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화
병원에 도착한 후 조형우는 바로 응급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간호사와 의사가 달라 붙어서 상태를 지켜봤는데 나는 얼마 못 있고 밖으로 쫓겨났다.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나는 초조하게 밖에서 경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가게 음식을 배달하다가 사고가 났다. 그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머리가 아찔했다.
그렇게 조용히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조용히 쳐다 보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응급실로 뛰어 들어오는 조형우의 아내를 볼 수 있었다.
병원으로 오는 도중 다행히 그녀에게 연락이 와서 사고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녀는 바로 달려와서 물었다.
“그이는 지금 어디 있나요?”
“아까 전에 응급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바로 응급실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주변에 있던 간호사들에게 제지를 당했다.
“보호자 분, 지금 응급조치 중입니다.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나 역시 응급실로 들어가려는 그녀를 말렸고 응급실 앞에 있는 의자에 그녀를 앉혔다. 그녀는 반쯤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응급실 문이 열리면서 의사가 나왔다.
“조형우 환자. 보호자세요?”
의사의 말에 그녀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네, 제가 보호자입니다. 소윤이 아빠 괜찮나요?”
“어...일단은 위급하신 상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발목 골절이 발생한 것으로 보여서 수술은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다른 곳은 괜찮은 건가요?”
“발목만 보면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교통사고 환자이기 때문에 정밀진단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술동의서 작성해야 하는데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곧이어 조형우는 수술을 위해서 수술실로 들어갔고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나는 그녀와 같이 수술의 경과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듯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제가 정신이 너무 없었네요. 병원까지 데려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혹시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보셨을까요?”
“저도 자세히는 못 봤는데 저희가게 음식 가지고 배달 가셨다가 사거리에서 자동차랑 부딪치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가해자는 지금 어디에 있죠?”
“아, 구급차에 한 명만 탈 수 있다고 해서 일단은 제가 따라왔습니다. 여기 명함을 받아뒀으니 나중에 연락해보십시오.”
“감사합니다.”
나에게 연락처를 받아든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휴지를 가져와 그녀에게 건네 주면서 위로를 해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괜찮으실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나서...”
“예전이요?”
“네, 예전에도 크게 다쳐서 수술한 적이 있었거든요. 다시는 이런 일 생기지 않았으면 했는데...”
“예전에도 교통사고 당하셨나요?”
“그건 아닌데...예전에 손을 크게 다쳤어요.”
“손이요? 어쩌다가...다치셨을까요?”
“음...원래 소윤이 아빠, 요리사였어요.”
“요리사요?”
나의 궁금증에 그녀가 담담히 과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네, 카페 하기 전에 원래 일본에서 요리사로 일을 했었어요. 요리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죠.”
“아, 그러셨군요.”
“그때 저는 일본어 공부를 위해서 유학중이었는데 알바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죠. 타지라서 그런지 서로 금방 친해졌고 그렇게 몇 년 만나다가 일본에서 결혼까지 했어요.”
“네.”
“결혼한 후에 둘이서 작은 가정식집을 차렸는데 남편을 도와주기 위해서 일을 하다가 제가 실수로 칼을 떨어뜨렸고 남편이 무의식 중에 떨어지는 칼을 잡으려다가 손가락을 크게 다쳤어요.”
그녀는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그때 당시를 상상하고 이마를 찌뿌렸다. 날카로운 칼을 손으로 바로 잡다니 크게 다쳤을 것이 분명했다.
“저런...”
“그때 일본에서 여기저기 병원을 옮겨 다니면서 수술을 하려고 했었는데 쉽지 않더군요. 아마 조금만 늦었으면 소윤이 아빠는 손가락 없이 살아야 했을 거예요.”
로이스에 있을 때도 주방에서 칼을 사용하다 다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했다. 오히려 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을 때 큰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나는 크게 다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자질구레한 상처들은 자주 입었기 때문에 칼에 베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알고 있었다.
“큰일날 뻔 하셨군요.”
“네, 진짜 큰일날 뻔 했죠. 다행히 치료는 잘 되었고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왠지 저 때문에 다쳐서 그런지 남편이 칼 잡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어요. 볼 때마다 자꾸 사고가 일어났던 순간이 생각이 났거든요.”
나는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특히 자신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미안함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남편도 그걸 알았는지 어느날 그러더군요.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른 일을 하자고요.”
“그래서 이곳에서 카페를 하셨군요.”
“네, 남편이랑 저랑 둘 다 여기가 고향이거든요. 타지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고향이 그립기도 했고 딸아이도 한국에서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래서 남편과 같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카페 문 닫고 남편은 다시 요리사로 취업해서 일하고 싶어 했는데 제가 예전 생각이 나서 머뭇거렸어요...예전에 다쳤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배달 일을 하신 거군요.”
“네, 근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요리사 하게 내버려 둘 걸 그랬어요. 다 저 때문이에요.”
그녀는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또 생겼다고 생각하는지 계속해서 자책했는데 나는 그녀를 위로했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사고입니다. 그렇게 자책하실 필요 없어요.”
