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47 화 >
내가 알기로 아버지는 강진에 내려오고서 그렇게 돈을 많이 모으지 못 하셨다. 애초에 할아버지가 남겨준 땅이 작아서 그런지 농사로는 큰 수익을 낼 수가 없었다.
그저 두 분이 생활하실 생활비에서 조금 더 버는 정도 셨을 것이다.
‘이건 아마 퇴직금이시겠지.’
예전에 은정이가 결혼할 때 엄마에게 아버지 퇴직금으로 결혼 자금을 보태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건 거기에 사용하고 남은 돈인 것 같았다.
‘그런데 돈 필요 없는데...’
내가 받지 않고 통장을 만지작거리고 있자. 아빠가 말했다.
“어차피 너 주려고 모은 거니까. 너무 부담가지지 마라.”
아빠의 말에 나는 일단 통장을 챙겼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그래.”
아버지는 과일 하나 집어서 입 속에 넣으셨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착잡했다.
지금이라도 로또에 당첨 되었다는 사실을 말씀 드릴까 고민이 되었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처음에 부모님에게 로또 당첨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은 이유는 고모들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1남 3녀 중 장남이었는데 본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 계실 적에는 강진에 제법 큰 땅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고모들이 자신들의 몫으로 땅을 달라고 이야기 하셨는데 아버지는 처음에 반대하셨었다.
부모님과의 추억이 있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모들의 등살에 형제 간의 우애를 깨기 싫었던 아버지는 결국 동생들 몫의 땅을 나누어 주었다.
들은 이야기로는 사촌들 집 사고 고모부 사업하는데 돈이 꽤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누구 하나 잘 되었다는 이야기가 안 들리는 것으로 봐서 시원찮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이야기가 고모들에게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다시 아빠를 귀찮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고 싶어서 부모님과 은정이에게까지도 로또 당첨 사실을 숨겼었다.
그런데 아들을 걱정해서 젊은 시절에 고생해서 일한 결과물인 퇴직금을 내어 주신 아버지를 보고 있으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통장을 쥔 손을 꽉 쥐었다.
이 돈은 쓰지 않을 것이다. 가게가 조금 더 잘 되고 나면 여기에 아버지와 어머니에 노후에 쓸 수 있는 돈까지 마련해서 나중에 다시 돌려 드릴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
“계약은 다 됐어요.”
부모님을 만나고 광주로 올라온 나는 금요일에 바로 임대 계약을 마쳤다. 예전에 한 번씩은 했던 계약 들이고 몇 가지 사항만 확인하면 되었으니 그렇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막상 넘기기로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제 영영 안녕이라고 하니까 섭섭하네.”
카페 사장 조형우는 계약서를 들고 추억에 담긴 듯 보였다.
“이제 무슨 일 하실 생각이세요?”
“배달 일 계속 해보려고...이야기 듣기도 풀로 뛰면 수입이 괜찮다고 하더라고.”
“사모님은요?”
“와이프는 집에서 애들 봐야 할 것 같아. 망할 놈의 코로나 때문에 방학이 길어져서 애들 맡아 줄 곳이 없어.”
“그렇군요. 그럼 저희는 이제 못 보는 건가요?”
그래도 가끔씩 사장님 네 가게에서 커피 마시면서 했던 이야기들이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 서운했다.
“아니야. 상무지구에서 배달 할 거야. 가끔 돈까스네 가게 배달 잡으면 배달비 싸게 가줄게.”
“그래요?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우리 가게도 배달을 시작한 지 좀 되었는데 생각보다 많이는 들어오지는 않고 있었다.
리뷰 이벤트를 하지 않아서 인지 새롭게 주문하는 고객들보다는 기존에 가게를 다녀가고 단골이 된 고객들이 많이 주문하였다.
그래도 그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서 나는 이것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공사는 다음 주부터 하는 거야?”
“네, 아마 그럴 것 같아요.”
“나는 망해서 나가지만 돈까스는 꼭 가게 잘 됐으면 좋겠어.”
“망하다니요. 사장님 커피 맛있었어요.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쩔 수 없었어요.”
“그래? 그래도 이제 가게는 웬만해서는 안 하려고 내 장사한다는 게 스트레스야, 스트레스.”
“그렇기는 하죠.”
나도 직장 다닐 때는 가게 하면 스트레스 덜 받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장사가 잘 되도 스트레스, 안 되면 더 스트레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
계약을 마치고 오후가 되자 나는 한 통의 깨톡을 받을 수 있었다. 정미희가 작업한 스케치의 샘플이었는데 나는 생각보다 너무 잘 나온 그림에 감탄하면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정훈 씨. 제가 보낸 사진 보셨어요? ]
“네, 봤습니다. 너무 잘 나왔던데요. 딱 제가 상상한 이미지였어요.”
[ 그래요? 마음에 드셨다니까 다행이네요. ]
“특히 간판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본래 우리 가게 간판은 ALOHA라고 적힌 평범한 간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려 준 간판은 글씨체도 예뻤지만 겉 테두리는 진하고 안은 밝은 조명이 비추고 있는 것 같아서 눈에 확 들어왔다.
[ 그거 제가 아는 간판 제작 업체가 있는데 요청하시면 똑같이 만들어 줄 거에요. 예전에 작업한 적 있거든요. ]
“그래요? 그럼 이거는 거기에 맡겨야 되겠네요. 아, 혹시 내부 샘플도 완성 되었을까요?”
[ 죄송해요. 그거는 지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내일까지 보내드릴게요. ]
나는 며칠 동안 고민 끝에 그냥 벽을 허물고 인테리어를 통일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면서 가게 문 위치나 홀 구조를 새롭게 생각해서 그녀에게 보냈는 내가 생각해도 시간이 좀 촉박했다.
