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49 화 >
<< 오빠, 속이 너무 쓰린 것 같아요. >>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본 나는 웃음이 나왔다.
‘오빠.’
어제 단비 씨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 온 후 처음으로 길게 통화를 했다.
전화를 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단비 씨의 일상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가장 좋았던 것은 그녀와 말을 놓기로 했다는 것이다.
예전 여자친구는 동갑이었기 때문에 서로 ‘야. 김정훈.’ 하면서 반말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그것과는 색다른 아주 좋은 기분이었다.
‘그래, 이제 신경 좀 쓰자.’
아직 ‘그녀를 좋아한다.’라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머리 자른 지도 너무 오래됐네. 오늘 은기한테 가야겠다.’
오늘은 오랜만에 휴일이어서, 머리도 자르고 휴식도 좀 취할 생각으로 기분이 좋았는데 상현이 보낸 깨톡 하나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 ㅋㅋㅋ정훈아, 선풍제약 9만 원 찍었다 ㅋㅋㅋ >>
저번에 내가 산 선풍제약의 가격이 3만 원 이었는데 내가 판 이 후로 꾸준히 오르기 시작하더니 오늘 7월 20일 현재가 9만 원을 달성하고 있었다.
갑자기 짜증이 난 나는 상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이거 뭐냐?”
[ 내가 이거 간다고 했잖아.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는 거다. ]
“너, 아직도 안 팔고 가지고 있었어?”
[ 이걸 왜 팔어, 잘 봐라 10만 원 넘는다 이거. ]
“아이씨, 나도 계속 가지고 있을 걸...”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최소 2천만 원을 벌 수 있었을 텐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금 들어오기에는 너무 늦었으니까, 너 절대로 사지 마라. 이제부터는 가진 자의 영역이다.]
“그래, 축하한다.”
전화를 끊은 정훈은 다시 선풍 제약의 차트를 살펴보았다. 하늘을 뚫을 기세로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니 상현의 말처럼 무섭게 보이기는 했다.
반면에 현재 가지고 있는 일성전자의 차트는 평온하기만 했다.
다행히 떨어진 가격을 회복하여 본전 근처에서 놀고 있었는데 한 달이 넘게 묶어 두었던 것 치고는 늘어난 돈이 없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깝긴 하지만 상현이 말처럼 지금 선풍제약 들어가는 것은 너무 오바야.”
허준석 대표의 책을 본 이후로 나는 주식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아졌다.
나름 공부도 하고 있어서 조금씩 보는 눈도 높아지고 있었다.
그는 자산운용회사의 대표라서 그런 지 주식과 펀드 같은 금융 상품의 대한 투자를 강조했는데 좋은 기회가 있다면 나도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볼 생각이었다.
부자가 되기로 마음 먹은 이상 리스크를 감수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
나는 이번에는 은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은기는 친구들 중에 가장 어색한 친구였다. 2학년 까지만 학교를 다니다가 갑자기 미용을 배우고 싶다면서 그만두고 미용 학원으로 떠나서 일수도 있겠다.
물론 싫어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단둘이 만나면 특별히 할 말이 생각이 안 나는 그런 거 말이다.
그래서 단둘이 만난 적은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은정이 말처럼 그가 일하는 미용실에 가볼 생각이었다.
예전에 로이스에 일할 때는 스타일이 정해져 있었다. 정장 근무복에 옆 머리는 짧게 투블럭으로 자르고 거기에 앞 머리를 스프레이로 뿌려서 위로 고정 시켰었다.
단정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있었고 머리를 단단히 고정시키면 음식에 떨어지는 것도 방지할 수 있어서 그 스타일을 오랫동안 했었는데 거울을 보고 있으니 나도 좀 지겨운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지현이를 만났을 때는 아침마다 고데기로 머리카락을 말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부지런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 단비 씨 한테도 잘 보여야지.’
“여보세요.”
[ 여보세요. ]
“어, 은기야. 나 정훈이.”
[ 어, 알고 있어. 갑자기 무슨 일이야? ]
“아니, 나 머리를 좀 자르려고 하는데 너 오늘 출근했어?”
[ 머리를? ]
“응, 너 오늘 출근했으면 예약 좀 하려고 내 머리 좀 잘라주라.”
[ 음..우리 가게 너무 멀다고 그동안 안 왔었잖아. ]
사실 그랬다.
녀석의 가게는 시내 쪽에 있었는데 어색한 것도 있고 집 앞에서 잘라도 되는데 굳이 거기까지 가서 머리를 잘라야 하나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친구들의 머리는 전부 은기가 잘라주고 있었는데 다들 항상 만족 했었다.
내가 보기에도 잘 자른 것 같았고 말이다.
실력과 외모를 모두 갖추고 있어서 인지 은기는 부원장의 자리까지 빠르게 올라갔는데 그래서 예약을 하지 않으면 그에게 머리를 자를 수가 없었다.
“그랬지. 근데 이제 나도 관리 좀 하려고.”