“네, 저도 알고 있어요. 근데 저렇게 다친 모습 보고 있으니 마음 편하지는 않네요.”
“괜찮으실 겁니다. 아까 의사 선생님도 위급한 것 같지는 않다고 하셨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괜찮으세요?”
“나? 보시다시피 멀쩡해.”
수술 후 조형우는 바로 병원에 입원을 하였고 나는 며칠 시간이 지난 후 안부 인사차 병원을 방문했다.
발에 깁스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그것과는 다르게 그의 상태는 좋아 보였다.
“좋아 보이시니까 다행이네요. 처음에 사고 났을 때 걱정 많이 했습니다.”
“뭐, 돈카츠 때문에 사고 난 것도 아닌데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그래도 저희 물건 배달 하시려다가 다치셨잖아요.”
“에이, 나 보다시피 괜찮아. 그러니까 너무 그럴 필요 없어. 자꾸 그러면 오히려 내가 부담스러워.”
“네, 병원에서는 얼마나 있어야 한다고 하던가요?”
“다행히 수술이 잘 돼서 길면 두 달 정도 있어야 한다고 하더군. 상태 봐서 더 빨리 퇴원할 수도 있고.”
“그건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이제 뭐 먹고 살지가 걱정이네. 사고나서 배달 일도 못하게 생겼어.”
“이제 안 하시려고요?”
“어, 이제 안 하려고. 처음 일할 때는 내가 안전운전하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이게 소용없더군. 내가 아무리 안전운전해도 누가 갔다 박으니까 소용이 없어.”
사고에 대한 조사도 끝났는데 조형우 사장은 자기 신호에 맞게 출발하였고 자동차 운전자가 신호 위반으로 오토바이의 옆을 박은 것이었다.
“그렇기는 하죠. 이만하신 게 천만 다행이세요.”
“주마등이라고 그러나? 사고 나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그동안 살았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타다탁 스쳐 지나가는 거 있지? 수술 끝나고 다시는 우리 딸 얼굴 못 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배달 일 이제 안 하려고.”
“잘 생각하셨습니다.”
“근데 가게 바쁜 거 아니야? 이렇게 비워도 돼?”
“아, 오늘은 드릴 말씀이 있어서 겸사겸사 들렸어요.”
“나한테?”
“네, 원래 사장님, 일본에서 요리사로 일하셨다면서요.”
“뭐야, 그거 누구한테 들었어?”
“사모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아, 그랬어? 이거 쑥스럽네. 그런데 요리사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야. 그냥 일본에서 조그마한 가게 하나 했었지.”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다 나으시면 저희 가게에서 일하시는 건 어떠세요?”
며칠 동안 고민을 했었다. 단순히 사고가 난 것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게 확장 이후로 손님들이 계속 몰리면서 나는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많이 피곤했다.
거기에 최근에는 한승이 가게에 늦게까지 남아 위생에 관한 것도 공부하고 있어서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주방에서 일할 직원을 더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요리사로 일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일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에게 말했다.
“돈카츠 가게에서?”
“네, 예전에 가정식집 운영하셨다면서요. 튀김 하시지 않으셨어요?”
보통 일본 가정식집이라고 하면 구이, 조림, 튀김 등 다양한 메뉴를 만드는 데 경험이 있는 그라면 빠르게 일에 적응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튀김했지, 돈카츠도 메뉴에 있긴 있었어.”
“그러셨어요. 그럼 잘 됐네요. 어떠세요? 저희 가게에서 일하는 거?”
“나쁘지 않은 것 같기는 한데...와이프가 요리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서...”
“그런가요?”
“어, 예전에 요리하다가 다쳤거든...”
그는 이야기하면서 손을 보여줬는데 생각보다 커다란 자상이 남아 있었다. 아마 저것이 사모님이 이야기한 상처일 것이다.
그동안 사장님을 지켜보면서 성실한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만약 그가 우리 가게에 온다면 한승이처럼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포기 해야 하나 싶었는데 병실 문이 열리면서 사모님이 들어왔다.
“여보, 나는 괜찮아. 당신하고 싶으면 요리해도 돼.”
“여보...”
이제 보니 그녀는 밖에서 나와 조형우가 나누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당신 요리 잘하잖아. 그동안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해서 당신 앞길 막고 있었던 거 같아. 나 이제 괜찮아졌어.”
“진짜 괜찮아?”
“어, 이제 진짜 괜찮아.”
그녀는 밝게 웃었다. 사실 남편이 사고를 당하고 그녀도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남편은 요리를 엄청 좋아 했었다.
일본까지 가서 홀로 요리를 배울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결혼하고 너무 자신 때문에 남편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참고 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고마워.”
아내의 허락을 맡은 조형우는 밝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나,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됐네요. 그럼 일단 최대한 빨리 회복하는데 집중해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케이, 잘 됐네. 내가 나중에 일 시작하면 예전에 연구했던 레시피 알려줄게.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레시피요?”
“어, 기대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