심히 청소한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녀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는데 나는 그녀에게 준비해 온 선물을 준비했다.
“자, 이거 선물이야.”
“오, 이거 디퓨져네요? 너무 고마워요. 오빠.”
“그렇게 비싼 건 아니야. 향기가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내 말에 그녀가 바로 포장지를 뜯고 향기를 맡았다.
“음...향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안 그래도 화장실에 디퓨져 떨어져서 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잘 됐어요.”
“그래? 그럼 다행이다.”
“배고프시죠? 여기 잠시만 앉아 계세요. 제가 금방 저녁 준비할게요.”
거실에는 테이블과 의자 2 개가 놓여 있었는데 나는 그녀가 안내해 주는 곳에 앉았다.
그녀가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서 가고 나는 거실을 훑어보았는데 특이하게 거실에는 TV와 소파가 없었다.
다른 집들과 다른 구조에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요리를 하고 있던 그녀가 나의 궁금증을 알아차린 듯 말했다.
“거실이 너무 횅 하죠?”
나는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그녀에게 물었다.
“어? 그러네. TV는 잘 안 봐?”
생각해보니 저번에 나랑 똑같이 드라마랑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TV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의외였다.
“제가 TV를 누워서 보는 거 좋아해서 안방에 설치했어요. 아! 이번에 구조 바꿨는데 보여드릴게요. 아마 보시면 오빠도 하고 싶어 지실 거예요.”
그녀는 나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그녀의 말처럼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붙박이장 사이에 TV가 커다랗게 들어가 있었는데 침대에 누워서 볼 수 있게 끔 설치가 되어 있었다.
“오, 이거 완전 편하겠다.”
“그렇죠? 이번에 바꿨는데 엄청 편해요.”
나도 소파에 누워서 TV를 자주 보기 때문에 그녀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나도 집을 이렇게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집이 이렇게 마음대로 바꿔도 되는 거야? 집주인이 뭐라고 하는 거 아니야?”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분명히 전세를 살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집을 이렇게 마음대로 바꿔도 되는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최근에 이 집 샀어요.”
“오, 그랬어? 잘 됐네.”
“네, 집주인이 판다고 이야기하셔서 고민을 좀 했는데 주변 사람들 물어보니까 집값 계속 오른다고 해서 그냥 과감하게 질렀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7억 5 천을 주고 산 우리 집도 벌써 8월에 들어서서 8 억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파트 관련 사이트에서는 10 억은 충분히 넘길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근데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어?”
나는 왠지 그녀가 이런 중요한 일을 말을 안 했다는 것이 조금 서운했다.
“아, 그냥 어차피 이사 가는 것도 아니고 해서...그리고 이거 부모님이 도와주시고 대출 최대한 땡겨서 산 거에요. 제 돈으로 산 거는 여기 안방 정도 밖에 안 돼요. 나머지는 은행 거예요.”
그녀는 말하면서 나의 눈치를 살폈는데 이제 보니 말을 안 한 이유가 내가 자격지심을 느낄까 봐 인 것 같았다.
그녀에게도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그녀는 내가 투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 집을 샀다고 이야기하면 내가 신경을 쓸까 봐 말을 안 했던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어색한 기운이 흘렀는데 그녀도 느꼈는지 갑자기 침대에 앉으며 말했다.
“이번에 침대도 큰 맘 먹고 바꿨는데 엄청 푹식푹신해요. 오빠도 앉아 보세요.”
나는 그녀를 따라서 침대에 앉아 보았는데 그녀의 말처럼 진짜로 푹신푹신했다.
“오, 진짜다. 나중에 어디서 샀는지 알려줘. 나도 바꿔야겠다.”
그렇게 침대에 그녀와 나란히 앉아서 쿠션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지만 단 둘이 침대에 앉아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얼굴이 빨개 지면서 급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빠, 배고프시죠. 제가 빨리 저녁 준비해드릴게요.”
그녀는 갑자기 말이 빨라지면서 안방에서 나와 주방으로 향했는데 나도 그녀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어...배고프다...빨리 저녁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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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말과 함께 커다란 스테이크를 내려 놓았는데 생긴 모양은 엄청 맛있어 보였다. 내가 알기로 저 정도 크기의 고기를 구우려면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을 것 같았다.
식탁 위에는 스테이크 뿐만 아니라 샐러드, 파스타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것들도 맛있어 보였다.
“아니야, 엄청 맛있을 것 같아.”
“그래요? 사실 요리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냥 너튜브랑 블로그 보고서 따라 해봤는데 오빠 입에 맞았으면 좋겠네요.”
“그래? 나는 밖에서 저녁 먹어도 괜찮은데 괜히 준비하느라 고생한 거 아니야?”
