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화
“혹시 죄송한데 고객 님 지금 아파트에 살고 계실까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살고 계시는 평 수가 어떻게 되는 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40평에 살고 있습니다.”
“거실 크기가 그 정도면 65인치는 조금 작은 느낌이 있어서 보통 75인치 이상으로 많이 하시거든요. 이쪽에 있는 제품들이 전부 75인치 이상입니다.”
나는 직원이 알려주는 TV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는데 크기가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거는 같은 85인치인 데 가격 차이가 좀 나네요.”
“네, 고객 님. 그것은 화질 차이 때문입니다. 왼쪽에 있는 제품은 일반 LED 제품이고 오른쪽에 있는 제품은 퀀텀 mini LED 제품인데 모래처럼 작은 LED가 촘촘히 박혀 있어서 조금 더 선명하고 높은 화질로 TV를 보실 수 있으세요.”
“그렇군요.”
“거기에 더해서 이 제품 같은 경우는 AI 퀀텀 사운드 & 무빙 사운드 기술이 들어가 있어서 화면이 움직이는 그대로 고객 님이 소리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혹시 영화나 스포츠 좋아하시면 따로 스피커 설치 안 하셔도 최적의 사운드를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처음에는 다른 직원과 다르게 친절하고 설명도 잘 해주는 것 같아서 여기서 사지는 않더라도 어떤 TV가 좋은지 설명을 들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직원 너무 친절하게 설명을 잘 해줘서 솔직히 놀랐다.
따로 보고 설명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제품에 대해서 물어 보면 바로 특징을 알려주었다.
“네, 그런데 엄청 잘 알고 계시네요. 대단하세요. 혹시 다 외우신 거에요?”
“아, 감사합니다. 일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고 외워진 것 도 있고 손님들이 궁금해 하시는 거 기억했다가 따로 공부한 것도 있습니다.”
내가 칭찬을 해주자 남자는 기분이 좋은 얼굴이 더 웃기 시작했다.
“혹시 TV 주문하면 오래 걸릴 까요?”
“제품에 따라서 1주일에서 3주까지 차이가 있기는 한데...혹시 어떤 제품이 마음이 드셨을까요? 제가 재고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거요.”
내가 고른 TV의 아래에는 가격이 700만 원 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거 말씀하시는 거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자신의 생각보다 비싼 TV를 골라서 일까? 그는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핸드폰을 열어서 이것저것 찾아보는 것 같더니 나에게 말했다.
“고객 님, 다행이네요. 광주 다른 지점에 재고가 남아 있어서 일주일 정도면 제품 받아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네, 거기에 제가 특가 적용 시켜 드려서 650만 원 까지는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괜찮네요. 이거로 구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객 님. 1층에서 주문 도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청소기도 봐야 하는데 그것도 추천 해주시겠어요?”
“청소기도요?”
****
“여기에 성함이랑 주소 적어 주시면 됩니다.”
김철수는 꿈만 같았다. 사실 7월 달 들어서 매출을 많이 올리지 못 했었다.
구매 의사가 높아 보이는 고객들은 전부 선배들이 차지했기 때문에 자신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런데 오늘 고가의 TV를 판매한 것이다. 거기에 청소기와 전자레인지까지 말이다.
전자레인지는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요즘 청소기는 꽤 가격이 비싸서 괜찮은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일성 카드 혹시 가지고 있으세요? 있으시면 추가로 할인 받으실 수 있는데...”
“네,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부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음...무이자가 몇 개월이죠?”
“6개 월입니다.”
"그럼 그거로 해주세요."
서류 작성과 결제까지 마친 김철수는 고객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고객 님. 아마 내일 쯤 TV 설치 팀에서 고객 님에 일정에 맞추기 위해 연락이 갈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정훈이 떠나고 오랜만에 매출을 올린 김철수는 진심 기분이 좋았다. 그때 한 선배가 다가와서 말했다.
“전자레인지 팔았냐?”
자신에게 고객에게 가보라고 말한 선배였다.
항상 선배라는 이유로 얌체처럼 그는 고객을 가려서 받았는데 큰 고객을 놓친 것을 알게 되면 그가 엄청 배 아파 할 것 같았다.
“네, 팔았습니다.”
“그래, 내가 일부러 너 매출 올리라고 고객 붙여 준 거야. 고맙지?”
“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청소기도 팔았어요.”
“청소기?”
“네, 새로 나온 제트 청소기도 구매하셨거든요.”
“그래?”
청소기를 샀다는 말에 선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제트 청소기는 80만 원이면 넘는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아까워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김철수는 좀 더 약 올리고 싶어졌다.
“아, 그리고 TV도 사셨어요.”
“뭐? TV도 샀다고?”
“네. 85인치로 구매하셨어요.”
“이씨.”
자신이 팔지 못해서 일까? 선배는 갑자기 짜증을 내기 시작했는데 김철수는 익숙한 모습이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작년에 나온 led로 샀지? 그렇게 능력 있어 보이지는 않던데 말이야.”
선배는 가격이 300만 원으로 가장 저렴한 85인치 TV를 말했는데 김철수는 쐐기를 박았다.
“올해 6월에 나온 퀀텀 QLED로 구매하셨어요.”
****
집으로 돌아 온 나는 거실 벽에 TV 사이즈를 대략적으로 그려 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직원의 말처럼 거실이 넓어서 그런지 85인치가 적당한 사이즈로 보였다.
‘사길 잘했군.’
가격을 보고 조금 비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유일한 취미가 영화가 드라마 보기인 나였기 때문에 이 정도는 나를 위해서 쓰기로 마음 먹었다.