“내부는 그렇게 디테일하게 안하셔도 되요 제가 그냥 매제에게 설명할 정도만 되면 되니까요.”
[ 그래도 제 이름 달고 보내드리는 건데 예쁘게 해드려야죠. ]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때문에 토요일에 쉬시지도 못하고 너무 죄송해서 어떻게 하죠?”
[ 프리랜서가 쉬는 날이 있나요. 일 들어오면 열심히 해야죠.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 네, 수고하세요. ]
나는 그녀가 보내 준 그림을 가지고 가게 밖으로 나가서 비교해 보았다. 건물과 오버랩되면서 공사 끝난 후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핸드폰을 내려 놓고 반대편을 쳐다보니 로이스도 공사가 시작되었는 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어차피 매장 오픈 준비는 본사 개발팀이 하기 때문에 강훈이나 최지연이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그때도 그냥 구경하러 온 거겠지.’
“맞다. 오픈 이벤트.”
가게 공사 하는 것만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오픈 이벤트가 있었다.
로이스 같은 경우 신규 매장이 오픈할 때면 가게 홍보 및 단골 손님 확보를 위해 오픈 이벤트를 크게 진행했었다.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로이스와 나와의 첫 승부처가 될 것 같은데 그거에 대한 생각도 필요 했다.
“아마도 로이스는 메뉴 증정이겠지.”
내 기억에 전통적으로 로이스는 신규 오픈한 매장에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크림파스타 증정 행사를 했었다.
테이블 당 하나의 메뉴를 무료 서비스로 주는 것이었는데 거의 1인분에 가까운 메뉴를 그냥 주다 보니 그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우동이나 소바를 서비스로 드릴까?’
나는 같은 종류의 이벤트를 생각해 보았다. 저 쪽에서 면이 서비스로 나갈 것 같으니까 같은 면으로 상대하는 것이다.
돈카츠를 주문할 때 우동이나 소바를 곁들여 주문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쁘지 않을 것 같았지만 무언가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똑같이 음식을 서비스로 주는 것이라면 이왕이면 새롭게 생긴 매장에서 먹어보고 싶을 것 같았다.
매일 점심에 어떤 메뉴를 먹을 것인가 하는 것은 직장인들에게 큰 고민이니까 말이다.
‘생각을 좀 더 해봐야겠다.’
****
“형님, 이거 너무 좋은데요?”
일요일, 안 서방을 만난 나는 인테리어에 관해서 논의하고 있었다. 다행히 정미희가 스케치를 제대로 보내주어서 내 의견을 잘 전달할 수 있었다.
“그래? 이런 식으로 공사가 가능할까?”
“네, 이 쪽 벽 허물면서 천장도 높이고 주방은 저기랑 여기 좀 연결해서 만들면 될 것 같아요.”
“그럼 다행이네.”
“근데...이런 느낌 내려면 자재를 좀 비싼 거 쓰셔야 할 것 같은데 공사비는 이 전보다 좀 올라가실 거예요. 설계비 같은 건 제가 저렴하게 해드릴 수 있는데 이건 아예 자재 값이 비싸서...”
“그건 어쩔 수 없지. 그 자재 비용은 신경 쓰지 마.”
“그래요? 여기 있던 기존에 물건들은 어떻게 하실 거에요?”
카페 사장님은 어제 토요일까지 영업하시고 일을 그만 두셨는데 아직 가게에는 많은 기물들이 남아 있었다.
이 전에 알로하를 만들 때도 이런 식으로 가게 인수를 했는데 나는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거 그냥 중고로 다 넘길 거야.”
“그럼 예전이랑 똑같이 하겠습니다. 설계하고 철거 시작은 다음 주 수요일부터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그 전에 말씀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래도 빨리 할 수 있다니 다행이다. 공사 기간은 얼마나 걸리까?”
“글쎄요. 아직 세세한 일정은 안 짰는데 공사 진행하는 인부들 일정도 확인해야 돼서 적어도 2주는 걸릴 것 같은데...”
“그래?”
2주 라 수요일에 시작한다고 하면 8월을 조금 넘길 것 같았다.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저 반대편에 오픈하는 가게 거기가 8월 오픈 예정이거든 거기보다는 먼저 가게를 오픈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나는 반대편에 보이는 로이스 공사현장을 보면서 가리켰다.
“저기요? 저기도 이제 시작한 거 맞죠?”
“어, 며칠 전에 시작했어.”
“설마 저기도 돈카츠 가게에요?”
“어, 맞아.”
“저런 상도덕 없는 놈들이 있나. 바로 반대편에 같은 업종을 차리다니.”
안 서방은 나를 대신해서 화를 내주었는데 뭐 다른 블록에도 돈까스 집에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 나도 마음에 안 들어.”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조건 저기보다 공사 빨리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다고 너무 공사 빨리 한다고 하자 있으면 안돼?”
“에이, 그거는 걱정하지 마세요.”
안 서방과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전화를 확인해보니 강성민의 전화였다.
“어, 성민아 무슨 일이야?”
[ 어, 정훈아. 잘 살고 있냐? ]
“잘 살고 있지.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 아니, 지금 와이프랑 밖에 잠깐 나왔는데 시간 괜찮으면 저녁에 술 한잔 어때? ]
“술? 갑자기?”
[ 어, 궁금한 것도 있고 해서 저녁에 보자. 내가 사줄게. ]
어차피 저녁에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성민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그래, 그러자. 그런데 누구누구 모이는 거야?”
[ 나랑, 유진이랑 너랑, 단비 씨. ]
“단비씨?”
[ 어, 괜찮지? ]