“원래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었는데 요즘 코로나 확진자 많이 나오잖아요. 오빠, 이제 가게 오픈해서 안 그래도 사람 많이 만나는데 괜히 돌아다니다가 확진자 접촉해서 쉬게 되면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집에서 제가 요리 해주고 싶었어요.”
“아, 그랬구나.”
이제 보니 나를 배려해서 집에서 데이트하자고 한 것이었다.
“자, 드셔 보세요.”
나는 그녀의 권유에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고기가 목에서 부드럽게 넘어갔는데 요리에 자신 없다는 그녀의 말과 다르게 맛있었다.
“오, 엄청 맛있다.”
“그래요? 저도 먹어볼게요.”
그녀도 나를 따라서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맛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요식업을 시작한 이후로 집에서 요리를 잘 하지 않았다.
일을 하고 돌아오면 피곤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매일 같이 주방에서 돈카츠를 만들고 요리를 하다 보니 막상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칼을 잡기 싫어진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가게에서 밥을 먹고 퇴근하거나 아니면 배달 음식으로 저녁을 때웠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차려준 저녁 식사를 먹고 있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것도 드셔 보세요.”
그녀는 이번에 파스타를 덜어서 나에게 건네 주었는데 나는 숟가락과 포크를 이용해서 돌돌만 후 입에 집어 넣었다.
“음...파스타도 너무 맛있다.”
“그래요?”
“어,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나의 칭찬에 그녀가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 사실 이거는 마트에서 파는 파스타 소스에요. 그냥 면만 익힌 다음에 이거 섞으면 돼서 어렵지 않아요.”
“그래? 그래도 면은 직접 만든 거잖아. 엄청 맛있어.”
“오빠가 좋아하시니까 다행이네요.”
“응 내가 떠줄게. 단비도 먹어봐.”
나는 그녀의 접시에도 파스타를 떠 주었는데 그녀도 먹고 맛있다는 듯이 웃었다.
“맛있네요.”
그녀가 맛있는 게 먹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이번에는 샐러드를 포크로 찍었다.
“샐러드는 맛이 어떠세요?”
다른 것들과 다르게 이번에는 단비가 제법 긴장한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샐러드도 맛있었다.
야채는 양상추로 만들어진 일반적인 재료였는데 소스가 인상적이었다.
“샐러드 맛있다. 이거 소스 특이한데? 이것도 마트에서 산 거야?”
“아, 그거는 제가 인터넷 보고 직접 만들었어요. 마음에 드세요?”
“어, 너무 맛있다. 이거 참깨로 만든 거야?”
“네, 참깨랑 마요네즈랑 섞어서 만든 거에요.”
나는 그녀의 말에 샐러드를 몇 번 더 먹어 보았다. 확실히 소스가 맛이 있어서 그런지 샐러드를 계속해서 먹게 되었다.
“오, 진짜 잘 만들었다. 우리 가게 소스 보다 더 맛있는 거 같아.”
“진짜요?”
그녀는 직접 만들어서 일까? 맛있다는 나의 말에 엄청 좋아했다.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한 빈말은 아니었다. 진짜로 우리 가게 샐러드 소스보다 맛있었다. 지금 가게에서는 양배추에 뿌려 먹는 소스로 흑임자 소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닌 인터넷으로 주문한 드레싱 소스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가격이 저렴하고 편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맛은 평범한 편이었다.
계속 먹으면 좀 질리는 맛도 있었는데 그녀가 만든 샐러드 소스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약간 새콤한 맛도 나는 것 같은데...식초 넣었어?”
“오, 발사믹 식초 조금 넣었는데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사실 그냥 새콤 맛이 나서 추측해 본 것인데 그녀가 띄워주자 조금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맛이 조금 나는 것 같아서.”
“오, 대단하세요. 역시 요리사는 다르네요.”
“아, 그런 것 아니야. 근데 진짜 잘 만들었다.”
“그래요? 오빠가 맛있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만드는 법 알려드릴까요?”
“응, 나 알려주라. 가게에 적용할 수 있는지 해봐야겠다.”
안 그래도 요즘 샐러드 때문에 고민이 좀 있었다. 우리 가게 상징이라고 한다면 바로 산 같이 많이 주는 양배추 샐러드였다.
처음에는 그냥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끌기 위해서 양배추를 엄청 많이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가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SNS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이미지 사진들을 보면 다른 가게들과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이것에 호기심이 생겨서 가게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샐러드 소스 맛이 평범하다 보니 많이 주는 것과 다르게 의외로 양배추를 남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좋은 돈카츠의 품질에 만족해서 음식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양배추를 버리는 양이 많으니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양배추의 양을 줄이는 것은 또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만든 참깨 드레싱을 적용하여 가게 샐러드 소스를 발전시킨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저도 보고 만든 건데요. 제가 이따가 어디서 봤는지 알려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