‘소파는 다음에 사야겠다.’
본래 오늘 가전제품과 소파까지 구매를 마칠 생각이었지만 시간을 보니 벌써 3시가 넘어가고 있어서 다음 기회에 구매하기로 생각했다.
‘주식이나 봐볼까?’
요즘 들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주식을 들여다 보기는 하지만 오전 9시와 오후 3시는 특히 꼭 주식 어플을 들어가서 일성 전자 주가와 어떤 종목들이 이슈가 있는 지 보는 편이였다.
너튜브에서 보니 하루에 시작과 끝을 확인할 수 있는 시작이니 주식 시장 트랜드를 알기 위해서는 이 시간에 관심을 끄는 종목들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했기 때문이다.
‘일성은 오늘도 큰 변화가 없구나.’
그나마 이제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지지해주고 있는 일성전자를 보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다른 종목이 눈에 들어왔다.
‘와, 선풍제약 오늘도 상한가 찍은 거야?’
선풍제약 현재가 159,500 (29.67%)
며칠 전 상현에게 전화 온 이후로도 선풍제약은 계속해서 가격이 올랐다.
상현의 말처럼 10만 원을 돌파하더니 오늘은 상한가를 찍어서 16만 원 가까이 달성하였다.
‘상현이 팔았겠지?’
저 번에 말한 분위기로는 10만 원이 넘었으니 팔았을 것 같은데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으면...’
내가 저번에 산 가격이 3만 원 정도였으니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으면 꽤 괜찮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선풍제약의 차트 창을 보면서 부러워 하고 있었는데 장을 종료를 앞두고 얼마 안 된 시점 갑자기 파란색 막내기가 선풍제약의 차트 창을 가르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나는 순간적으로 무슨 오류가 일어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선풍제약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15만 원이 깨지고 순식간에 13만 원까지 꼴아 박은 주식은 하방 vi가 걸려버렸고 vi가 풀리자 오늘 상승분인 상한가 30%까지 모두 반납해 버렸다.
나는 차트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봤는데 잠시 후 3시 20분이 되고 동시호가에 들어가자 선풍제약의 최종 가격은 10만 5천으로 끝이 났다.
순식간에 6만 원에 가까운 주가가 하락했는데 상한가를 바라보던 주식이 -15%로 끝나 버린 것이다.
선풍제약의 일봉 차트에는 파란색 선명한 막내기가 기다랗게 새겨졌는데 그것을 본 나는 주식시장의 무서움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
7월 25일 토요일
공사 진행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차를 주차하고 가게로 올라온 나는 어제 봤던 선풍제약이 다시 떠올랐다.
‘진짜 조심해야겠다.’
종토방을 돌아다니면서 확인해보니 일성전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지만 선풍제약과 같은 제약회사에서는 흔히 보이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번 오늘 때도 많이 오르고 떨어질 때도 많이 떨어지는 구나.’
이런 이야기를 몇 번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두 분으로 떨어지는 그래프를 확인하니 느껴지는 감정이 남달랐다.
“형님, 오셨어요?”
가게는 아침부터 열심히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며칠 사이에 구조는 어느 정도 잡혀 보였다.
“어, 별다른 일은 없지?”
“네, 공사는 잘 되고 있어요. 근데 저 반대편 8월 4일에 오픈하는 거 같아요. 오늘 보니까 홍보물 바꿔서 걸었던데.”
“그래?”
보통 직장인들의 휴가철이 7월 28일부터 8월 3일까지이다. 아마 휴가가 끝나고 복귀하는 직장인들을 상대로 제대로 가게를 홍보할 생각인 것 같았다.
“네, 한번 가서 보세요.”
나는 안 서방의 말에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로이스를 둘러 보았는데 눈에 띄는 다른 것도 있었다.
<< 오픈 기념 이벤트 로이스 정식 1+1 행사 >>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걸어둔 배너였는데 오픈 기념 행사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식을 1+1으로 준다고?’
파스타 증정 정도의 행사를 생각했는데 로이스가 생각보다 강한 프로모션을 들고 나왔다.
어떻게 보면 내가 생각한 런치 세트 이벤트보다 좋은 것도 같았다.
다행인 점은 기간 한정이라는 것이다.
<< 8월 4일 ~ 11일 >>
일주일 간의 짧은 행사, 하지만 오픈 초반에 어그로를 끌기에는 나쁘지 않은 프로모션 같았다.
행사에 관해 궁금증이 생긴 나는 양혜원 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점장님, 저 김정훈입니다.”
[ 네, 안녕하세요. ]
“다름이 아니라 오늘 보니까 여기 로이스 상무점 오픈하는 곳 로이스 정식 1+1 행사 하던데 요즘에 이런 프로모션 많이 하나요?”
[ 아, 그거 이번에 처음 시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최지연 점장이 생각해 낸 거라고 하던데. ]
“그래요? 근데 1+1으로 주면 재료비가 감당이 되나요? 이거 실적 개판 날 것 같은데...”
최지연의 경쟁 상대는 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매 월 영업이 끝나면 전국에 있는 수십 개의 매장에서 매출, 재료비, 인건비, 등 실적 자료를 비교하고 분석한다.
매출이 높아도 실적에서 영업이익이 나오지 않으면 최지연은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그런 관점에서 이 프로모션은 상당히 리스크가 있었다.
‘완전히 나를 노리고 한 건가?’
[ 저도 궁금해서 이번에 팀장님에게 물어봤는데 단가 맞추려고 좀 저렴한 식재 썼다고 하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