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화
나는 단비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녀도 최근에 백화점 세일 기간이어서 엄청 바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다니 의외였다.
“아직 세일 기간 안 끝나지 않았어?”
“오늘은 쉬는 날이에요. 일주일에 이틀은 쉬어야죠.”
“그래, 근데 왜 온다고 이야기 안 했어.”
“오빠,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요. 자, 이거 직원들하고 나눠서 드세요.”
그녀는 빵과 커피를 건네주었는데 바빠서 아직 점심을 먹지 못한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고마워. 잘 먹을게.”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반가워서일까? 나도 모르게 그녀만 쳐다보고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미희 씨가 말했다.
“저희는 안 보이세요?”
“아, 죄송합니다. 오늘도 와주셔서 고마워요.”
그녀는 2명의 지인들과 같이 왔는데 한 명은 담양에서 유명한 카페를 하고 있는 사장님이었고 한 명은 SNS와 블로거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의 소개로 두 사람과 인사하고 서로의 SNS도 팔로우도 하면서 가게도 홍보해주고 도움을 주기로 했다.
왠지 인맥이 점점 넓어지는 느낌이었는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메뉴 어떤 거 드시겠어요? 맛있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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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문하신 히레카츠 정식이랑 미니우동 나왔습니다.”
“우와, 맛있겠다. 양배추 진짜 엄청 많네요.”
“런치세트는 어느 쪽으로 드릴까요?”
“네, 이쪽으로 주세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나는 미희 씨와 단비의 테이블에 주문한 음식을 두고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단비가 나의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쳐다봤는데 그녀의 손에는 아까 내가 주고 온 미니우동이 들려 있었다.
나는 놀라서 그녀에게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 오빠. 정수기 어디에 있어요?”
“정수기? 왜? 혹시 우동이 짜니?”
매장에 사람들이 많아서 일까? 나의 말에 그녀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나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미니우동을 나에게 달라고 말했다.
“그래? 그럼 기다려. 내가 물 좀 넣고 다시 끓여 줄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하면 돼요.”
그녀의 말에 나는 정수기가 있는 디쉬업 쪽으로 안내해 주었는데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그녀가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오빠, 사실 미니우동에 머리카락이 있어요...새로 하나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몰래 가지고 왔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서 미니 우동을 쳐다보았는데 작은 머리카락이 떠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미안해. 내가 금방 새로 해줄게.”
너무 미안하고 창피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녀 덕분에 고객들이나 지인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주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소개로 가게 홍보해주러 왔는데 머리카락이 나왔으면 미희 씨나 그녀의 지인들에게 분위기가 싸 해질 뻔했다.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서 한승이에게 미니 우동을 새롭게 부탁하려고 했는데 한승이의 모습에 조금 화가 났다.
그가 위생모를 벗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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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미희 씨, 디자인도 그렇고 가게 홍보까지 신경 써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장사 잘 되면 다 좋죠.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그녀와 인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단비가 나에게 말했다.
“오빠, 저도 가볼게요.”
“고마워. 아까는 고마웠어.”
나는 다시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괜찮아요.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이따가 한가해지면 연락하세요.”
“그래, 조심히 가.”
그녀들을 떠나보내고 가게로 들어온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한승이에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야, 밖에 빵이랑 커피 있으니까 먹고 쉬어.”
나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을까? 선우는 내 눈치를 보더니 주방에서 나갔다.
한승이는 열심히 주방 뒷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주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벌여놓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한승아, 내가 로이스에서 있을 때도 말했지? 위생은 항상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야.”
한승이는 맡은 일도 잘하고 센스도 있어서 참 괜찮은 직원이었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바로 위생을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원래 주방일을 하지 않아서 일까? 예전에 처음 입사하고 일을 가르칠 때도 이걸로 많이 혼냈었다.
그동안은 주방이 오픈되어 있어서 그런지 신경 써서 일하는 것 같았는데 가리는 칸막이를 설치하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지니 조금 실망했다.
“아까, 왜 모자 벗고 있었어?”
“죄송합니다. 너무 더워서 저도 모르게 그만...”
당연한 이야기지만 뜨거운 기름과 불을 사용하는 주방의 온도는 엄청 덥다. 거기에 이제 한 여름이라 에어컨이 나오는 홀에 비하면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올 정도로 더웠다.
더군다나 오늘은 엄청 바빴으니 더욱 땀이 흘렀을 것이다. 그가 고생한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었다.
“고객님이 우리 가게에 들어오실 때는 깨끗하고 안전한 음식을 만들어서 제공한다고 믿고 음식을 사먹는 거야. 일종의 약속이지. 너는 오늘 그 약속을 배신한 거야.”
“네...”
“오늘 정신없었던 것은 나도 알고 있어. 근데 너는 직원이잖아. 선우도 지켜보고 있으니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경을 썼어야지.”
“죄송합니다.”
“만약 나 아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 음식에 나왔다고 생각해봐. 하연이랑 알바들이 너 대신해서 사과하겠지? 그럼 직원들끼리의 신뢰도 깨지는 거야.”