[ 그래? 음...3시 이후에 괜찮을 것 같은데 그때 예약이 비어 있다. ]
[ 알았어. 그럼 그때 갈게. ]
****
[ 박혁 헤어스튜디오 ]
“가게 엄청 크구나...”
사실 그동안 와본 적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검색을 해보니 광주에서 유명한 헤어샵 중 하나였다.
크기만 큰 게 아니라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엄청 많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 틈 사이에서 열심히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 은기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사람이 많아서 부르기가 좀 그랬다.
그때 다른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커트 하러 오셨어요?”
“네.”
“혹시 찾으시는 선생님 있으세요?”
“정은기 디자이너 예약했어요.”
“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김정훈입니다.”
“네, 여기 앉으셔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실 거 가져다 드릴까요?”
나의 말에 여자는 작은 메뉴판 같은 것을 건네 주었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음료들이 적혀 있었다.
“커피, 주십시오.”
“네. 커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자리에 앉은 나는 은기가 머리를 만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고 있었다.
은기는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 조용히 있는 편이라 말수가 원래 적은 줄 알았는데 끊임없이 고객들과 말하면서 일하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조금 새로운 느낌이었다.
“아, 오빠. 미안해. 여기 미용실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어디 피시방에라도 가 있을래?”
나는 헤어샵 직원이 가져다 준 커피를 마시면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여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남자친구가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나도 지현이 기다린 적 있지.’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소리가 들려서 대화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커피를 뿜을뻔 했다.
‘한 시간이나 기다리라고 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야?’
뭐 내 여자친구가 아니니까. 크게 상관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나였으면 크게 화가 났을 것 같다.
‘하긴 원래 미용실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 여자들 염색이라도 하면 몇 시간 걸리잖아.’
평소에 나 같은 경우에는 짧으면 15분이면 커트가 끝난다.
하지만 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미용실 선생님에 커트, 염색, 관리까지 받고 나면 하루 종일 걸린다는 이야기를 은기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주변을 둘러보니 꽤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들 참을성이 좋네...나 같으면 그냥 갈 것 같은데 말이야.’
아무래도 식당에서 일하고 있어서 일까? 나는 오래 기다리는 것을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었다.
가게에서 일하면 항상 시간이 쫓기기 때문이다.
예전에 로이스에서 일할 때 주문을 받고 고객에게 나가기 까지 평균 조리시간을 15분 안 쪽으로 하라고 배웠었다.
한국이 워낙 빨리빨리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식당에서 10분이 넘어가는 시간부터 고객들은 음식이 오래 걸린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고객에게 음식을 빠르게 가져다 주기 위해서는 음식을 데우는 시간을 당길 수는 없으니 중간에 행동이라도 빨리 해서 조리시간을 당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평소에도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미용실은 한 시간이 걸리는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낯설었다.
‘하긴 요새 우리 가게도 입구에서 많이 기다려 주시지...’
나는 문득 우리 가게의 단점이 생각났다.
최근에 블로그와 SNS에 가게를 다녀간 리뷰가 많이 늘어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가게의 단점이 있었다.
바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게 크기가 작아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한 현상이지만 적게는 10분, 많게는 20분 이상 기다린 손님들이 있다 보니 그들이 그것을 각오하고 가게를 방문하라고 적어두었다.
가게를 넓히려고 마음 먹은 것도 바로 이 이유에서였다.
테이블 수가 많아지면 기다리는 고객들을 최대한 많이 땡길 수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우리 가게 평일에 점심시간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대부분이 직장인 들이었다.
나도 직장 생활을 해서 알고 있지만 하루에 1시간, 점심시간은 직장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에 20분 투자한다고 한다면 아무리 맛있다고 하더라도 다음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지금까지는 너무 오래 걸렸어.’
나는 가게를 넓히면서 기존의 오래 걸린다는 이미지를 탈피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로이스를 의식해서 우동 증정과 같은 이벤트를 생각했었는데 크게 끌리지는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에 어떤 것이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런치 세트!’
예전에 서울에 강남에 신규 점포가 오픈한다고 해서 지원을 간 적이 있었다.
진짜 수없이 많은 직장인들이 밀려 들어와서 다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어렵지 않았다.
그들의 메뉴가 통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직상 상사와 같이 온 그룹들은 전부 메뉴가 하나로 주문이 들어오다 보니 정말로 일이 편했다.
점심시간에만 가성비 좋은 음식으로 메뉴를 통일시키면 손님이 메뉴를 고르는 시간, 거기에 미리 준비할 수도 있어서 조리시간까지 앞 당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적어지면 당연히 회전율이 올라가서 매출이 좋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어떤 메뉴로 런치 세트를 하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메뉴에 대한 생각으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전 손님의 머리가 끝났는 지 은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 은기야. 끝났어?”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잠깐 가게 생각했어.”
“그래? 이쪽으로 와봐. 머리 봐줄게.”
나는 은기가 말하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은기는 나의 머리를 이리 저리 훑어 보더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내가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너는 이 머리 하면 어울릴 것 같았어.”
“그래? 어떤 거?”
“가르마 펌이라고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