“네, 죄송합니다.”
“우리는 매일 만드는 똑같은 음식이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오늘 처음 접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일해야 돼. 한번 실망하고 떠난 고객은 다시는 돌아 오지 않아.”
나의 계속된 질책에 한승이는 고개를 숙이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로이스에서 있을 때도 머리카락과 같은 이물질이 나오는 사고는 몇 번 있었다. 솔직히 음식점에서 일하면서 음식에서 이물질이 나오는 것은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는 한 건도 발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일하다 보니 100%로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관리를 빡세게 해도 이물질이 들어가는 위생 사고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100%로 막으려고 노력하다보면 나 자신이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떳떳할 수 있었다. 고객님에게도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 매장은 원래 이런 매장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더워서 모자를 벗고 있었다?
이미 고객님들의 믿음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한승이의 정신상태를 바꿔 놓기 위해서 강하게 말했다.
“앞으로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말에 그는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이 정도로 말했으니 그도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래, 오늘 고생했어. 정리 얼른 마치고 밥 먹자.”
나는 주방을 나오면서 입구 쪽에 설치 되어 있는 온습도계를 쳐다보았다.
‘30도...’
잠깐 들어왔는데 이마에 땀이 흐르는 것을 보니까 덥기는 엄청 더웠다.
처음에 가게를 넓힐 때 주방에도 에어컨을 설치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설상 한계가 있었다.
에어컨이 들어갈 공간도 없었고 말이다.
그래서 선풍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올라가는 온도를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선풍기를 틀면 따뜻한 바람을 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실외기 없는 소형에어컨이라도 사야겠다.’
한승이에게 뭐라고 하기는 했지만 이런 환경을 만들어 준 것에 미안함도 있었다. 나도 정신이 없어서 신경을 못 쓴 부분이었다.
그렇게 주방을 나왔는데 내가 한승이를 혼내고 나와서 일까?
하연이부터 선우까지 다들 얼어 있는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주방에서 큰 소리가 나니까 다들 눈치를 본 것이다.
시간을 보니 이제 곧 브레이크 타임이었는데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다들 밥 먹어...나는 잠깐 나갔다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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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괜찮아요?”
한승이 주방 정리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오자 하연이 물어보았다.
“어, 괜찮아. 내가 잘못한 거지.”
“그러게, 왜 모자를 벗고 있었어요. 평상시에는 잘 쓰고 있더니...”
“너무 더워서 나도 모르게 벗었어.”
“근데 사장님. 화나시니까 엄청 무서운데요? 저렇게 화내시는 거 처음 봤어요.”
“그래? 나는 예전에 로이스에서 일할 때 몇 번 봤어. 원래 사장님이 아닌 거는 확실하게 아니라고 말씀하셔.”
“그렇구나...그런데 점심도 안 드시고 나가신 거 보니까 화 많이 나신 것 같은데...괜찮을까요?”
한승이도 정훈이 점심도 안 먹고 나갔다는 말에 신경이 쓰였다.
확실히 로이스에 있을 때보다 자신이 정훈을 편하게 생각해서일까? 마음이 조금 풀어진 것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져서 정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정훈이 들어왔다. 한승은 그가 빨리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의 손에는 커다란 수박이 들려 있었다.
정훈은 수박을 책상 위에 내려 놓더니 말했다.
“다들 오늘 첫 오픈 준비하느라 고생했어. 이거 별거 아니지만 먹고 다들 힘내자.”
“우와, 수박이다.”
정훈이 준비한 수박에 잔뜩 얼어있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졌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커피도 마시기는 했지만 너무 더운 날씨에 다들 시원한 것이 먹고 싶었던 참이었다.
한승은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정훈이 수박을 사 왔다는 생각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정훈과 눈이 마주쳤다.
“조한승, 앞으로 잘할 수 있지?”
정훈의 말에 한승이 큰 소리로 외쳤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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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로이스가 정식으로 가게를 오픈했다.
요즘에는 잘 하지 않는 노래까지 틀어넣고 시끌벅적하게 오픈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들어가는 사람들이 꽤 많아 보였다.
더군다나 신규 오픈이라서 그런지 로이스 관계자들도 많이 와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점포에서 지원도 많이 왔나 보군.’
그렇게 조용히 맞은편에서 쳐다 보고 있었는데 1+1 이벤트 배너가 새롭게 달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전까지는 작은 사이즈로 지나가는 행인들이 볼 수 있게 설치해 두었는데 이제는 반대 편에서 보일 만큼 크게 벽에 걸어두었다.
‘아주 작정을 했구나.’
지나가는 손님들을 모조리 끌어모을 생각 같았는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어제 첫 오픈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오늘 새로운 배너도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장님. 이거 이제 달까요?”
“어, 이쪽 유리창에 붙이자.”
나는 커다란 한 쪽 유리창에 미리 준비한 경품 이벤트 배너를 부착했다. 급하게 주문해서 오늘 아침에서야 도착했는데 눈에 확 띄는 것이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다.
솔직히 말해서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준비했고 남은 것은 고객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